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람

임춘희展 / IMCHUNHEE / 林春熙 / painting   2021_0603 ▶ 2021_0622

임춘희_겨울바람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과슈_22×27.3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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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요일_12:00pm~05:00pm 22일_12:00pm~05:00pm

갤러리 담 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72(안국동 7-1번지) Tel. +82.(0)2.738.2745 www.gallerydam.com cafe.daum.net/gallerydam

갤러리 담에서는 6월 전시 작가로 임춘희의 『겨울바람』 전시를 기획하였다. 임춘희 작가는 지난 겨울 집밖으로 겨울바람을 맞으며 나간 산책길에서 사랑에 빠진 것처럼 설레임과 기분 좋은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때로는 남편과 같이 그 길을 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서 산책길을 나서면서 바람을 맞이하면서 나무와 나무 그림자와 함께 하는 길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작가의 이 행복감은 춤추는 모습으로 형상화 되고 있기도 하고 길 가의 나무들도 작가와 그 길을 같이 가고 있기도 하다. ● 이번 『겨울바람』에서는 자연과 혼연일체가 된 작가의 모습을 바람과 춤의 형상으로, 밝고 경쾌한 색감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겨울바람이라는 작품들을 보노라면 영국시인 Christina Georgina Rossetti이 쓴 누가 바람을 보았나요? * 라는 싯구절이 절로 떠오른다. 바람을 보지 못하지만 바람이 지날 때 흔들리는 잎들과 가지들을 보면서 비로서 바람을 알 수 있듯이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알게 된다. ● 작가는 겨울 바람이 주는 차갑지만 겨울바람 속에서 작가를 감싸주는 무한한 에너지와 사랑을 느꼈음을 작품을 보면 느낄 수 있다. 「걷는 사람」 시리즈의 작품에서도 길을 걷고 있는 작가의 모습과 그 옆으로 같이 걷고 있는 나무의 모습도 보인다. 작품「겨울바람 5」에서는 산책길에서 흥겨워 하는 작가의 춤사위도 보인다. ● 임춘희 작가는 성신여대에서 서양화를,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 조형 예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였으며 이번이 열 다섯 번째 개인전이다. ■ 갤러리 담

* 참고 "Who has seen the wind? / Neither I nor you: / But when the leaves hang trembling, / The wind is passing through. // Who has seen the wind? / Neither you nor I: / But when the trees bow down their heads, / The wind is passing by." (Christina Georgina Rossetti, Who has seen the wind) "누가 바람의 모습을 보았나요? / 나도 당신도 보지 못했어요. / 하지만 나무의 잎들이 흔들렸을 때 / 바람이 그 사이를 지나갔어요. // 누가 바람의 모습을 보았나요? / 당신도 나도 보지 못했어요. / 하지만 나무들이 머리를 수그릴 때 / 바람이 그 곁을 지나갔어요." (크리스티나 로세티, Who has seen the wind)

임춘희_겨울바람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 과슈_22×27.3cm_2020~1

보행자의 미학, 그리고 마음과 표정의 다큐멘터리(documentary) - 보행자의 미학 ● 임춘희의 회화는 이 시대가 잃어버린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 잊은 채 사는 마음의 상태가 그것이다. "영혼을 간직하고 싶은" 1) 갈증, 소위 주체 담론이나 심리학 가설들이 그것들의 고유한 무지로 인해 누락해온, 염원이자 지향성으로서의 마음이다. 이 지향성으로서의 마음을 상실했기에, 이 시대의 존재감은 부재나 표류로 대변되고, 이 시대의 예술은 원인 모를 분노를 격발하고, 그 뿌리가 자신에게 있는 혐오 감정을 토로하며, 짐짓 점잖은 체 분열된 자아를 고백하는 장이 되어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임춘희의 회화가 "마음을 다한 붓질"이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것은 그저 그런 진술로 머무는 것이 아니다. 2) 이는 임춘희의 회화가 여전히 잃어버린 마음을 인식하고, 그 상태를 살피며 그 뿌리를 추적하는, 그렇기에 눈물과 행복에 대해 말할 자격증을 지닌,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유형의 회화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 임춘희의 회화-시는 자주 어딘가를 향해 걷는 보행자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보행자는 무리나 군중으로부터 떨어진 채 둘이거나 혼자다. 방울 달린 털모자와 머플러를 두른 여성과 두툼한 스웨터를 입은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또는 그들-은 마른 낙엽이 쌓인 숲과 네온사인을 되 쏟아내는 밤의 호숫가를 걷는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그들을 맞이한다. 이 보행은 영혼을 찾아 나서는 지향성으로서의 보행이요, 생의 순간을 충실한 존재로 채워 넣기로서의 보행이다.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린, 즉 실존적 결핍의 인식에 도달한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잃어버린 것을 찾아 나선 사람의 보행이다. 왁자지껄한 이성의 방식에서 떠나는 자의 보행이고, 오만의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서는 사람의 보행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선택되는, 시간의 뒤틀린 것들을 되돌리는 보행이기도 하다. 이 보행의 중단이 의미하는 바는 그렇기에 모호하지 않다. 인생이 충만한 시(詩)로 채워지지 못하는 것, 흐름을 멈춘 부패하는 시간, 감정의 시궁창에서 허우적대기… .

