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의 초상: 무위당 장일순 PORTRAIT OF A REVOLUTIONIST: MUWIDANG JANG ILSOON

김상표展 / KIMSANGPYO / 金相杓 / painting   2021_0604 ▶ 2020_0609

김상표_혁명가의 초상-무위당(I-14)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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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1_0605_토요일_11:00am

무위당 27주기 생명협동문화제展

주최 / (사)무위당사람들 주관 / 무위당미학연구회

관람시간 / 10:00am~06:00pm

치악예술관 강원도 원주시 서원대로 331 Tel. +82.(0)33.763.9114

무위당 장일순의 관념과 실천의 모험을 기리며 ... ● 박사과정에서 역설의 논리를 경영의 세계에 끌어들이는 주제로 논문을 쓰게 된 게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알다시피 道可道非常道로 시작하는 도덕경은 81장 전체가 온통 역설 투성이다. 그래서 그때는 논문주제를 풀어가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 하루를 도덕경 읽기로 시작하고 도덕경 읽기로 마감했다. 그런데 어떤 해설서를 읽어봐도, 도덕경에서 얘기하는 궁극의 깨달음 - 함이 없는 함(爲無爲) -, 이 역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이 평생 남기신 단 한 권의 책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이아무개가 대담하고 정리, 삼인출판사)』를 읽고 어리석은 내가 도덕경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다. '사사로운 욕망을 버리고 만물과 하나되고자 하는 수동적 적극성의 삶'이 바로'함이 없는 함'임을 가르쳐 주셨다. 이후로는 줄곧 무위당 선생님을 내 삶의 스승으로 삼고 살아왔다.

김상표_혁명가의 초상-무위당(I-20)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0
김상표_혁명가의 초상-무위당(I-21)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0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가 무위당 선생님의 관념의 모험을 기록한 책이라면, 『좁쌀 한알』은 당신의 '실천의 모험'을 채록한 책이다.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에서 들려주신 '함이 없는 함(爲無爲)'에 대한 앞서의 말씀이 『좁쌀 한알』의 수많은 행적들로 채워지지 않았다면 다른 지식인들의 공허한 외침과 별반 다름없는 것으로 들렸을 것이다. 지식인의 삶은 대체로 지적 여정이 담겨 있는 관념의 모험에 그치고 마는 게 다반사다. 무위당 선생님처럼 세상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과 함께 관념의 모험을 실천의 모험으로까지 끌고 간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진정으로 '아스케시스(자기수양)'와 '파레시아(진리말하기)'가 하나로 통일된 아름다운 삶을 몸소 보여주신 분이 무위당 선생님이시다. 이런 점에서 무위당 선생님은 자신의 삶을 통해 진리를 말해온 진정한 혁명가이시다.

김상표_구원1_캔버스에 유채_162.2×390.9cm_2021
김상표_구원2_캔버스에 유채_193.9×521.2cm_2021

『좁쌀 한알』의 수많은 일화들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밑으로 기어라' 라는 무위당 선생님의 한마디에 모두 담겨있다. 절대적 타자성을 향한 형이상학적 초월을 얘기하는 레비나스의 무수한 언설들도 '밑으로 기어라'는 이 한마디 이상의 진리를 담고 있지 않다. 설혹 아무리 위대하고 지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혁명이라 할지라도 민중들의 욕망을 넘어서는 초월적 코드를 강제로 그들에게 기입하려 들 경우에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위대한 혁명가는 민중들의 일상적 욕망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동기화되는 삶의 리듬으로 살아가야 한다. 누구보다 이러한 혁명의 원초적 조건을 알고 온전히 그러한 삶을 사셨던 무위당 선생님은 '밑으로 기어라'는 말씀과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는 서예작품 글귀를 통해 후학들에게 인류미래의 올바른 혁명에 대한 방향성을 교훈으로 남기셨다. '밑으로 기어라'는 모든 존재를 모셔서 살려야 한다는 선생님 마음의 표현이다. 이런 마음을 제도적으로 구현한 것이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 운동이라 할 것이다. 모든 생명 있는 것은 한낱 미물이라 할지라도 모셔서 살려야 한다는 마음, 이제 이것은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는 모든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21세기 정신으로 더욱 확대되어 가리라 믿는다.

