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人5色(5인5색)

이태현_홍용선_차영규_박철_김성호展   2021_0413 ▶ 2021_0511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파마리서치 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에이치오엠 Gallery hoM 서울 종로구 삼청로 124-1 Tel. +82.(0)2.720.6243 blog.daum.net/gallery-hom @gallery_h.o.m

치열한 예술행로 끝에 다다른 동양정신으로의 귀의歸依-5인5색展에 부쳐 ● 금번 hoM 갤러리 개관기념전에 초대된 5인의 화가는, 언 듯 보아서는 서로 간에 특별한 관계나 별 관련이 없는 작가들처럼 보인다. ● 이태현李泰鉉(1940,예천생,59학번, 경기도 광주 거주), 홍용선洪勇善(1943,인천생,62학번, 양평 거주), 차영규車榮圭(1947,서울생,66학번, 강릉 거주), 박철朴哲(1950,문경생,69학번, 경기도 광주 거주), 김성호金聖浩(1954,대구생,73학번, 양평 거주)는 각기 태어나 살던 곳과 지금 사는 곳도 다르고, 다같이 홍익대 미술대 출신이긴 하여도 나이와 학번이 14여년의 간격이 있고, 그 전공도 각각 서양화와 동양화, 추상과 구상으로 갈린다. 흔히 작가끼리는 같은 그룹에서 활동하며 단체 활동을 통해 함께 전시회를 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들은 그런 경우도 전무하다. 그러니까 이들이 함께 모여 전시회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 말하자면, 이들은 서로 가깝게 지낼 혈연이나 지연도 없고 학연도 그리 밀접한 사이가 아닌 사람들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십여 년 전부터 서로 가깝게 만나 특별한 우의를 맺으며 인생만년의 여유를 나누고 유游와 락樂을 함께 하는 화단의 이색적인 존재들로 주변에 알려져 있다. ● 이들의 60~70년대 미대 학창시절은, 한국의 모든 사회가 너나없이 서구문화에 경도되어 문화, 미술계도 동양적 우리전통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젊은 열정만을 내세워 서구 현대미술의 현상적 상항 속으로만 빨려들 듯 달려 갈 때였다.

이태현_SPACE20201005008CORONA_캔버스에 유채_50×100cm_2020
이태현_SPACE2021204CORONA_캔버스에 유채_56×72cm_2021

이때 이태현은 우리나라의 첫 한글세대이자, 4.19 주체세대로서 재학 중에 '무無'동인을 결성하고('62), 이후 후배그룹인 오리진, 신전 동인들과 함께 '청년작가연립전'을 개최('67)하여 한국화단 최초의 해프닝과 한국화단 최초의 행동하는 예술인의 모습을 보이며 가두행진을 감행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당시 한국현대미술이 그 윗세대의 뜨거운 추상미술의 세례를 받고 앙포르멜의 와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해프닝, 오브제, 설치 등, 새로운 경향의 네오다다적 작품을 선보여 한국현대미술의 혁신적 탈출구를 마련하고 큰 변혁을 기하였으니 이후, 우리화단에는 그룹의 결성과 각종 그룹전이 붐을 이루며 한국화단의 새로운 전기를 열어나갔다. 이태현은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제1세대 아방가르드(전위미술가)의 선봉이었으며 한국미술계의 가장 대표적이고 실험적인 의식의 소유자이다. ● 그는 이후로도 「무한대」그룹을 창립해('74) 활동하며 인도 트리엔나레('78), 상파울로 비엔나레('85)등, 국제전에 한국대표작가로 출품하고 각종 국내외 초대전, 공모전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또한 80년대에 들어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지금까지 14여회에 이르는 개인전을 개최하면서 자기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조심스럽고 은밀하면서도 꾸준한 자기모색을 치밀하게 계속하였으니 평면에 대한 구조적 해석과 엄격한 조형논리에 금욕적인 색채절제를 기하며 기하학적인 추상세계를 추구하는 등, 끊임없는 변화를 통한 자기세계를 철저히 모색해 갔다.

