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끝으로 이어진 산수

이준호展 / LEEJUNHO / 李俊昊 / painting   2021_0609 ▶ 2021_0707 / 백화점 휴점시 휴관

이준호_산수경-43_91×116.8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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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 블로그_blog.naver.com/narara772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10:00pm / 백화점 휴점시 휴관

NC 강서점 이랜드갤러리 아트로 E-LAND GALLERY ARTRO 서울 강서구 강서로56길 17 www.elandgallery.com

현실 속 이미지 안에서 생경함을 발견한 순간 상상 속 이미지로 생각해 낸 대상이 중첩되며 조형화된 형태로 작품 속에서 실체가 드러난다. ● 작가는 관념과 현실을 오가며 본인의 시각으로 풍경을 해석하여 전통적 여백을 칼로써 지워낸다.작품 속 산수는 작가가 보았거나 상상했던 과거의 풍경이 그려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현재 보았거나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거나 상상했던 이미지를 유추할 수 있다. 우리의 시간이 멈춘듯한 2차원 작품 안에는 특정 시점만이 담겨있는 듯 보이지만 상시적으로 변화하는 풍경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 우리 개개인들은 살아온 환경도 다르며 경험한 것도 다를 것이다. 같은 풍경을 보아도 살아온 경험에 따라 각기 다른 시각으로 현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시공간이 멈춰버린 듯한 산수를 바라보고 살아왔던 과거, 살아가고 있는 현재, 살아갈 미래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 ■ 이랜드갤러리 아트로

이준호_산수경-38_100×80.5cm_2019
이준호_산수경-35_100×80.3cm_2019

화구에 대한 고민으로 여러 가지 시도를 다양하게 할 무렵, 세평 남짓 나의 첫 작업실에서 칼로 캔바스 물감을 긁어내는 순간 칼끝에서도 작품세계를 펼칠 수 있겠다는 영감을 얻었다 그렇게 심장이 터질 듯 한 희열 속에 칼끝 작업은 시작되었고 칼로 그림을 그린지 2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 칼끝이 스치듯 날카로운 선으로 처음 그어졌을 때의 그 두근거림은 칼끝 산수의 원동력이 되었고 캔바스 위에 칼로 그림을 그려갈수록, 캔바스 아래 바닥에 부러진 칼날 끝이 쌓여갈수록 점점 그 이유와 본질에 대한 질문은 칼끝처럼 더 예리하게 깊이 파고들어 늘 내 마음속에서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 어린 시절 나의 유일한 놀잇감은 외조부의 물감이었다. 외조부가 사용하시던 붉은 안료는 내 그림의 주된 색으로 표현되었다. 스케치북 대신 달력의 흰 여백에 외조부의 작품을 모사하던 시간들을 지나 표현주의에 매료되어 내면의 잠재되었던 강렬한 표현 욕구를 원색적으로 표현하던 작업을 거쳐 다시 칼끝 산수로의 회귀는 물리적으로도 끊을 수 없는 나의 외조부 집안의 내력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이준호_산수경-30_130×97cm_2018
이준호_붉은산-31_72.7×91cm_2019

외조부이신 두산 정술원 1885-1955)은 일제 강점기 시절 절지(折枝), 영모, 화훼, 인물에 걸쳐 많은 작품을 남기셨고 그 가운데서도 산수화를 많이 그리셨던 외조부의 작품을 보면서 나또한 자연스럽게 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화가의 삶을 반대하셨던 집안 분위기에 외조부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 어릴적 기억에만 남아있을 뿐이였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무렵 지난 열한번째 개인전에서 정술원, 정육 외가를 연구하신 김영진 교수님께 받은 [문헌과 해석(정육 편/도서보(圖書譜) 후지(後識) 2편-김영진)]을 통해서 나의 5대조 정육 할아버지는 조선 후기 대표적인 전각가이며 조선시대 인보(印譜) 편찬자 였다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내가 칼끝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우연히 아니였음이 더욱 명확해지며 칼집을 잡고 선을 그었을 때 심장의 두근거림과 떨림, 산수를 긁는 순간 칼 끝에 대한 강한 애착과 집착의 이유를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뼛 속까지 물든 유전적 DNA는 만고의 세월 억만겹의 시간을 뛰어넘어 두 칼끝은 붉은 핏줄기를 타고 다시 만났다. 화구통에서 칼을 꺼내들 때 어렸을 때부터 도장을 좋아하여 인본을 만여장 모으며 종일 들여다보아도 싫증나지 않았다고 하셨던 정육할아버지를 다시금 떠올려본다. 칼로 세기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합일된 순간 붉게 물든 노을빛은 창문을 뚫고 빈 화면을 비춘다. 칼끝은 캔바스 위를 누비며 깊이 파고든다. 선을 따라 미끄러지듯 바위를 형성하고 굽이굽이 골짜기를 만든다. 주변은 고요하다. 시간이 멈춘 듯 고독한 공간 안에서 칼을 움켜쥔 나는 화면 앞에 서 있다.

이준호_붉은산-27_91×72.9cm_2019
이준호_신-산수 7_100×80cm_2017

현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여과 없이 노출되고 거미줄처럼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 정체성의 상실로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빼곡히 들어찬 도시 속으로 빠르게 흘러들어 가고 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람들과의 거리마저 멀어지게 하며 사회전반에 걸쳐 불안 우울감을 조성시키며 정서적 피폐함과 매마름으로 우리 마음은 갈라져 있다. 오랜 세월 동양 회화는 치유와 정신적 수양으로 채움에서 비움으로, 여백을 통한 정서적 휴식을 주었다.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과거 선조들이 화폭안의 산수를 감상하며 위안을 삼았듯 전통산수를 재해석한 칼끝 산수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느리게, 유유자적한 마음으로 숲속을 거닐며 그 속에 숨어있는 해학적 동물들을 발견하고 웃으며 화폭안에서 마음껏 호흡하는 나를 찾아가보는 시간을 갖기를 권해본다. ■ 이준호

Vol.20210609b | 이준호展 / LEEJUNHO / 李俊昊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