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시도

오세경_진민욱_최다이_허현숙展   2021_0503 ▶ 2021_0528 / 주말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주말 휴관

정부서울청사 문화갤러리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209(세종로 77-6번지) Tel. +82.(0)2.2100.4538 www.chungsa.go.kr

서울 성시도(城市圖) ● 대표적인 성시도인〈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나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가 태평성대(太平聖代)의 활기차고 발전된 도시상을 대상으로 표현하였다면, '서울 성시도' 전시를 통해 지금의 서울은 태평한지 자문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도시 또는 서울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기성세대와 청춘세대 간의 확연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기는 언제일까? 하고 묻는다면, 아마 대부분 청춘(靑春)을 화양연화(花樣年華)와 같은 때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시기에는 가슴 시린 연애도, 자기에 대한 도전도, 미래를 위한 꿈도 이룰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입춘(立春)과 같은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춘세대에게 서울에서의 삶이란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다. 심지어 지금의 도시 속 청춘 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 취직 등등을 포기한 세대라고도 한다. 소위 N포 세대는 심지어 그들의 꿈과 희망마저 단념하였다. 그래서 도시는 더 이상 기회의 땅이거나 태평한 공간이 아니다. 도리어 공정과 불공정, 합리와 불합리, 평등과 불평등이 양존하는 모순의 공간이자 갈등의 도시가 되었다. 더욱이 코로나 19로 인하여 사람과 사람 간의 유대 관계, 여가와 문화도 포기해야 하는 청춘세대의 눈에 펼쳐진 도시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헬(지옥)이라는 이름까지 지워진다. 그러나 이토록 어려운 팬데믹의 시기에도 도시는 여전히 건물과 차량으로 가득하기만 한데, 꿈과 희망으로 채워져야 하는 도시 속 젊은 자아는 점점 포기라는 이름으로 텅 비어져 간다. 끝없이 진화하는 도시의 변화 속에서 수혜자인지 피해자인지 모를 애매한 위치에서 그저 무기력하게 누워 멍하니 하늘을 응시하는 듯한 오세경 작가의 작품〈몰락〉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 같다.

오세경_몰락 Downfall_한지에 아크릴채색_162×227cm_2017
오세경_소환 Recall_한지에 아크릴채색_120×120cm_2018
오세경_콤플렉스 Complex_한지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17

오세경 작가의 작품〈몰락〉은 서울 강변역 고수부지의 보트 선착장을 소재로 작품을 구상하였다. 화면 배경에 도시의 네온사인이 아스라이 비치는데 한창 화려한 불야성의 시간대는 지났는지 저 멀리 비치는 불빛은 절제되어 있다. 그리고 보트 위 화면의 중앙에는 어떤 사건이 조망된다. 특히, 오세경 작가의 작품에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자주 등장한다. 남성적 시각에서 교복의 여학생은 불순하게 성적 대상으로 인지될 수 있으나 오세경 작가 작품 속의 여학생은 판타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소외되고 억압받는 여성으로서 페미니즘의 상징도 아니다. 아마 '떨어져 잠기다'라는 몰락(沒落)이라는 제목과 여타 다른 작품명 '콤플렉스', '하얀 나비', '아수라', '사냥', '폭주기관차' 등으로 유추해보면, 하이에나와 같은 도시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자존감을 늘 위협받고 있는 존재이며, 호기심을 느끼거나 열등감으로 울고 좌절감 앞에 선 자아의 초상이자 오늘날 청춘세대를 대변하는 듯하다. 그래서 여학생으로 은유 된 청춘은 도시의 야수성에 무기력하게 뜯겨 먹일 정도로 연약해 보이기도 하면서 한편 반항적이다. 여기서 연약, 반항의 함의는 '요새 세대가 나약하다. 버릇없다.'는 꼰대적 관점이 아니라 지금의 도시 현실이 청춘 세대에게는 가혹하다는 뜻의 반증이다. 작가는 개체와 개체, 개체와 집단, 개체와 공간의 대립과 갈등을 극적인 조명효과를 통해 강조하면서 그 대립의 순간에서 선택을 강요받아야 하는 세대의 고민을 여학생 이미지를 통해 투영한다. 거기에는 성적 판타지나 정치적 페미니즘이 끼여 들어올 틈도 없는 도시 속 청춘의 허한 리얼리즘을 직면하게 한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이 맞닿는 현실에 대한 고민이 역설적이게도 초현실적인 상황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자신이 거주하는 도시 속 현실 공간이 아닌 우주에서 온 듯한 괴비행체 속에서 나의 꿈을 소환할 수밖에 없는 소녀(또는 소년)들만의 놀이터를 표현한 〈소환〉작품이 웃픈 사실로 다가온다.

