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체 & 영원성 Organism & Eternality

김승환展 / KIMSEUNGHWAN / 金承煥 / sculpture   2021_0610 ▶ 2021_0711 /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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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환 홈페이지_kimseunghwan.kr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5:30pm / 월요일 휴관

밀라노 시립 프란체스코 메시나 박물관 Studio Mueso Francesco Messina Via San Sisto 4/A, Milano, Italia Tel. +39.02.8645.3005 www.studiomuseofrancescomessina.it

진실의 근사치, 그 고도의 리얼리티: 김승환의 '유기체' 미학 ● 감각은 세계를 만나게 돕지만, 한편으로는 세계를 축소하거나 왜곡하기도 한다. 작가에게 눈의 작용으로 충분히 설명되는 어떤 형태, 예를 들어 산, 사람, 나무, 꽃, 동물, 곤충 등의 '외면적 사실들'은 세계가 우리의 감각에 던져 놓은 '알리바이(alibi)' 혹은 '에피소드(episode)'일 뿐이다. 작가는 오히려 그 사실들 내부에 담긴 자연의 진정한 형태를 보려 한다. 그의 유기체 조각은 추상 형식의 완성이라는 미술사적 임무를 위한 것도 아니며, 구상성에 대한 추상성의 우위를 선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작가에게 추상 형식은 눈앞에 현전하는 생김새 내부에 감춰진 대상의 존재론적 본질을 탐색하기 위한 또 다른 방법이다. 특히 꽃과 곤충의 외관에서 놀라운 유기적 구조를 발견하고 그것을 순수한 조형 형태로 모티프화하여 생명 현상의 예민한 변화를 포착한다. ● 완숙기의 작품들은 면과 선들의 증식에 매진하면서 조각에 있어서 양감의 절대적 의무에서 벗어났으며, 서로 힘차게 맞물리고 관여하는 세부 요소들을 통해 전체의 혁신을 이루어 낸다. 이 절차를 거치면서 꽃은 꽃이면서 구름이나 불가사리 혹은 바람개비도 되고, 곤충은 곤충이면서 증식하는 세포나 거대한 산맥의 율동적인 존재 양상이 되기도 한다. 형태 안에 보이는 하나의 동작과 방향은 다른 동작과 방향과 떨어져 존재할 수 없고, 하나의 변화는 또 다른 변화의 원인이 된다. 하나의 꽃잎이 자발적으로 여러 꽃잎으로 증식하면서 꽃의 존재를 뚜렷한 것으로 상정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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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김승환 작품의 부분은 전체를 내포하고 전체는 부분의 일면이 된다. 이는 자기유사성(self-similarity)과 순환성(recursiveness)으로 확대와 축소의 결과가 '대략' 서로 닮게 되는 자연의 현상, 즉 프랙탈(fractal) 생명 현상의 미학적 전치로 볼 수 있다. 발달의 측면에서 보아도, 그의 프랙탈 구조는 가장 고효율의 구조를 따른다. 어느 한 부분이 상처를 받아 파괴되어도 전체적인 기능을 바로 상실하지 않는 지점, 어떤 특정 부위가 주제를 총괄하지도 않고, 형상의 주요 부위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부위의 편차도 크지 않은 지점에서 김승환 조각의 '형태'는 출현한다. 그의 조각은 전체가 상호적·유기적으로 얽혀 있기에 '부분의 무너짐'이 있다 하더라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자연의 힘을 내포한다. 프랙탈 구조의 규칙적·불규칙적 대칭과 그것의 방사형 증식은 '발생-반복-점증(漸增)-소멸-발생'의 순환 공식을 따른 것으로서 생명의 기본적인 존재 원리와 연결된다. 그래서 작가의 유기체 조각이 갖는 신선한 아름다움은 생명형태학적인(biomorphic) 아름다움이라고 말 할 수 있다. ● 한편, 형태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형태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작가에게 우리가 감각하는 자연의 외관은 끝없는 순환 안에서 고정성과 통일성을 상실하는 경험을 한다. 이때 외관의 이념은 본질의 이념에 밀려 와해하거나 축출된다. 이러한 상실의 경험에 따라 우리의 정신에 영롱하게 떠오르는 어떤 형태는 주름(The Fold)의 파동과 닮아 있다. 형상은 요소와 요소 간의 상호 작용에 의해 서로 겹쳐지고 방사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완성의 느낌이나 불멸의 느낌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차이(différence)와 반복(répétition)의 끝없는 메커니즘 안에서 그의 조각은 본질을 향한'역행적 진화'를 본격화한다. 