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展 / KIMYUNGJU / 金永柱 / painting   2021_0518 ▶ 2021_0531 / 일요일 휴관

김영주_나부(裸婦)_캔버스에 유채_53×45cm_1975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식사시간_12:00pm~01:00pm / 일요일 휴관 일요일 전화예약 관람가능 / 051.758.2247, 010.5579.2854

부산 미광화랑 MIKWANG GALLERY 부산 수영구 광남로172번길 2(민락동 701-3번지) Tel. +82.(0)51.758.2247 www.mkart.net

압축된 형태미 속에 살아있는 사실정신 ● 현실의 풍경을 눈앞에 두고 실재와 전혀 다른 색채로 변조하는 것은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진정한 창작이란 실제와 다른 색채해석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림이란 어쩌면 색채언어로 노래하는 감정의 불꽃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감정의 열기가 뜨거우면 현실의 색깔에 만족할 수 없다. 그 뜨거움을 용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자유로운 색채배열이 필요한 것이다. 김영주의 작품이 그렇다. 나만의 색깔로 그림을 그리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청색으로 표출되고 있다. 그의 청색은 푸른 바닷물에 의해 감염된 선혐적인 감성의 상흔일지도 모른다. 바다는 아름답지만. 그를 포함하여 궁핍한 시대에 마주했던 바다는 누구에게도 낭만적인 풍경은 아니리라. 하지만 그런 궁핍함이 오히려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기에 푸른 바다를 보면서 감성을 살찌우고 미적 감각을 터득하는데 큰 자극이 됐으리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 그의 청색은 단순히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색채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무엇에겐가 이끌리듯 따라가는 순응의 색깔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의도적인 계산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내안에 잠재된 어떤 욕망의 상징으로 드러나는 색깔인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처럼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푸른 색깔에 매료되기는 힘든 일이다. 푸른색은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맑고 이지적인 분위기를 지닌다, 그래서인지 푸른색은 명징한 사고를 유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의 그림은 차갑다기보다는 온기가 느껴진다, 그것은 색채감정 이전에순박하고 투박하며 간결한 형태미 때문이리라, 결코 기술적인 과시를 의식하지 않는 소박하면서도 힘찬 이미지의 붓 터치는 원초적인 인간의 표현 욕구에 닿아있다. 다시 말해 학습과정을 거치지 않은 본능적인 형태 감각이 살아있다. 그것은 일체의 가식을 버린 채 본능 에 충실한 결과일수도 있다. 그 본능은 반복되는 훈련에 의해 길들여진 세련된 손의 기술을 거부한다.

김영주_농부_캔버스에 유채_45×53cm_1975
김영주_범어사_캔버스에 유채_31×40.7cm_1972
김영주_봉화 한수정_캔버스에 유채_45×53cm_2020
김영주_부산 남항_캔버스에 유채_45.5×53cm_1995
김영주_松林(금강식물원)_캔버스에 유채_53×45cm_1978

단지 미적 감수성에의해 자극된 순수한 표현 욕구에 솔직하게 반응할 따름이다. 그래서 짐짓 기술적인 완성도 따위는 중시하지 않는다. 그의 그림에는 그런 싱싱한 미적 감수성 및 표현욕구가 살아있다. 마치 젖은 흙벽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듯 거칠고 꾸밈이 없는 신체적인 힘이 실려 있다. 형태를 의식하지 않은 채 감각적으로 움직이는 붓의 움직임을 따르다보면 나무가 생겨나고 산과 들 또는 바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물론 현장작업을 중시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실상으로서의 자연을 재현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많은 부분이 생략되고 단순화된다. 그림으로서의 요건에 필요한 최소한의 형태만을 남긴 채 나머지 부분은 과감히 생략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생략은 그림에 힘을 부여하고 명징한 이미지를 남긴다. 그의 그림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형식미는 우직하면서도 투박한 인상을 주는 굵은 윤곽선에 의해 결정된다. 수많은 물상이 존재하는 자연을 그처럼 함축적인 이미지로 단순화할 수 있는 것은 두터운 윤곽선의 희생이 크다. 세부를 희생하는 대신에 자연의 본질에 압박해 들어가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인지 모른다, 모든 형태는 강인하면서도 간결한 윤곽선에 의해 결정된다. 비록 많은 부분이 생략되고 단순화됨에도 불구하고 실제의 자연에서 받아들이는 인상 및 감동은 되레 증폭한다. 그의 풍경화는 현실을 소급한1970년대 이전의 정서를 보여준다. 자연과 동화되는 삶을 이상적으로 여긴 순박한 농촌및 어촌 그리고 산촌의 생활상을 연상하게 되는 것이다. 분명히 그자신이 이 순간 직접 마주하고 있는 현실적인 풍경임에도 이러한 정서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어린 시절의 그 따스한 삶의 정서와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싶다, 청색조로 일관하는 것도 역시 그러한 영향일수 있지 않을까. 그의 그림은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고향의 정서. 즉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그 고향의 정서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추억의 창고와 같은 것이다. 이처럼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음에도 회고적인 분위기에만 젖어 있는 것만은 아니다. 어느 면에서는 지금 이 순간 실제의 풍경과 마주하고 있는 듯싶은 감동이 살아있다. 이런 양면성이 함께 그림 속에 녹아들어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김영주_송정해수욕장_캔버스에 유채_27.3×45.5cm_2020
김영주_자갈치_캔버스에 유채_90.5×116cm_1984
김영주_자갈치 아지매_캔버스에 유채_116×90.5cm_1985
김영주_제주 용두암_캔버스에 유채_49.5×65cm_2018

그의 그림은 세부를 생략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생생한 현실감, 즉 사실성을 보여준다. 이는 의아한 일이다. 한마디로 지적인 놀음이 아니라,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감정을 가감없이 전달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소산이리라. 현실성이 아니라 청색일색인데도, 더구나 굵고 강인한 선으로 형태를 압축하였음에도 사실성이 강화되는 것은 기이한일이다. 그의 조형언어는 어디까지나 사실정신에 기반을 두는 까닭이다. 그의 작품처럼 명료하면서도 정연한 형식미를 갖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아마도 한국의 산하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형태미를 정확히 파악하여 간결한 조형언어로 압축하고 함축한 결과이리라. 오랫동안 하나의 형식으로 집중해온 조형의지가 누구일지라도 납득 시킬 수 있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일구어낸 것이다. 그의 풍경화는 결코 과장하지 않는 사실적인 시각으로 감동과 호소력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 시대에 이처럼 꾸미지 않은 솔직한 인상으로 다가오는 그림을 만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2007.10) ■ 신항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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