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드로잉, 치유의 시간

진수영展 / CHINSOOYOUNG / 鄑秀榮 / painting   2021_0415 ▶ 2021_0512 / 일요일,5월 1,5일 휴관

진수영_Violet lily_종이에 티드로잉_103×72.7cm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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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영 인스타그램_@teadrawingart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오!재미동_(사)서울영상위원회_서울시

관람시간 / 11:00am~07:55pm / 일요일,5월 1,5일 휴관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 갤러리 미술동네 OHZEMIDONG GALLERY 서울 중구 퇴계로 지하 199 충무로역사내 Tel. +82.(0)2.777.0421 www.ohzemidong.co.kr

빛과 형태의 공명 ● 색 보다는 빛에 가깝다. 형태가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상대적으로 선명한 형태의 윤곽이 양감처럼 품고 있는 수십 가지 얼룩들도 큰 시차를 두지 않고 눈에 밟힌다. 흐릿한 것과 선명한 것이, 저 뒤에 있는 것과 앞에 있는 것이, 묘한 긴장감을 주며 대비와 조화 사이를 왕복한다. '이 그림에서 무엇을 보는 것이 진실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의 눈이, 혹은 마음이, 혹은 머리가, 경험이, 의지가, 이 그림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책무를 알려줄 수 있을까. ● 진수영은 자신의 작업을 '티드로잉(Teadrawing)'이라고 말한다. 그는 주로 차를 우린 찻물을 물감 삼아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데, 언뜻 수채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티드로잉이 드러내는 생경함보다는 익숙함의 근거를 찾으려는 것은, 아마도 '내가 저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명분을 찾으려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수채화라면,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면 될 테니까. 하지만 진수영의 그림은 수채화도 아니고, 내가 아는 그림도 아니다. 그는 그림이기보다는 잔상이나 흔적에 가까운 형상들을 기록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렇다면 나는 이 그림 안의 형상들이 나타내는 진실함을 알아내기보다는 이 형상들을 켜켜이 담아낸 그의 행위를 좇으면 될 일이다.

진수영_Red branches_종이에 티드로잉_103×72.7cm_2021

깊이감, 그는 그림에서 깊이감을 찾는다고 했다. 깊이감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인가. 진수영은 여러 장면을 하나의 화면 위에 쌓아 올리듯, 화면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낱낱의 상황과 형상들이 겹치도록 포개어 놓듯, 투명하고 얇은 종이를 배접하여 미세한 공간의 층을 구축하듯, 티드로잉을 통해 그림에서 깊이감이 나타나 주기를 기다리는 이다. 그 기다림이, 의도하지 않았던 어떤 공간과 어떤 움직임을 그림에서 보게 한다. 빈 종이에 찻물로 무언가를 그리고 나서 또 다른 형상들을 덧댈 때마다, 그는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리듯, 기다려야 한다. 그가 그려 넣은 형상이 화면에 그대로 자리 잡을 때까지 지켜보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어떤 모습을 갖게 될 지 변화를 바라는 일이기도 하다. ● 마침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Beginning of hope」(2021)의 진행 과정을 본 적이 있다. 붉은색과 녹색의 찻물로 넓은 화면 한쪽에 각각 인체 형상을 그려 놓은 상태였다. 배경과 구분되는 윤곽선의 상대적인 명료함에 비해 인체 형상은 개별적인 묘사가 없고 어떤 몸짓만 가늠될 뿐이다. 형상과 형상 간의 관계도 긴밀해 보이지 않고 각각의 몸짓과 그것의 윤곽만 화면에서 제 자리를 잡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다 얼마 있다 그 다음 과정을 미완의 상태에서 한 번 더 보게 됐는데, 처음에 있던 인체 형상들에 다른 색 찻물로 날개며 꽃이며 또 다른 인체 형상들이 결합되었고, 비어 있었던 화면의 오른쪽에는 되레 형태와 윤곽을 알 수 없는 파열된 물질의 흔적과 경계가 번져서 흐려진 얼룩이 비정형의 존재를 드러냈다. 흔적과 얼룩이 제 존재감을 드러내며 어떤 형상이기를 자처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진수영_Maria's song_종이에 티드로잉_194×112cm_2019

「Beginning of death」(2021)도 그러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 그림이라면, 저 화면 깊숙한 곳에 '멈춰버린 형태'처럼 하나의 배경이 되어 버린 인체의 형상과 나무의 몸통은 또 다른 의미에서 일련의 추가된 형상들의 그림 속 지지체로 여겨진다. 이를테면, 그런 형상들 위로 산과 광야와 붉은 나뭇가지와 열매와 나뭇잎과 새와 칼날 등이 어떤 알레고리처럼 펼쳐져 있다는 것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사실 이러한 형상들은 진수영의 작업 안에 여러 기원을 두고 있다. 인체의 형상들은 대개 그가 오래전에 수행했던 퍼포먼스에서 모티프를 가져오거나 인체의 몸짓에 주목하여 현대무용수들의 동작을 차용해 오기도 했다. 한편, 그러한 인체 형상들과 결합되는 서사는 주로 성경의 사건들로, 신학적 상징을 띈 요소들이 덧붙여진다. 그 과정에서, 2007년부터 시작하여 인체와 자연을 즉흥적으로 표현했던 초기 '티드로잉'의 여러 소재를 참조해 와 그림 전체의 서사를 맥락 짓는데 활용하기도 한다. 그 서사란, 어떤 줄거리가 담긴 시간적 흐름이기 보다는 하나의 비가시적인 서사의 징후나 알레고리적 사건처럼 암시적이다.

