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n and Flesh : Sun Lah

라선영展 / SUN LAH / 羅善榮 / sculpture   2021_0624 ▶ 2021_0731 / 일,공휴일 휴관

라선영_Skin and Flesh : Sun Lah展_갤러리 마크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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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갤러리 마크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갤러리 마크 GALLERY MARK 서울 서초구 사평대로20길 3 B2 Tel. +82.(0)2.541.1311 www.gallerymark.kr

그것은 무한하게 안으로 확장한다: 라선영의 존재론 ● 라선영만큼 사물성에 끈질긴 관심을 기울이는 작가도 드물 것 이다. 초기부터 지금까지 그에게 사물성은 고착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물은흐른다. 아니 흐르기에 사물이다. 라선영은 사물을 확대 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한다. 확대가 양적인 증가라면, 확장은 질적인 심화이다. 역설적으로 그의작업은 양적인 감소를 의미한다. 특히 목재를 사용한 그의 작업들에서 이 확장의 의미는 더욱 두드러진다. 그의 작업은 덜어냄으로써 깊어진다. 사실상 그의 조각은 양적인 감소를 통해 질적인 확장을 만든다. 양적으로 더 작아질수록 그의 작품은 질적으로 더 거대해지고 넓어진다. ● 『Skin and Flesh』에서 이런 경향은 더욱 솔직해졌다. 이제 라선영의 작품은 가시성의 경계를 넘어 공감각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양적인 확대는 가시적이기에 계측 가능하다. 그러나 질적인 확장은 결코 가시화해서 계측할 수 없다.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을 한 그루씩 양으로 셀 수 는 있다. 숲은 양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 나무들의 성장을 양으로 셀 수 는 없다. 성장은 질적인 확장이기 때문이다. 밤거리에 늘어선 가로등의 수를 셀 수 는 있지만, 그 가로등이 던지는 불빛에 반응하는 우리의 정서를 셀 수 는 없다. 이 또한 밀도의 확장이기에 그렇다.

라선영_Society_홍송_높이 60cm_2020

라선영의 작업은 외적 확대와 내적 확장이라는 두 축에 대한 관심이었다. 두 축이야말로 주어진 자리를 벗어나는 사물성의 양태를 보여주는 기준이었다. 예를 들어 목재를 보자. 원목의 규모를 감소시켜서 내적 확장을 도모한 기존의 작업은 개체의 수를 양적으로 증가시킴으로써 외적 확대와 내적 확장의 연관성을 추구했다. 이런 작업은 다분히 현상학적이었다. 모티프는 대상을 만들고 그 대상이 내적 확장을 가져왔다. 그의 작품들은 겉으로 작지만, 그렇기 때문에 안으로 크다. ● 사물에 내재한 질적인 심화의 의미를 탐구하고자 했던 지난 작업들을 거쳐서 라선영은 마침내 지금까지 세공한 자신의 문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자 한다. 『Skin and Flesh』에서 그의 작품들은 장소성에 머물지 않고 그 위치를 벗어난다. 목재는 최소한 양적인 감소를 거쳐서 특정장소에 서 있다. 그럼에도 이 목재는 더 이상 나무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전작업과 마찬가지로, 본래의 위치를 벗어나 있다. 이 벗어남이 곧 작품의 기호를 만들어내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이런 기호와 의미 는 기존의 언어체계에서 주어지는 것 이다. 라선영은 이조차도 구속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라선영_The thinker_높이 20cm_2011

그는 아예 사물성을 해방시켜 버리려고 한다. 이전 작업에서 우리는 이미 주어진 선입견을 통해 그의 작품을 '해석' 할 수 있었다. “사람들” 이란 약호는 이미 주어진 것 이다. 그러나 라선영은 이런 편의를 없애버렸다. 그는 우리에게 사물성을 찬찬히 들여다 볼 것을 주문한다. 우리는 사물성 자체에 귀 기울여야 하는 순간 조차도 조급하게 언어로 들어 와 있는 의미를 불러내는 습관에 물들어있다. 이와 같은 합리적 이해를 우리는'감상'이라고 부른다. 라선영은『Skin and Flesh』에서 이런 구태의연한의 미화에도 전하고 있다. 얼마나 놀라운 도약인가. 그의 작품은 가시성의 영역마저 벗어나서 확장한다. 개체의 확대조차도 무의미해진다. 위치를 벗어난 소리가 비가시성의 영역을 끌어낸다. 현상학을 넘어선 일원성의 존재론이 이 지점에서 출현한다. ● 조각은 기본적으로 기하학적일 수 밖에 없다. 사실상 모든 시각예술이 기하학의 문법을 형식 의 논리로 채택한다. 그러나 이 기하학의 관념은 그 작품자체에 내재하지 않는다. 그 관념은 우리의 것이다. 작가는 이 관념을 사용해서 작업을 한다. 그리고 우리 또한 이 관념에 근거해서 특정작품을 주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우리는 이 시선을 체험적인 것 이라고 믿지만 앞서 말했듯이, 특정 작품에 대한 의미화는 약호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항상 존재하는 우리의 인식에게 특정한

