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적응: 공간

박형근_이나현 2인展   2021_0501 ▶ 2021_0527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스페이스55 프로젝트 『시차적응』 세 번째展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프로젝트 기획 / 안종현 협력 큐레이터 / 김진혁 글 / 황대원 디자이너 / 서가온

관람시간 / 12:00pm~07:00pm

스페이스 55 SPACE 55 서울 은평구 증산로19길 9-1 Tel. +82.(0)10.6304.4565 www.space55.co.kr

스페이스 55는 2021년 5월 1일부터 27일까지 프로젝트 『시차적응』의 세 번째 전시 박형근, 이나현 작가의 2인전 『시차적응: 공간』을 개최한다. 두 작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공간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지만, 사진을 지축으로 삼아 잠재된 현실을 포착하고 새로운 시공간을 제시한다. 박형근 작가는 공간의 자연적 감각을 탐구하는 동시에 설치, 채색, 색상 필터 등의 연출을 통해 공간을 재해석한다. 이나현 작가는 3D 렌더링 작업을 통해 사진 형식의 공간 이미지를 구현한 연작 「I make」를 통해 현실과 가상, 현실과 사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스페이스 55의 2021년 프로젝트 『시차적응』은 3월부터 10월까지 동시대 사진 작가 16인의 작업을 8개의 기획 전시를 통해 소개하며 오늘날 물리적-시간적 단절 속 사진의 기능과 역할, 다양한 존재양식을 탐구한다. ■ 스페이스 55

비현실적 사진으로 빚어낸 진실 ● 사진은 실제 존재하는 것의 모습을 기록하는 매체다. 이것이 사진에 대한 일반적 생각이다. 디지털 기술이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소문이 돌지만, 현실을 기록하는 사진의 힘과 관습은 아직 우리의 일상에서 건재하다. 하지만 『시차적응: 공간』에서 주목하는 박형근과 이나현, 두 작가가 보여 주는 것을 선뜻 현실이라 부르기는 망설여진다. 박형근의 사진이 기록하는 것은 분명 실제 세계에서 발견한 장면이지만, 어딘가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환상적 뉘앙스를 담는다. 이나현의 사진은 디지털 기술의 무표정한 개입을 암시하고, 가끔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초현실적 형상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두 작가의 작업 방식은 서로 매우 다르지만, 가상과 현실, 실재와 환상 '사이'의 공간을 열고 아름답지만 수상한 세계를 표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형근_Untitled-6_A paper horse_C 프린트_100×135cm_2004

박형근의 사진 작업은 크게 두 개의 층위로 구성된다. 하나는 사진이 담는 현장과의 깊은 교감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장면을 지나치지 않게 변형하는 연출이다. 때로는 연출이 없는 작업도 있지만, 그의 사진들 대부분은 이런 두 가지 과정의 산물이다. 그리고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과정은 수많은 것이 혼재된 시공간을 겹겹이 쌓아올린다. ● 그의 사진의 바탕에는 체험이 있다. 이때 체험이란, 개념적 언어로 정제되지 않은 혼란한 세계에 던져진 몸의 체험을 의미한다. 그는 2002년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1년쯤 작업의 정체를 겪은 뒤, 런던의 숲과 습지를 배회하며 자신의 고유한 예술 세계를 찾았다. 미술에 대한 잡다한 담론을 걷어내고, 선입견을 "탈탈 털어 내고" 카메라 한 대와 자기 본연의 미적 감각으로 세계와 직접 만나고자 했다. 한참 걸으며 지칠수록 그는 감각과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고, 전에는 못 보던 세상을 만나는 순간을 경험했다. 그런 순간을 기록하면서 시작된 것이 그의 「무제」(2003-2005) 연작이다. 사진에 언어로 된 제목을 붙일 수 없다는 것이다.

