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적응: 기억

권도연_오석근 2인展   2021_0601 ▶ 2021_0627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스페이스55 프로젝트 『시차적응』 네 번째展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프로젝트 기획 / 안종현 협력 큐레이터 / 김진혁 디자이너 / 서가온

관람시간 / 12:00pm~07:00pm

스페이스 55 SPACE 55 서울 은평구 증산로19길 9-1 Tel. +82.(0)10.6304.4565 www.space55.co.kr

스페이스 55는 2021년 6월 1일부터 27일까지 프로젝트 「시차적응」의 네 번째 전시 권도연, 오석근 작가의 2인전 『시차적응: 기억』을 개최한다. 전시에서 두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사진과 기억의 관계를 탐구한다. 권도연 작가의 「섬광기억」, 「SF」은 기억을 서술한 글과 사진이 짝을 이루는 연작으로, 작가 개인의 기억을 현실의 사물이나 대상을 통해 재구성한다. 기억에 의해 재구성된 사진은 특정 대상의 '당시'에 대한 물질적인 기록인 동시에, 미처 기록되지 못한 과거를 현실로 불러오는 매개체로서 작동한다. 오석근 작가의 「철수와 영희」는 교과서에 삽화로 등장하는 철수와 영희를 고립, 방황, 도시개발 등 사회적 주제 속에 위치시켜 재구성한 사진 연작이다. 사진 속 이들은 교과서가 지시하는 '이상적인' 모습과 태도와는 괴리가 있지만, 비로소 현실적인 문제를 경험하는 실존적인 대상으로 존재한다. 바람직함의 논리에 의해 배제된 청소년 혹은 우리 사회의 모습은 '철수와 영희'로 대표되는 집단 기억, 권력의 신화성을 수면 위로 드러낸다. 이들의 사진은 연출적인 성격을 띄지만 그저 상상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기억되지 않았거나 사라져 가는 기억을 기리기 위해 현재에 마련된 공간으로서, 자유롭게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며 과거-현재-미래로 구분된 시간들의 접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 한다. ● 스페이스 55의 2021년 프로젝트 『시차적응』은 3월부터 10월까지 동시대 사진 작가 16인의 작업을 8개의 기획 전시를 통해 소개하며 오늘날 물리적-시간적 단절 속 사진의 기능과 역할, 다양한 존재양식을 탐구한다. ■ 스페이스 55

오석근_The Text Book(Chulsoo & Younghee) p139_ 디지털 C 프린트_60×73cm_2007
권도연_섬광기억 #강릉 3_피그먼트 프린트_19×19cm _2021

기억 구상법 사례 연구 ● 미생(未生)은 넘어, 그러나 완생(完生)은 섣부른 두 작가가 있다. 이 조합에 이유는 있겠지만 반드시 권도연과 오석근이어야 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둘이 호적수(好敵手)임은 퍽 적절해 보인다. 사진이 담보하는 기억 장치라는 일반론은 잠시 차치하고 볼 때, 권도연과 오석근의 사진은 선택적 기억을 디딤돌로 펼쳐놓는다. 땡볕에 새카맣게 탄 알몸을 풍덩 강물에 던지는 소년 그리고 그 소년 소녀들의 그해 여름이 꼬깃꼬깃한 일기장에서 일어나 생동하고, 철수야 안녕 바둑이도 안녕을 기억하는 이 시대 숱한 이들의 국정교과서에는 차마 실리지 못한, (제도가) 돌보지 않은 유년이 『모여라 꿈동산』의 탈을 쓰고 하지 못한 말을 마저 한다. 몸으로 말한다. 복기는 권도연과 오석근에게 중요한 태도이고 이들은 묶어낸 연작들을 통해 쏘아 올린 신호탄을 스스로 관측하고 해석해야 하는 탐구생활을 지속했다. 여름 초입, 나는 불혹(不惑)의 나이에 가까운 이 둘에게서 그 시절 소년을 본다. 소년에게는 학교가 시킨 숙제와 학교가 가르치지 않은 꿈의 완수까지가 숙제로 남겨져 있다. 그래서 나직이 읊조려 보기를,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그래야만 그 다음이 연이어진다."