임춘희_겨울바람8_캔버스에 과슈_53×45.5cm_2020

임춘희의 회화를 내적으로 지지하는 정서 기조는 한층 농숙하다. 표정의 묘사에서도 변화는 감지된다.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인물들의 표정은 연극적 캐릭터에 가까웠다. 2006년 작 「냉정을 되찾다」나 「우울한 들판」을 보라. 과장되게 큰 눈과 긴장되고 확대된 동공은 눈을 부릅뜨고 세계와 대치 중인 것만 같아 보였다. 하지만, 2021년에 그린 「겨울바람」 연작이나 「아무것도 너를 I, II」에서 보면, 인물은 형식적 전범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내려놓고, 그때그때의 마음의 상태와 전개, 치유와 회복의 순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형식적 전범성이 완화된 자리가 세분화된 심리적 단층들로 채워진 것이다.

임춘희_겨울바람11캔버스에 과슈_72.7×60.6cm_2021

그의 회화는 마음의 상태와 전개, 그 폭과 깊이, 그리고 속도를 측정하는 정교한 장치로 진화했다. 마음의 풍경화? 그보다는 마음의 기록화, 곧 존재 내면의 다큐멘터리에 더 가깝다. 주목해야 할 것은 기록의 초수학적 정확성이다. 희극보다는 비극에 조금 더 가까워 보이기는 한다. 물론 플라톤적 의미에서의 비극이다. "비극은 보통 사람보다 더 위대한, 또는 뛰어난 존재들의 모방이다. … 희극과 비극의 차이는, 전자가 보통 사람보다 나은 사람을, 후자는 못 한 사람을 묘사하는 데 있다." 중요한 것은 비극의 성분을 조율하는 기술이요, 표현의 질량을 조정하는 감각이다. 이 점에서 임춘희의 작가적 기량은 지금 의심의 여지 없이 만개해 있다. 얼핏 신박해 보이지 않았던 터치들에조차 도열해 있는 슬픔의 섬세한 단계들을 보라. 푸른 빛이 감도는 낯빛, 물결 같은 피부 결, 그 지나치게 넘실거리지 않는 리듬감의 이력을 보라. 그것들이 이미 상당한 내적 정화와 조율을 거쳐온 것들임이 분명하다.

임춘희_밤산책_종이에 과슈_21×30cm_2021

마음이 담긴 붓질 ● 마음의 섬세한 내적 흐름을 따르는 임춘희의 회화는 북유럽식 표현주의의 격한 감정적 분출과는 크게 상이하다. 순수한 응시, 외로움과 동행, 파스텔 톤의 몽환, 상이한 심리적 복선들이 교차하고 갈등하는 세부를 다룬 표현주의 화가를 본 기억은 내게 없다. 임춘희가 형식에 대해서 별도로 말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마음이 담긴 붓질'과 따로 떼어 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이 회화론에서 형식을 별도로 논하는 것은 전혀 불필요하다. 형식은 예컨대 그가 위로나 포옹에 대해 말할 때, 그것과 분리될 수 없는 어떤 성분으로서 그 안에 이미 내포되어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이 회화론은 데생에 집착하거나 발색에 조바심을 내는 것을 벌써 내려놓았다. 그의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큰 눈은 해부학이나 도상학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아마도 폴 에크먼(Paul Ekman)의 표정학(facial expression)이 이해에 보탬이 될 것이다. 임춘희의 2021작 「아무것도 너를 1」은 특히 중요한 작품이다. 여기서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눈은 출렁이는 눈물의 밤바다다. '미세표정(micro-expressions)'으로 감정의 거짓과 진실을 구별해내는, 에크먼의 '얼굴 움직임 해독법(FACS) 3) 에 의하면, 이 눈물이야말로 마음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것으로, 악어의 눈물과 가장 먼 눈물이다. 이 눈은 이 세계에서 흥미나 강한 인상을 목적으로 사실인 것처럼 꾸민, 각색이나 연출이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실체인 마음의 상태로, 붓이 받들어야 하는 유일한 정언명령이요, 색이 명심해야 할 사명이며 형태가 추종해야 할 규범이다. 이미 2016년, 2017년 시기에 그려진 「눈물이 뚝뚝」을 보라. 그 이상의 무슨 형식 담론이, 붓과 붓질의 강령이 낭독될 필요하겠는가.