박형근_Forbidden forest-3_C 프린트_150×190cm 2010

그런데 왜 숲이나 습지인가. 박형근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숲은 그의 정체성의 핵심에 있는 원초적 형상처럼 보인다. 작가는 제주도의 숲에서 뛰어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숲에서 놀다가 아프곤 했고, 그때마다 옆집의 무당 할머니를 찾아가 "작은 퍼포먼스"를 받으면 병이 나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에게 제주도의 자연은 '순수'하지 않다. 그곳의 숲은 물의 기운으로 마을을 보호하는 영험한 공간이며, 토속 신앙이 깃든 신성한 장소였다. 이 섬의 자연은 이제 대부분 관광지로 개발되었지만, 동시에 4.3사건이라는 비극적 역사를 품은 곳이기도 하다. 한창 작가로서 활동하던 중에 그는 아직 사람의 발길이 뜸한 제주도의 숲을 다시 찾았다. 이번 전시에는 없지만, 이 귀향의 결과물이 「금단의 숲」(2009-2013) 연작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짙은 녹색과 어둠, 숲의 냄새와 바람의 숨결, 수많은 작은 존재들의 생사가 그대로 쌓인 시간의 흔적, 그리고 제주도에 대한 온갖 상념이 일렁이며 그를 뒤덮었다. 그곳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는 무척 어려웠다. ● 그럼에도 그는 결국 사진기라는 기계의 힘에 의존하여 사진을 찍는다. 박형근 작가는 휴대가 편한 35mm 카메라 대신 대형 카메라(주로 린호프 마스터)를 들고 다닌다. 대형 카메라는 사진에 담을 현장과 쉽게 어우러지지 않고, 한 컷을 조율하는 데도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작가는 자연히 대상과 긴 시간 충분히 교감하며 온전한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사진이 풀잎 하나의 모습까지, 빛과 어둠, 색과 공기가 만드는 뉘앙스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디테일을 흡수한다. 그리고 이 기계의 힘으로, 그는 넘칠 듯한 디테일에 견고하고 안정된 공간을 부여한다.

박형근_Tenseless-66_A bulb_C 프린트_100×127cm_2010

한편, 앞서 말한 것처럼 박형근은 사진에 연출을 가미한다. 그의 미장센의 진면목은 그가 가장 오랫동안 천착한 「텐슬리스」(2004-2015) 연작에서 잘 나타난다. '텐슬리스'(tenseless)라는 조어는 긴장이 없는 상태, 어떤 사물을 명확히 규정하는 대신 느슨하게 풀어진 채 바라보는 상태를 가리킨다. 작가는 습지나 공원, 건물과 같은 장소에 소품을 가져다 놓거나 조명으로 인위적 명암을 부여하며 그곳을 '무대'로 만든다. 때로는 사후 보정 작업을 통해 자연에서 얻은 색을 한층 선명하게 부각하기도 한다. 「Tenseless-66, A bulb」(2010)는 창녕의 우포 늪의 풍경이다. 그는 며칠간 이 장소와 교감하는 시간을 보낸 뒤에, 늦가을의 그곳에 깃든 원시적 감흥, 삶과 죽음의 뒤얽힘 등을 기록하려 했다. 「Tenseless-81, Broken Ⅱ」(2015)는 제주도의 어느 버려진 목장에서 찾은 장면이다. 덩굴이 무너져 가는 건물을 실핏줄처럼 뒤덮고, 주변에는 죽은 가축들의 뼈가 흩어져 있었다. 어디까지 실제 장소이며, 어디부터 연출일까? 박형근의 사진의 한 특징은 미묘한, 절제된 미장센에 있다. 그는 사소한 개입이 문득 사진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순간, 무미건조한 표면 너머를 여는 순간을 찾는다.

박형근_Tenseless-84_His objects_C 프린트_150×233cm_2015

야외에 머물던 그의 카메라는 때로 실내로 이동한다. 「Tenseless-84, His object」(2015)는 마치 사건 현장처럼 묘사된 장면이다. 처음에 눈을 사로잡는 것은 전면에 있는 꽃의 강렬한 색과 자태다. 화려한 꽃과 테이블에 흐르는 붉은 물감은 바니타스 이미지, 죽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무슨 사건이 있었으며, 사진의 제목이 말하는 '그'는 누구일까? 가만히 볼수록 창가에 쌓인 그릇들, 배경에 홀로 선 옷걸이와 같은 물건들에 더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어두운 실내, 창가의 뿌연 공기와 대비되는 전면의 테이블은 그곳에 서린 기억을 들여다보는 틈을 연다. 그곳에 존재했던 그의 시간이 가라앉은 물속을 휘젓는다. 작가는 연출을 통해 이런 일상적 장소와 사물에서도 그 속에 숨겨진 '금단의 숲'을 끌어낸다.