오석근_The Text Book(Chulsoo & Younghee) p239_ 디지털 C 프린트_100×124cm_2008

소년 하나. ● 어린 시절 별달리 볼거리가 많지 않았기에 다국적 서사를 아동용으로 극화한 MBC 『모여라 꿈동산』을 열심히 보았다. 그 시절 『수사반장』이 성인의 엔터테인먼트물이라면 어린이 나름의 수사와 탐정놀이는 탐정물이 다수를 이루었던 『모여라 꿈동산』에서 학습했다. 이처럼 추리의 힘을 전 세대가 키워나간 시대가 다시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독특한 세대 질감이 1980년대 무르익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지표(地表)를 뚫고 올라온 1987년 이후 1988년 『모여라 꿈동산』이, 1989년 『수사반장』이 종영한다. 역사적 우연일까 학습된 추리의 반향일까, 혹은 무관한 일들의 사후적 연동 평가일까 이런 질문들을 잠시 떠올려보지만 시원한 답은 없다. 역사와 정치, 대중문화의 관계성은 미뤄두고 다시 『모여라 꿈동산』으로 회귀하여 그 당시 어린이의 눈에 가장 기묘했던 장면을 얘기하고 싶다. 그 순간은 인형탈들이 잠들 때다. 인형탈은 오직 잠드는 순간에만 준비했던 눈꺼풀을 눈에 붙이곤 잠들었다. 성우의 목소리로 감정과 사건이 전달되는 전반적인 극에서 유일한 선택적 변화는 오직 눈을 감는 순간만이다. 눈감기만이 유일한 이 선택의 알레고리는 시대적 비화에 비약적으로 절묘하게 부합하는 것만 같다. 이 같은 단편적 기억을 가진 채 오석근의 「교과서」 인물에 덧씌워진 인형탈을 바라보게 된다. 대표적인 아동극 장치가 국정교과서의 주역이자 그 시절 남녀 호명의 일반명사로 간주되던 철수와 영희에 대입된다. 이들은 신체 비례보다 과장된 탈을 쓰고 숨어들 공간을 찾아들었다. 추억의 자개장 속, 아파트 일층 베란다 아래, 굴다리처럼 엄호에 적합한 지물뿐만 아니라 공터와 같이 트인 장소를 찾아 나선다. 그곳을 공터라 부를지라도 그 시절 공터의 기능은 오늘날 안전펜스를 친 공사장과는 다르다. 동네 곳곳에 방치된 땅들은 개발을 위한 돈이 돌 때까지 유예된 장소로서 어른의 무관심 아래 놀이와 삥뜯기, 패싸움, 환각, 성범죄가 낮밤의 얼굴을 달리하며 벌어지던 그늘진 상상의 지대이다. 상상이 반드시 희망이나 낙관과 결부되는 것만이 아니고 상징으로 편입되기 이전의 완충지라면 공터가 상상의 지대임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철수와 영희는 숨바꼭질, 술래잡기, 총쏘기, 곤충채집뿐만 아니라 상징이 금한 일들에 몰두한다. 눈감으라고 배웠던 장난에, 때가 되면 알게 될 거라고 했던 금기에 연루한다. 그러나 바로 그 '때'가 배움이 무르익어 개화되는 시점이 아니라 체제 순응과 회피, 이에 따른 열패감을 나누어 시대 공모자이자 피해자로 완연히 드러나는 때임을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오석근의 「교과서」는 국정교과서에서 고의로 누락시킨 공모의 정서를 터진 입안 피맛을 삼키며 배우게 만드는, 교과서 아닌 뒤늦은 자습서로 작동한다.

