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분의 움직임 The Wriggle of Remnants

정은별展 / JUNGEUNBYUL / 鄭은별 / mixed media   2021_0617 ▶ 2021_0710 / 일,월,공휴일 휴관

정은별_아는 것과 믿는 것의 간격_종이에 채색, 연필, 콜라주, 먹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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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수요일_10:00am~09:00pm / 일,월,공휴일 휴관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45-14(수송동 46-15번지) Tel. +82.(0)2.734.0440 www.ocimuseum.org

질서, 규칙, 기준, 편견, 장벽? 뒤엎어 버리겠어 라는 마음으로 누구보다 다소곳한, 희고 순한 양 한 마리 ● 사나운 가슴과 공손한 몸가짐. 주먹을 불끈 깨물어 쥐면서도, 행여나 마주칠까 겁먹은 눈동자를 모로 굴린다. 대개 열망은 크고 용기는 없다. 모난 돌이 정 맞고, 지느러미 번듯한 놈이 회칼 맞는다. 이에정은별은 지나가던 '행인 1'이 되어 책임의 겁박을 조롱한다. 막장드라마 속 갑질 사모님 정수리에 두레박으로 끼얹을 깡은 없지만, 어이쿠 놓친 물잔에 덮어쓰신 물벼락이야 도리가 있나. ● 줄지어 늘어선 화폭. 첫머리는 빈틈없이 멀끔하다. 고매하고 화사한 꽃다발, 갖은 화초로 야무지게 꾸민 선반은, '무심코' 스친 손끝에 바스러지고 '별안간' 날아든 공 하나에 와르르 주저앉는다. 우발적 사고가 틀림없다. 의도와 계획, 그리고 책임 바깥의 '여분'일 뿐이다. 옳거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새 주인공을 섭외하자. 이번엔 순한 양 어떨까. 엉망진창으로 뒤엉켜 널브러지고 산산이 흩뿌려진 마지막 장면. 기득과 주류의 참혹한 잔해라기보단, 변화가 꽃필 새 텃밭이다. ■ 김영기

정은별_아는 것과 믿는 것의 간격_부분

여분의 움직임이 아우르는 큰 공간 ● 줄지어 세워 놓은 이 연작의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무언가 응집된 큰 풍경이 있어서 그것을 딛고 풍경의 내부, 그러니까 저 연속하는 그림의 내부에 파고드는 나의 시선을 내가 느낀다. 줄지어 그림에서 그림으로 이동하는 시선과 그것을 견인하는 몸이, 그 느리고 육중한 속도를 거슬러 눈 깜박할 사이에 일어난 화면 속의 파열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미세한 사라짐을 목격한다. 그것을 보기 위해서라면, 차분하게 관조했던 이 큰 풍경은 잠시 잊어도 좋다. 그림에 코를 박고 그 내부에서 방금 일어난 실오라기 같은 파열을 섬광처럼 목격했다면, 이 큰 풍경이 대수겠는가. ● 정은별의 《여분의 움직임》은, 거대한 밤하늘의 유성처럼 무명의 잔해들이 일으키는 짧은 섬광과 그것이 작은 돌멩이처럼 내던져져 만들어 놓는 물리적 파열을 떠올리게 한다. 중력의 힘에 못 이겨 꽃송이를 아래로 떨구어 바싹 마른 꽃다발은 박제된 동물처럼 내부의 생기를 모두 상실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렇게 물기가 싹 빠져 건조되어 버린 꽃다발은 역설적이게도 박제된 동물이나 화석처럼 고집스럽게 제 형태를 구축해내고 있는데, 이때 정은별은 왼손 두 개의 손가락을 튕겨 그 "중력의 형상"에 파열을 일으킨다. 작지만, 아홉 폭으로 이어져 연속하는 《아주 우연한 시작》(2021)은 그러한 정황을 드러낸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현실의 물리적 힘과 겨루며 제 형태를 스스로 박제해 온 마른 꽃다발은 정은별이 늘 관심 있게 관찰하며 사유해 온 일상의 견고한 것들이 지닌 위태로움에 대해 환기시켜주는 소재다. 그는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일련의 사물과 풍경들에서 언뜻 지속적이며 변하지 않는 것들로부터 그것의 태생적 불완전함을 포착하여 낯선 파열과 부재의 순간을 집요하게 상상한다. 《아주 우연한 시작》의 경우, 긴 시간과 중력의 힘이라는 거대한 에너지에 의해 유지되어 온 형태가 손가락 두 개가 일으키는 한순간의 사소한 힘의 작용으로 허공에 티끌을 사방으로 흩날리며 땅으로 가라앉아 사라져버리는 국면을 그리고 있다.

