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머물던 자리

2021 주제기획展   2021_0503 ▶ 2021_0717 / 일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권세진_박진아_서동욱_장재민_정보영

후원 / 우민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 / 우민아트센터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우민아트센터 WUMIN ART CENTER 충북 청주시 상당구 사북로 164 우민타워 B1 Tel. +82.(0)43.222.0357 www.wuminartcenter.org

우민아트센터는 2011년 9월 2일 개관 이후, 지역문화예술을 위한 공공적 기여와 창의적 소통을 위한 인터-로컬 뮤지엄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우민아트센터는 다양한 형태의 전시를 통해 지역 미술계와 한국 현대미술에 유의미한 담론들을 만들어 내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본 전시는 '물리적 장소'와 인간이 갖는 '기억'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 주목한 전시입니다. 2019년에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확산 이후, 일상에서 가상공간이 주목받으며 상대적으로 물리적 장소에 대한 언급은 줄었습니다. 전시를 통해 컨택트 시대의 회기를 소망하는 동시에, 우리가 특정한 장소에 직접 자리하며 느꼈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이번 전시에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2021 주제기획 『우리가 머물던 자리』는 권세진, 박진아, 서동욱, 장재민, 정보영 5 명의 작가가 참여합니다. ■ 우민아트센터

그곳을 지나는 공기 ● 자리는 사라진다. 시간의 초침이 공간을 밀어낸다. 장소란 두 번 존재하지 않는 법이며 그렇기에 애틋하다. 매 순간 다른 현재로서의 장소, 잡히지 않는 공기의 부피를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오늘의 지면에 발을 디딘다. 곧 잔상이 될 순간을 유심히 감각해 본다. 사라지는 시공을 기록하는 회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늦봄과 초여름, 우민아트센터의 공간에 머무는 한 전시에 관한 이야기다. 다섯 작가의 화면은 저마다 공간의 좌표를 경유하는 시간의 축을 드러낸다. 물리적 장소 주위에 부유하는 사건과 사람들, 그것이 불러일으킨 감각과 남은 흔적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 회화의 시간이 중첩된다. 휘발한 기억을 환기하고, 그림으로 옮겨내는 과정의 시간이다. 감정이 물감에 섞이고 경험과 기억은 파편화된다. 시간이 붓질에 스미고, 서사는 주관적 명암으로 재구성된다. 매번 새로운 현재를 향해 나아갔을 붓의 움직임을 상상한다. 그리고 다시, 작가의 몸짓이 머물던 자리로서의 회화를 본다.

박진아_야외공연 준비_리넨에 유채_196×170cm_2017
박진아_밴_리넨에 유채_130×185cm_2017
박진아_여름 촬영 02 (보르게제 공원)_리넨에 유채_145.5×274cm_2017

시간의 물성 ● 붓은 시간을 용해하여 평면 위에 재구성한다. 박진아(b. 1974)의 화면은 사건 밖의 풍경을 담는다. 중심 사건을 위한 주변의 시간이다. 「야외 공연 준비」(2017)의 화면 좌측 하단에 꺼진 상태로 놓여 있던 조명은 「여름 촬영 02 (보르게제 공원)」(2017)에서 본연의 역할을 수행한다. 작업에 몰두하는 이들 "특유의 조용한 긴장감"을 강조하는 장치일 테다. 시간은 사진으로 기록되는 순간 정지한다. 그리고 회화의 화면에서 새롭게 재생된다. 얼린 시간을 녹이는 공정이며 "삶의 모호하고 신비로운 순간"을 복구하는 회화다. 형상 주위로 유령처럼 번진 물감의 흔적으로부터 멈추었다 밀려난 시간의 물성을 연상해 본다. 시각이 부재한 자리를 촉각이 보완하는 것처럼, 묘사의 정도와 물감의 번짐은 반비례한다. 「여름 촬영」(2017)에 우거진 초록과 「밴」(2017)을 무겁게 메운 어두움이 무거운 흔적을 흘려 보낸다. 형상의 잔여물은 흐르다 이내 화면에 스민다.