오석근_The Text Book(Chulsoo & Younghee) p191(Tear Gas)_ 디지털 C 프린트_100×124cm_2007
권도연_섬광기억 #여름방학 2_피그먼트 프린트_125×245cm_2018

소년 둘. ● 매일 매일 사전을 들고 등하교를 했다는 소년이 있다. 학교에 두고 다니면 될 걸 고지식하게 이고 지고 다닌 그 소년은 겉으로 보기에는 인사이더(insider)로 자라났지만 나는 그가 외톨이 같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면벽한 삶이 훨씬 더 잘 어울렸을 소년이 자라나 그 버릇 못(안)고치고 혼자서도 잘 논다. 권도연의 「섬광기억」은 빗금 진 응달에 거울 조각으로 빛을 쏘여 온기를 더하는, 자뭇 성실한 놀이에 가깝다. 「섬광기억」은 서정이 습기처럼 촉촉하게 드리워있지만 보기와 다르게 축축한 냉기, 그리고 무거운 상실감을 빼고선 말하기 어렵다. 「섬광기억 #여름방학」은 여름 폭우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내린 둑으로 인해 유년기의 자랑이었을 집 지하실 개인 도서관에 빼곡하게 들어찼던 책들이 홍수에 젖어버렸던 기억에서 비롯한다. 부디 무사하기만을 속절없이 바라는 마음도 무색하게 물은 며칠에 걸쳐 더디게 빠졌다. 물에 퉁퉁 불어버린 책을 목도했을 때 깊은 상실은 홀연 젖은 책무더기보다 더 큰 쓸모없는 일들을 향한 에너지로 응축되었다. 한권이라도 빗물에 젖은 책을 되살려내기 위해 열심히 닦고 무거운 것으로 괴여 놓았던 이들은 안다. 잉크 인쇄로부터 비롯한 낯선 색감이 자아내는 돌연한 얼룩과 쭈글쭈글해진 낱장이 가역되는 일이란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섬광기억 #여름방학」이 지하도서관 책의 물활론적 재구성이라면 「섬광기억 #콩나물」은 권도연이 소년기의 한 철 애지중지 관심을 기울이던 개들을 위한 뼈아픈 무덤과 같아 보인다. 권도연은 이에 대해 작은 날개를 달아주어 날리는 비행선에 빗대고 있어 무덤처럼 보는 내 시선과 작가의 의도와는 거리가 있다. 개들이 숨어지내던 흙구덩이가 태풍의 폭우로 인해 생사가 전치되어버린 그 하룻밤 새 소년이 겪어야만 했을 무기력함이 뼈아프다. 권도연은 어른이 되어 의욕의 주체로 비로소 섰을 때 늦은 제(祭)를 올린다. 「섬광기억 #콩나물」에는 얼기설기 끈으로 일어선 나뭇가지에 매달린 나비인지 나방인지 모를 것들의 날개 조각, 번데기인지 고치인지 나뭇잎인지 가늠이 어려운 파편의 혼융, 그가 좋아한다는 박쥐가 뒤엉켜있다. 이 형상은 방사형으로 친 죽음의 거미줄,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의 『푸른 수염(La Barbe-Bleue)』 속 비밀의 방에 늘어선 시체들처럼 내면적 전리품들의 배열, 제의 장소인 소도(蘇塗)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작가의 의도대로라면 죽음의 자취보다는 생의 염원을 기도하는 소도에 가까울 수 있겠다. 그러나 여기에 의미의 정합성이 수반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만의 심리적 저항선이 기각역을 구축하여 그 시절 놓아버렸다고 자책하는 과거와의 화해를 도모한다. 섬광기억(閃光記憶)은 반드시 두 차례 이상의 의지적, 비의지적 기억의 복기를 필요로 한다. 권도연의 애도는 책임의 주체로 설 수 있을 때 완수된다.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바치는 조의가 그 시절 국화 향에 대한 기억으로 한 번 남았다가 다시 한번 그 사진을 통해 거듭되어 돌아오고 있듯 예술적으로 사후성(Nachträglichkeit)을 구성해 낸 현재에 이르러서야 그때 그 소년과 안녕을 고하게 된다. 권도연의 「섬광기억」은 미완의 페이지를 들추어 다시 쓴 일기장이다.

