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 The Masquerade

박그림展 / PARKGRIM / 朴그림 / painting   2021_0421 ▶ 2021_0529 / 일,월,공휴일 휴관

박그림_Bel ami_실크에 전통회화_130×130cm_202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토요일_11:00am~06:00pm / 일,월,공휴일 휴관

유아트스페이스 UARTSPACE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71길 10 (청담동 101-6번지) 2층 Tel. +82.(0)2.544.8585 www.uartspace.com

유아트스페이스는 2021년 4월 21일부터 5월 29일까지 박그림의 개인전 「CHAM; The Masquerade」를 개최한다. ● 박그림은 2018년 개인전 「화랑도(花郞徒)-꽃처럼 아름다운 사내들, 불일미술관」 을 시작으로 퀴어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통회화의 방식으로 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기존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선보였던 주로 자전적인 서사가 담겨있는 작업과 달리 이번 전시에서는 '전통회화의 현대적 적용 및 재창안' 이라는 주제로 본인이 매체에 소개되고 다루어졌던 방식에 대한 고민과 질문을 통하여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새로운 탐구를 시도한다. ● 제목의 'Cham' 은 티베트 불교의 가무극 형태의 의식을 말하며, 'The Masquerade'는 말 그대로 가면무도회를 뜻한다. 제목에서 보이는 두 단어의 유사성과 차이성은 일종의 단어 간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는 수용자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다. 이러한 관계의 특성이 이번 전시에 전하려고 하는 작가의 가장 큰 의도이다. ● 이번 전시에서는 자전적인 서사를 배제하고, 종교화의 형식을 빌려 '양식화'를 시도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형성된 작가의 양식은 작품 간 '통일성'과 '형평성'을 반영한 규칙성이다. 또한, 자전적인 서사를 배제하기 위해 오히려 메타적인 접근을 통하여 과거 개인전 「화랑도」 시리즈를 차용, 그간 시도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해체/재조합하여 전통회화 매체에 대한 실험을 꾀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자전적 성찰과 함께 현대미술을 향한 전통예술가로서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 박그림은 도제식으로 수학하여, 동국대학교 불교미술학과를 졸업하였다. 주요 전시로는 2018 개인전 「화랑도(花郞徒)-꽃처럼 아름다운 사내들, 불일미술관」 와 단체전 2020 「남성모양, Space9」, 2019 「The Flags, 두산갤러리 뉴욕」 등이 있으며, 2018 앱솔루트보드카 아티스트 어워즈 WINNER로 선정되었다. ■ 유아트스페이스

박그림_MSQ73_실크에 전통회화_28.5×39cm_2021

"만약 사람들이 여러 가지 아름다운 춤과 음악으로 마음을 다해 공양을 한다면 모두 불도를 이루게 되리라" '법화경' 게송의 법문 中

정월(井月) 박그림의 작업 세계 ; 단천한 인연조차 고귀한 음예의 빛을 발하는 ● 00. 예술가로서의 박그림(朴그림, 1987년생)을 구성하는 서사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도제식 교육을 받은 불화가로서, 대학의 불교 미술학과에 진학한 뒤 위계적 차별과 갈등을 경험하고, 그를 극복하려는 이야기다. 도제식 교육을 폄하하는 아카데미 시스템과, 사승관계로 이뤄지는 재야 교육의 세계 사이에서 느꼈던 당혹감과 혼란은, 그의 설 자리를 좁게 만들었고, 화가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길을 찾아야만 했다. 다른 하나는,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나 경주에서 수학한 성소수자로서 서울의 게이 커뮤니티에서 느꼈던 문화적 장벽과 갈등에 대한 이야기다. 대학생 시절에 경험했던 게이 남성으로서의 정체성 혼란과는 다른 차원의 이질감과 곤란을 겪으며, 그는 게이 남성으로서 취하게 되는 개인/사회 정체화 기제와 동질화/차이화 전략 등을 이해하고 성찰하게 됐다. 불교 미술가로서 게이 남성들의 나르시즘과 타인 선망과 질투 등을 재해석하면서, 그는 자신의 사적/공적 정체성을 새로이 직조해나가는 중인데, 이는 다시 그의 모호한 현대미술가로서의 위상과 연결되므로, 결국 예술가로서의 박그림을 구성하는 두 가지 서사는, 하나로 수렴하는 모습이다. 한데, 이는 다시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불화가 어떤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현대미술로서의 불화는 어떻게 재창안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연결되니, 단지 자전적 작업으로 그치는 일은 아니다.