박철_Ensemble 20-4_한지에 천연염료_108×88cm_2020
박철_Ensemble 20-40_한지에 천연염료_108×88cm_2020

그에 비해 이번에 함께 초대된 서양화가 박철은, '한지韓紙작가'로 더 잘 불려진다. 그는 서양화가 중에서 추상작가이면서도 한지를 주로 쓰고 있는 작가들과 함께 한국미술계의 이색적인 단체인 '한지작가협회'를 결성('90)해 활동하면서, 78년 첫 개인전 이후 지금까지 47여회의 개인전을 통해 왕성하게 작업해왔다. 그러면서 쌍파울로 비엔나레('83) 에 한국대표작가로 출품하고 쾰른, 마이애미, 홍콩, 동경 아트페어나 파리, 암스텔담, 밴쿠버 등의 국제전에도 적극 참여해 한국현대미술의 2세대 대표작가중의 한사람으로 떠오르고 있다. ● 그는 또 흔히 '멍석작가'로도 불려지는데, 그것은 그의 작품제작 과정이 특별한데서 붙은 명칭이다. 그는 소위 한지Casting(주조) 기법을 이용해서 우리의 전래적인 기물인 멍석이나 떡판, 문짝 등과 서양의 악기인 바이올린, 첼로 등 서로 상반된 오브제에 석고나 씨멘트를 부어서 틀을 만들고 그 틀에 천연 접착제를 칠한 한지를 2.30겹 두툼히 덧발라 서로 밀착될 때까지 쓸고 두드려서 펼친 후에 거기에 천연염료를 칠하고 때론 광목과 화선지를 이용해 먹墨 작업을 해서 작품을 완성한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그의 작품은 '한지에 의한 부조浮彫작품'이 되며 그랬을 때 그는 서양화가가 아니라 '한지 조각가'가 된다.

홍용선_모과의 계절_스티로폼에 채색_90×60cm_2020
홍용선_초춘(初春)_스티로폼에 채색_90×180cm_2020

한편 한국화 작가인 일사一沙 홍용선은, 당시 한국현대미술의 대세가 '국전'이었음에도 국전심사의 극심한 편파성과 심각한 불공정성에 대하여 크게 반발해서 한국화단에서 처음으로 '국전 동양화부 낙선작가전'('67)을 주도, 개최하고 이후 국전에 불참하면서 한국화 최초의 추상화 그룹인 '시공회'('72)와 '신묵회'('84)그룹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시공회(한국화)와 오리진회(서양화), 한국현대조각회(조각)가 참여한 '한국현대미술연립전'('73)을 기획, 참여하고 80년대에는 이후10여 년간 소위 『수묵화 운동』을 주도, 전개하여 한국화단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활력을 불어 넣었다. ● 또 그는 지금까지 총 23회의 개인전을 가지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중국기행전('90)을 비롯해 유럽('86), 인도,히말라야,('01) 아프리카, 몽골, 러시아, 남미 등, 세계기행전('07)을 개최하고 기행화문집도 간행하여 우리나라 작가 중 외국기행전을 가장 많이 개최한 작가이기도 하다. ● 그는 90년대 이후 이러한 기행전을 통해서 단조롭고 전통적인 국내적인 소재에만 한정되어 있는 한국화에 다양하고 다채로운 글로벌한 소재의 확대와 이를 통한 현대적인 표현의 진폭을 넓히려는 시도를 함께 기해 왔다.

차영규_타오르는 그 날_한지성형위에 채색_지름 47cm_2021
차영규_폭포는 바람결에 휘날리고-上, 下_한지성형에 채색_80×60cm×2_2019