권도연_여름방학 #콩나물_피그먼트 프린트_105×140cm_2019
오석근_Incheon(仁川) 01_디지털 C 프린트_134×107cm_2018

어른 둘(들). ● 1950년 한국전쟁 시 맥아더(Douglas MacArthur)의 인천상륙작전명은 군사 용어와는 무관하게 광물에서 이름을 딴 크로마이트(Chromite)다. 독일어로는 크롬, 영어로는 크로뮴에서 온 이 이름은 그리스어로 색을 뜻하는 크로마(κρωμα)에서 유래한다. 크롬은 금속성이 두드러지게 빛나는 색상을 비유할 때 접두어로 쓰이는데 오석근의 「인천」 연작의 상당수가 이 색감을 띠고 있다. 인천은 오석근의 성장 배경을 이루는 하나의 도시이지만 근대 개항지이자 전쟁에서는 개입지였고 산업화의 요충지로 켜켜이 쌓인 층위가 두드러지는 대표적인 장소다. 버티컬 이미지가 주를 이루는 「인천」 연작에서 단 한 점만이 이번 전시에 포함되어 아쉬움이 남지만 이 연작을 위한 오석근의 특징적인 선택에 대해서는 짚고 가야만 한다. 그 선택은 왜 '기어이 이미지를 세우고 있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낳는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시선을 더 잘 담아낼 수 있는 기계 장치로 핫셀블라드 x-pan 35mm 파노라마 카메라를 선택했고 카메라를 다루다 보니 파노라마보다 버티컬 이미지가 「인천」 연작의 '축'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근대건축물의 증축과 변형은 이 수직축을 따라 더 잘 드러나고 가로 이미지가 세로로 돌려졌을 때 조성되는 조금은 어색한 보기의 방식이 본 작업의 언어에 부합한다고 본 것이다. 2019년 인천도시역사관과 인천문화양조장에서 열린 전시에서는 「인천」 연작의 상당수가 바닥까지 떨어져 끌리게 설치되었다. 한눈에 이미지를 조망하기에는 다소 불친절한 이미지의 제시 방식에 대해 현시원은 "얼굴 없는 사람 같은 큰 키의 우뚝 선 사람, 인체 비율"로 파악하고 사람이 도시에서 자라고 배우며 맡는 도시의 냄새가 이 연작에 반영되어 있다고 간주한다. 나는 얼굴 없는 사람에서 더 나아가 「인천」 연작은 바닥에 끌려 구부러지는 이미지로 인간형태학을 상회할 수밖에 없는 축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는 철저한 오석근의 시도라고 읽는다. 이 축은 관념상에서는 수직적이지만 수직뿐만 아니라 신체 장기와 같이 주름지고 구부러지면서 또한 극단적으로는 탈장의 상태로 노출될 수도 있다. 본 전시에서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제시된 「인천」은 19ㄴ65년 착공하여 2004년까지 운영된 동양화학공장으로 모듈식 공장형 건물을 상하로 가로지르는 즐비한 배관과 폐자재로 가득 찬 바닥에 놓인 배관 형태의 잔여물을 드러내고 있다. 이 이미지는 오석근이 언급하는 축에 대한 단적인 외화이자 탈축(off-axis)의 불가능성을 시사한다.

권도연_SF4_Percy Sinclair Pilcher_피그먼트 프린트_105×135cm_2020
권도연_SF3_John William Dunne_피그먼트 프린트_125×105cm_2020