임춘희_산책_종이에 과슈, 수채_17.7×25.3cm_2018~21
임춘희_아무것도 너를2_캔버스에 유채_50.3×70.4cm_2016~21

임춘희의 회화는 아카데미즘 형식주의의 강령에 조금도 동의하지 않는 그 태도로 인해 진정으로 현대적인 것인 동시에 현대 이후적인 것이 되기도 한다. 비교를 위해 17세기의 샤를르 르 브룅(Charles Le Brun)을 호출해 보자. 르 브룅은 말했다. "진실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임춘희에겐 진실한 감정 하나로 충분하다. 르 븨룅은 말을 잇는다. "왜냐하면 진실만으로는 약하고 보잘 것이 없다." 하지만 진실은 약하지도 보잘것없지도 않다는 게 임춘희 회화론의 일관된 선언이다. 다시 르브룅은 자신의 형식적 교조주의를 주장한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임춘희는 억지로 그렇게 하려 드는 것이야말로 예술가가 광대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해 따르지 않는다.

임춘희_겨울바람2_캔버스에 유채_22.7×15.8cm_2018~21
임춘희_겨울바람3_종이에 유채_23.5×31.5cm_2021

이 회화의 색조 특성도 마음에 구속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재현 미학이 아니라 표현 미학을 따르는 것이고, 감정에 충실하기 위해서 대상에 구애되지 않는 것이다. 얼굴의 데생이 표정으로 대체되듯, 피부의 색조도 감정선을 따라 형성된다. 모든 대상들이 이와 같이 위치된다. 밤하늘은 침묵하고, 숲은 취하고, 풍경은 무겁다. 감정선은 결코 넘쳐 흐르지 않는 어느 수준에서 균제의 질서를 존중한다. 임춘희의 붓질은 세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지워나가는 용도다. 전경과 후경은 수시로 뒤섞이고, 인물은 불현듯 배경에 흡수된다. 그렇게 흐릿해진 경계 너머로 부끄러움이, 회한이, 바보스러움이 시각적 신체를 입고 모습을 드러낸다. 임춘희 회화도 대상에서 출발하고, 형태와 비례에 대한 지식을 요한다. 형식에 대해서 말하지 않아도, 형식에 대한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것이 아니다. 이 회화에도 비트루비우스가 말한 '시메트리아(symetrie)'의 치밀한 조율이 있다. 단지 그것이 마음의 시메트리아일 뿐이다. 수학이되 마음의 수학이고, 언설이되 영혼으로부터 들려오는 언설이다.

임춘희_겨울바람4_캔버스에 유채_30×30cm_2021
임춘희_겨울바람10_종이에 유채_56×42cm_2021

임춘희의 회화에는 더 많은 발견하고 읽어내야 할 것들이 있다. 그것들 가운데 어떤 것은 분명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분실한 것들이기에, 그렇게 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을 만나는 의미 있는 여정이기도 하다. 사실, 역사적으로 좋은 회화와 시 앞에서 늘 일어났던 사건이다. ■ 심상용

* 각주 1) 이관훈, 「뿌연 장막 뒤에 숨겨진 또 다른 풍경들」, 『흐르는 생각』, cat. 2013.6.10.-9.6.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 2) 『나무 그림자』, 임춘희 개인전 cat. 2018.11.7.-12.2. p.23. 3) Facial Action Coding System

임춘희_아무것도 너를1_캔버스에 유채_30×30cm_2021

차갑고 쏴~한 공기가 내딛는 걸음걸음 내 얼굴에 기분 좋게 와 닿는 지난겨울, 나는 거의 매일 집을 나서 겨울이라는 세계로 빠져들어갔다. 걸어서 만나는 하늘과 땅, 길가의 나무들과 교감했으며 개울을 건너고 들을 지나 숲을 거닐며 축복과도 같은 자연과 삶에 무한한 사랑을 느꼈다. 마치 상사병에 빠진 사람처럼 사랑하는 이를 보면 살 것 같고 안보면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걷지 않으면 우울하고 걸으면 기뻤다. 걷는다는 것은 절박하고 간절한 나의 기도이기도 하다. 매일 산책의 흥분과 설렘은 그림을 그리게 했다.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 시간에 집중! 마음속 깊이 희열을 느꼈으며 가슴 벅찬 감정때문에 호흡을 가다듬어야만 했던 시간들. 그림 그리는 동안 나는 그림이 되었다. 그렇게 하나 둘 그려진 그림들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2021년 5월) ■ 임춘희

Vol.20210603c | 임춘희展 / IMCHUNHEE / 林春熙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