이에 비해 한국화가 신암信岩 차영규는, 일찍이 '춘추회' 초기('78) 때부터 참여하여 이후 현재까지 45여년간을 그룹에 몸 담아오면서 채색한국화 분야를 선두에 서서 이끌어온 개척자이자, 제1공로자이다. 채색화는 같은 한국화 분야에서도 8.15 해방 후에 일본화 의 잔재인 왜색倭色그림이란 오해와 편견 속에서 당시 국전에서 가장 푸대접 받고 혐오시 까지 됐던 분야였다. 오죽하면 7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춘추회 창립('75)시 주역이었던 고故 조복순(당시 홍대 교수)선생이 창립멤버의 규합에 무진 애를 먹었던 비사秘史를 간직하고 있는 그룹이었는데 지금은, 회원 수가 150여명에 이르고 연륜도 한국화단에서 가장 오래된 그룹중의 하나가 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회원들이 어느 특정학교나 특정지역 출신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전국의 각 지역 학교 출신들과 다양한 연령층들로 이루어져 어느 그룹보다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와 단연코 우리나라 화단의 대표적이고도 이색적인 그룹이 되어있다. 이를 통하여 차영규는 채색한국화의 위상과 진로와 화격을 함께 높여가면서 한편으로는 20여회의 개인전과 국내외 초대전, 단체전을 통해 자신의 예술세계를 가꾸어 가고 있다.

김성호_겨울스켓치_비단캔버스에 석채_24.5×47.5cm_2021
김성호_개망초 2_비단캔버스에 석채_53.5×110cm_2021

이번 5인5색전에 초대된 작가들 중 막내격인 한국화가 김성호는, 좀 특이한 개성을 지닌 작가다. 우리나라의 웬만한 작가들은 거의 모두 젊었을 때 특정 그룹에 가입하거나 아니면 본인이 직접 그룹을 만들어 활동해 왔는데 비해, 그는 지금까지 어느 특정한 그룹이나 작가단체에 소속되어 진적이 없다. ● 그는 일찍부터 고향 대구를 떠나와 시골 양평에서도 한적한 산골에 자리를 잡고 터를 닦아 직접 나무판을 자르고 엮어서 스스로 목수가 되어 목조 오두막 화실을 짓고 작업을 하면서 주로 지금까지 개최해온 20여회의 개인전을 중심으로 하여 작가활동을 해왔다. 그는 마치 깊은 숲속 호수 가에 직접 오두막 집을 짓고 살며 속세를 떠나 자연 속의 중용中庸의 삶을 추구했던 미국의 소로우(Henry D Thoreau)나 '월든네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 그의 작품은 화선지 보다 장지에 배접한 비단을 주로 쓰고 붓도 까치 꼬리털로 직접 만든 붓을 쓰는가 하면, 채색도 분채나 봉채, 쥬브 물감 같은 현대 동양화 안료가 아니라 그가 주변의 식물이나 광물질에서 추출해낸 천연염료나 석채를 주로 쓴다. 또 보통의 한국화가들이 수묵산수화를 즐겨 그리는데 비해 그는 먹 한 방울 쓰지 않는 순전한 채색화로 산 보다는 전원 들판을 주로 그리는 「채색들판화가」다. ● 그가 그리는 들판은 그의 생활주변에 계절에 따라 피어난 산수유, 오동꽃, 유채꽃, 개망초, 갈대, 억새꽃이나 이름 모를 야생화들로 가득 덮여있는 전원들판이나 한쪽 켠에 아무렇게나 서있는 비각이나 사당 등이 보이는 눈 덮인 겨울 들판, 또는 자갈밭 들판 위로 흘러가는 좁다란 실개천의 양안풍경 같은 들판들이다. 주로 세로 쪽 보다 가로로 길게 확장된 화면에 그려지는 이러한 그의 수평적 들판들은, 하나 같이 별반 특별할 것도 없고, 그저 시골 교외에서 눈길을 주면 어디서나 만나지는 하찮고 흔한 일상적인 풍경들이다. 그것은 종래의 동양화가들이 주로 그려왔던 높고 깊고 고귀한 풍경이 아니라 낮고 얕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소소한 풍경들이니 이야말로 전통 동양화에서 이야기 하는 전형적인 잔산잉수殘山剩水식 산수화의 현대적인 표현이라고 할 것이다. (중략-blog.daum.net/gallery-hom) ■ 홍용선

Vol.20210413d | 오人5色(5인5색)오人5色(5인5색)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