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그늘 품은 마을 진뫼

한금선展 / HANGEUMSUN / 韓錦宣 / photography   2021_0520 ▶ 2021_0611 / 일,공휴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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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1_0520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KP 갤러리 Korea Photographers Gallery 서울 용산구 소월로2나길 12 (후암동 435-1번지) B1 Tel. +82.(0)2.706.6751 kpgallery.co.kr

진뫼의 시간 ● 한금선 작가의 사진 앞에서 한참 동안 서성였던 적이 있다. 이국에서 찍은 명절의 식탁 풍경이라고 했다. 식탁 위에 종횡으로 도열한 접시들은 간극을 허용하지 않은 채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식탁을 내려다보는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나도 함께 식탁을 내려다보았다. 응시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토록 촘촘한, 무뚝뚝하고 꾸밈없는, 그러나 보기만 해도 배부른 밥상이 내 허기를 채워 주는 것만 같았다. ● X선을 인체에 투과하면 우리 몸의 내부 구조를 볼 수 있다. 그때 나는 조금도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X선처럼 내 마음을 관통한 그의 사진은 드러나지 않은 내 굶주림을 포착했다. 함께 나누어 먹기 위해 마련된 거대한 식탁 사진 속에서 당시 나는 내 삶의 결핍과 만났다. 한금선의 사진은 내게 누구도 알지 못한, 어쩌면 나 자신도 알지 못한 병증을 조용하게 선고했다. 그날부터였을까. 집으로 돌아와 한금선의 사진을 찾아본 것이. 그 후로 나는 한금선의 팬이 되었다. 보면 볼수록 그의 작업이 인간 몸속을 들여다보기 위해 투과되는 X선 촬영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의 X선은 한 사람의 몸이 아니라 한 사회의 몸을 투과하고 있었다. 드러나지 않은 숱한 질병들이 그의 사진을 통해 발견된다. 사진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기 위해 보이는 것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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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이라는 명사가 우리에게 환기하는 이미지는 다양하지 않다. 동시대의 이면이거나 과거를 향한 향수. 다큐멘터리 사진가 한금선이라면, 그러니까 인간 사회의 X선을 자처하는 한금선이라면, 이면으로서의 농촌을 담았을 것이라는 예측은 사뭇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한금선의 이번 사진들은 '익숙한 농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애롭고 목가적인 전원으로서의 농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왜 진뫼로 갔을까. 그가 진뫼에서 찍은 것은 무엇일까. 답을 얻기 위해 우리는 먼저 진뫼와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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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임실군 장암리에 위치한 산골 마을. 진뫼는 말에는 '긴 산'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전라도에서는 '길다'를 '질다'고 말한다. 산이 굽이쳐 흐른다는 뜻에서 진뫼라 부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굽이쳐 흐르는 강만큼 긴 산이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그런가 하면 뒷산이 길어 장산 마을이라 부른다는 얘기도 전해지는데, 역시 산이 길다는 내용에 공통점이 있다. 편하게는 질메나 진메라는 이름으로도 부르기도 한다. '뫼'를 친화적으로 부른 것일 테다. 진뫼든 장산이든, 질메든 진메든, 조금씩 다른 이름들은 하나같이 섬진강 줄기 따라 펼쳐진 소담한 이 마을이 산마을이라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그가 찍은 것은 진뫼라는 어느 '산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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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이 익숙한 데에 비해 산마을이라는 표현은 익숙하지 않다. 좀처럼 입에 잘 붙지 않는다.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누구도 일상적으로 쓸 것 같지 않은 말이기도 하다. 산마을보다는 산골짜기가 자연스럽다. 그러고 보니 나도 진뫼를 설명하면서 가장 먼저 산골 마을이라는 표현을 썼다. 산에 있는 마을이라면 으레 산'골'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무의식의 작용이었을 것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라면 그저 산이 아니라 산'골'이라 해야 주변과 차단되어 있어 있는 고립된 농촌의 이미지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산마을을 산골짜기로 부르는 마음은 바깥의 시선이다. 바깥에서 바라보면 산으로 둘러서야 있다는 것은 산으로 가로막혀 있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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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금선은 안에서 본다. 그의 사진은 안에서 찍은 사진이다. 그러므로 한금선의 진뫼 작업은 안에서 바라본 산마을 풍경이다. 잠깐. 풍경이란 말이 그의 사진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단어일까. 그가 찍은 건 풍경이 아니다. 특정한 지역의 모습을 찍은 건 사실이지만 그의 사진에 담긴 이미지는 섬진강변에 자리한 어느 마을이 아니라 그 마을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상상된 역사다. 