라선영_The Five Girls (society)_레진_Girl A: 높이 48.5cm_2010 라선영_The Five Girls (society)_레진_Girl B: 높이 50cm_2010 라선영_The Five Girls (society)_레진_Girl C: 높이 46.5cm_2010 라선영_The Five Girls (society)_레진_Girl D: 높이 31.5cm_2010 라선영_The Five Girls (society)_레진_Girl E: 높이 74.5cm_2010

작품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은 것 이다. 여기에 대항해서 라선영의 작업은 의미화에 대한 의심을 포기하지 않는다. 약호의 확대에 불과한 의미화를 우회해서 라선영은 사물의 존재론을 정립하고자 한다. ● 우리는 너무도 손쉽게『Skin and Flesh』를 하나의 '몸' 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라선영은 둘 의 범주가 결코 하나일 수 없다고 말한다. 둘은 하나를 이루고 있지만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 라고 믿는 '몸' 이야말로 수많은 내적 확장의 장소일 것이다. 라선영의 '몸'은 이런 의미에서 인식이전에 존재하는 무의미의 선행성이 아니라, 존재함으로써 사유하는 삶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이 삶 자체에서 무의미는 의미와 일체이다. 무의미가 없다면 의미도 없다. 마찬가지로 비가시성이 없다면 가시성도 없다. 우리가 눈앞에 보고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소리' 라는 비가시성을 통해 비로소 형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 형체 역시 끊임없이 벗어남으로써, 수많은 가시성을 내적으로 확장함으로써, 존재한다. 라선영의 작품에서 가만히 있는 사물은 없다. 끊임 없이 위치를 벗어나는 숱한 질감과 밀도의 확장이 그의 작업을 규정하는 독창성이다. ■ 이택광

라선영_Straw hat_피나무_높이 14cm_2020

I can think of no artist other than Sun Lah that is more consistently interested in 'thingness'. From early on in her career, she did not regard anything as a fixed object. For her, all objects flow and the 'flow' became her focus as a thing in itself. ● In her world, an object is both extensive and intensive. Any entity has an extensive quantity and an intensive quantity. Extensive quantity is quantitative accumulation, while intensive quantity is qualitative depth. However, her sculpture creates quantitative decrease. In particular, her art gains its the paradoxical meaning by the profundity of it existence as wooden sculpture. She cuts off margins of a block of timber for her work. This diminution of quantity of the woodblock achieves her outcome. The lesser quantitatively, the bigger qualitatively. ● 『Skin and Flesh』 shows this tension more frankly. Lah intends to get over visible boundaries and tries to bring in the synesthesia of things. Extensive quantity can be calculated, but intensive quantity cannot be measured by calculation. You can count the number of trees in the forest but cannot gauge the growth of the trees. Growth is quality, which can be thought of as 'intensive quantity'. ● Lah is always interested in the polarity between 'extensity' and 'intensity'. These two bars provide her with a criterion for recognizing the mode of objects, which escape from a fixed locus. ● Regarding her wooden sculpture. In previous work, she decreased the size of the material and increased the number of individual items for her inquiry into the interaction between extensity and intensity. The works were in this sense, phenomenological. It is her motive that produces an object and her intention that is expressed into the thing. Her pieces are small, yet at the same time grander with their purpose. ● Lah attempts to reveal her elaborated grammar through previous works, which investigated the qualitative depth within thingness. In 『Skin and Flesh』, her instalments do not stay in a single place but float away from their point. The wooden material stands at the location but decrease in quantity. This thing is no longer a tree, it is dislocated. Dislocation brings forth signs and meanings. Signification relies on our linguistic system. Lah suggests to the viewer that language is trapped by the system. ● She wants to liberate thingness from signification. In her early works, we can 'interpret' them with those signs, yet, in this exhibition, she removes the possibility of such convenient signification based on the given codes. She asks us to observe materiality. We habitually make sense through signification, even when listening to the voice of things. We call this habitual reasoning “appreciation”. Lah challenges this static signification. This rejection of meaning is an unprecedented leap towards a novel dimension. Her works go beyond the realm of the visible. Any numerical increase is meaningless here. The dislocated sonic effect resonates with the invisible and a monistic ontology emerges from this sonorous device. ● Above all, all works of art stand for the geometrical grammar in their formal logic. However, the idea of geometry does not belong solely to works of art. We all form ideas, but an artist uses the idea for their work. We then use this idea in order to understand the work of art. But, this observation is subjective. We believe that our gaze is empirical and universal, but the meaning of any work is based on a unique code system. With this conceptual knowledge, is any work of art significant any longer? Against this given perception, Lah suspects the mechanism of this signification. Opposed to the extensive sense of a unified code system, Lah attempts to unify the ontology of things. ● It might be easy to think of Lah's sculpture as a 'body'. However, she suggests skin and flesh cannot be a single body. Two elements shape one body but exist separately. Therefore, the body as such would be the locus of multiple intensities. In this sense, Lah's concept of the body is not the primordial stance before recognition but the ontological substance of thinking. Thinking, in which sense and nonsense are intertwined. There is no sense without nonsense. Likewise, there is no visible without the invisible. What we observe in her instalments reveals its invisibility by its sonic effect. ● Nevertheless, the invisible reality comes into existence by continuously escaping from its figurative quality and constantly growing in its intensive quantity. In her works, there is no inert thing. Her originality lies in the way in which the intensive quantity is endlessly increasing through the dislocation of its texture and density. ■

Vol.20210624h | 라선영展 / SUN LAH / 羅善榮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