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지나갈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박혜미_이해선_한차연展   2021_0604 ▶ 2021_0624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2:00p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인 GALLERY IN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로 116 201호 Tel. +82.(0)10.9017.2016 www.instagram.com/_innsinn_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 ● 일상적인 용어가 어떤 분야 안에서 특정한 의미로 통용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호흡' 같은 단어가 그렇다. 숨쉬는 일 또는 그 숨을 뜻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과 이루는 조화'를 뜻하는 이 단어가 창작자들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들에게 '호흡'은 작가가 구사하는 표현의 단위를 이르기도 하고("빠른 호흡으로 그린 선", "짧은 호흡으로 끊어 쓴 시") 개인의 감각과 매체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일종의 리듬감을 뜻하기도 한다("그는 자신만의 호흡으로 지면紙面을 장악해 나갔다"). 삶의 조건인 호흡을 작품에 관한 것으로 치환할 때, 그것은 형식을 운용하는 속도와 리듬의 문제가 된다.

박혜미_빛이 지나갈때까지_종이에 색연필_10.5×6.5cm_2021
박혜미_요즘의 산책_종이에 색연필,수채_11×15cm_2021
박혜미_오늘은 별이 많다_종이에 색연필, 펜_11×16cm_2020

전시를 구성하는 세 작가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자. 그들의 작품에는 자기 아닌 것을 향한 야심이 없다. 그들은 자기 바깥의 형식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속도와 리듬을 찾기 위한 방편으로 형식을 활용한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를 위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다. '회복'에 관한 전시라고 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변화를 겪은 주체가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과정이 회복이다. 그러므로 회복을 위한 작업이란 곧 자신의 고유한 속도와 리듬으로 돌아가기 위한 실천일 수밖에 없다. 길을 잃은 선원이 별을 헤아려 사위를 찾는 것처럼, 혹은 흐트러진 마음을 규칙적인 호흡을 통해 가다듬는 것처럼, 그들은 작업으로 자신을 회복한다. 이러한 공통적 태도가 그들의 작업을 서로 다른 것으로 만든다. 각기 다른 결을 지닌 작품들은, 서로 다른 세 사람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시도의 흔적들이다.

이해선_come_종이에 색연필_21×29.7cm_2021
이해선_room_종이에 색연필_63×89.1cm_2021
이해선_curtain_종이에 색연필_63×29.7cm_2021

소설을 읽는 마음을 떠올린다. 긴 글을 따라가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내게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마음. 소설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주인공은 내 처지에 꼭 맞는 처방을 내려주지 않는다. 그들은 독자의 존재조차 모른 채, 자신의 삶을 살아 내기 바쁘다. 그럼에도 그들의 삶은 내게 도움이 된다. 각기 다른 개별적인 삶의 구체성을 경험함으로써, 내 삶의 개별성과 구체성 또한 긍정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한차연_home_캔버스에 유화_53×73cm_2021
한차연_작은둥지들_도자_11×12cm_2021
한차연_쓰이지 못한 편지_도자_18×15cm_2021

내 삶은 남과 같을 필요가 없고, 그럴 수도 없다. 내게는 내게 맞는 리듬과 속도, 생각의 방식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흐트러졌을 때 되돌릴 수 있는 지표가 있다. 세 작가에게 작업이 있듯이.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 있다면, 그곳엔 모든 것의 수만큼 다양한 제자리가 있을 것이다. 여기 서로 다른 세 작가의 작업이 있다. 그들의 작품은 서로 다르다. 당연한 일이다. ■ 임재형

* 시인과 촌장 – 풍경(1987)

Vol.20210604g | 빛이 지나갈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