진수영_From the sky-violet leaf_종이에 티드로잉_194×112cm_2019

「Beginning of hope」나 「Beginning of death」를 비롯해 이번 전시는, 그가 2018년부터 시도한 '티드로잉'의 변화를 심화시켜 이어나가는 작업들로,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대한 작가의 주제 의식을 드러낸다. 특히, 삼면화 형식으로 구성된 「From the sky_violet leaf」(2019), 「Maria's song」(2019), 「From the sky_red tree」(2019)는 진수영이 '티드로잉'을 통해 그 가능성을 살펴왔던 영적인 것에 대한 시각적 표상과 경험을 함축적으로 제시한다. 차에서 우려낸 찻물은 진수영의 그림이 수채화 같다는 첫인상을 갖게 하지만, 그가 그것을 다루는 기술과 태도에서 (종이 위에) "채색"을 위한 물질로 인식하기보다는 (종이와 형상 안으로의) "번짐"과 "스밈"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을 테다. 마치 먹이나 염료처럼, 그는 그림의 지지체 위에 일체의 물질적 두께감도 없고 탁월한 원근법적 구도도 없이 형상과 형상 간의, 형상과 배경 간의, 공간과 공간 간의 깊이감을 찻물의 "번짐"과 "스밈"을 통해 모색하고 있다. 그것을 나는 찻물에서 터득해낸 "빛의 효과"라 생각했는데, 각각의 나름 정교해 뵈는 윤곽선 안팎에서 그것을 파열시키거나 그것에 얼룩의 흔적을 남기거나, 그것의 형태를 감싸듯 지탱해주는 일련의 "힘"을 말한다.

진수영_From the sky-redtree_종이에 티드로잉_194×112cm_2019

예컨대, 「From the sky_red tree」를 보면, 신의 형상에 기원을 둔 인간 형상의 자유로운 몸짓이 그림의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반복되는 십자가 형상은 다시 인간 형상과 결합한 나무의 몸통으로 이어져 인간 형상의 원형을 성경적 세계관 안에서 구축해낸다. 일련의 연쇄적인 형태들의 결합을 진수영은 찻물의 속성을 활용해 각각의 개별적인 형태들이 물리적으로 온전히 중첩된 것처럼 보이게도 하면서 동시에 판화로 찍어낸 듯 둘 사이의 시간 차에 의해 벌어진 공간적 층위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때, 화면의 상부에서 시작된 찻물의 파열과 그것의 번짐이 새로운 공간감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진수영이 기다리던 그림에서의 "깊이감"을 생각나게 한다. 빛이 형태와 공명하듯, 진수영의 그림에서 저 일시적인 파열과 그로 인한 얼룩은, 그가 나름 숙고하며 화면에 배치해 두었던 개별적인 공간들을 전복시키듯 재배열 하기도 하고 되레 특별한 묘사 조차 없는 형상들에 생기를 불어넣기도 하면서 무언가 드러나지 않았던 것을 드러나게 한다.

진수영_Pray for april_종이에 티드로잉_95×57.5cm_2021

「Red teadrawing series」(2020-2021)」는 제목이 말해주듯 붉은색 찻물로만 그려졌다. 진수영은 '티드로잉'을 위한 자신만의 색 도표를 만들어 놓았다. 물의 온도나 물의 양, 차의 양 등을 변수로 하여 추출해낸 찻물의 색을 기록해 놓은 표다. 진수영은 그것을 하나의 주관적인 기준으로 마련해 놓고 물감을 조색하듯 그림의 색을 조율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그림들은 긴 시간에 걸쳐 개별적으로 느린 변화를 겪는다. 일종의 형태 안으로 파고드는 깊이감이 이 변화의 과정에서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Red teadrawing series」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마치 어떤 분위기와 같이 형태들을 감싸고 있는 "빛"의 공명하는 현존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 형태의 본질에 대한 탐구이기 보다 진수영은 인간 형상을 비롯한 땅 위의 모든 피조물과 공명하고 있는 빛의 현존을 그림 안에서 표현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빛이 우리의 망막으로 하여금 세계를 실재하는 것으로 경험하게 해주듯, 진수영의 그림에서 찻물은 이렇다 할 형태의 묘사 없이도 형태 안에 자신의 양감과 질감을 갖게 한다. ■ 안소연

Vol.20210415h | 진수영展 / CHINSOOYOUNG / 鄑秀榮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