박형근_Redscape-2_C 프린트_50×62.5cm_2009

박형근의 사진 작업들을 많이 볼수록, 나는 점점 미스테리에 휘말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각각의 사진에서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연출인가에 대한 의문에 있을 것이다. 실재와 환상 사이의 긴장이 계속 따라다닌다. 그의 사진은 (때로는 조금 너무 달콤하다 싶은) 아름다운 색과 수상한 분위기로 유혹한 관객을 미궁으로 안내한다. 감각과 의식, 현실과 비현실, 신화와 역사, 무수한 개체들의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세계. 그에게는 상식과 담론의 세계보다 그 이면에 내재하는 원초적 세계가 더 완벽하며 진실에 가깝다. 그의 사진에는 이런 진실에 닿으려 분투한 과정들이 중첩되어 있다.

이나현_Waterpia_C 프린트_90×112.5cm_2018

이나현의 「I make」 연작 중에서 「Waterpia」(2018)를 살펴보자. 식물에 물을 주려고 싱크대에 가져다 놓은 것 같다. 어느 집에서 찍은 평범한 장면 같은데, 사진이 참 깔끔하게 잘 나왔다. 금속제 수도꼭지와 선반의 광택, 식물의 섬세한 잎맥과 색채, 벽의 타일 사이의 접합제 질감까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조금 이상한 느낌도 든다. 평범한 집이라면 저렇게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할 리가 없다. 식물이 놓인 저 하얀 세간은 싱크대인지 욕조인지, 아니면 책꽂이인지 모르겠다. 요즘에 흔히 볼 수 있는 디지털 합성 사진인가 보다. 이 작업을 처음 본 나는 대충 그렇게 짐작했다. ● 이번에 『시차적응: 공간』을 기획한 안종현 작가는 이 작업을 처음 마주쳤을 때 받은 충격을 나에게 고백했다. 안종현 자신도 지금 미술계에서 한창 활동하고 있는 사진가다. 그런 그가 「Waterpia」를 보고 너무나 '사진다운' 동시에 '언캐니'(uncanny)한 느낌, 그러니까 잘 설명할 수 없지만 뭔가 기괴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왜 건조하게 느껴질 정도로 매끈한 이런 이미지가 언캐니한가? 아마 그것은 우리가 사람을 너무 닮은 인형이나 로봇을 볼 때 느끼는 불편함과 비슷할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나현_Foil_C 프린트_90×157.5cm_2019

사실 이나현은 합성 사진을 제작하지 않는다. 이 작가의 이미지를 '사진'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근본적 물음을 수반한다. 사전을 찾아보면, 우리가 익히 아는 사진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의미한다. 물체의 형상을 감광막(感光膜)에 찍어 보존하는 영상. 또는 물체의 모양을 있는 그대로 그려 낸 형상. 그러나 이나현의 작업은 어떤 대상의 모습도 복제하지 않는다. 그 속에 나타나는 것은 작가가 3D 렌더링 프로그램을 통해 무에서 창조한 사물이다. ● 나처럼 3D 렌더링이라는 말을 난생 처음 들어 보는 관객도 많을 것이다. 작가가 설명해 준 작업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Cinema 4D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열고, 먼저 모델링을 시작한다. 텅 빈 공간에 사각형 그리드밖에 없는 '뷰포트' 위에서 여러 개의 면들을 붙여 사물의 윤곽을 만든다. 때로는 다른 프로그램에서 만든 데이터를 불러오기도 하지만, 실제 사물의 외형을 복사하는 경우는 없다. 그다음 카메라를 들고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보듯이, 화각을 선택하고 프레이밍 작업을 한다. 그다음 텍스처링(질감, 광택, 굴절율 등)과 라이팅(조명, 그림자)을 통해 화면에 디테일을 부여한다. 끝으로 이미지를 저장, 출력하여 작업을 완성한다. 이미지 하나에 들어가는 정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느 비평가는 이런 과정을 가리켜 '디지털 가내 수공업'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붙였다. 작가 스스로 강조하듯, 우리에게 신기해 보이는 이 작업 방식은 관련 업계에서는 기초적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을 왜 쓰는가, 그것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에 있다.

