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화가 A Painter of Our Time

소장품 특별展   2021_0415 ▶ 2021_0514 / 일,월,공휴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월,공휴일 휴관

(재)한원미술관 HANWON MUSEUM OF ART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23 (서초동 1449-12번지) 한원빌딩 B1 Tel. +82.(0)2.588.5642 www.hanwon.org

한국화 '한국적 양식의 회화' ● 오늘날 미술관은 문화적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적 역할까지 활동영역이 확장되면서 미술이 갖는 공공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미술관의 존립 목적이 대중에게 문화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제공하고 작품을 수집 및 보존, 발굴하는데 있다면, 소장품은 미술관의 수집방향, 정체성 그리고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이정표이다. 미술관의 본색과 저력은 수집하는 소장품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어떤 작품을 소장하느냐가 곧 미술관의 정체성과 직결되며, 그 미술관의 성격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의 수집이 미술관의 존재 이유가 되는 것은 예술작품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역사적 의미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미술관이 작품을 수장한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삶의 흔적을 소중한 장소에 보관하여 후대에 전하고자 하는 행위와 같다.1) (재)한원미술관은 1993년에 설립된 이래로 한국 시각예술 연구와 이해를 증진하고자 큰 노력을 기울여 온 기관인 만큼, 조선 후기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한국 근현대미술의 전개 과정에서 주요 사조 및 경향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 전시제목 『우리 시대의 화가 A Painter of Our Time』는 영국의 미술 비평가이자 소설가 존 버거(John Peter Berger, 1926~2017)가 집필한 『우리 시대의 화가』(1958)에서 빌려왔다.2) 자신이 처해 있는 사회적 현실 속에서 갈등·고뇌하는 주인공의 초상을 통해 시대를 뛰어넘어 진정한 예술가란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를 환기하는 점에 주목하여, 소장품 자체가 갖는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포괄하는 다양한 의미들을 도출하고자 한다. ● 한국화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의 화이(華夷)적 세계관과 일제 강점기의 식민주의에서 벗어나 수묵화와 채색화의 차등적 이원구조를 재편하고 불화와 민화 등의 민속미술을 재발견하며 당대의 일상을 기록하고자 노력해왔다.3) 모든 예술작품은 그 시대정신을 간결하고 명료하게 보여줌은 물론, 예술가의 열정, 사고, 의지 등 집념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재)한원미술관의 대표 소장품들 중 1900년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적 양식의 회화'로써 한국화의 미술사적 흐름을 조망하고, 시대와 함께 호흡해온 정체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시대적 상황에 반응하고 대처해온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관람객들이 한국화의 맥을 보다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것이다. ● 조선 중기 이후 문인화, 산수화, 채색화, 수묵화, 민화 등 전문적인 장르와 방식이 출현하게 되면서 소재나 주제적 관심이 반영된 시대를 공감하는 작품들이 출현하였다. 그러나 근대 서양화의 도입과 개화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국화는 침체하기 시작했고, 20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 다양한 서구미술의 흐름 속에서 한국화를 재정립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났다. 과거 전통회화의 맥을 이어가며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걷는 예술가가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변화의 흐름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예술가도 있었다. 한국화는 전통의 보존과 새로운 흐름의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 이번 전시는 한국화 소장품을 시기별로 엄선하여 제1부 한국화의 전통 (개화기~1930년대), 제2부 한국화의 개화 (1940년대~1970년대), 제3부 한국화의 확장 (1980~1990년대) 등의 총 3부로 구성된다. 한국화의 역사적 흐름을 시대별로 되짚어가는 전시구성으로 대표성과 상징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제1부 한국화의 전통 (개화기~1930년대)에서는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통한 근대화 과정에서 새로운 미술 양식이 유입됨에 따라 전환기를 맞은 시대적 상황과 맞물린 전통회화 양식의 전개양상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제2부 한국화의 개화 (1940년대~1970년대)에서는 해방과 분단, 산업화를 거치면서 당시 도입된 서구 모더니즘을 수용하면서 한국화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보여주는 시기로 한국화에 추상실험을 도입하면서 동시대성과 새로운 경향을 고찰하고자 한다. 제3부 한국화의 확장 (1980~1990년대)에서는 전통미학의 재정립을 통한 모색 과정을 거치며, 수묵화 운동 등 전통적 가치를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변용을 시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주요 작품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김용진_목단_종이에 수묵담채_132×56cm_1953

