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넝쿨: 보이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하여 Rose Vine: The Visible and Invisible

조이경展 / CHOYIKYUNG / 趙利瓊 / installation   2021_0705 ▶ 2021_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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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경 홈페이지_bluecho5.wixsite.com/yikyungcho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인가희

관람시간 / 24시간 관람가능 (Best Time to Visit: 07:00pm~08:00pm)

룬트갤러리 Rund Gallery 서울 용산구 우사단로10길 88 1층 Tel. 070.8118.8955 www.rundgallery.com blog.naver.com/rundgallery @rundgallery

한여름의 열기가 식고 어스름한 푸른 빛이 내려오는 해가 질 무렵, 이태원 우사단길 룬트갤러리 윈도우에 설치된 조이경의 Rose Vine은 은은한 조명을 뿜어내며 붉은 장미넝쿨의 이미지가 더욱 선명하게 발산한다. Rose Vine은 장미넝쿨 이미지를 찍은 사진 이미지와 내부 공간에 설치된 조명 (미러볼 포함)으로 구성된 설치 작품이다. 약 2미터 높이와 너비인 윈도우를 가득 매운 불투명한 장미넝쿨 이미지는 투명한 벽을 지지대 삼아 불규칙하게 뻗어가는 듯 보인다. 그 넝쿨 너머에는 점차 어두워지는 자연 빛과 대비되어 내부에 설치된 인공 조명은 점차 밝게 비쳐지면서 장미넝쿨 이미지는 그 존재감이 더욱 드러난다. 외부의 자연광으로 인해 어두운 건축물 안에서 오묘한 색감을 자아내는 스테인 글라스와 대조적으로 Rose Vine은 내부의 인공 조명에서 비치는 빛이 장미넝쿨 이미지를 투영하여 어두운 거리를 밝히고 있다.

조이경_장미넝쿨_사진 설치_가변크기_2021

장미넝쿨 이미지 사이의 작은 틈으로 갤러리 내부를 들여다보면, 마치 무대 스크린 뒤에 배치된 조명처럼 다양한 색과 종류의 조명들이 각자의 역할을 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중앙 상단에 설치되어 느리게 회전하는 하얀 미러볼, 화면 중앙 상단에 고정된 (태양빛과 유사한) 노랑색 조명, 그리고 하단 상단과 오른쪽 뒷 편에서 두 개의 푸른빛 프레쉬 라이트가 서로 다른 속도로 번쩍거리고 있다. 이러한 리드미컬한 조명의 흐름과 컬러는 장미넝쿨 너머로 무언가 일어날 것만 같은 혹은 일어나고 있는 듯한 긴장감과 몽환적인 공간감을 형성한다. 조명의 효과가 아우러지며, 오묘한 색감과 아우라를 자아내는 장미넝쿨의 이미지는 해가 지는 무렵에나 알아차릴 수 있다. 아마도 낮에는 조명의 대비가 미미하기에, 빼곡히 설치된 장미넝쿨의 이미지는 일차원적으로 창의 표면에 머물 수 있다. 이 때의 장미넝쿨은 마치 안을 감추는 불투명한 벽지처럼 안과 밖을 분리하는 경계선이 된다. 따라서, Rose Vine은 관람객이 마주하는 시간대의 빛에 따라 관람객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밀실의 벽지가 되기도 하고, 조명에 아른거리는 장미넝쿨 이미지로 인해 관람객의 상상력과 기억을 소환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조이경_장미넝쿨_사진 설치_가변크기_2021