박그림_MSQ49548_실크에 전통회화_28.5×39cm_2021

01. 박그림은 2006년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 미술학과에 합격했으나 개인 사정으로 진학하지 못했고, 반 년 정도는 디자인전문학교를 다니다가, 2006년 말-2008년 초반 시기에 고교 시절 은사 조각가 손창엽 문하에서 조각을 배우며 조수로 일했다. 2009-2010년 사회복무요원 근무로 군 복무를 대신했고, 2012년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 미술학과에 입학해 2016년 졸업했으며, 이듬해인 2017년 4월 서울로 이주했다. 2009년 (현재 성함을 밝힐 수 없는) 불화가 선생님을 만나 도제식 그림 공부를 시작했고, 스승의 권유로 불교 미술학과에 진학했으나, 2016년 이후 사승 관계 밖에 놓이게 됐다. (비고: 대학 입학 첫 해였던 2012년, 서라벌예술대전에서 특선한 일이 있다.) ● 2015년 영덕 옥천사 「연화불단화」를, 2017년 광양 응신암 「애자모지장보살도」(2016년 제작)를 조성하면부터 독자적 화가의 길을 걷게 됐고, 그와 함께 서울에서 30대의 삶을 시작하며 현대예술가로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로 마음먹었고, 이름도 정식으로 개명했다. (기타 주요 탱화 조성 이력은 다음과 같다: 2017년 의정부 개성암 「독성탱」, 2018년 제천 무암사 「양류관음도」, 부천 보현사 「수월관음도」, 서울 보덕암 「산신탱화」, 산청 현묘암 「맹호도」.) 2018년 첫 개인전 「화랑도(花郞徒)―꽃처럼 아름다운 사내들」(2018년 4월 6일-14일, 법련사 불일미술관 1관)을 시작으로 현대미술계에서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같은 해 "앱솔루트 아티스트 어워즈(ABSOLUT ARTIST AWARDS)"의 우승자로 상을 타고, 2019년 그룹전 「깃발들(Flags)」(뉴욕 두산갤러리), 2020년 2인전 「남성모양: 김화현 박그림」전 등에 참여하는 등, 다방면으로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 2021년 두 번째 개인전 「참: 가장 무도회(CHAM; The Masquerade)」(2021년 4월 21일-5월 29일, 유아트스페이스)를 통해, 비로소 미술가 박그림은, 주요 매체에 의해 '전통회화의 현대적 적용 및 재창안'이라는 맥락으로 소개되고 독해됐던 사실에 비평적으로 대응하며, 현대화가로서의 가소적 정체성을 자문(自問)하고 성찰한 첫 탐구의 과결들을 제시한다.