김상표_혁명가의 초상-무위당(I-22)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1
김상표_이인숙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1

20여년을 경영학 교수로서 살아오면서 무위당 선생님의 모심과 살림의 정신을 경영철학적 관점에서 다루어 보고자 하는 오랜 바람을 안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의 천학비재로 말미암아 무위당 선생님의 관념과 실천의 모험을 담아내지 못하는 아쉬움에 죄송스러웠다. 그 아쉬움을 2020년 1월에 출간한 저서(김영진과 공저) 『화이트헤드와 들뢰즈의 경영철학』을 무위당 선생님께 헌정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정년을 9년이나 앞두고 명예퇴직하면서부터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예술의 모험에 뛰어들었다. 그 길에서 '혁명가의 초상 시리즈'의 첫 번째 인물로 무위당 선생님을 다루었다. 피카소나 베이컨 등 서양의 예술가들 또한 이전의 양식이나 시대에 대한 저항의 한 형식으로 인물을 회화적으로 해체하지만 해체 이후의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미 모든 존재에 담긴 생명의 소중함을 평등하게 여기고 그것을 온전히 그림으로 담아내셨던 분이 무위당 선생님이시다. 사실성을 어느 정도 상실하고 추상화되고 해체된 난초를 인간의 얼굴로 새롭게 피어나게 그리셨던 무위당 선생님이야말로 해체와 재구축이라는 21세기 포스트모던 회화가 지향해야 할 길을 먼저 걸어가신 게 아닌가 싶다.

김상표_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_캔버스에 유채_193.9×130.3cm_2021

우리의 삶은 참으로 엉기성기한 인연의 그물망으로 짜여져 있는 듯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 그물망은 어김없이 만나야 할 인연들은 만나게 하는 모양이다. 관념의 모험 시리즈의 제 3권에 해당하는 『얼굴성: 회화의 진리를 묻다』를 2020년 2월에 출간하자 KBS부산방송총국의 최영송 편성제작국장님이 그것을 다큐형식의 TV프로그램으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하셨다. 그 프로그램의 한 플롯(plot)이 무위당기념관과 사단법인무위당사람들을 방문해서 사회운동가이자 생명사상가인 무위당 선생님과 나와의 인연을 조명해보는 것으로 정해졌다.

김상표_아는 이 있을까_캔버스에 유채_193.9×130.3cm_2021

아 드디어 원주에 가서 무위당 선생님과 생전에 함께 하셨고 또 그분의 관념과 실천의 모험을 새롭게 현재에 살려내려고 노력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는구나! 처음엔 기대와 설레임으로 들떠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거꾸로 두려워졌다. 화가로서 살아가야 하는 앞으로의 내 삶 안에서 무위당 선생님이 관념과 실천의 모험을 통해 몸소 보여주셨던 모심과 살림의 정신을 진정으로 담아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되풀이 해서 던졌다. 그러다 보니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아내와 함께 새벽녘에 일찍 원주를 향해 출발했다.

김상표_미륵자화상3-COVID19_캔버스에 유채_193.9×390.9cm_2020

무위당사람들 사무실에서 심상덕 이사장님, 김찬수 상임이사님, 황도근 무위당학교장님, 원상호 편집장님을 처음 뵈었다. 현생에서의 한번의 마주침은 이미 전생에서 몇 억겁의 인연이 쌓였기 때문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그분들이 너무나 따뜻하고 편안하게 느껴져 어머니 자궁의 뜨락 안으로 잠겨드는 듯했다. 잠시 정담을 나누고 무위당기념관으로 들어섰다.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가 짙게 풍겨오는 무위당선생님의 서화작품들, 친견하는 기쁨을 어찌 말로 대신할 수 있겠는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내 삶의 스승으로 모셔왔던 무위당선생님. 가장 높은 뜻을 지녔으면서도 가장 낮은 곳에 머물렀던 선생님의 삶이 오롯이 전달되어 왔다. 당신은 글귀와 그림으로 내게 말씀을 걸어오셨다. 화가-되기의 삶을 시작하는 나의 들뜬 마음을 가라앉혀 주시고, 여러 생을 거쳐오는 동안 마주했던 모든 슬픔들을 당신이 대신 애닯아 하시며, 비록 답이 없을지라도 깨달음에 대한 정진을 멈추지 말라며 내 등을 토닥거리고 격려해 주셨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그 당시를 회고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리고 다짐한다. '사사로운 욕망을 버리고 만물과 하나되고자 하는 수동적 적극성의 삶'이 바로 '함이 없는 함'임을 잊지 않겠다고 ... 그 순간 당신은 내게 몸과 마음의 치유를 선물하시고 세상 속에서 치유하고 치유받으며 살아갈 용기를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상표

Vol.20210604a | 김상표展 / KIMSANGPYO / 金相杓 / painting

@ 우민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