이 '역행적 진화'가 내뿜는 영원한 성장, 영원한 미완의 느낌에 따라 김승환의 유기체는 '보이는 것'이란 보이지 않았던 물리적 현실이 극한으로 수축한 결과일 뿐이라는 철학적 각성에 다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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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의 영원한 연결로서의 뫼비우스 띠(Möbius band) 연작이나, 방향과 힘의 구성만으로도 생명의 특질을 강렬하게 함축하는 그의 유기체 연작은 모든 형태의 궁극적인 형태로서 주름을 받아들인다. '옷의 젖은 주름들'이 나체보다 신체의 실체성을 더 잘 드러내는 것처럼 김승환의 주름은 '형태의 원형'을 파고든다. 들뢰즈가 말했듯이 정신적 원자인 모나드(Monad / Gottfried Wilhelm Leibniz)를 응축하고 있는 주름은 세계에 출현한 모든 것의 가장 작은 동시에 가장 큰 존재 양상이다. 자연의 미시(微示)와 자연의 전체가 공존하는 그의 '주름-유기체'에서 미(美)와 추(醜)의 구분은 부질없다. 작가는 원근법의 세계, 계급의 세계, 결정론적 세계로부터 한참을 떨어져 있다. 그의 조각은 가장 모호한 미로서 추하고, 가장 리얼한 모호함으로서 아름다울 뿐이다. ● 자연의 표현법에 닮아가며 자연을 발생시키는 주름의 자발성에 따라 김승환의 유기체는 매번 새롭게 태동한다. 개별의 주장과 이기(利己)의 논리에 의해 조각난 우리의 영혼을 통합하면서, 그의 유기체는 우리를 세계와 존재라는 진실에 다가가게 한다. 물론, 진실의 우매한 평균값을 말하는 대신 진실의 보편타당한 근사치를 말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제 그의 예술은 형태에 대한 감상에서 세계에 대한 발견의 차원으로 옮겨가 읽혀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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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의 안과 밖이 없는 끝없는 진전의 뫼비우스 띠는 영원한 시간이야말로 세계의 원형을 이루고, 그 원형 안에서 우주와 생명은 끝없이 되풀이된다는 생각에 밀착되어 있다. 김승환의 유기체 조각이 점차 뫼비우스 띠의 변이(變異)로 발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존재들의 연속체로서의 '무한궤도-유기체'는 이미 자연의 법칙으로 환원된 것으로서 잠재성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 안에서 사소한 자연 현상은 없다. 숭고한 자연의 일원인 존재들에게 사사로운 사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은 자연의 고귀한 호흡이고, 낙엽의 덧없음은 열매의 달콤함이 지닌 또 다른 표현이다. 모든 것은 의미가 있으며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자연은 유한(有限)이라는 비극을 극복한다. 이처럼 철학적으로 숙성된 자연 개념은 가냘픈 찰나(刹那)의 삶을 영겁회귀(永劫回歸)의 단단한 질서로 이끌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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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개별들의 역동적인 발생은 작가에게 폭력의 원인이 아니다. '침묵의 외침'을 창작의 동력으로 삼았던 그의 투박한 인체상이 인간성에 대한 뜨거운 열정의 산물이었다면, 완숙기에 접어든 오늘날의 김승환이 보여주는 것은 자연과 영원의 리얼리티 안에서 찾은 정서적 균형이다. 그리고 이 정서적 균형은 놀라울 정도로 모호하고,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다. 단순히 장미꽃의 세세한 생김새를 재현하지 않아도 괜찮다. 김승환 작품이 발산하는 정서적 균형은 장미와 자연의 '관계 맺기'가 만든 기품 있는 리듬감에 있으며, 고정성과 부정성을 극복한 '탈주'의 신선함에 있다. 자연은 생명의 존엄한 형식을 통해 그 숭고함을 더한다는 사실을 작가가 잘 이해하고 있기에 가능한 균형감이다. 일찍이 김종영 선생은 '표현은 단순하게, 내용은 풍부하게'라며 '불각'(不刻: 조각하지 않는다)의 정신을 높이 샀다. 보통 조각은 재료를 새기거나 깎아서 어떤 형상을 만드는 것이지만, '불각'은 자연의 원리를 조각하기 위해 조각을 자연물 다루듯 하며 '완전한 하나의 형태'가 아니라 작은 존재들이 모여 이뤄진 구조로 파악한다는 의미이다. 표현의 절제를 통해 자연의 풍부함을 담아내려 한 불각의 맑은 정신은 김승환이 보여주는 균형감 안에서도 독창적으로 실천되고 있다. ● 순간과 영원, 정형과 비정형, 조각과 불각, 작은 것과 큰 것, 내재와 초월, 완전함과 불완전함..., 조각가 김승환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것들은 서로 극단에 위치하면서 서로 의미론적으로 타협하지 않는 것들이다. 이분(二分)의 각 영역은 선명하게 드러나기에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지만, 이분(二分)의 사이에는 무한한 크기의 감성이 살고 있기에 우리에게 경외감을 준다. 