-01. 조선 왕실이 외면적으로 숭유억불 정책을 펼쳤다고 해도, 불교 미술의 흐름은 꾸준히 지속됐고, 감로탱화(甘露幀畵) 등 조선 특유의 불화 양식과 문법도 나타났다. 화원, 화사들에 의한 창작이든, 금어와 편수들이 이끄는 화승집단에 의한 창작이든, 그 계보는 화기(畵記) 기재를 통해서도 분명히 확인되는 것이나, 근현대화 과정에서 서구식 미술 개념을 도입하고 화선양(和鮮洋) 절충식 미술 교육 제도를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불교 미술은 소위 아카데미 제도 밖의 버내큘러의 세계로 밀려나고 말았다. 이에 대한 경각심이 일어난 때는 1960년대 후반으로, 1965년의 한일외교 정상화 이후 본격적인 산업화를 추진하면서부터였다. 단청, 불상, 사찰 건축 전문가의 대가 끊길 위기를 극복하자는 취지에서, 문화공보부와 문화재 관리국의 요청으로 1968년부터 대학 내 불교 미술학과의 설립이 논의-추진됐고, 그 결과 1971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에 미술학과가 설립됐다. 문공부의 장학금 제도를 갖춘 신설 학과로서, 불교 미술을 다루는 미술학과를 출범할 때, 학교 측은 "국립대에 벌써부터 있어야 할 학과를 사립대에서 시작한다"며 의욕을 뵀다. 설립 목표가 전통과 전승 기술의 사수에 있었으므로, 불교 미술학과의 출범은 불교 미술의 현대미술화나 동시대미술화의 길로 연결되지는 않았고, 또한 대학 제도 밖의 도제식 교육과의 갈등이나 불화도 설립 초기에 나타나 이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아카데미-재야의 이원적 갈등 구조는, 2000년 문화재청이 한국전통문화학교[2011년 한국전통문화대학교로 재편]를 설립한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 일찍이 1935-1936년 30대 중반 나이의 김복진(1901-1940)이 본격적 불상 연구와 제작을 통해 신라 전통에 바탕을 둔 근현대미술의 새로운 길을 모색했고, 1938년 20대 중반 나이의 정종여(1914-1984)가 근현대적 괘불도(진주 「의곡사 괘불도」)를 제작하는 등, 선구자들의 귀한 시도가 다수 있었으나, 그 흐름은 사실상 단절되고 말았다. 월북 미술인들은 북조선의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불교 미술을 시도하기 어려웠고, 한국의 미술가들은 불교 미술의 전통을 통해 근현대로 나아가는 힘든 길을 외면했다. 예외가 1977년부터 무화 불화 등을 바탕으로 새로운 현대한국화를 창출해냈던 박생광(1904-1985)이었는데, 그는 1976년 일본을 순회한 「한국미술5천년전」 등으로 인해 촉발됐던 전통문화 재발견의 흐름 속에서 '신일본화풍을 계승한 왜색 화가'라는 낙인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켰다. 그러나 박생광의 성취는 일부 민중미술작가들에게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뿐으로, 이후 누구도 그가 남긴 미완의 과제를 계승하겠노라 나서지 않았다. 