오석근의 「인천」이 탈축의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어법으로 축을 끈질기게 문제 삼는다면 권도연의 「SF」는 상상의 지대를 상정하여 여기에서 시간 여행을 감행한다. 권도연은 구할 수 있는 무동력 비행기의 도면을 모으고 분석했다. 「SF」 연작은 도면상의 이차원성을 삼차원으로 전환시키는 수고로움에서 빗어졌다. 이중 몇몇은 실제로는 제작된 적이 없는 미결정의 상태에 놓여 있는 것들이다. 숨을 불어넣는 일은 철저히 권도연의 몫이었다. 이 감행 자체가 부질없음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이 감행은 정교하고 더욱이 아름다운 형태를 띠고 있어서 한층 더 부질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이 무동력 비행기들은 실제로 난다! 물론 권도연의 표현에 따르면 시간은 상대적이라서 체공 시간은 별개의 문제이지만 말이다. 모형이지만 치밀하게 제작된 비행기들은 사진으로 박제되어 모형과 실체 사이의 구분을 지운다. 현실의 박제가 인위적으로 과거를 현재화시킨다면 사진의 박제 기능은 인위적으로 현재를 동시에 과거, 미래에 투척하는 것이 아닐까. 사진이기에 시간여행이 가능하고 그 시간여행의 경로 개척을 무동력 비행기를 통해 꿈꾼다. 권도연은 작가노트에서 "과거를 카메라로 찍듯이 본다는 건 현실적으로 아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긍정과 부정 모두로 작동하는 국면부사 아직이 미완료의 상태 의미를 지니고 따라서 시간 속에서 불/가능성의 양방향으로 작동함을 주목해 본다면 권도연의 분투에도 아직이라는 부사의 여운을 덧댈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단편적인 문구들을 배치하여 자신의 시도가 지닌 부질없음과 그럼에도 감행하는 의욕에 대해 부분적으로 노출시킨다.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의 『타임머신』으로부터 "시간여행의 그 야릇한 감각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건 몹시 불쾌한 감각입니다"를 발췌하고, 그레이엄 스위프트(Graham Swift)를 인용하여 시간 여행에 나침반이 없음을, 우리는 사막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와 같음에 동조한다. 그러나 "시간은 강물이어서 나를 휩쓸어 가지만 내가 곧 강이다. 시간은 호랑이여서 나를 덮쳐 갈기갈기 찢어버리지만, 내가 곧 호랑이다"라는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언급은 한계를 조건으로 역전시키는, 지면서도 이기는 승리의 전략과 연동된다. 직접 대결 아닌 대항 전략의 실효성은 특히 예술에서 혹은 오직 예술에서만 가능하다. 우주탐사선을 쏘아 올리는 오늘날, 시간여행을 구상한 「SF」가 부질없음의 결정체임에도 유효한 이유는 미래 과제를 종용하는 시대에 무동력 비행기를 들여다보면서 속도의 조직화와 생산에 어긋나는 소란을 피우고 있다는 점이다.

오석근_The Text Book(Chulsoo & Younghee) p172_ 디지털 C 프린트_60×73cm_2007

미디엄, 카메라, 공간, 기억, 자연↔기계, 사랑, 믿음-이데올로기, 그리고 사람으로 이어지는 스페이스55의 기획에서 기억이라는 주제로 묶인 권도연과 오석근은 연간 기획에 리스트 업된 세대 배열에서 완충을 맡고 있다. 이들을 묶은 주제인 기억은 사진에 입각한 기획에서 시기적으로 중간을 차지하는 유연한 이음새이자 시간의 층위를 밝혀 사진의 유효함을 설득해 낼 구체적 개념이기도 하다. 기억은 복기를 수반하고 사진은 이미지와 저장 장치를 통해 복기를 증명한다. 기억이라는 주제에 대해 오석근이 흡사 한국 근대 지식인처럼 예술적 상상력과 호전적 실천 모두를 아우르며 인천이라는 지형에서 항만적 분투를 보인다면 권도연은 보헤미안에 가까운 모델로 삶에 대한 전면전보다는 예술적인 국지전을 택하면서 낭만과 허무를 동시에 침식시킨다. 물론 다시 말해서 반드시 권도연과 오석근이어야 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기억이라는 주제에 대해 권도연, 오석근 각자의 오롯한 지분이 있음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김현주

시차적응 프로젝트 - 3월: 미디엄 MEDIUM / 구본창_이갑철 - 4월: 카메라 CAMERA / 황규태_김규식 - 5월: 공간 SPACE / 박형근_이나현 - 6월: 기억 MEMORY / 권도연_오석근 - 7월: 자연↔기계 NATURE MACHINE / 박형렬_조춘만 - 8월: 사랑 LOVE / 윤정미_안옥현 - 9월: 믿음-이데올로기 BELIEF-IDEOLOGIE / 강용석_최원준 - 10월: 그리고 사람 AND PEOPLE / 김옥선_변순철

부대행사 / 토탈미술관×스페이스 55 토탈뮤지엄 전시기간 중 매주 월요일 3시, 사전예약 필수 문의 / 토탈미술관 02-372-3994

Vol.20210603g | 시차적응: 기억-권도연_오석근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