보이지 않는 시간을 찍는다는 것은 보이는 사물이나 환경 속에서 지나온 역사를 읽는다는 것이다. 사진들은 모두 3개의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허리 화전밭과 생산의 초상, 그리고 정월 대보름 제사다. 각각의 시간과 그 시간이 품고 있는 역사를 상상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한금선의 사진과 만나게 된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것은 그의 이미지에서 비롯된, 내가 상상한 진뫼의 시간과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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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허리 화전밭'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자연의 시간이다. 울창하다는 말로는 다 끌어안을 수 없는 광경을 바라보다 나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침묵에 그만 질리고 말았다. 한때 화전으로 일군 밭이었을 공간은 언제부터인가 인간의 발길도 손길도 닿지 않는 먼 산이 되어 큰 짐승의 포효처럼 홀로 압도적인 존재가 되었다. 불을 질러 나무를 태우고 그 자리에 밭을 일구었던 시절이 그치자 산속을 흐르는 건 오직 자연의 시간뿐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무서울 정도로 증식해 나가는 무자비한 변화를 품은 산. 화전의 기억을 안고 있는 산은 백 년 동안 살아온 인간처럼 조용히, 그러나 모든 변화를 품은 오래된 인간의 고독한 등을 닮았다. 굽은 등이 말해 주는 꼭 그만큼의 침묵을 산에게서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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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의 초상'은 자연의 시간과 발맞추는 인간의 시간을 기록한다. 진뫼 사람의 손에는 어김없이 수확한 작물들이 들려 있다. 가까이에서 찍은 손과 발은 그들이 들고 있는 것들과 다르지만 그들이 들고 있는 것과 구분되지 않는다. 분명 다르지만, 결코 다르지 않다. 흙을 밟고 있는 발이 아니라 흙과 닿은 발이다. 토란을 들고 있는 손이 아니라 토란과 닿은 손이다. 짚을 메고 있는 등이 아니라 짚과 하나가 된 등이다. 인간의 육체와 자연의 육체가 만나는 순간은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조우하는 가없는 노동의 시간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는 어떤 미화도 장식도 없다. 그저 담담히 흙으로 돌아갈 발과 곡식을 길러줄 흙이 조우하는 순간을 포착할 뿐이다. 자연으로서의 인간과 인간으로서의 자연이 교차하며 두 개의 시간이 뒤섞인다. 뒤섞이며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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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 제사'는 영혼의 시간이다. 인간과 자연이 서로를 내포함으로써 서로를 넘어서는 것이 바로 영혼의 시간일 것이다. 정월대보름 제사를 보름고사라 하는데, 설날이 모두의 명절이라면 보름고사는 농사짓는 사람들의 명절이다. 이날 사람들은 풍년을 상징하는 대보름달처럼 한 해가 풍요롭길 바라는 마음으로 음식을 마련해 차례를 지낸 뒤 이웃과 그것을 나눈다. 그런데 사진 속 제사상에는 상을 받는 사람이 없다. 말하자면 이 제사는 무명(無名)의 제사다. 이제는 거의 사라져 버린 이 수신 불명의 제사는 추모받을 수 없는 죽음을 기리는 종교적 의식이자 과거와 현재를 잇는 초월의 시간이다. 사제의 마음으로 '우리'의 안녕을 비는 이 시간을 찍은 장면은 그 자리에서 함께 기도하지 않은, 지금 여기 있는 우리에게까지 안녕의 능력을 나눠 주는 것 같다. 이국의 잔칫상이 산 자들을 위한 만찬이었다면 진뫼의 제사상은 죽은 자들을 위한 만찬이다. 그러나 잔칫상이든 제사상이든, 두 개의 식탁은 모두 '내어 주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내어 주는 마음은 안에서만 볼 수 있다. ● 침묵하는 산, 부지런한 땅, 기도하는 손. 한금선이 진뫼에서 찍은 것은 바깥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산마을의 시간이다. 산그늘이 질 때 마을 사람들의 내면에 어떤 그림자가 드리우는지, 돌림노래처럼 반복되는 매일의 일상에 어떤 영원한 것들이 깃들어 있는지, 안에서 찍는 사람만 간신히 발견할 수 있는 예외적 순간이 이번에도 내 허기를 채워 준다. 가난한 세상의 허기를 채워 준다. ■ 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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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자리에서 6섯을 낳았다. 그 위에 홑치마 하나 입고 앉았으면 맘이 편해 졌다. 그러고 있으면 신랑이 지 엄니에게 조르륵 가지. 우리 아가 명은 동방생명으로 해주고, 산에서는 산신님네, 하늘에서는 일곱 칠성님네, 물에서는 용왕님네, 집에서는 성주님이여! 이렇게 불러대며 아가를 빌어준다. 7일마다 기도해주고, 7번을 해야 금줄을 거둔다. 젖도 많이 태워주고, 복도 많이 태워주고, 대롱에 물새듯이…. 그리군, 사흘만에 다시 논 밭으로 나가지. 나무 없으면 장작패고, 멍청할수록 꽤가 많아야 허고, 비탈진 언덕 밤나무 딱 묶어서 딩굴리면, 신작로로 딱 떨어진다니까!" 진뫼엄니 박덕성 ■ 한금선

Korea Photographers Gallery(이하 K.P 갤러리)는 한금선 사진가의 『산그늘 품은 마을 진뫼』 전시를 2021년 5월 20일부터 6월 11까지 K.P Gallery에서 개최한다. 진뫼 마을은 전북 임실 섬진강의 한 자락에 자리한 작은 마을이다. 작가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6년에 걸쳐 때로는 그곳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때로는 마을을 오가며 기록하였고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이미지 중 50여 작품을 이번 전시를 통해 소개한다. 『산그늘 품은 마을 진뫼』 전시는 작가를 닮아 문학적이고 시적이다. 작가는 전시를 통해 진뫼 사람들의 웃음과 그 사람을 기다리는 나무, 함께 호흡하는 마을과 섬진강을 이야기한다. ■ KP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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