따라서, 불화의 양식과 어법을 중세적 조형 질서에서 끄집어내, 다원적 원근법적 공간에서 재통합시켜내고, 이어 바로크적 통합의 시공에서 그에 동세를 부여하고, 그 과결을 다시 현대적으로 또 동시대적으로 해체-재창안하는 실험 등은, 아예 과제로 인식되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간헐적으로 나타났던 감로탱 형식의 현대적 변주들은, 또 그와 유사한 탱화의 현대적 변용들은, 대개 어설프고 어색한 시도로 그치기 마련이었다. ● 쉽게 고쳐 말해, 김복진은 통일신라 시기의 불상을 기준점 삼아, 르네상스적 도약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조각가다. 따라서, 1935년의 모악산 금산사 미륵전 보존불 공모에서 그가 불모 일섭 스님 등 총 5인의 경쟁 구도에서 당선자의 영예를 거머쥐었던 일은, 그리고 그의 당선작이 상당히 현대적 성격을 띠었던 점은, 신라의 폐허로부터 새로운 민족적 중흥의 미래를 보고자했던 당시의 시대 분위기를 고려해야 비로소 실체의 단면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만약, 과거의 정수를 바탕으로 르네상스적 문화 중흥을 이루겠다는 식민 조선의 꿈이, 불교 회화와 조각에 보다 다채롭게 적용됐다면, 어떤 성과를 낳았을까? ●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가능했을 어떤 시공을 상상해보도록 하자. 정종여나 김용준이 월북하지 않고 한반도 남부의 한국에 남아, 유교적 선비 전통 외로, 불교와 무속 전통을 바탕으로 한 민족적 현대미술을 주창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장면-윤보선 정권 몰락 시기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이끌었던 장발이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 불교 신도였다면, 어떤 양태로 현대적 불교 미술을 진흥해냈을까? 천도교적 현대미술 운동이 성립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의사-선비적 자세로 수묵추상 운동을 이끌었던 묵림회에 필적하는, 불교적 수묵추상 운동 단체가 등장했다면 어떤 성취를 거둘 수 있었을까? 도가적 혹은 무속적 동시대한국미술이 시도된다면, 어떤 모습으로 실험이 전개될 수 있을까? ● 박정희 정권에서 탄생했던, 강봉진 설계의 국립중앙박물관(1966-1972)이나 엄덕문 설계의 세종문화회관(1973-1978)이나 삼우건축(박승) 설계의 호암미술관(1975-1978) 등은, 국내 현대건축계로부터 힐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말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북조선과의 체제 경쟁 속에서 탄생한 괴물들이었다'는 통상의 비난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해당 건축물들과 그에 담긴 미술공예품들에는, 통일신라의 정수를 되살려 더 나은 민족적 현대를 창출하겠다는 식민 조선기의 꿈과 희망이 서려있기 때문이다. (비고: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을 모티프로 삼은 세종문화회관의 비천상 부조는 김영중의 역작이었다.)

