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율 The Rates Of Change

라이언 갠더展 / Ryan Gander / mixed media   2021_0624 ▶ 2021_0917 / 월요일 휴관

라이언 갠더_변화율展_스페이스K_서울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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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1_0624_목요일_10:00am

주최 / (주)코오롱

관람료 / 성인 5,000원 / 학생(8~19세) 3,000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K_서울 SPACE K_Seoul 서울 강서구 마곡중앙8로 32 Tel. +82.(0)2.3665.8918 www.spacek.co.kr

영원한 것은 없다-라이언 갠더 『변화율』 전시를 중심으로 ● 여기 넘어진 의자가 있다. 1) 의자는 넘어진 채 야외에 방치된 듯 눈이 수북이 쌓여있다. 의자는 사용자의 습관과 체형 그리고 시간을 간직한 채 자연의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수많은 칼들의 무덤으로 이루어진 철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칠왕국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던 것처럼 의자는 인간의 욕망 중 하나인 권력을 상징한다. 피로사회 2) 에 사는 우리는 더 좋은 의자에 앉기 위해 스스로 가해자가 되어 자신의 노동을 착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과 가장 가까이 있는 물건인 의자는 그 용도와 역할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퇴근 후 안락함을 주는 의자, 사무실 업무나 공부를 위한 의자, 쉴 틈 없는 계산대의 의자, 신체 일부의 기능을 대신하는 의자(휠체어) 등, 다양한 종류의 의자는 사용자의 직업이나 습관을 비롯한 많은 부분을 보여주기에 페르소나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는 넘어진(물리적이거나 상징적인 의미의) 의자의 모습을 목격한다. 실제로 라이언 갠더는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자신이 휠체어에서 떨어진 모습을 본 뜬 작품 「아무도 모르는 작품(The Artwork Nobody Knows), 2011」을 발표하며 "최악의 위치에서의 자화상"이라는 설명을 덧붙인 바 있다. 하지만 그 절망적인 상황은 더 낮은 곳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구도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서야 우리는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던 것과 너무도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가진다. 그리고 비로소 의자의 영원한 주인은 없다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힘들여 차지한 그 의자는 결국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되거나 버려진다.

라이언 갠더_변화율展_스페이스K_서울_2021
라이언 갠더_Upturned Le Corbusier chair following an afternoon of snowfall_ 재, 마블 레진, 가죽, 금속_81×68×70cm_2017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식사 중 음식을 흘리는 경우가 잦아졌다. 아마도 잡생각이 많아서일 것이다. 온전히 먹는 그 순간에 집중하지 않는 것. 그러다 보니 몸은 음식 앞에 있되 생각은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후회하거나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데 가 있곤 한다. 식당이나 커피숍 에서 자주 보이는 풍경 중 하나는 서너 명의 친구들이 모여 각자의 핸드폰을 보는 일이다. 몸은 함께 친목을 도모하는 중인데 정신은 각자의 세계로 흩어져 있는 것이다. 코 앞에 있는 음식을 흘리고, 마주본 친구와 가족을 내버려 둔 채 우리는 자주 가상 속 아바타의 삶에 빠져든다. 인생에 약 100년의 유효기간이 있다면 나는 과연 몇 년을 온전하게 '지금'이라는 점 위에 존재할까. ● 라이언 갠더의 대형 조각 「우리의 긴 점선(또는 37년 전), 2021」은 자갈 위에 시계가 감겨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자갈은 갠더의 집 근처 해변에서 수집한 것이고 시계는 50년대 생산된 아날로그 시계 모형이다. 이 작품은 '인간이 만든' 시계가 '자연이 조각한' 자갈과 함께 대형 조각으로 박제되어 시간의 중요성과 무게를 피력하고 있다.

라이언 갠더_Agent of Connectivity_ LED 홀로그래픽 디스플레이_43.5×43.5×9cm_2018

빅벤(Big Ben)의 본고장 영국에서도 아날로그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급기야 2018년에는 아날로그 시계를 영국의 교실에서 퇴출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 이유는 놀랍게도 학생들이 아날로그 시계를 볼 줄 몰라 시험시간에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9년 미국의 ABC방송에서는 길 가던 사람들에게 시간을 물어보는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어린이는 물론이고 상당수의 성인 역시 아날로그 시계를 볼 줄 모르는 모습은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현시대는 디지털 시계의 시대다. 핸드폰이 시계의 역할을 점점 대체하고 있으며 아날로그 시계는 점점 더 액세서리화되어가고 있다. 바늘이 지워진 라이언 갠더의 시계 조각을 보며 요즈음의 어린이들은 사라진 바늘을 상상할까? 아니면 갤럭시워치나 애플워치의 전자계기판을 떠올릴까? 갠더의 홀로그램 작품에 등장하는 가정식 무선전화기 3) 역시 어느 순간엔 이 물건의 용도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시간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라이언 갠더_A Moving Object, or Intent_ 청동에 에나멜 페인트_10×15×11cm_2017
라이언 갠더_Two hundred and fifty seven degrees below every kind of zero_유리섬유, 리본_36×26×26cm(리본 제외)_2018