장재민_비린 곳_캔버스에 유채_227×181cm×5_2015
장재민_서낭당 나무와 돌장승_캔버스에 유채_194×259cm_2020

장재민(b. 1984)의 「서낭당 나무와 돌 장승」(2020)이 떨어뜨린 물감의 흔적은 형상 주위에 머물지 않는다. 물방울은 장면과 별개의 층위를 이루며 두텁고 분방하게 흐트러진다. 수직으로 누르는 붓의 세기와 수평으로 운동하는 몸짓에서 파생된 현재성의 흔적이다. 붓은 바로 다음 순간의 미래를 향해 가쁘게 밀려간다. 「비린 곳」(2015)은 다섯 폭의 캔버스로 이루어진 대형 작품이다. 일렁이는 저수지의 수면이 손에 만져질 듯 생생하다. 실재의 물가를 바라볼 때와 다소 다른 종류의 촉각이 스쳐 간다. 유채 물감의 물성이 적극적으로 드러나서다. 화면이 선보이는 것은 회화의 몸짓이 평면 위에 새롭게 메운 저수지다. 장재민은 실재의 장소를 참조하여 또 다른 장소성을 구축해 낸다. 그의 화면에서는 과정이 소재보다 무거운 비중으로 다루어진다. 직관과 논리가 교차하며, 현재를 지속적으로 갱신한다. 「큰 개와 사람과 큰 나무」(2019)에 등장하는 개와 인물 그리고 나무의 형상이 하나의 덩어리로 탈바꿈한다. 경계는 물성에 의해 부수어진다. 붓을 쥔 손이 단편적인 순간들을 광활한 규모로 연결 짓는다.

권세진_대림역 6번 출구_캔버스, 종이에 먹_181×227cm_2018
권세진_바다를 구성하는 1,482개의 드로잉_캔버스, 종이에 먹_260×570cm_2020
권세진_편의점2_캔버스, 종이에 먹_181.8×227.3cm_2018

권세진(b. 1988)은 시간을 조각낸다. 그리고 모자이크처럼 재구성한다. 먹은 화면을 물들이는 재료다. 수분이 마르는 시간과 먹이 스미는 순간을 영민하게 조율해야 한다. 「바다를 구성하는 1,482개의 드로잉」(2020)은 제목 그대로 손바닥만 한 조각 그림을 천여 점 이어 붙인 작품이다. 화면에 균일한 완성도를 배분하고자 택한 방식이다. 디지털 스크린의 원리를 떠올려 본다. 이미지 조각들은 동등한 데이터로서 다루어진다. 셀 수 없는 물결의 깊이가 오직 1,482개의 망점으로 축약되어 눈앞에 나타난다. 「신도림역 2번 출구」(2018)와 「대림역 6번 출구」(2018)는 장소의 좌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뿐만 아니라, 일상을 그대로 옮긴 듯 사실적인 환영을 드러낸다. 그러나 화면이 암시하는 연속성은 허구다. 그림은 저마다의 물질성을 띤 파편의 집합이다. 권세진은 간결하고 빠른 붓질을 시도한다. 최소한의 흔적으로 형상의 단서만을 제공한다. 필연적인 시각의 공백을 환영이 탁월하게 메운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그 마법이다.