박그림_MSQ111_실크에 전통회화_28.5×39cm_2021

02. 박그림의 첫 개인전 「화랑도」엔, 현대미술계의 기준으로 보자면 다소간 '인사동 전시'처럼 뵈는, 즉 현대미술가의 전시 같아 뵈기 어려운, 어수룩한 측면이 있었다. 전통불화의 어법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표출되는 게이 남성들의 나르시즘'을 포착하기 시작한 게이/남성/화가 박그림에게, 현대미술가로서의 명확한 자의식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소박한 규모의 이 전시에선, 실컷 힘을 준 예의 현대미술 전시에서도 접하기 쉽지 않은, 문제적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 박그림은 전통불화가이자 버내큘러 현대화가라는, 이중의 정체성을 띠고 있었다. 도제식 교육과 대학 교육을 병행한 그는, 전통적 도상에 충실한 고려불화 등을 그려내는 화장(畵匠)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한데, 그는 소셜미디어 상에서 자신의 성적 아름다움을 뽐내는 게이들의 양태에 주목해, 2015년 이래 실험적 게이 남성 초상 연작을 제작해왔다. 사진 이미지를 화본 삼아 초상을 제작했지만, 그는 자신의 해석을 바탕으로 도상을 (재)구성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엔 그것이 묘한 정신분석학적 비평이 되기도 했다. ● 작가 노트는 직설적 고백에 가까웠는데, 그렇다고 해서 다의성이나 알레고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 "세상 사람들이 다하는 SNS를 나도 접하게 됐다. 그 속엔 무수히 많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 얼굴에 자신이 있는 표정과 포즈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며 아름다움을 뽐냈다. / 나는 그들의 자기애가 부러웠다. 그들은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 됐고 나는 내 그림으로 내가 가지지 못한 그들의 아름다움을 내 것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남성의 아름다움에 대해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 나는 내가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재료로 그들을 표현했다. 곱디고운 비단에 수간채로 그들의 아름다움을 담았다. 비단이라는 민감하고 부드러운 재료엔 그들의 아름다움과 같은 성격이 있다고 생각했고, 비단에 수십 번 칠해 발색을 내는 것도 '아름다움을 얻기 위한 노력은 그만큼 힘들다는 사실'과 일맥상통하는듯했기에, 채색법으로 선택했다." ● 각각의 초상화에는 나름의 사연과 복선이 숨어있었지만, 그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연관되는 부분이기에 평문에서는 일단 논외로 했지만, 각 작업에는 각 인물에 대한 화가의 해석이 담겨 있었다. 어떤 인물에는 전통 문양을 안배했고, 어떤 인물에는 전통 문양화한 모티프를 병치했고, 또 어떤 인물에는 플라밍고 같은 상징적 도상이나 군복에서 인용한 디지털 캐모플라주 패턴을 배치했다. ● 화가는 두 가지 유비를 비평적으로 구사했다. 하나는, 마구니(魔仇尼) 혹은 마라(魔羅: 사람의 마음을 홀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고 불도 수행을 방해하여 악한 길로 유혹하는 나쁜 귀신)를 물리치고 성불한 부처를 궁극의 나르시스트로 규정하며,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현대의 게이 나르키소스들을, 자기애의 표출이라는 긍정적 면모와 자기혐오의 부정적 양상으로 나누어 고찰한 것이다. 그는 소셜미디어 시대에 범람하는 자기혐오가 마라의 방해에 해당한다고 봤다. 두 번째 유비는, 첫째 유비를 전제로, 소위 "게이스북"이라고 불리는 게이 남성들만의 페이스북 네트워크에서, 긍정적으로 자기애를 표출하는 동시에 강박적으로 자신의 미모를 홍보하고 타인들로부터 인정받으려 애쓰는 이들을, 현대의 화랑(花郞)으로서 포착-분석한 것이다. 가시성을 바탕으로 욕망을 구현하고 행복을 손에 넣고자 하는 동시에, 이성애자 중심의 사회로부터 가려지고 숨어 지낼 수 있기를 바라는 모순적 상태의 "게이스북 게이"들을, 부처처럼 성불할 수 있는 존재의 화랑도로 호명하는 효과는 무엇이었을까? (화랑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신라 때에 둔, 청소년의 민간 수양 단체. 문벌과 학식이 있고 외모가 단정한 사람으로 조직했으며, 심신의 단련과 사회의 선도를 이념으로 했다. / 2. 화랑의 지도자. / 3. 광대와 비슷한 놀이꾼의 패. 옷을 잘 꾸며 입고 가무와 행락을 주로 하던 무리로 대개 무당의 남편이었다.) ● 박그림의 개인전이 불일미술관에서 열린 것은, 정월(井月)이라는 호를 사용해온 화가의 배경과 신작의 연결 고리를 생각하기에 좋은 조건이 됐다. 쉽게 말해, 「화랑도」 연작을 불화로 해석하거나, 혹은 기존의 불화들을 퀴어 코드로 재해석하게도 됐던 것. 지금까지 전통불화의 퀴어적 차원을 전유(appropriate)함으로써 퀴어적 현대회화의 재창안에 나선 게이 화가는, 국내외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었다. ●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해볼 지점은, 불교의 포용력이었다. 불일미술관의 학예실장인 여서 스님의 특별한 배려가 있었다고는 해도, 국내 사찰의 미술관에서 항의하는 사람 한 명 없이 전시가 무사히 치러진 것은, 특기할 일이었다. (한국의 기독교회에서라면, 음란한 눈빛으로 가득한 게이 초상화 연작을 전시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터.)