한순간에 우리는 아이스크림 4) 을 떨어뜨릴 수도 있고 풍선 5) 을 하늘에 빼앗길 수도 있다. 내가 아는 한 불문학자 겸 문화평론가는 프랑스 유학 당시 아주 가난한 생활을 했는데, 어느 여름 빵을 사면 며칠을 버틸 수 있는 돈으로 하겐다즈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샀다고 한다. 하지만 한 입 베어 먹으려던 순간 아이스크림은 바닥에 떨어졌고, 무려 30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의 상실감을 맛보았다고 한다. 그 순간 느끼는 상실감의 (특히 당사자가 어린이라면) 크기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미술관 안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우연히 떨어진 것처럼 연출된 아이스크림이 실제가 아니라 조각이란 사실을 깨닫는 순간 관람객은 작가의 유머러스함에 감탄하며 웃음 지을 것이다. 물론 그 웃음은 본인의 아이스크림이 아니기에 가능하다. ● 사랑의 감정이나 바이러스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라고 말했던 동화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여우의 메시지처럼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거나 볼 수 없을 때가 많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구호와 자극적인 뉴스 헤드라인과 영상을 접한다. 그 수많은 외침과 정보 속에서 나에게 유익한 콘텐츠를 골라내는 일 역시 수월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내용의 경중과 상관없이 작은 목소리는 자연스레 묻히기 마련이다. 무대 뒤나 우리 시야보다 낮은 곳, 주인공이 아닌 모든 것들이 우리와 함께 이 세상에 존재한다. 작가의 예언 쥐 시리즈 중 하나인 『끝(The End), 2020』에서는 작고 낮은 시선을 가진 존재가 삶의 메시지를 들려준다. 외치는 사람들 속에서 어린아이의 작은 목소리로 삶의 본질을 질문하는 이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 관람객은 평소 잘 취하지 않는 자세로 웅크린 채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라이언 갠더_변화율展_스페이스K_서울_2021

어쩌면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모두 환상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COVID-19 이후 세계 곳곳은 봉쇄령이 내려지고 공장들은 멈췄다. 그때 우리는 잠시나마 회복해 가는 지구의 모습을 경험했다.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바이러스로 죽어가고 빈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데 반해 다른 곳에선 돈 축제가 열리고 있다.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실물경제와 유래 없는 호황을 누리는 자산시장 사이에서 세계 3대 중앙은행은 쉴 틈 없이 돈을 찍어냈다. 우리는 바이러스 대유행이 제시한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마주했다. 한 집에 살면서도 얼굴 볼 일이 없었던 가족 구성원들은 '가족은 함께 산다 (혹은 하루 종일 함께 있는다)'는 것을 제대로 경험했다. 봉쇄령 덕분에 상호간의 두터운 신뢰를 쌓은 경우도 있지만,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갈등이 가시화되며 어떤 가족은 분열을 맞기도 했다. 때로는 심심함에서 오는 답답함의 이면에서 삶의 여유와 상상력의 발현을 맛보기도 했다. 이 바이러스 대유행 역시 곧 지나갈 것이다. 삶과 죽음의 간극 사이에서 어떤 이는 또다시 공장을 돌리고 어떤 이는 여전히 코인을 채굴할 것이다. 그리고 남극에서는 여전히 빙붕이 사라져 가고 예언 쥐의 말처럼 눈마저 내리지 않는 내일이 올지도 모른다. 시간은 흐른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신에게서 수학자로 넘어간 이후 우리는 일출과 일몰(자연적 기호)이 아닌 시계(관습적 기호)에 맞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미 밝혀진 물리학적 증명들에 기초해 보아도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다. 질량과 중력 그리고 속도를 비롯한 수많은 변수들로 현재라는 말 역시 사적인 개념이 되었다. 내가 지금 바라보는 태양은 8분 전의 태양이고 높은 곳에 사는 사람의 시간이 낮은 곳의 사람보다 빨리 흐른다는 사실 등을 알아채기에 우리의 감각은 턱없이 흐릿하다. 넘쳐나는 관습적 기호들에 묻혀 자연적 기호에서 메시지를 읽어내던 감각 역시 자꾸 퇴화해 간다.

라이언 갠더_Natural and conventional signs (Some painted signs, whilst others stared at the moon)_ 12온스 아마사 리넨 마대, 10온스 인디고 블랙 일본 데님, 아크릴채색, 프로필렌글리콜 플로어 페인트_180.5×268.5×3.5cm_2021
라이언 갠더_A long story, or The squatters (Lottie meet Hesse's Ingeminate (1965))_나무, 라텍스, 레진, 인조모피, 페인트, 애니메트로닉스_13.3×38.1×27.9cm_2020

나와 당신은 삶과 죽음이라는 시간의 좌표 위에서 화살촉이 가리키는 한쪽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우리가 죽은 후에도 꽤 오랫동안 여전히 달은 뜨고, 누군가는 구호 6) 를 외치고, 길고양이 7) 는 낮잠을 즐길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 여기 넘어진 의자가 있다. ■ 이장욱

* 각주 1) 눈 내린 오후 뒤집힌 '르 코르뷔지에' 의자, 81×68×70cm, 2017 2) 2010년 독일에서 출간된 철학자 한병철의 저서 『피로사회(Müdigkeitsgesellschaft)』 3) 연결의 에이전트, 43.5×43.5×9cm, 2018 4) 움직이는 오브제, 또는 의도, 10×15×11cm, 2017 5) 모든 종류의 0보다 257도 낮은 온도, 36×26×26cm (excluding ribbon), 2018 6) 자연적 기호와 관습적 기호 (다른 이들이 달을 바라보는 동안 기호를 그리는 누군가가 있었다), 180.5×268.5×3.5cm (overall), 2021 7) 긴 이야기 또는 불법 거주자들 (고양이 로티가 조각가 에바 헤세의 『반복하다(1965)』를 만났을 때), 13.3×38.1×27.9cm, 2020

Vol.20210626e | 라이언 갠더展 / Ryan Gander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