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을 찾아 떠난여행 Searching for dreams

변대용展 / BYUNDAEYONG / 卞大龍 / sculpture   2021_0625 ▶ 2021_0801 / 월요일 휴관

변대용_오로라를 찾아 떠난 여행_FRP에 우레탄도장_8m이내 가변설치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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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주관 / 구리문화재단_아트몽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국민체육진흥공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구리아트홀 갤러리 GURI Art Hall Gallery 경기도 구리시 아차산로 453(교문동 390번지) Tel. +82.(0)31.580-7900~1 www.gart.go.kr www.guriartshallexhibition.com

구리아트홀 아트갤러리에서는 6월 25일부터 8월 1일까지 33일간 구리문화재단기획전시 변대용 개인전 『아이스크림을 찾아 떠난 여행:Searching for Dreams』을 개최합니다. 본 전시는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의 전시공간 활성화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국민체육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진행됩니다. ●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변대용 작가는 특유의 따뜻한 색감과 형태의 작품들을 통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아티스트입니다. 특히 친근하고 귀여운 북극곰 형상의 동화같은 작품들을 통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표현합니다.

변대용_얼음 꽃_FRP에 우레탄도장_170×160×160cm_2020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하얀 털에 까만 코를 가진 사랑스럽고 친근한 북극곰과 아이스크림이 함께 등장하는 일련의 연작은 사실 지구온난화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시작된 작품입니다. 작가는 북극곰이 먹을 것이 없어 북극 탐험대의 숙소 뒷 편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을 TV에서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은 이후, 지구온난화로 파괴되어 가는 자연을 '녹아 내리는 아이스크림'과 '그것을 찾아 헤매는 북극곰'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 하지만 이 작품은 보는 이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입니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찾아 헤매는 북극곰을 보면서 아이스크림을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나 꿈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스스로를 위한 위로와 위안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여행을 떠나는 북극곰들을 보며 여행의 진정한 의미나 휴식, 힐링을 떠올려 볼 수도 있습니다. ● 당신에게 아이스크림은 무엇인가요? 무더운 여름 우리 함께 아이스크림을 찾아 함께 떠나볼까요? ■ 구리문화재단

변대용_집으로_FRP에 우레탄도장_73×75×35cm_2018

연기하는 곰_서사 속 캐릭터의 역할 ● 과거 계급사회에서는 신분에 따라 구획된 차별들이 그 사회를 지탱하는 동력이었다. 귀족과 노예처럼 우리에게도 양반과 노비들이 있었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이 같은 사회를 구성하면서도 각기 다른 계급은 서로 범접할 수 없거나 아예 외면하는 구분된 문화들을 공유했다. 이른바 좋은 것, 귀한 것, 그리고 교양과 지식은 상위계급의 전유물이었다. 꽤 오랜 기간 인간의 문명은 이런 범주와 차별들이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지만 서로를 대상화 하며 존재하였다. ● 계급 간의 문화적 차별과 범주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현대문명사회에서는 과거의 계급문화의 병폐를 개선하려 한다. 평등이나 차이에 대한 인정, 페미니즘 같은 움직임이 새로운 지향점이 될 것인지 아니면 명분으로 표상될지는 역사가 말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의 계급 간의 굳건한 문화 경계들의 국면은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변대용_아이스크림을 옮기는 방법_FRP에 우레탄페인트_93×104×30cm_2018

다양한 지표들이 있고 또 몇몇의 예시들이 떠오르지만, 당장 68학생운동의 의의와 결과를 상기해 본다. 아웃사이더였던 히피문화와 사이키델릭, 가끔은 무정부주의적이며 폭력적이기 까지 했던 비주류의 세력들이 혁명이 되던 날, 수많은 세월 속에 굳은살처럼 배어있던 성(聖)과 속(俗)의 구도가 마침내 균열을 일으켰다. 이른바 고급문화는 당시 추상개념으로만 존재하는 대중문화의 폭동과 같은 세력과 맞닥뜨려야 했다. ● 비교양적이고, 저급하고, 때론 폭력적이며 어떤 교훈도 없이 저급한 하위문화로 존재했던, 근본 없는 대상은 대중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고 지금까지 불가침의 성스러운 영역을 침투해 들어왔다. 앤디워홀은 시쳇말로 딴따라 배우와 가수들을 성스러운 예술 공간에 초대했고 로이리히텐슈타인은 저급한 대중잡지의 만화 캐릭터를 동반했다. TV의 발명은 이른바 대중문화에 포르쉐 엔진 동력을 달아준 격이 되었다. ● 미국은 거대한 자본력으로 그러한 세력을 품어 산업화에 성공했다. 타잔, 베트맨, 슈퍼맨과 같은 백인 영웅 캐릭터를 대중에게 소비재로 공급했으며, 미키마우스를 대표 모델로 한 디즈니 군단은 이전에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산업 유형을 창조해 냈다. 미술계의 성역은 피카소와 뒤샹의 오브제가 테러(?)를 저지른 이후, 지금까지의 미학적 문법을 완벽하게 소거한 팝아트가 맹위를 떨치게 되었다. 소위 대중을 위한, 대중의 의한 대중의 예술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변대용_파종을 위한 준비_FRP에 우레탄도장_120×60×50cm_2020

