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너머에 Beyond the Landscape

안우동展 / AHNWOODONG / 安佑東 / photography   2021_0615 ▶ 2021_0626 / 일요일 휴관

안우동_#3_젤라틴 실버 프린트_30×40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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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우동 홈페이지_www.ahnwoodong.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 토_12:00pm~06:00pm / 일요일 휴관

와이아트 갤러리 YART GALLERY 서울 중구 퇴계로27길 28 한영빌딩 B1 3호 Tel. +82.(0)2.579.6881 yartgallery.kr blog.naver.com/gu5658

안우동의 사진 - 헐벗은 자연과 서정적인 풍경 (중략) 바다가 메워진 땅의 형태 그대로 시간이 멈춰선 풍경을 찍는다. 그 풍경 속에서 자연은 자기를 상실한 채, 다만 자기에게 가해진 무분별한 폭력을 흔적으로서 증언하는 역할을 도맡는다. 그렇게 사진 속 풍경은 을씨년스럽고 황량하고 척박하다. 그리고 서정적이다. 모든 흔적은 서정적이다. 심지어 그것이 폭력의 흔적일 때조차도. 그러나 정작 사람들은 그 흔적을, 그 흔적이 불러일으키는 서정성을 보지 않는다(그리고 보지 못한다). 관심사며 이해관계 그리고 인문학적 배경이 다른데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가 아닌,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장밋빛 청사진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금여기를 보지 못하게 막는 것을 의식의 불감증 혹은 의식의 사각지대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안우동_#20_젤라틴 실버 프린트_30×40cm_2017
안우동_#18_젤라틴 실버 프린트_30×40cm_2017

그래서 작가는 근작의 주제를 『풍경 너머에』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언제나 풍경 자체를 보지 않는다. 풍경 너머를 본다. 지금 여기를 보지 않는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장밋빛 청사진을 본다. 그리고 작가는 지금 여기와 도래하지 않은 미래 사이, 풍경 자체와 풍경 너머 사이를 중간풍경이라고 부른다. 이로써 작가는 지금여기의 풍경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쩜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공백인 채로 지워져 있을 풍경(사이풍경 혹은 중간풍경)의 지점이 중요하다고, 지워진 의식 속에서 전개될 풍경의 지평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을 것이다. 이 풍경과 저 풍경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 풍경이 저 풍경으로 이행하는 과정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가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을 것이다.

안우동_#22_젤라틴 실버 프린트_30×40cm_2017
안우동_#46-1_젤라틴 실버 프린트_30×40cm_2019

그리고 작가는 을씨년스럽고 황량하고 척박하고 서정적인 풍경과 함께 바다 시리즈를 제안한다. 수평선을 경계삼아 바다 혹은 갯벌이 화면 아래쪽에 위치하고 그 위로 길게 하늘이 포치해 있는 세로로 긴 사진들이다. 아마도 아득한, 막막한, 밑도 끝도 없는 자연의 경관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인간사와 동떨어져서 보면, 무분별한 욕망 없이 보면 비로소 보이는 자연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수평선 너머로 보일 듯 말듯 미미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 문명과는 비교되는, 숭고한 자연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멀리 수평선이 보이는 풍경에로 초대한다. 여기서 다시, 작가는 풍경 너머에 무엇이 보이는지 묻는다. 경계 너머로 또 다른 풍경이 보이는지 묻는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가 경계인은 아닌지, 경계인이야말로 존재의 존재론적 조건이 아닌지를 묻는다. ■ 고충환

안우동_#4-2_젤라틴 실버 프린트_60×40cm_2016
안우동_#11_젤라틴 실버 프린트_60×40cm_2016
안우동_#34_젤라틴 실버 프린트_60×40cm_2018

The Photography by Ahn, Woodong - Naked Nature and Lyrical Landscape ● (...) He photographs the landscape where time stops as a form of land reclaimed from the sea. In the landscape, nature plays an entire role as a witness who testifies of relentless violence against itself with traces as it loses its own identity. Like that, the landscape of the photos is dreary, desolate, and barren. And it is lyrical. Every trace is lyrical. They are lyrical even when they are simply a trace of violence. However, people don't see the traces or the lyricism aroused by the traces (and they cannot see the lyricism.). The reason is that their concerns, interests, and humanistic backgrounds are different from those of others. The reason is that they envision a rosy future blueprint in their brain which has yet to come, not now and here. Can we call something that prevents us from seeing now and here like that the insensitivity or blind spot phenomenon of our senses? ● Therefore, the photographer calls the theme of recent works 『Beyond Landscape』. People don't see the landscape itself all the time. They see beyond landscape. They don't see now and here. They see a rosy blueprint for a future which has yet to come. And the photographer calls something between now and here and the future and something between the landscape itself and beyond landscape the middle landscape. By doing so, the photographer is probably saying that the now and here landscape itself is significant. Maybe he is also saying that the point of landscape (the between landscape or the middle landscape), which people are not aware of, is significant, and that the horizon of landscape which will unfurl in the erased sense is significant. Maybe he is stressing what is happening between this landscape and that landscape and what has really happened in the process when this landscape has shifted to that landscape. ● And then the photographer creates a sea series along with the lyrical landscape, which is dreary, desolate, and barren. Taking the horizon as a boundary, the vertically long photographs put sea or tidal mud-flat in the lower part of the screen and the long sky in the upper part of the screen. Probably, he wanted to show the landscape of nature, which is faraway, boundless, and extreme wide. Probably, he wanted to show nature itself, which you cannot see until you stay away from human affairs and you are free of relentless desire. Probably, he wanted to show sublime nature comparable to civilization, which is leaving tiny traces visible or invisible beyond the horizon. That is how the photographer invites you to the landscape in which you can see a far-away horizon. Here once again, the photographer asks you what you see beyond the landscape. He asks whether you can see another landscape beyond the landscape. He asks whether we all are a marginal man if we realize it or whether the marginal man himself is the existential condition of existence. ■ Kho, Chung-Hwan

Vol.20210615e | 안우동展 / AHNWOODONG / 安佑東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