이 경외감은 우주적 허무에 가까운 것이며, 무한이라는 모호함의 실체는 눈의 힘으로는 간파할 수 없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 이미지가 별의 진정한 형태를 발설하지 않듯이, 세계의 진정한 모습은 '외관의 정의(定義)'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감각과 지성이 반응하지 못하는 실체는 오직 감성의 토대 위에서만 성립될 수 있다. 김승환이 유한한 인간과 영원이라는 개념을 맞붙이기도 하고, 대상의 복잡한 물리적 성질 곁에 정제된 정신성을 남겨두기도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고정성을 극복하고 본질로 돌아가기 위해 작가는 감성의 형태를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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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변화가 아름다움의 선험적 조건이 되고 조화로운 사유의 단서가 되는 지점에 김승환의 예술이 있다. 그의 예술 안에서 진실의 모호함과 세계의 무한함은 스스로 긍정되어 잦은 다툼과 회의(懷疑)에 지친 우리의 현실에 참된 해방의 단서를 귀띔한다. 가장 일반적인 사실들에 스며있는 신비로운 존재의 비밀을 되묻고 또 되물으면서 김승환의 예술은 감상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래서 그의 조각은 어떤 장소에 정서적 온기를 더하며, 자연과 생명을 동경하는 그 어디라도 잘 어울린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대형 환경조각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작가는 공공의 영역에서 발주(發注) 받아 제작한 작품과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로 제작한 작품에 특별한 차별을 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환경조각이 장소의 특정성과 티격태격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의 공공조형 작품은 환경조각이기에 설치될 공간을 염두에 두고 구상되지만 그렇다고 어떤 건물이나 광장의 특수한 상태에 끼워 맞춰진 느낌은 전혀 없다. 김승환은 개인 영역과 공공 영역 간에 특별한 차별을 두지 않는 흔치 않은 조각가이다. 이는 매번 달라지는 경제적 목적이나 대중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타협하지 않는 작가의 완고한 예술관을 드러내는 것인 동시에 그의 조각이 자연의 향수를 품은 그 어떤 장소에서도 괴리감이 없이 '보편성의 미감'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 40여 년 동안 작가 김승환이 멀쩡한 것들을 깎고, 붙이고, 쌓고, 용접하고, 갈고, 부수는 별것 아닌 행위를 통해 얻으려 한 것은 결국 자연이 스스로 순환하며 긍정되듯이 우리의 성장도 그 모습 그대로 긍정되는 고귀한 경험이었다. 형태의 사치와 내용의 가난을 자각조차 못 하는 예술이 판을 치는 현실에서 그의 예술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살아있다는 사건으로 인해 죽어갈 수밖에 없는 모든 생명체를 경이(驚異)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생명의 나약한 물리적 현실을 '영혼의 타원' 안에서 끝없이 순환시키려는 작가는 우리를 현혹하는 장식들과 매일 대결한다. 그의 진지한 예술적 태도와 삶에 대한 애정은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모든 것들에 항구적인 흐름이 있다는 사실을 무겁게 상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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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구조는 찰나의 조합에 앞선다."라는 작가의 존재론적 반성은 항구적인 흐름과 그 흐름에 몸을 맡긴 모든 존재의 목소리를 값진 것으로 승화시킨다. 꽃과 인간과 구름과 바람은 각기 다른 형이하학적 운명에서 발화했지만, 영원의 구조 안에서 반드시 하나가 된다. 되풀이되는 노래로서, 분산과 전체로서의 우리의 모습은 고귀한 우주의 모습과 닮은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자연의 형이상학적 모습, '살아 있다'라는 그 아름다운 모호함을 향하는 김승환의 예술은 우리의 눈과 정신에 이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이재걸

Vol.20210610c | 김승환展 / KIMSEUNGHWAN / 金承煥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