변대용 작품을 응시하면서 지난 6,70년간 미술계 안팎의 문화적 변화들의 장면들이 오버랩된다. 오랫동안 그의 작품을 관찰해 왔던바, 이제 그의 작품의 완결성과 지향점은 견고해졌다. 그는 대중적 캐릭터를 생산하지만, 여전히 성역의 '예술 소비재' 에 관련해 있다. 그의 이런 지향점은 마치 제프 쿤스의 '가벼운 감성'과 같은 결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놀랍도록 가벼운 감성은 과거의 미학적 언어 권력으로 질타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문화를 감각 해내는 능력에 대한 찬탄으로 바꾸어 놓았다. ● 예술의 기본기 중에(물론 모더니티의 입장에서) '천재적 재능의 아티스트에 의해 창조된 유일무이한 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생산물이 여전히 미술관과 갤러리에 전시되는 위상을 공유한다. 변대용 역시 멀지 않은 과거에 미키마우스와 마이클 잭슨의 초상을 제작한 적도 있다. 이미 있는 이미지의 사용은 저작권을 침해한 것도 아니며, 대중문화 콘텐츠를 소재로 했다고 천박하거나 예술가적 양심에 위반한 것도 아니다.

변대용_책보는 곰_FRP에 우레탄도장_50×40×40cm_2019

이번에는 마치 북극곰을 연상하는 백곰들을 등장시킨다. 그 곰은 로댕의 낭만적인 포즈를 하고있는 조각도 아니며 헨리무어의 아름다운 조형 양감도 아니다. 소위 우리가 예술로써 조각이라 불러왔던 경계 그 너머의 것. 어쩌면 제프 쿤스의 핑크팬더에 가깝다. 우리는 이러한 입체 덩어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많은 사람들이 팝아트, 팝스컬프쳐로 명명하길 원할지 모르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의 삽화를 입체물로 만들어낸 캐릭터로 소비하면 격이 떨어질까? 아무튼 애정어린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곰들의 스틸들은 모두가 의인화되어 우리의 모습을 견주는 장치에서 존재한다.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한 곰들은 마치 관찰자를 의식한 듯 눈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때론 언덕을 산책하는 곰들. 가족처럼 보이는 무리들이 너무나 편안하게 그들의 무대에 있다.

변대용_길을 나서다._FRP에 우레탄도장_140×560×110cm_2021

변대용의 이번 작품의 특징이라면 하나의 장면을 위한 연출이 아니라 마치 스토리텔링을 통해 다음 장면에 연장하고 있다는 점이며, 이 연작들의 연쇄는 또 하나의 종합적 동화를 연출해 낸다는 것이다. 등장 캐릭터들의 단편적인 연기력에 더해 동화적 네러티브를 연상해 내도록 하는 장치는 문학적 섬세함과 구조적 완결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의 작업에서 새롭게 목격한 영상이 이러한 유추를 확고하게 증명한다. ● 작가의 손에 의해 연출된 각각의 캐릭터들은 이제 우리 눈앞에서 훌륭한 연기자로 등장하며 그 들의 품세 하나하나에는 우리 삶의 단편들이 랩핑되어 너무나 친근하고 사랑스런 이미지로 재생산된다. 기술적 완결성에 더해 뛰어난 스토리 연출력은 그의 작업에 응시하는 시간을 연장하고 장편 서사에 몰입시킨다. 이러한 진전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팬덤을 만드는 작가로 거듭나는 것이 아닐까? 필자는 그의 작품이 더 이상 팝아트로 소비되는 언어 반복에서 자유로워지기를 희망해 본다. ■ 김영준

Vol.20210626d | 변대용展 / BYUNDAEYONG / 卞大龍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