박그림_MSQ45324_실크에 전통회화_28.5×39cm_2021

03. 불화의 문법을 전제로, 도상학적 재구성을 통해, 퀴어 주체의 딜레마를 다루기 시작한 이후, 박그림은 자신만의 양식 어법과 도상 구조를 계발하고자 애썼다. 2018년작 「심호도―간택(尋虎圖―揀擇)」의 경우, 작가는 선화 심우도(尋牛圖)에 화답하는 맥락에서, 새로운 퀴어 도상과 알레고리를 직조해냈다. 심우도는, 인간 존재의 본성을 찾는 과정을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불교 선종(禪宗)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그림이다. 수행단계를 10단계로 제시하고 있어 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한다. 한데, 박그림의 그림에선, 깨달음을 상징하는 동물이 소가 아니라 호랑이였다. 다소 민화적으로 표현된 예쁘고 귀여운 아기 호랑이는, 그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작가 본인의 페르소나로 해석됐다. 하면, 「심호도―간택」에서 삶의 의미를 비추는 두 명의 아름다운 게이 청년 보살이 안고 있는 호랑이는, 박그림의 작업 여정을 의미하는 존재라는 뜻이 됐다. (왼편의 인물은 호랑이에게 여섯 빛깔 무지개의 사라[紗羅]를 둘러주고 있다.) ● 2019년작 「심호도 – 낙류」는 한 명의 게이 청년 보살이 다른 한 쪽을 칼로 해하려는 장면을 담았다. 무지개 빛 정병이야 퀴어 세계를 뜻하겠지만, 죽음의 위기(아마도 사랑의 위기?)에 처한 쪽의 몸을 휘감은 천에 시문된 학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학은 십장생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지만, 또 호랑이에 대비시키자면 문관의 상징이기도 하다. (백학의 모티프는, 앞서 「화랑도」 연작 가운데 하나인 「아이 슬레이(I SLAY)」[2016]에서 등장했던 바 있다.) ● 아무튼, 두 게이 청년 보살의 갈등 속에서 호랑이는 연꽃잎을 타고 새로이 모험을 떠나는 모습이다. 호랑이의 앞에는 백색의 양란이 피어있는데, 고대 그리스에선 정력을, 빅토리아 시대엔 부를, 오늘날엔 희망과 순수를 상징한다. ● 반면, 2020년작 「벨라미(Bel Ami)」에서 화가는, 기존의 문법에서 탈피하려는 욕구를 드러냈다. '불교 미술의 형식과 기법을 사용하는 퀴어 예술가'라는 기존의 정체성에서 외면상으로 드러나는 '불교의 색채'를 제거해보기로 했던 것. 인스타그램의 인터페이스에서 차용한 정사각형의 화면에, 화가는 다종다양한 체위로 성애를 표출하는 게이 청년들의 누드 군상을 그려 넣었다. 벨라미라는 제목은, 게이 포르노 레이블을 1차적으로 의미하지만, 2차적으론 모파상의 동명 소설 속 주인공—아름다운 외모로 야망을 실현하는—을 뜻하기도 하고, 3차적으론 문자 그대로 '아름다운 게이 친구들' 그러니까, 「화랑도」 연작에 등장했던 나르시스트 게이 청년들을 뜻한다. 각 인물들은 검정색 반투명 천으로 연결됐는데, 성기 등 음부를 절반쯤 가리는 기능을 맡은 그 천은, 불화에서 보살들이 걸치는 사라라고 했다. 이러한 음화(淫畵)의 성화화(聖畵化)를 통해 구현되는 것은, 모종의 미적 숭고였으니, 천박한 욕구를 주고받는 성애적 네트워크로부터 고결한 가치를 찾는, 바꿔 말해, 성과 속의 새로운 조화를 이끌어내려는 시도였다. ● 「벨라미」를 형식으로 보면, 불화의 중세적 도상 구조 안에서 정형화될 수밖에 없는 인체 표현을, 르네상스적 질서 속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내보려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19세기 화가 윌리앙 아돌프 브그로(William-Adolphe Bouguereau) 같은 신고전주의적 누드 군상 작업도 시도하고 싶다고 하는데, 그러한 점을 고려하자면, 후지타 쓰구하루(藤田嗣治)의 「대구성 연작 가운데 전투 I & II(Combat I & II from Grande Composition)」(1928)와 같은 전례나, 후지타 쓰구하루가 추구했던 황인종의 "유백색" 피부톤에 화답하고자 했던 김화현의 「군선도」(2017) 등을 함께 생각해보게 된다.