빛에 따라 변화하는 Rose Vine의 색감에 비해 장미넝쿨의 이미지는 마치 정물화처럼 전형적이고 고정된 장면을 담고 있다. 매해 오뉴월, 국내에서 친숙하게 볼 수 있는 이 장미넝쿨 이미지는 작가의 거주하는 분당의 한 담장에서 비롯되었다. 두 해에 걸쳐서 조이경은 항상 오월 말부터 유월 초에 만개하는 장미넝쿨을 스마트폰과 DSR 카메라를 이용하여 사진으로 틈틈이 기록했다. 그리고, 시간의 순서와 상관없이 퍼즐 맞추듯 콜라주하여 하나의 보편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었다. 작가가 선택한 장미넝쿨 이미지는 장소에 대한 정보없이, 오직 붉은 꽃와 녹색인 잎사귀가 얽힌 이미지만 전시 공간에서 보여주고 있다. 또한 반투명한 표면의 재질로 인해 유리창과 작품의 경계는 모호하며, 이미지가 공간 사이에서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장미넝쿨 이미지는 장미와 잎사귀 외에 어떠한 부연 설명이 없기 때문에, 마치 카메라에 필터를 끼우듯이 관람객의 인상에 그대로 투영되어 각자만의 기억과 경험에 기대어 장미에 대한 단상이 떠오르게 한다. 조이경은 장미에 대한 추억으로 미국의 영화 감독 데이빗 린치(David Lynch, b.1946)의 영화 블루 벨벳을 언급했다. 작가는 영화의 한 장면인 평화롭게 보이는 장미 '정원 안에 숨어있는 잘려진 사람의 귀에 대해, "...어떤 행위나 풍경이 일상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익숙해지고 평범해지며 지루해진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일상에는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는 '나'만이 가지고있는 비밀스러운 속내도 함께 할지 모른다..."라고 언급했다. 즉, Rose Vine은 '장미넝쿨'라는 보이는 이미지를 넘어, 장미넝쿨 너머의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에 감춰놓은 어떤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조이경_장미넝쿨_사진 설치_가변크기_2021

또한, 보이는 것은 장미넝쿨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조이경의 사진 매체와 재료에 대한 탐구일 수 있다. 장미넝쿨 이미지 표면에서 발견되는 거친 질감은 관람객이 신체적으로 가까이 접근해야지만 발견할 수 있다. 멀리서 보이는 Rose Vine의 표면은 그저 유리창에 붙여진 평평한 이미지처럼 보였으나, 가까이서 바라본 표면은 마치 오일 페인팅의 마티에르처럼 이미지 위에 두터운 투명젤이 혼합되어 유리창에 밀착되어 있다. 이러한 화면의 질감은 작품 내부에서 스며드는 불빛으로 인해 더욱 도드라지며, 관람객은 만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눈으로 붉은 색의 장미와 녹색의 잎사귀를 보며 손으로 작품의 표면을 더듬어 가보면, 작품의 표면에서 형태와 색감에 따라 부드럽고 거친 표면이 경계가 느껴진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작가의 의도적인 붓터치를 시각과 촉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제작 과정에서, 조이경은 장미넝쿨 사진 이미지를 약 2x1m 크기의 대형 OHP 필름지(Overhead Projector Film)에 잉크젯으로 출력하고, 물감 대신 투명 아크릴 젤을 붓에 묻혀 사진 이미지 위에 그리는 행위를 통해 마티에르를 만들었다. 사진 이미지는 접착력이 센 투명젤과 밀착되고, 작가는 OHP 필름지로부터 사진 색소(pigment)가 뭍은 투명젤을 떼어낸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OHP 필름지에 맞닿은 판판한 면을 최종 목적지인 유리창 표면에 붙여서, 마티에르가 도드라지는 반대편 이미지를 관람객이 직접 만지고 볼 수 있도록 설치한다.

조이경_장미넝쿨_사진 설치_가변크기_2021

이는 조이경이 2003년부터 작업해온 사진과 영상 매체의 '사이성 (betweeness)'과 '물질성(materiality)'에 대한 고민이 사진과 회화 매체로 확대된 것이다. 작가는 독일 뮌스터에서 미디어아트를 전공하던 20대 초반에 디지털 사진을 처음 접했다. 필름과 인화 과정이 부재된 디지털 사진의 등장은 작가에게 기존 사진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진 매체 모두를 경험한 작가는 "...사진 매체에서 인화 과정은 사진의 아우라를 생성하는 중요한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시대의 사진의 대부분은 인화 과정이 생략된다. 물성(物性)이 부재한 사진 이미지를 여전히 사진이라고 부르는 상황에서 나는 사진 매체에 대한 태도를 재정립할 필요성을 느낀다..."라고 언급했다. Rose Vine은 작가가 사진 이미지를 물리적으로 이동시키고, 질감을 부여한 실험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조이경의 끊임없는 매체에 대한 탐구로 인해 Rose Vine은 작가의 터치가 담긴 유일무이한 표면을 가지게 되면서, 사진과 회화 매체의 경계를 넘나든다.