진민욱_성북남만시소조도_장지에 수묵채색_121.5×171cm_2018
진민욱_소소경-서울숲_비단에 수묵채색_114×178cm_2019
진민욱_소소경_비단에 수묵채색_88×127cm_2018

진민욱 작가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평화롭다. 마치 세속의 혼돈에서 벗어나 복숭아꽃이 피는 무릉도원과 같은 상춘지서울(常春之都市)은 매우 낭만적이다. 오세경 작가의 작품 속 서울이 모순의 공간이라면 진민욱 작가의 공간은 조화의 공간이다. 일견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슴과 같은 들짐승과 날짐승 그리고 초목들이 도시라는 공간과는 모순되게 병치되어 있지만 신비롭게도 도시와 자연이라는 대립항이 작품 속에서는 상생한다. 아마 현대인에게 이상향이란 깊은 산중의 전원마을로서의 도원보다 도시의 편리함과 자연의 평안함이 공존하는 〈소소경-서울숲〉과 같은 도시적 유토피아의 선호가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명 '소소경(逍小景)'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도시 속을 천천히 거닐면서 발견한 작은 풍경의 아름다움이 비단 또는 한지에 담담한 채색으로 정겹게 구현된다. 그래서 너무 분주한 서울의 일상 속에서 간과한 소확행(小確幸)의 정경을 접할 수 있다. 〈성북남만시소조도(城北南滿柹小鳥圖)〉는 삼청공원 말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성북동과 올라가면서 접한 토마토(南滿柹)와 작은 새들을 중첩한 이시동도법(異時同圖法)의 작품이며, 〈소소경-서울숲〉은 성동구의 서울숲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서울 주변에서 쉽게 지나치기 쉬운 작지만 아름답고, 가치 있는 도시 속 자연미를 상기시키고 있다. 진민욱 작가는 의미론적으론 이상향으로서의 '도원(桃源)'을 시간적으로는 지금의 봄날과 같은 '상춘(常春)'을 표현하고 있다. 도원이란 일종의 낙원으로 전쟁과 같은 근심, 걱정이 없는 평화로운 마을을 뜻하며, 상춘이란 생명이 탄생하는 봄으로서 소생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산수풍경이 있던 자리에는 어느덧 아파트나 고층 건물로 채워져 인위가 자연을 대신해 간다. 그래서인지 현대도시인에게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커져간다. 그나마 서울은 동서남북으로 인왕산, 낙산, 남산, 북악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산중의 도시라 심심치 않게 도화(桃花), 남만시(南滿柹), 소조(小鳥), 매화(梅花), 산금(山禽) 등을 간간히 접할 수 있으나 그나마 무심하게 점차 사라져 간다. 그런데 진민욱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면 도시의 현실이 비록 겨울처럼 냉혹하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따뜻하고 생동감 있는 봄날이 온다는 메시지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봄의 경치(常春之景)를 표현한 작품을 통해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도시, 인간과 자연이 상생하고 순환하는 '서울숲(都市林)'을 꿈꾸게 한다.

최다이_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래도_mdf에 혼합재료_73×50×15cm_2019
최다이_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래도_장지에 채색_ 6개의 패널, 전체 크기 260.9×251.1cm_2019
최다이_균형이 아니다_순지에 채색_91×233.6cm_2019

최다이 작가 작품은 일견 도미노를 표현하고 있다. 길게 늘어선 직사각형의 도형들은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다. 그러나 자세히 도미노의 형상을 들여다보면 서울의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시의 풍경들이 투사되어 있다. 대부분의 도시풍경은 동대문구, 종로구, 강남구의 건물과 풍광을 소재로 표현하였다고 한다. 각각의 다른 장소의 정경을 소재로 표현하였지만 동일한 모습으로 복제되어 질서정연하게 도열한 도미노의 모습은 일견 박스형의 마천루와 같은 도시의 모습과 흡사하다. 도미노의 특성상 자칫 한 번의 시도로도 모든 도형이 연쇄적으로 무너질 수도 있는 불안감을 내재하지만 간격을 유지하면서 질서 있게 병립하고 있는 모습은 도리어 도시를 대변하는 듯하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거대 괴수의 파괴가 없다면 건물들이 도미노와 같이 연쇄적으로 붕괴할 일은 현실 속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청춘세대가 바라보는 도시의 생태란 견고하고 안정적이기보다 위태하고 불안하다. 아마 도시 자체의 구조적 불안정성보다 도시 속의 청춘세대가 느끼는 심정적 불안감이 투영된 결과일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는 간격이 무너지고 이로 인해 모든 것이 몰락할 수 있는 도시의 위기가 마치 도미노 게임과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도미노 도시의 인상에 대해 최다이 작가는 명확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작품명이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래도〉이다 '그래도, 그래도'라는 이 어투는 마치 미국의 재즈가수 냇 킹 콜(Nat King Cole)의 노래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Quizas, Quizas, Quizas)'를 연상시킨다. ● "우리는 도시에게 항상 묻곤 하지요." "언제, 어디서, 어떻게라고" "당신은 늘 대답하지요.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Quizas, Quizas, Quizas)" ● 도시는 우리에게 항상 불명확한 대답을 한다. '그래도' 또는 '아마도'라며 애매모호하게 답변하다. 긍정인지 부정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래서 불안하지만 한편으론 짜릿하기도 하다. 마치 넘어지기 전의 도미노 게임과 같이 말이다.