박그림_MSQ44867_실크에 전통회화_28.5×39cm_2021

04. 두 번째 개인전 「참: 가장 무도회(CHAM; The Masquerade)」에서 박그림은, 다음 단계로의 이행을 준비하고 예고한다. 티베트의 불교 가면 춤인 '참'에서 제목을 따왔으니, 질병을 퇴치하고 공동체와 마을의 액운을 막고 풍년을 가져오는 의례무와 마찬가지로, 게이 남성들의 가면적 정체성 놀이가 일종의 정화 의식으로 승화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가 된다. (한국의 처용무가 라마교의 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들 하니, 이번 전시의 제목을 처용무로 고쳐 생각해봐도 흥미롭다.) ● 등호 표시의 구성으로, 위에는 "게이스북 스타"로 불리는 남성들의 눈을 클로즈업하고, 아래엔 해당 인물의 캐릭터와 성정을 표상하는 문양을 배치했다. 「화랑도」 연작을 자기 참조하는 18점의 「MSQ」(가장 무도회) 연작은, 전작들과 달리 음험해 뵌다. 같은 눈을 그렸지만, 자기 확신이 결여된 공허한 눈빛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따라서, 「화랑도」 연작에서 인물들에게 장식처럼 베풀어졌던 문양들도, 새롭게 독해하게끔 유도된다. 예컨대, 유명 고고보이 아무개를 담은 「소년의 가면」(2018)에서 파생된 신작 「MSQ49548」은, 플라밍고와 가죽 스트랩으로 구성된 새로운 불화적 문양으로 기호학적 메시지를 던진다. 소녀적 면모와 남성적 강인함의 조화 속에서, 작가는 자신을 단련하고 재규정해내고야 마는 인물의 의지를 포착해낸다. 그림 속 주인공은, 자신은 운동도 "좀 '썅'으로 한다"고 설명한 바 있으니, 눈빛에서 "썅"의 독기를 읽을 수도 있다. (비고: 본디 「화랑도」 연작은 18점으로 구성됐기에, 「MSQ」 연작도 18점으로 진행됐다.) ● 「MSQ」 연작과 함께, 한 점의 세라믹 호랑이 조각 「호구」와 구작 「벨라미」가 전시되지만, 역시 전시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등호의 구도로 제작된 「비호」다. 아기 호랑이의 눈을 담은 그림과, 호랑이의 꼬리와 꼬리를 타고 넘는 사라를 담은 그림은, 앞으로 펼쳐질 드라마와 그 시공을 예고한다. 사람의 피부결을 묘사할 때 사용하던 육리문 기법을 적용한 호피에서는, 의사-인격이 느껴진다. 황금빛으로 가득한 두 눈에는 장난기도, 성불의 기운도 비친다. 작가는 작업을 설명하며, 부처의 눈은 다섯 가지로서, 물리적 육신의 육안(肉眼), 하늘에서 미세한 부분과 미래까지 내다보는 천안(天眼), 차별과 망집(妄執)의 생각을 버리고 우주의 진리를 통찰하는 혜안(慧眼), 진리의 빛으로 일체의 법을 분명히 비춰보는 법안(法眼), 창세주의 눈으로 보는 불안(佛眼)이 있다고 강조했다. 하니, 호랑이의 눈은 이 다섯 단계를 상징-표지하는 것일 터. 반면 호랑이의 미간백호상(眉間白毫相)은 검은 고리로 표현됐는데, 이는 앞으로 다양하게 변화할 수도 있을 듯하다. ● 그런데, 호랑이의 꼬리를 타고 넘는 사라는, 제석천의 인드라망(indrajāla, Indra's net)을 뜻하는 모양이다. 불교의 욕계(欲界)에 속한 천신(天神)들의 왕인 인드라, 다시 말해 제석천이 머무는 궁전 위에 끝없이 펼쳐진 그물이 인드라망이다.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이 그물의 그물코에는 보배구슬이 달려 있고 어느 한 구슬은 다른 모든 구슬을 비추고 그 구슬은 동시에 다른 모든 구슬에 비춰지고, 나아가 그 구슬에 비춰진 다른 모든 구슬의 영상이 다시 다른 모든 구슬에 거듭 비춰지며 이러한 관계가 끝없이 중중무진으로 펼쳐진다" 하였으니, 화랑도의 인물들과 그들의 눈이 인드라망을 일구는 인연의 구슬들이 된다. 인드라망이, 일체 현상간의 상즉상입을 통한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의 상징이라는 점을 고려하자면, 즉 사사무애법계가 현실의 각 존재가 서로 원융상즉(圓融相卽: 여러 법의 사리[事理]가 구별 없이 널리 융통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 원융이고, 두 가지 사물이 그 본체에서는 서로 하나인 관계에 놓이는 것이 상즉이다)한 연기관계(緣起關係: 상호 유래와 원인 관계)에 있다고 보는 세계관을 반영한다는 점을 상기해보자면, 박그림의 신작들은, 하나의 존재는 여러 존재와 무한히 관계하고 있다는 불가의 가르침을 제시하고 구현하는, 법륜(法輪)의 현대미술이 된다. ● 게이 남성들과 아기 호랑이의 눈에 주목하는 이번 개인전을, 작가는 일종의 점안식(點眼式)으로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개안식(開眼式)이라고도 하는 점안식은, 불상·불화·만다라·석탑·불단 등을 만들거나 개수할 때, 이에 공양하고 그 불구(佛具)의 근본서원을 개현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쉽게 말해, 나무나 돌·종이 등에 그려지고 조각된 후, 그 기물에 점안식을 행함으로써 비로소 영험을 나타낼 수 있는 신물이 되는 것이다. (가톨릭으로 치면, 사제의 축성이 되겠다.) 따라서, 박그림은 관객과 그림 속 주인공들의 시선을 상호 조우시킴으로써, 가시성과 비가시성의 이중 전략을 취하는 퀴어 주체들에게 신물적 성격 혹은 신성화된 숭고의 페티시즘을 부여하는 셈이다. ■ 임근준