정은별_아주 우연한 시작_캔버스천에 아크릴채색_43×30cm_2021
정은별_아주 우연한 시작_캔버스천에 아크릴채색_43×30cm_2021

연작으로 구성된 이 그림은 형태의 움직임과 변화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데, 사소한 힘의 순간적인 파열에 주목하면서도 그것을 그림으로 옮겨와서는 거대하고 육중한 움직임으로 치환해 놓은 듯한 슬로 모션의 효과를 감지할 수 있다. 정은별은 이러한 급격한 변환을 성립시키기 위해 상반된 대조적인 상황을 병치함으로써 거대한 외부 세계의 (느린) 궤도와 사소한 잔해들의 (빠른) 움직임을 맞닥뜨리게 하는 우연의 순간을 서사화 한다. 말하자면, 과 같이 그의 그림은 손가락의 움직임이 중첩된 하나의 화면과 꽃다발이 허공에서 부서져 일제히 사라져 버리는 여덟 개의 화면 사이의 인과 관계를 통해, 일상 세계를 작동시키는 다수의 시간성과 힘의 크기 및 속도 같은 물리적인 것에 대한 시지각적 성찰을 드러낸다. 이는 그가 그동안 자신의 작업에서 (관객에게) "보여지는 방법"에 골똘히 심취해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을 지 모른다. ● 《아는 것과 믿는 것의 간격》(2021)도 《아주 우연한 시작》과 비슷한 구조를 보여준다. 선반 위에 가지런히 놓인 화분 속 식물들은 수분과 색이 싹 사라진 (박제된) 장미에 비할 바도 아니지만, 그 어떤 것 보다 매우 사실적으로 정교하게 그려졌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이 식물 그림은 화분 속에 붙들어 놓은 생의 절정을 충실히 그려낸 것으로, 그림 그린 이의 수고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가늠케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익숙한 식물의 형태와 선명한 색채에 시선을 내어줄 틈조차 없다. 연속해 뒤따르고 있는 다른 화폭의 그림에서, 붕괴가 시작되고 있는 형태들과 희미해져 가는 색채들이 그 시지각적 불완전함으로 인해 줄곧 방심했던 시선을 순식간에 긴장시켜야 하는 위태로운 상황을 맞게 한다. 그런 거다. 깊고 어두운 밤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을 보겠노라고 눈을 부릅뜨고 하늘을 샅샅이 뒤적거리는 것처럼, 정은별은 거대한 시공간이 구축해 놓은 일상의 숱한 장면들 속에서 갑작스럽게 출현하게 될 순간의 파열을 내심 좇고 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의 간격》에서도,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완전한 형태로서 질서 속에 고정되어 있는 첫 번째 화면 앞에 안전하게 멈춰 서기보다는 되레 갑작스런 힘의 개입을 통해 붕괴와 퇴색이 일어나는 혼란스러운 상황 앞에서 무언가 보고자 하는 혹은 보지 않으려 하는 시지각적 의지를 내놓게 된다. 나는 그것을 정은별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드로잉적 사고"라 말하고 싶은데, 좀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 그는 일련의 공간으로서의 화면에 어떤 형태의 움직임을 그리기의 행위로 변환하여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은별+한재석_쿵 하면 흔들리는 세계 1_ 종이에 페인트, 동선, 철선, 나무, 한재석의 스피커, 금속막대_가변크기_2021
정은별+한재석_쿵 하면 흔들리는 세계 1_부분
정은별+한재석_쿵 하면 흔들리는 세계 1_부분

