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cm, 83kg, XS

이영욱展 / YIYOUNGUK / 李永煜 / painting   2021_0415 ▶ 2021_0529 / 월요일 휴관

이영욱_정말로 기다리지 않았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91cm_202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사전예약제)_0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라흰갤러리 LAHEEN GALLERY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50길 38-7 Tel. +82.(0)2.534.2033 laheengallery.com

속박과 자유, 두 극한의 미궁# 거짓의 긍정 ● 「어느 날 나는 마트에 들렀다가 한쪽 구석 자리에서 땅콩을 발견했다. … 나는 어두운 통 안에 담겨있던 그들을 신문지 위에 쏟았다. 그리고 하나씩 그들을 덮고 있는 옷가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 땅콩과 나는 오늘 처음 만났음에도 조금씩 마음을 열어 친해지기 시작했으며 이 관계를 그대로 마무리 짓기 싫었다.」 - 이영욱 작업노트 中 ● 얼핏 동화의 서사가 펼쳐지는 듯한 이 글귀들은, 작가 이영욱의 작업 세계로 부드럽게 미끄러질 수 있는 비약을 마련한다. 거창하게 논하자면 작가만의 독특한 철학으로 포장된 일상적인 경험이겠으나, 이는 사실 '거짓과 상상력이 깃든 이야기'이다. 먼 옛날 에라스무스 (Desiderius Erasmus)가 『우신예찬』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거짓말은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를 칭송하게 만들고, 자신이 처한 고달픈 현실에 대해서는 저항하게끔 한다. 이영욱 작가가 거짓의 힘을 보태어 현실을 유희적으로 전복시키고자 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이 청년 작가는 과거의 자신을 수동적인 존재로 정의했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이 능동적인 주체로서 자유의 드라마에 참가하게 되는 가장 쉬운 수단으로 일기를 꼽는다. 거짓이 첨가된 일기를 쓰고, 거짓이 거짓을 낳는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 당초 본인이 원했던 방향대로 사건이 발전하기 때문이다. 기실 모든 예술의 토대는 거짓말에 동의하는 것으로부터 마련되었다. 우리는 거짓말의 꿈같은 이야기에 기만당하면서도, 소망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속임수가 주는 이 달콤한 독약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이영욱 작가의 심리 밑에 도사린 갈망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영욱_하하, 괜찮습니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45.5cm_2021
이영욱_Circle #1-70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45.5cm_2021
이영욱_우리는 리허설도 없는 인생에 던져젔으니까…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45.5cm_2020

# 탈주의 공간 ● 오래지 않은 활동 시기를 거치면서도, 이영욱 작가의 작업 방향은 굵직한 흐름을 보이며 변하였다. 유화를 활용한 초기의 리얼리즘 작업, 연관성 없는 이미지들의 조합을 거쳐, 이제 그는 패턴을 이루며 장사진을 치고 있는 형상들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복닥복닥 도열해 있는 이 군상들을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큰 패턴으로 인식될 뿐이다. 그러나 동글동글한 캐릭터를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할 때, 감상자는 치정 혹은 애욕이 교차하는 적나라한 광경을 발견하게 된다. ● 작가가 이처럼 섹슈얼한 이미지로 패턴을 구성한 까닭은 본디 '은폐'하기 위함이었다. 표면적으로 이것은 성 (性)에 관한 우리 사회의 위선과 이중 잣대에 도전하고자 하는 의도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원색과 파스텔톤의 색상이 오가는 이 촌스러운 색채는 또 얼마나 발칙한 상상을 자극하는가. 그러나 이영욱 작가가 라흰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의 표면에 깔린 정염일랑 멀리 제쳐두고, 그것의 본질을 만져보자. 말하자면 끊임없이 패턴을 쌓아가는 작가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보는 것이다. ● 작가와 그가 그려내는 오브제 사이의 관계는, 작가노트에 등장하는 그와 그의 손에 껍질이 벗겨지는 땅콩 간의 그것과 같다. 오브제들은 오로지 작가의 '선택'에 따라 정렬된다. 철저한 갑을 관계다. 그리고 선택의 자유를 누리는 대신, 그것으로 빚어진 일에 책임을 져야 함은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선택의 방향과 결과에 대한 깊은 고민이 선행되어야 함에도,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짜릿한 해방감에 빠져든다고 고백한다. 열기 가득한 패턴들의 용광로 속에서, 그는 내면의 족쇄를 풀고 자기만족을 다질 탈주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영욱_우리는 친구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91cm_2020
이영욱_이 행위 자체가 힘든게 아니라 고통에 익숙해지는게 힘들었어요.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91cm_2020
이영욱_염장이 된 닭은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130.3cm_2020

# 육 척 거구에 맞는 옷을 찾아. ● 망실된 자기를 탐구하고, 스스로의 내면에 차분히 가라앉고자 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라면, 패턴을 채우는 행위는 전술한 바와 같이 대단히 적합하다. 주변의 영향에 수동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나, 돈과 순수한 작업 사이에서 발생하는 아이러니는 181cm, 83kg의 장건한 체구만큼이나 큰 갈망을 품은 작가에게 너무나 비좁은 현실이다. 이처럼 지금 그가 입고 있는, 가령 엑스스몰 (XS) 사이즈와 같은 작은 옷을 벗고, 꼭 맞는 새 옷을 찾기 위해서는 이 옷 저 옷을 시도해보고 또 갈아입어야 할 것이다. ● 화폭도 마찬가지다. 작품의 공간이란 그릇과도 같아서, 작가의 사유가 담기고 옮겨지며 전달되기 마련인 까닭이다. 다만 채움과 비움이 반복되어야 그릇이 제 역할을 하듯, 자신에게 맞는 작업을 찾고자 하는 작가 이영욱에게도 이 과정은 결코 간과할 수 없을 터이다. 그래서 작가는 그의 젊고 세찬 기세가 이끄는 방향대로 패턴들을 일렬종대로 쌓아가면서도, 동시에 서서히 내뱉듯 비워내는 과업을 수행하고 있다. 속박과 자유, 두 극한이 강하게 부딪치며 이상한 조화를 이루는 이 형상들을 짚어가며, 작가의 행위를 손끝으로 따라 가보라. 스케치에만 며칠을 할애하고, 그리드를 수없이 다시 짜며, 크기를 달리하여 치밀하게 배치하는 이 행위. ● 그런데 작가 본인조차 그에게 꼭 맞는 옷 한 조각을 아직 명확히 잡지 못한 상황임에도, 이영욱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 모든 과정은 마냥 편안하고 즐겁다. 그는 자신이 가야 하는 길을 '호모 루덴스의 열정'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위징아 (Johan Huizinga)가 주창한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놀이'에 헌신해왔다. 그리고 결코 만족할 줄을 모르는 호모 루덴스가 스스로와 경쟁을 벌일 때, 예술은 비로소 꽃을 피운다. 그러므로 이영욱 작가는 이제 작업을 유희로, 유희를 경쟁력으로 삼으려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라흰갤러리에서 개최되는 이번 개인전은 무한한 창조성의 세계로 진입하려는 작가에게 일종의 도약의 발판인 셈이라 하겠다. 라흰의 공간을 동심원으로 하여 전개되는 작가만의 이야기에, 그리고 날개를 달아주듯 꼭 맞는 옷을 찾고자 하는 그의 즐거운 놀이에, 강하게 시야를 사로잡히듯 이끌려보기를 바란다. ■ 조은영

Vol.20210415e | 이영욱展 / YIYOUNGUK / 李永煜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