적·물 寂·物 Objects in Quietude

이희용展 / LEEHIYOUNG / 李熙鏞 / painting   2021_0407 ▶ 2021_0507 / 일,공휴일 휴관

이희용_정물_종이에 연필_80×80cm_202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일,공휴일 휴관

레이블갤러리 LABEL GALLERY 서울 성동구 성수이로26길 31 (성수동2가 278-40번지) labelgallery.co.kr

종이에 연필로만 이루어진 이 재현회화는 오로지 단 하나의 대상에 겨냥된 냉정한 시선을 반영하고 있다. 단호한 어둠이자 짙은 검정에 가까운 밀도 높은 배경을 뒤로 하고 적조하게 위치한 하나의 사물은 종이나 흙으로 이루어진 일상의 기물 내지 도구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 이외의 것은 단호하게 화면에서 배제되었다. 배경은 단일한 하나의 색으로 마감되었고 그 한가운데 혹은 화면 하단에 자리한 대상은 자신의 정면만을 무심하게, 즉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엄정하고 명료한 포즈는 모든 연출, 수사를 다 잠 재우며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를 다시 보고자, 그리고자 하는 욕망만을 뼈처럼 세우는 연필로 다시 살아난다. 세상에 적막하게 존재하는 사물과 독대하는 나와의 이 고독한 관계만이 그림 안에서 긴장감 있게 흐르는 편이다. 오로지 검정과 흰색 톤의 스펙트럼 안에서 색의 섬세한 조율이 이루어지고 있고 주어진 대상/사물의 형태와 질감만이 단색조 안에서 중후하고 깊이 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그림이지만 얇은 종이의 단면, 그 피부위에 실제 사물의 존재의 실존적 무게감을 현존시키려는 시도에 가깝다는 생각인데 그것을 거의 조각적으로 연필화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역설적인 이 회화는 납작한 피부위에서 그만큼 강도 높고 밀도 있는 존재의 물화에 해당한다. 단지 그림으로 그려지고 환영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희용_정물_종이에 연필_80×80cm_2021
이희용_정물_종이에 연필_80×80cm_2021

작가가 그리고 있는 것은 고려청자나 조선백자, 분청 내지 사발 그리고 종이백 등이다. 오랜 시간을 머금은 골동이거나 소비사회의 고급스러운 상품을 일시적으로 담고 있는 포장 용기들이다. 한국 전통사회의 특정한 시기에 사용된 일상의 기물인 동시에 탁월한 조형적 미를 간직한 예술작품(근대를 거치면서)으로 인식되는 것과 현대 상품사회의 소비와 미적 욕망을 충족하는 대표적인 기호가 공존하고 있다. 둘 다 내부는 비어 있다. 표면을 거느린 존재들이고 그 피부가 전적으로 몸인 것들이다. 그릇의 표면에는 문양이나 문자가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는데 반면 종이백의 전면에는 특정 상품명,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앞의 것들이 주술적인 문양이라면 이 로고, 상징들 역시 자본주의의 주술적 기호에 해당한다. 특정 브랜드가 상품을 대신하는 얼굴이며 또한 그것이 자본, 취향, 계급 등을 규정하고 판단하게 하는 결정적인 존재 이유가 된다.

이희용_정물_종이에 연필_105×162cm_2019
이희용_정물_종이에 연필_105×162cm_2020

작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단순하게 처리되고 가능한 평면적으로 마감된 컨테이너 박스는 실재 박스의 재현인 동시에 그로부터 미끄러져 나와 유사한 이미지로, 일종의 기호화 된 풍경의 구조물로 치환되고 있다. 그리고 이 단일한 박스는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은유하는 언어적 역할도 하는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 풍경의 한 단면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가 하면 주거 공간의 여러 문제점을, 간편하고 효율성만을 염두에 둔 자본의 관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거나 불구적이고 임시방편적인 삶의 방편을 암시하는 상징 등을 두루 탑재하고 있다. 이는 좀 더 초점을 맞추면서 모델하우스 내부로 좁혀진다. 모델하우스는 일종의 모조적 풍경이다. 그것은 분명 향후 이어질 집의 내부를 암시하지만 실은 그것과 닮은 유사성 속에서 모종의 환영을 극도로 연출한다. 이른바 진짜와도 같은 가짜 풍경이자 일종의 허상이고 신기루다. 작가는 모델하우스의 내부 공간과 창 바깥으로 펼쳐지는 '현장'을 극도로 대비시킨다. 흡사 화성과도 같은 황량하고 건조한 자연 풍경이자 온갖 건축용 자재의 파편들, 쓰레기들이 가득 찬 그 풍경은 모델하우스 내부가 보여주는 황홀한 약속(?)과는 정반대 지점을 지시하면서 시선을 가득 채운다. 주거공간에, 유토피아에 대한 욕망이 그 욕망을 감내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치러야하는 상처와 어두움을 한 공간에 잔인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그림의 진정한 주제는 모델하우스 내부가 아니라 창 바깥에 자리한 풍경이고 사물인 셈이다. 단색으로 마감한 실내와 색상을 거느린 바깥 풍경의 이 대조는 단색주의 추상과 구상적인 풍경화의 대비 만큼이나 커다란 낙차를 안겨준다.

