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morning, USSR

USSR: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2021_0630 ▶ 2021_073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러시아 근현대 작가 55인

주최,주관 / NAMA Gallery_mM Artcenter

관람시간 / 10:00am~06:00pm

나마갤러리 NAMA Gallery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80-1 1~3관 Tel. +82.(0)2.379.5687 www.namagallery.co.kr

소비에트 미술의 숨겨진 낭만스러운 면모 The lesser known romantic side of Soviet art ●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초기에 이르는 소비에트의 아방가르드 예술은 국제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반면,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제작된 작품들이며, 이 시기부터 1990년대 초까지 예술과 문화는 거의 연구되지 않은 실정이다. 이 시기 동안, 소비에트 국경은 외부로부터 봉쇄되었고, 공산 정부는 외국으로 노출되는 정보를 통제하며 제한하고 검열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이러한 자의적 고립으로 인해, 전후 소비에트의 미술은 오늘날에도 외국인들에게 베일에 가려진 측면이 있다. 이번 『Goodmorning, USSR』전(展)은 향수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리얼리즘의 변주가 결합된 특유한 예술적 전통 양식을 조명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작품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소비에트가 겪었던 사회적·정치적 혼란이 직접 드러나지는 않는다. 대신에, 이 작품들은 급변하지 않는 '그 무언가'를 견지하려는 열망을 다루는데, 특히 풍경과 정물을 통해 일상의 난관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낭만주의적 미술에 대한 전통은 다양한 지역적인 양식과 유행을 배경으로 하여 발전되었다. 전후의 소비에트 연방은 러시아를 포함하여 뚜렷한 민족, 종교, 역사와 미술적 전통을 가진 15개 공화국의 연합이었다. 연방은 유럽의 문화권에 속했던 국가들(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역사적으로 서아시아 기독교의 거점이었던 국가들(예를 들자면 아르메니아와 조지아),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무슬림 국가들(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로 이루어졌었다.

M.V. Fayustov_모스크바 근교의 눈 속에서_캔버스에 유채_120×190cm_2010
B.M. Lavrenko_의사의 초상_캔버스에 유채_100×70cm_1949
M.K. Anikeev_군모를 쓴 군인_패널에 유채_40.5×32cm_1962
M.K. Anikeev_쎄료자-트랙터 운전수_패널에 유채_40.5×32cm_1954
M.K. Anikeev_카프카즈에서 온 대학생_패널에 유채_36×28.5cm_1953

소비에트에서 가장 정치화된 미술은 1945년부터 1953년 사이, 스탈린 독재정권 치하에서 제작되었다. 이 시기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이 절정을 이루었는데, 당시 화가들은 공산당 간부들이 제공한 목록에서 작품의 주제를 선정해야만 했다. 노동자들의 초상화가 그 대표적인 주제로, 이러한 접근법을 적용할 수 있는 좋은 예가 체바코브(N.N. Chebakov)의 「여성 노동자 Female Worker」다.

N.N. Chebakov_여성노동자_캔버스에 유채_105.5×68.5cm_1949

이후에는 약간의 자유가 주어졌던 짧은 기간, 즉 해빙기(1953-1964)가 나타난다. 비록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공식적으로 폐기된 것은 아니었으나, 화가들은 무엇을 어떻게 그리는지에 있어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를테면 스토좌로프(V.F. Stozharov)의 「발샤야 프이싸(마을명)의 급류 A Rapid Stream in Bolshaya Pyssa」(1964)가 그러한 작품으로, 두터운 붓터치로 표현된 낭만적인 교외의 풍경이 드러나고 있다. 당시에는 소련과 미국의 냉전이 군사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인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었으며,

V.F. Stozharov_발샤야 프이싸(마을명)의 급류_패널에 유채_42×73cm_1964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는 소비에트 미술의 주적(主敵)이었기에 모든 방식의 추상은 공식적인 소련 미술계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리투아니아 화가 죠롬스키스(K.A. Zhoromskis)의 「벽 Wall」(1964-1965)은 그러한 이 시기의 작품 중 두드러지게 예외적이었는데 그것은 화가가 전쟁 중 이주하여 외국에서 거주하며 활동했기 때문이다.