이나현_Line2_C 프린트_90×112.5cm_2018

이나현이 이렇게 만든 이미지를 왜 사진이라고 부르는가? 그것은 '디지털 극사실주의 회화'라고 해도 무방한 작업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진이라고 부를 만한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 그것이 매우 '사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안종현 작가도 배경 지식 없이 처음 본 순간 「Waterpia」를 사진으로 인식했다. 물론 전통적 스트레이트 사진을 기준으로 보면 이나현의 이미지는 부자연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디지털 기술로 보정, 또는 조작된 사진이 일상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 다시 말해, 이나현의 작업은 디지털 사진의 관습을 징검돌 삼아 사진의 영역으로 건너간다. ● 둘째, 그것을 사진이라고 할 때 대상의 '실재성'이 더 극적으로 부각되기 때문이다. 이나현의 이미지를 회화라고 한다면, 그것은 작가의 마음속에 떠오른 사물을 정교하게 재현할 뿐이며, 여기에 문젯거리는 별로 없다(엄밀한 극사실주의를 벗어난다 해도 상관없다). 반면, 사진으로 본다면 전통적 사진 개념과의 갈등이 생겨난다. 사진이란 조작을 가미하든 아니든, 실제 존재하는 것을 기록하는 최소한의 리얼리즘은 갖추고 있어야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나현이 가상 공간에서 빚어낸 대상에 조금이라도 실재성이 있는가? 아직은 주로 게임이나 구경거리(spectacle)의 범주에 속하는 가상 현실은 우리의 삶과 죽음이 걸린 '현실'보다 매우 가볍다. 하지만 기술이 더 발달하면, SF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보듯이, 가상의 삶과 현실의 삶의 경중을 구분할 수 없는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 작가는 우리가 실재라고 믿는 것도 허상과 다름없다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허무주의를 재방송하고 있는 것일까? ● 나는 이나현의 사진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다. 그것은 실재도 허구가 아닌지 의심하라고 하기보다, 오히려 허구도 실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차가워 보이는 「I make」 연작은 사실 작가가 일상에서 만난 작은 경이(驚異)에서 태어났다. 검은 필름에서 생생한 이미지를 자아내는 현상 탱크, 스마트폰 액정의 안팎을 넘나드는 사물들, 지하철 의자 시트의 질감이나 을지로의 상가에 즐비한 타일의 무늬, 길에서 본 검은 비닐봉지의 비밀스런 형상 등. 작가는 이런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사소하지만 자신을 사로잡은 그 무엇을 조각했다. 정성스러운 디지털 가내 수공업을 통해, 사진처럼 보이는 정교한 디테일을 통해 이미지에 실재성을 부여하려 했다. 나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조각상을 살아 있는 여인으로 만든 피그말리온을 떠올렸다. 실체 없는 이미지에 사진다운 생기와 영혼을 새기려 하니, 그것을 보며 언캐니한 느낌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지점에서 이나현의 사진은 박형근의 마술적 세계와 살며시 이어진다. ● 사진에 주목하는 『시차적응』 시리즈의 세 번째 전시인 이번 전시의 부제는 '공간'이다. 두 작가는 물질적 평면이 아니라, 실재와 환상이 교차하는 시공간을 빚어낸다. 그곳은 작가의 경험과 상상에서 탄생한 세계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눈과 손을 초월하는 기계와 프로그램의 산물이기도 하다. 사진의 디테일은 그것의 현실성을 보증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것을 넘어서는 세계를 눈앞에 드러내기도 한다. 박형근은 원초적 체험의 공간으로, 현실보다 더 진실한 마술적 현실로 들어가는 문을 연다. 이나현은 실체 없는 대상과 이미지에 디테일의 힘으로 만든 영혼을 부여한다. 그들의 사진이 머금은 것이 원초적 세계든 영혼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추상적 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정교하게 쌓아 올린 구체적 공간에서 떠오른 형상을 갖는다. 그리고 이 공간은 기나긴 시간을 삼켜 버린 다음에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수많은 이미지가 범람하고 스쳐 지나가는 오늘날, 우리는 사진이 시간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새삼 발견한다. ■ 황대원

부대행사 / 토탈미술관×스페이스 55 토탈뮤지엄 전시기간 중 매주 월요일 3시, 사전예약 필수 문의 / 토탈미술관 02-372-3994

Vol.20210502d | 시차적응: 공간-박형근_이나현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