서동욱_SH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0
서동욱_CH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0
서동욱_가죽 창고의 WW_캔버스에 유채, 162.2×130.3cm_2020

기억의 명암 ● 화면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서보자. 저마다의 빛과 어두움이 있는 세계다. 서동욱(b. 1974)의 화면은 인물의 초상을 전면에 내세운다. 배경의 묘사가 풍부한 서사를 암시한다. 실내 공간에 내리쬐는 햇볕은 안팎을 연결 짓는 매개로서의 빛이다. 인공조명을 배제하고 자연광을 활용한다. 어두운 실내와 밝은 햇빛이 대조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SH」(2020)의 좁은 부엌에 깃든 조각 볕은 연극적인 효과를 자아낸다. 인물의 어색한 몸가짐만큼이나 비어있는 찬장과 문 열린 화장실의 존재가 생경하다. 회화에는 '은신처'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JH」(2020)와 「담배 피는 DW」(2019)의 방 한편에 있는 베란다 또는 「CH」(2020)의 의자 밑 공간 등이다. 빛이 실내를 외부와 매개하는 요소라면, 은신처는 그에 대응하는 어두움의 공간이다. 인물들은 공허한 눈빛으로 사선 아래 어딘가를 응시한다. 이니셜로 축약된 이름과 생기 없는 시선이 암시하는 정체성이 실내 공간을 장식한 목재의 쓸모와 닮았다. 바닥과 가구, 「WJ」(2020)의 숲 포스터 등 가공된 나무의 메타포가 지속적으로 등장하지만 정작 살아 있는 식물이 없다. 햇빛은 생명을 비추지 않는다.

정보영_Looking_캔버스에 유채_112×162cm_2020
정보영_Vertical Time_캔버스에 유채_227.3×181.8cm_2009
정보영_Horizontal Time_캔버스에 유채_227.3×181.8cm_2009

정보영(b. 1973)의 화면에서 명암은 더욱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먼, 혹은 가까운」(2018)의 사실적인 밤 풍경은 보는 이를 현장의 시간으로 끌어들인다. 섬세하게 묘사한 어두움 속 어딘가에서 광경을 바라본다. 「Horizontal Time」(2009)의 벽면을 지나는 붓질은 건축물 내부의 습도마저 환기하는 듯하다. 세밀한 콘크리트의 얼룩이 실재의 복잡성을 고찰한 면모를 드러낸다. 유난히 높은 창문마다 양초가 놓였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상징적 요소다. 촛불은 인물의 부재를 암시하는 한편 스스로 신성한 존재감을 내비친다. 「세우다」(2018)의 화면에는 두 개의 접이식 의자가 등장한다. 부재의 또 다른 기호다. 햇빛이 못다 밝힌 실내의 한편을 하나의 초가 밝힌다. 양초의 빛은 유리 조형물을 투과하고, 빈 의자의 표면을 가로질러 조명 및 햇빛으로 확장된다. 또는 그 반대의 경로로 응집된다. 대비되는 그림자의 자리는 겸허한 어두움이다. 그곳에 작가의 시선이 머문다.

우리가 머물던 자리-2021 주제기획展_우민아트센터_2021
우리가 머물던 자리-2021 주제기획展_우민아트센터_2021
우리가 머물던 자리-2021 주제기획展_우민아트센터_2021
우리가 머물던 자리-2021 주제기획展_우민아트센터_2021
우리가 머물던 자리-2021 주제기획展_우민아트센터_2021

지금, 유난한 날들을 살고 있다. 온갖 장소로부터 거리를 두며 삶의 반경은 자연히 좁아졌다. 가지 않아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지만 우리는 여전히 물성을 그리워한다. 쓰다듬을 현실이 필요한 손을 가진 존재라서다. 누구나 자신의 장소를 가지고 있다. 어느 날 공기의 온도로부터 떠오르는, 코 끝을 스치는 감각으로서 환기하는 그런 종류의 장소. 붓이 그리는 것은 그런 장소다. 잡히지 않는 정서를 물감에 녹여내어 만져지는 존재로서 탈바꿈하는 일이다. 시간은 새롭게 연결되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분절된다. 감각이 물성이 되고 사유는 명암이 된다. 떠난 후 다시 감각하는 새로운 자리, 회화의 화면 위를 지나는 공기는 온전히 그리는 이의 숨이다. 그 공기의 부피가 오늘의 전시 공간에 머문다. ■ 박미란

Vol.20210508b | 우리가 머물던 자리-2021 주제기획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