K.A. Zhoromskis_벽_캔버스에 유채_101×86cm_1964~5

해빙기 이후에는 약 20년간의 정체기(1964-1985)가 이어졌는데, 이 정체기 동안 정치 비판적 미술의 탄생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개인의 아파트에서 홍보도 없이 은밀하게 전시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부류의 예술가들은 정치화된 일상에서 벗어나, 시적인 주제를 선택하려 하였다. 그 예가 벨르이흐(N.E. Belykh)의 「정원 Garden」(1984)으로, 도저히 20세기라고는 보기 힘든, 오래된 목조 가옥들이 세워진 마을이 눈에 뒤덮인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N.E. Belykh_정원_캔버스에 유채_51×70cm_1984

물론 러시아에 속하지 않은 도시들의 정경에도 소비에트의 뚜렷한 문화적 다양성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트빌리시의 가을 풍경 The Scenery of Tbilisi in Autumn」은 우크라이나 태생의 화가 세메이코(L.N. Semeiko)가 조지아의 수도를 그린 작품이다. 또한 투르크메니스탄 출신의 파블로츠키(V.Ya. Pavlotsky)는 모국의 수도를 「아쉬바흐드의 겨울 Winter in Ashgabat」(1978)을 통해 표현했다.

L.N. Semeiko_트빌리시의 가을풍경_캔버스에 유채_70.3×50cm_1979
V.Ya. Pavlotsky_아쉬하바드의 겨울_패널에 유채_49.2×79.4cm_1978

소비에트의 마지막 시기는 이른바 '페레스트로이카(재건)'(1985-1991)라고 불리는 기간으로, 미술에서의 검열과 엄격한 규율이 점진적으로 느슨해지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강력히 규제되었던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초의 아방가르드 예술이 다시 도래하며, 「모퉁이 Corner」(1990)의 화가 로쉰(S.L. Roshchin)과 같은 작가들이 말레비치(Malevich)와 엘 리시츠키(El Lissitzky)를 재조명하기도 했다.

S.L. Roshchin_황금빛의 저물녘_캔버스에 유채_33×33cm_1991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어떤 이들은 소비에트를 이상적인 사회주의의 낙원으로, 또 어떤 이들은 악의 제국으로 바라보았다. 소비에트 내에서 이러한 평가는 훨씬 복잡했다. 소비에트에서 태어난, 더 정확하게는 라트비아 출신 미술사학자인 필자는 독특한 지정학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라트비아는 이웃 국가인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와 함께 두 차례 세계대전 사이에 짧았던 독립에 대한 기억을 소중히 여기며, 자국의 소비에트 연합 탈퇴를 주장한 최초의 연방 공화국 중 하나였다. 러시아를 포함한 다른 공화국들도 점차 소비에트 통치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 이러한 사회상에 대한 예술가들의 반응은 현재 미국과 서유럽 박물관의 전후 소련 컬렉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대립적이고 정치 비판적인 예술의 제작 배경이 되었다. 동시에 많은 다른 예술가들은 정권에 대한 그들의 의견과 관계없이, 현실적인 문제에서 등을 돌린 채 역사와 자연에서 영감을 추구하였다. 그들의 작품은 매우 드물게도 낭만적인 시선을 통해 소비에트 시대를 엿볼 수 있도록 해준다. 이번 전시는 한국 관객들에게 당시 이들의 사회를 짓누르던 정치-사회적 긴장을 기이하게 견뎌낸 작품들을 소개하며, 관객들이 이 놀랍도록 숙련된 리얼리즘 회화의 뉘앙스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숙고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알리스 티펜테일 Alise Tifentale

번역: 이태경

Vol.20210630b | Goodmorning, USSR-USSR: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