《여분의 움직임》에서 전체 공간의 동력을 보기 좋게 시연해 주는 일종의 무대 같은 역할을 《쿵 하면 흔들리는 세계》(2021)가 맡고 있다. 어쩌면 내가 "드로잉적 사고"라는 말을 생각해낸 것도 이 공간 설치 작업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개별적인 요소들과 각각의 형태들이 일으키는 시지각적 효과 때문일지도 모르는데, 마치 본 작업에 앞선 에스키스(esquisse)나 회화적 장면을 완성하기 위한 여러 장의 밑그림들처럼 어떤 상황에 대해 연속적인 변화와 움직임을 살피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따라서, 정은별의 작업은 뚜렷한 완성도를 보여주기보다는 일련의 변화 및 붕괴의 과정이나 미완의 단계에 계속해서 머물고자 하는 조형적인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는 인상마저 든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을 최종 설치하는 과정에서 작가 한재석과 협업한 《쿵 하면 흔들리는 세계》는 한재석의 스피커 장치를 동력으로 삼아 미완의 혹은 미결정적인 움직임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분의 존재들"로 작가가 이름 붙여 놓은 각각의 입체 형상들이 구조적으로 함의하고 있는 전복적인 제스처이며, 그것이 개별적인 형태들의 움직임을 시사하면서 결과적으로는 화폭으로 연결되는 그림의 다차원적 공간에 대한 크고 작은 단서들을 제공해준다는 점이다. ● 《쿵 하면 흔들리는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개별적인 형태들을 보자. 소리의 파동으로 미세하게 흔들리는 저 연약하고 위태로운 형상들과 그것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거대한 공간이 그 속에 담아내고 있는 박제된 풍경들을 말이다. 정은별은 이 연쇄적인 긴장감을 반복해서 다루는데, 큰 것과 작은 것, 단단한 것과 연약한 것, 느린 것과 빠른 것, 정지된 것과 움직이는 것, 안에 있는 것과 밖에 있는 것, 살아 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 등의 이중적인 가치를 나란히 병치함으로써, 그것이 발생시키는 미완의 불확실한 감각들을 한시적으로 붙잡아 두고자 하는 속내를 내비친다. 그리고 이때, 그의 행위에서 비롯되는 끝없는 전복과 변환도 간과할 수 없을 텐데, 회화적 책무와 회화적 유희 사이에서 쉼 없이 왕복하는 그의 태도가 결국 어떤 것으로도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작업의 맥락을 스스로 변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정은별은 "드로잉적 사고"를 통해 회화의 틀을 유연하게 넘나들며 자족적인 손의 유희를 극대화 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회화라는 매체의 공간 구조를 참조적으로 갱신해 오고 있다. 그에게 회화란, (체화된 감각으로서) 동양화에 기반한 매체다.

정은별_촛불이꺼지면_종이에 아크릴채색, 잉크, 꼴라주_132×32cm×6_2021

《촛불이 꺼지면》(2021)은 전시 동선을 마무리 짓는 위치에서, 우리를 작가가 내내 고민했던 (관객에게) "보여지는 방법"에 대해 다시 추론해 볼 상황에 놓이게 한다. 그는 커다란 여섯 폭의 연속하는 그림을 겹쳐서 배열해 놓고는, 그 줄지어 나란한 그림의 모서리들로 시선을 모은다. 거기에는 미세한 움직임과 희미한 사라짐이 일련의 서사를 구축하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으며, 그 공간에는 거대한 풍경과 그 풍경들 사이로 벌어진 여백 같은 틈새에서 수수께끼처럼 발생한 작은 움직임이 암시되어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 미세한 파열이 큰 공간을 아우르는 듯한데, 마치 거대한 산수화 몇 폭 앞에서 현실의 진부한 풍경을 파고들어 진경의 세계와 마주하려 했던 "보는" 이들의 여분의 망상처럼 말이다. 이는 동양화의 세계관이 지닌 미디어적 수월성이 어쩌면 정은별의 작업에서 "여분의 움직임"이라는 수사로 참조되는 일련의 현상일 지도 모르겠다. ■ 안소연

Vol.20210617g | 정은별展 / JUNGEUNBYUL / 鄭은별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