영운 김용진(嶺雲 金容鎭, 1878~1968)은 세도가의 후예로 22세부터 정부 요직을 두루 거쳐 집안 대대로 내려져 오는 사대부의 기본학문과 수양 범절을 익혔으며, 재사 백련 지운영(白蓮 池雲英, 1852~1935)에게 한학과 서화를 배웠다. 그는 주로 사군자와 목단, 장미, 목련 등을 그렸다. 관재 이도영(貫齋 李道榮, 1884~1933)의 화법을 배워 초기에는 군방도(群芳圖)와 기명절지(器皿折枝)를 그렸다. 김용진은 1926년 중국의 서화가였던 방명(方洺)에게 서화를 배웠고, 그를 통해 오창석(吳昌碩)의 신문인화풍과 해상화풍(海上畵風)을 비롯한 근대 중국화를 익혔다. 이후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한 그는 중국화풍의 맑고 활달한 분위기를 접목한 새로운 근대 문인화를 창안하여 근대미술에 활력을 불어넣었다.4) 특히, 그가 뛰어난 두각을 내보였던 묵난과 묵죽은 민영익의 화법을 따랐으며 운미란(芸楣蘭)을 국내 화단에 알리는데 선구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모란도」(1953)는 모란 줄기의 비스듬한 포치와 발묵(潑墨)을 사용한 바위의 질감, 붉은 꽃잎과 나뭇잎의 자연스러운 몰골법(沒骨法), 바위의 청색의 담채가 조화를 이룬다. 중국화풍을 계승하면서도 아래에서 위로 자연스럽게 뻗은 나뭇가지와 곁가지를 약하게 하여 꽃을 돋보이게 하고 풍부한 담채로 화사한 화면을 추구한 것은 작가만의 특징이기도하다. 화면 왼쪽에 쓰여진 제시는 "푸른 휘장 높이 걷고 절세미인 나오니, 쪽진 머리 짙은 화장 특별히 정이 있구나. 마치 길가는 이에게 고움을 뽐내는 듯, 비 개인 뒤 서로 기대 어여쁨을 다투는구나(翠帷高捲出傾城 幷髻凝妆別有情 似爲路人矜絶艶 雨收相倚鬪輕盈)"이다. 백문방인 김용진인(金容鎭印)과 주문방인 구룡산인(九龍山人) 인장이 차례로 찍혀있다.

고희동_산수_한지에 수묵담채_27×36cm_1900년대

우리나라 최초의 모더니스트 서양화가로 잘 알려진 춘곡 고희동(春谷 高羲東, 1886~1965)은 처음 동양화를 배우기 위해 당대의 대가인 심전 안중식(心田 安中植, 1861~1919)과 소림 조석진(小琳 趙錫晋, 1853~1920)의 문하에 들어가 사사했다. 하지만 이내 형식 위주의 수업방식에 환멸을 느끼고 서양화를 배우기 위해 1909년 일본으로 건너가 그해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했다. 5년간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서양화를 정착시키는 데 힘썼지만 작품 활동을 이어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당시 일본에서 귀국한 1세대 서양화가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한 1910년대부터 1930년대는 전통 양식과 외래양식의 갈등이 뚜렷하여 서양의 근대적 양식을 점차적으로 수용하던 시기였다. 1920년대 중반 무렵 그는 다시 한국화로 전향하여 복고적 산수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산수도」는 강변에 놓인 초가집을 향하는 인물을 묘사한 것으로 "경신중경복일 사위윤제대아근정 춘곡(庚申中庚伏日 寫爲潤齊大雅斤正 春谷)"이라는 관지로 보아 1920년에 윤제 대아 선생을 위해 그려준 것임을 알 수 있다. 제시는 "빈산에 초가집, 때로 유인(幽人)만이 다다르네. 어지러이 떠도는 구름 가리키며, 세상일은 말하지 않네(茅屋空山裡 時有幽人至 指點亂雲生 不談世間事)"라고 하여 속세를 벗어나 자연에서 한적한 생활을 즐기는 탈속적인 심정을 나타냈다. 간결한 구성과 물기 많은 담묵, 청색과 황색의 담채가 어우러진 화면은 적막하면서도 운치있는 자연의 모습을 담백하게 그려냈다.

허백련_산수화_한지에 수묵_14×50cm_1950년대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 1891~1977)은 전남 진도 출생으로 소치 허련(小癡 許鍊, 1808~1893)의 방계 후손이다. 그는 대학자 무정 정만조(茂亭 鄭萬朝, 1858~1936)로부터 한학과 시문을 배웠으며, 소치 허련의 아들 미산 허형(米山 許灐, 1862~1938)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1910년에는 상경하여 신학문을 접하고 서화미술원에 드나들면서 당대의 서화가들과 교류하였다. 일본 유학에서는 중국 서화의 명적(名蹟)을 접하고 일본 남종화의 대가였던 고무로 스이운(少室翠雲, 1874~1945)을 만나 남종화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 1922년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화려하게 국내 화단에 등장하였으며, 1937년 광주에 정착한 뒤 연진회(鍊眞會)를 결성하고, 1977년 87세로 타계할 때까지 작품 활동과 함께 남종화의 부흥과 후학 양성에 힘쓰며 호남화단의 화맥을 형성하는 데 전념했다. 선면화(扇面畵)로 그려진 「산수화」(1950년대)는 의도인(毅道人)이라는 관서와 의옹(毅翁)이라는 인장이 있어 1951년 이후에 그려진 작품으로 생각된다. 좌우의 낮은 언덕과 빈 정자, 책장(策杖)을 쥐고 다리를 건너는 인물은 명대 오파(吳派) 화가인 심주(沈周)가 즐겨 그린 소재이자 구도이다. 이는 중국과 조선시대 문인화에서 자주 차용된 장면인데 허백련은 빈 정자를 에워싼 소나무 숲을 강조했다. 간결한 구도를 바탕으로 농묵과 담묵을 대비시키고 특유의 갈필(渴筆)과 푸른색 담채를 사용했다. 책장에 의지한 외로운 인물은 노년의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듯하다.