이희용_정물_종이에 연필_120×60cm_2020

종이백을 그린 것은 이번에 처음 시도된 그림이다. 흙으로 빚어 구워낸 입체적인 것들과 달리 이 종이백은 평면적이어서 화면에 밀착되어 있다 보니 보다 화면의 평면성을 강화한다. 동시에 드리워진 끈과 그림자, 종이 백의 중앙을 점유하고 있는 영문자 로고 등은 그림과 실제의 간극을 교묘하게 위장한다. 착시와 환영을 연출하는 그림이자 그 경계가 부단히 지워지는 눈속임이 극대화되는 장면이고 상황이다. 미술의 오랜 전통인 트롱프뢰이유(눈속임 기법)는 미술과 마술의 교차점에서 번성했는데 오늘날에도 그림과 사진/영상의 틈에서 여전히 매혹적으로 출몰한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탈신체화 되는 동시대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미술은 인간의 몸과 감각의 발화점에서 여전히 유용한 신호를 절박하게 낸다. ● 이희용의 이 묵직하고 적막하며 핍진한 연필화는 그저 만만한 재현회화가 아니라 연필이라는 경질의 전통적인 도구, 가장 원초적인 재료가 이룰 수 있는 수준을, 흔히 접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선 어느 지점을 '턱'하니 건드린다. 그것은 막막하고 무모하며 측량할 수 없는 시간과 하염없는 축적을 바닥에 두어야만 만나는 모종의 어둠과 빛이고 두께와 질량이자 실제성과 탄탄함이다. 재료가 이루는 이 완성도와 실제의 힘이, 또한 그려진 형상이 존재성 자체를 상당히 이례적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 박영택

Lee Hi-yong's representational images merely penciled on paper reflect cold eyes focused on one single object. This object serenely set on a resolutely dark, almost deeply black, high-density background, is either a quotidian article made up of paper or clay or a tool. Anything outside or beyond what he wants to depict is completely excluded from his painting. While the background is completed in monochrome, an object set in the middle of or at the bottom of his scene indifferently and realistically reveals only its front. Its strictly balanced, clarified pose deprives every direction and rhetoric of their influence and is brought to life with a pencil. His painting is tensely imbued with his lonely relationship with an object that quietly exists in the world. The delicate tuning of colors in the spectrum of only black and white tones is made while only form and texture of given objects or things are deeply addressed. This is a painting but I think it approximates an attempt to have the existential weight of a real object present on a thin piece of paper. It is considered almost sculptural. This paradoxical painting is the reification of highly intensive, heavily dense objects, but it is more than any painted thing or illusion. ● Lee has chiefly portrayed objects such as Goryeo celadon, Joseon white porcelain, buncheong stoneware, bowls, and paper bags. These are antiques laden with time and receptacles temporarily containing products in a consumer society. They are also quotidian objects used in traditional Korean society in a specific time period or are considered artworks holding superb aesthetic beauty. Some of them are particularly marked by typical symbols that gratify aesthetic desires in a modern consumption society. Both ceramic vessels and paper bags are empty inside. What matters are their surfaces. The surfaces are like their bodies. Some ceramic vessels have patterns or characters but others do not. In contrast, some specific brands and logos are handsomely printed on the front surfaces of paper bags. The patterns appear shamanistic, and these logos or symbols are also deemed shamanistic in capitalism. ● In a new work, Lee depicts a paper bag. Unlike three dimensional objects made out of clay and then fired, this paper bag remarkably reinforces flatness since it is two dimensional and tellingly sticks to the surface. The string and shadow cast as well as the logo occupying the middle of a paper bag adroitly disguises the distance between illustrated and real images. This is a picture that brings about an optical illusion or a visionary image. It is also a scene or a situation in which an optical illusion is maximized. Trompe-l'œil is an age-old tradition and technique flourishing at the crossroads of art and magic. It is still adopted in a wide range of genres such as painting, photography, and video. Art still sends a useful signal at the tipping point of human bodies and senses in the current circumstance where everything is digitalized and dephysicalized. ● Lee's weighty, serene, and realistically genuine pencil works are not merely an easy representational picture but arrive at a point where they move beyond the level the conventional device of a pencil or the most primal material may attain. This signifies some darkness and light, thickness and mass, and reality and solidity we come across on the basis of boundless, reckless, and unfathomable time and ceaseless amass. This level of completion achieved by the material, the force of reality, and depicted images unprecedentedly raise existence itself to a considerably high dimension. ● Her primary concern is perhaps to touch on a variety of desires and contradictions brought on by Korean capitalism today by borrowing the genre of landscape painting. In this sense, her work seems to be a political landscape and a portrait of Korean society as well. As a result of her work, the container and the interior of a show house become profound images. ■ Park Young-taik

Vol.20210407e | 이희용展 / LEEHIYOUNG / 李熙鏞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