추신 1) 18점의 「MSQ」 연작의 기획 단계 이름은, 「세트(Set)」였다. 「MSQ」 연작의 개별 작품마다 붙은 숫자는, 「화랑도」 연작의 모본 제목을 유니코드로 변환시킨 결과다. 2) 2020년작 「미미」에서 박그림은 "인연을 통해 얻는 상처와 사랑"의 상징으로 백호의 꼬리를, "그를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상징으로 황호의 꼬리를 그렸다. 작가는 해당 작품을,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무수히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고 이 과정에서 서로를 상처주기도하며 위로하는 것처럼, 감상자 스스로 그것이 옥죄는 상처인지 아니면 따듯한 포옹인지 생각하게 하는 열린 결말의 작품"이라고 해설했다. 이에 따르면, 신작 「비호」에 등장하는 황호는, 작가의 페르소나인 동시에, 인간의 연약함을 대변하는 신수가 된다. 3) 2020년작 양면화 「주종(主從)」에 관해 화가는, "올려 할퀴려는 발, 아래로 고개 숙인 발은 각각 주(DOM) 과 종(SUB)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한데, 이를 황호의 무드라, 즉 수인(手印)으로 해석할 수 있으니, 복종이 지배가 되고, 지배가 복종이 되는 세계의 상징이 된다. 4) 2020년작 「야호」와 「호두」는, 앞으로 펼쳐질 「심호도」의 작업 세계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 5) 정읍이 배출한 한국의 현대미술가로는, 윤명로(1936-), 전수천(1947-2018)을 꼽을 수 있다.

Vol.20210421a | 박그림展 / PARKGRIM / 朴그림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