허현숙_어디서든 행복하길 바랄게요_이합장지에 흑연_120×320cm_2018
허현숙_강뷰를 덤으로 드립니다_이합장지에 흑연_32×82.3cm_2020
허현숙_타워빌라스_이합장지에 흑연_75.5×25.5cm_2020

허현숙 작가는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서울시 노원구에 거주하면서 주로 상계동의 풍광을 소재로 작업을 하였다. 허현숙 작가의 작품 속 도시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서울에서의 삶을 기록한 개인사이자 서울이라는 도시의 역사이다. 그래서 작품 속 도시의 모습은 현재의 모습이라기보다 과거의 기록에 가깝고 작가 스스로도 유년기의 도시를 짓는다고 한다. 그래서 허현숙 작가의 도시풍경화 속에 기와집들은 길이라고는 보이지 않을 만큼 빼곡히 들어선 구도심과 같아 최다이 작가의 질서정연하게 도열한 도시 그림과는 대비된다. 작가는 '유년의 향수를 간직한 공간을 재구축함으로써 옛것에 대한 환기와 현대인의 삶에 부재한 유대감을 되찾으려는 정서를 반영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허현숙 작가의 '도시계획'은 오늘날 신도시계획에서 볼 수 있는 질서와 편이가 아닌 과거와 추억에 대한 노스탤지어로 구축된다. 따라서 도시를 표현한 〈어디서든 행복하길 바랄게요〉가 대형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고층의 건물이나 아파트들의 거대 스케일에 의한 도시적 위압감은 볼 수 없다. 허현숙 작가는 한지에 흑연으로 작업을 하는데, 마치 어린아이가 지나간 달력의 뒷면에 천진난만하게 낙서하듯이 연필로 화면을 채워나간다. 거기에는 효율적인 도시 계획이나 주거, 교통계획은 존재하지 않는다. 연필로 그려진 집들의 집합체는 마치 정겨웠던 이웃들 간의 유대관계를 의인화한 듯이 끈끈하게 결합하여 도시라는 인상보다 마을로서의 정감이 강하다. 그렇게 허현숙 작가는 유년기의 도시를 현재에 재생함으로써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도시의 의미를 다시금 환기시킨다. 우리가 어느덧 상실했던 거주지의 평안함, 이웃 간의 온기, 골목길의 추억, 구수한 밥 짓는 냄새 등등과 같은 것들이다. 오래된 도시는 철거를 통해 사라지고 신도시라는 이름으로 재개발되면서 사람과 사람, 집들과 집들의 유대관계는 끊어져 산화한다.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더라도 그리고 결국에는 기억의 편린마저 상실되었더라도 작가는 흩어진 기억을 모아서 어디론지 가버린 이웃과 친구와 자신에게 행복을 염원하듯이 구도의 자세로 다시금 그려나간다. 직면한 현실이 어려울 때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심정이 든다. 그러나 허현숙 작가의 복고(復古)는 현실에서 도피하고픈 무기력한 귀소본능이 아니라 고뇌하는 도시인에 대한 위로에 가깝다. 도시 속에서 좌절하고 있는 세대에게 허현숙 작가의 작품은 마치 토닥이듯이 그래도 행복할 수 있다며 위안을 준다. 따라서 앞서 최다이 작가를 통해 얻지 못했던 도시에 대한 질문의 대답을 얻게 된다. "어디서든 행복하길 바랄게요!" ● 끝으로 다시금 묻게 된다. "서울은 태평한가?"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 라고 대답할 듯하다. '아마도'라는 단어 이면에 담긴 수많은 은유적 의미만큼 네 명의 작가들의 작품에는 서울에 대한 다양한 감성이 엿보인다. 동일 소재이면서도 다양한 서울의 성시도 모습을 감상할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지만 여전히 서울에 대한 질문은 남는다. 태평(太平)한가에 대한 대답으로서 '아마도'가 어떤 의미인지 명확하지 않아도 포기, 단념, 좌절보다는 그래도 밝고 긍정적인 염원이 살짝 더 담기길 기대해 본다. ■ 나형민

Vol.20210503d | 서울 성시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