조이경_장미넝쿨_사진 설치_가변크기_2021

19세기 초, 프랑스 화학자 네세포르 니엡스(Nicéphore Niépce, 1765-1833)에 의해 사진 영상이 발명된 후, 인상주의 화가는 사실적인 묘사가 아닌, 회화만이 가질 수 있는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노력했다. 모네는 생전 수련을 대상으로 250여점 이상의 회화작품을 남겼으며, 빛에 따라 달라지는 색의 인상을 담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연구 과정에서, 수련은 모네에게 일상 속의 정원에서 늘 볼 수 있는 꽃이었으며, 빛에 따라 다양한 색감을 띈 물에 비친 최상의 회화적 대상이었다. 모네가 수련을 빛과 색을 연구할 수 있는 주요 소재로 여겼 듯이, 조이경은 장미넝쿨을 디지털 사진에 물성을 부여하는 소재로 사용하였다. 아날로그 사진은 점차 사라지고 디지털 사진이 대세를 이루는 시대에서 Rose Vine은 디지털 사진이 가질 수 있는 한계에 대해 고민하고 매체와 물성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 연구가 담긴 작품이다. 또한 Rose Vine의 평범해보이는 장미 넝쿨 이미지는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관람객이 내재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생각하도록 만들어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 인가희

나에게 있어서 장미에 대한 기억은 데이빗 린치(David Lynch, b. 1946)의 영화 블루 벨벳 (1986) 도입부에 나온 한 장면에 머물러 있다. 푸른 하늘과 대비되어 장미는 더욱 붉게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으며, 평온해 보이는 장미 정원과 그 안에 숨어있는 잘려진 귀는 일상의 평화로움이 깨졌다는 것을 암시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어떤 행위나 풍경이 일상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익숙해지고 평범해지며 지루해진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일상에는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는 「나」만이 가지고 있는 비밀스러운 속내도 함께 할 지도 모른다. ● 장미 넝쿨 은 나에게 블루 벨벳 영화를 떠오르게 하는 많은 요소들이 있다. 린치의 영화는 평범한 사람의 비밀스런 욕망이 잘 다듬어진 삶의 터전에서 괴이하게 터져나오는 상황을 이미지화한다. 이태원 우사단길을 지나치는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동네 사람들의 일상은 「나」와 전혀 다른 자유분방한 패턴으로 움직이는 듯 보였지만, 작품 설치를 하는 동안 잠시나마 소통하며 느꼈던 그들의 삶은 루틴을 따라 움직이는 나의 패턴과 다르지 않았다. ● 나를 드러나는 것과 숨기는 것도 「나」의 의도/의지이며, 대상/타인에 대한 나의 판단은 객관적일 수 없다. 지식과 정보 역시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해석될 것이다. 장미 넝쿨에서 내가 표현한 이미지는 내가 보는 것과 해석하는 것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전제한다. ● 장미라는 이미지가 공간을 가리고, 사진 이미지는 투명한 액체에 밀착되어 그 표면을 상실하면서 부유하는 듯한 이미지가 된다. 자연과 인공적인 빛은 장미의 색과 이미지를 왜곡시키고, 빛과 그림자는 장미의 이미지를 환하게 드러내기도 하고, 숨기기도 한다. ● 일상에서 마주치는 장미 넝쿨은 매혹적이나 가시가 있고, 흔해 보이지만 오뉴월이라는 제한된 시간에서만 그 아름다움을 뽐낸다. 나는 장미가 만개한 그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했을 뿐, 그 외의 장미에 대한 내 기억 혹은 타인이 가진 장미에 대한 기억은 나에게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작가노트 중) ■ 조이경

Vol.20210705h | 조이경展 / CHOYIKYUNG / 趙利瓊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