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ssing

이겨레展 / LEEGYEORE / 李겨레 / painting   2021_0514 ▶ 2021_0613 / 월요일 휴관

이겨레_Figurative_캔버스에 유채_193.9×259.1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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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레 홈페이지_www.rehlee.net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수애뇨 339 기획 / 이겨레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예술공간 수애뇨339 SUEÑO 339 서울 종로구 평창길 339 Tel. +82.(0)2.379.2970 sueno339.com

나는 선천성 유아백내장 수술 이후 흐릿한 초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성장하면서 막연히 감지하고 있던 나의 신체적 상황에 궁금증을 갖게 되었고, 시각적으로 뚜렷하지 않게 보이는 대상을 지각하는 방식이 한 장소나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가정하게 되었다. 각 세부적인 가정에 관해 회화작가로서 탐구해보고자 하는 동기가 작업을 이어가는 밑바탕으로 작용했다.

이겨레_Crossing_캔버스에 유채, 두 개의 패널_305.2×364cm_2020~1

다양한 영역에서 포착한 이미지와 아이디어를 서로 결합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만들어간다. 먼저, 인물을 시각적으로 명확히 인식하려는 시도는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의 관계형성에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를 위해 자연스레 주변에 보이는 인물의 동작이나 그들이 처한 상황에 주목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작업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인물은 내 작업의 주요한 소재로 내용과 형식을 결합시키는 매개체다.

이겨레_떠올리면 떠올릴수록_캔버스에 유채_193.9×259.1cm_2020

내용상으로는 부조리로 인해 인간이 한계상황에 마주하는 순간이 작업의 출발점이 된다. 그 지점을 포착하거나 이해하기 위해 한 사회의 역사와 사람들의 사연이 깃든 장소나 자료를 취재하거나 관련된 문학작품을 찾아보고는 한다. ● 이번에 전시하는 그림 또한 같은 맥락에서 제작되었다. 성인이 된 이후 국내외 타지에서 생활하다 고향인 구미로 돌아와 내가 위치한 지역을 다시 관찰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이 지역이 다른 지역과 역사적으로 맺는 관계나, 기록되지 않는 개인들과의 영향 관계에 관심이 생겼다.

이겨레_눈 내리지 않는 세계_캔버스에 유채_259.1×193.9cm_2020

이번 전시에서는 이런 맥락이 드러나는 소재로 왜관철교, 금오산의 풍경, 한국의 지도 등이 그림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예를 들어 〈Crossing〉(2020~2021)은 6·25 때 한 차례, 그리고 2011년 낙동강 보 준설 시기에 다시 한 번 무너진 역사를 가진 왜관철교를 배경으로 한다. 잘려나간 철교가 동일한 구도로 반복되는 두 캔버스 패널을 얼어붙은 강의 이미지와 결합함으로써 인물이 그 사이를 횡단할 수 있는 상황을 연출했다. 반복되는 공동체의 어두운 기억과 개인들 사이에서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작업했다.

이겨레_움직이는 지표들_캔버스에 유채, 108개의 패널_각 20×20cm, 가변설치_2020~1

〈떠올리면 떠올릴수록〉(2020)은 어렸을 적 소나무숲이 울창했던 고향의 한 장소에 관한 기억을 다룬 작업이다. 어느 날 이곳의 모든 소나무는 가지치기되고 얼마 후에 사라져버렸는데, 뒤이어 어린 소나무가 심긴 공원이 들어섰다. 그 일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이상하게도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이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곳을 떠올릴 때면 마치 모호한 기호로만 남아있는 어떤 장소를 상기하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지가 남아 있지 않은 소나무숲 속에 서 있는 한 인물과 그 위를 떠다니는 다양한 소나무 가지 모양의 조합을 통해 사회 공동체에 일어나는 일이 개인의 기억으로만 남겨지는 상황과 이미지를 캔버스에 그려나가는 행위를 은유적으로 결합했다.

이겨레_움직이는 지표들_캔버스에 유채, 108개의 패널_각 20×20cm, 가변설치_2020~1

형식적인 면에서는 미술사 속에서 내가 어떤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는지를 비교하며 확인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예를 들어 〈Figurative〉(2020)는 김관호, 변월룡, 오지호 등 한국의 근대 구상화가들을 한자리에 모은 그림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을 거치며 당시 사회의 급속한 변화에 따라 구상화도 새로운 미술, 사회주의 미술 등으로 다른 위치를 차지해 왔으며, 현재 내가 사용하고 있는 구상화의 방법 또한 역사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그림에서는 라파엘로와 –그의 구성을 빌려왔던- 막스 에른스트 등 미술사 속 선례로부터 구성 방식을 차용하고, 각 작가가 태어난 연도에 따라 서로 다른 색상의 옷을 입혀 아카이빙했다. 여전히 분단된 대지 위에 이념을 떠나 한데 모은 작가들의 그림은 어쩌면 현재 구상회화 작가로서 나의 역할에 관해 생각하는 기회를 줄 수 있으리라 보았다.

이겨레_Romantic Drive_캔버스에 유채, 레진, 금박을 입힌 나무액자_47.5×38.3cm_2020

내 작업은 그림 그리는 과정을 통해 역사와 미술이 교차하는 사분면 위에서 한 명의 작가로서 나의 좌표와 역할을 질문하며 이해해 보려는 시도에 가깝다. 이러한 시도의 결과를 보여주는 이번 전시가 다른 사람에게도 서로의 다양한 좌표를 잠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이겨레

Vol.20210514b | 이겨레展 / LEEGYEORE / 李겨레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