이응노_풍경_한지에 수묵채색_23×43cm_1950

고암 이응노(顧庵 李應魯, 1904~1989)는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에게서 묵화를 사사하여, 1924년부터 1944년까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과 특선에 오르며 국내 화단에서의 입지를 굳혔다. 1935년 일본으로 건너가 가와바타 미술학교와 혼고회화연구소에서 일본화와 서양화를 배우며 근대적인 회화기법을 익혔으며, 1958년 프랑스로 건너가 콜라주(Collage)와 타피스트리(Tapestry) 등을 도입한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서예의 조형성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문자 추상, 군상 연작 등을 남긴 그는 동양화의 전통적 필묵이 갖는 현대적 감각을 발견하여 전통성과 현대성을 함께 아우른 독창적인 창작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풍경」(1950년대)은 파리로 떠나기 전 그린 풍경화로 사실적인 산수표현의 생략과 기호화로 한층 추상화된 화면을 보여준다. 이 시기 서양화법에 관한 관심과 체득은 수묵채색에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미적 감각이 융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생광_호랑이_한지에 수묵담채_63×42cm_1970년대

내고 박생광(乃故 朴生光, 1904~1985)은 한국의 전통 회화나 건축에서 색채, 도상을 차용하여 한국인의 신앙, 특히 샤머니즘적 세계관을 투영시키고자 하였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수묵화를 그리던 박생광은 한국적 소재의 채색화를 모색하던 중 민속에서 전통문화의 뿌리를 찾았고, 무속, 탈춤, 민화 등 민족적 소재의 강렬한 채색화를 선보이며 왜색이 아닌 한국적 색채가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굵고 강인한 선, 두꺼운 원색의 배열, 직설적인 화면이 민족주의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동서양의 경계를 허물면서 채색화의 새로운 좌표를 제시했다.5) 생동감 있는 필선이 특징인 「호랑이」(1970년대)는 정면이 아닌 비스듬하게 바라보는 단축법(短縮法)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호랑이의 기운과 색감을 수묵의 필선을 통해 명확하게 표현하면서도 경쾌한 생동감을 자아낸다.

이선우_상_한지에 수묵담채_130×120cm_1989

우현 이선우(右玄 李宣雨, 1958~)는 유휴공간이나 폐허, 혹은 재개발을 앞둔 아직 규정되지 않은 도시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그가 주로 다루는 풍경은 헐리기 직전의 건물, 특히 철거를 앞둔 초췌한 모습의 건물들은 초라한 삶의 현장이다. 「상」(1989)은 건축자재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도시의 퇴락한 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다. 칠이 떨어져나간 건물의 벽면과 복잡하게 엉켜있는 전선은 화면 하단에 먹의 깊은 색감과 어우러져 쓸쓸한 감정을 일으킨다. ● 한국화를 읽는다는 것은 한국화가 가지는 전통의 흐름과 현대미술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시대적 변모를 탐색하는 것이다. 전통회화의 틀에서 벗어나 동시대 미술로서의 가치를 모색하기 위한 다각적인 접근은 필수라 하겠다. 여전히 한국화는 전통과 현대, 그 어딘가의 사이에서 늘 고민과 방황을 반복하고 있다. 한국화는 결코 고루한 것이 아니다. 새로운 미적 가치를 찾아내는 여정 속에서 예술가들의 시대적 산물을 통해 그들의 삶을 차분히 돌아보며 환기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 전승용

* 각주 1) 장영준,「중장기 소장품 수집 정책연구-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정책을 중심으로」, 『현대미술관연구』 제14집, 2003. 참조. 2) 『우리 시대의 화가 A Painter of Our Time』(1958)는 존 버거(John Peter Berger)가 인간의 삶과 예술, 이데올로기와 망명에 대한 통찰을 담아 자신의 친구이자 헝가리의 망명 화가였던 야노스 라빈의 일기를 통해 한 인간이 어떻게 예술이라는 고독한 소명과 양심의 요구를 조화시키는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지켜나가기 위해 고뇌했던 생각의 편린들을 재구성한 장편 소설이다. 3) 조수진,「한국의 회화'로서의 1990~2000년대 한국화」,『기초조형학연구』제17권제5호, p.499. 4) 이송란,「「자료소개」한빛문화재단 소장 영운 김용진의 작품들」, 『미술사연구』제7집, 1993, p112. 5) 김현숙, 『박생광, 그 민족 예술의 재조명: 내고 박생광 탄생 100주년 기념자료집』, 이영미술관, 2004, 참조.

Vol.20210415a | 우리 시대의 화가 A Painter of Our Time-소장품 특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