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올해의 중견작가

김건예_손파_신상욱_이지영_정태경展   2021_0708 ▶ 2021_0814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기획 / 대구문화예술회관

관람시간 / 10:00am~12:00pm / 01:00pm~05:50pm / 월요일 휴관 전시관람 사전예약

대구문화예술회관 DAEGU ARTS CENTER 대구시 달서구 공원순환로 201 Tel. +82.(0)53.606.6114 artcenter.daegu.go.kr

대구문화예술회관은 대구미술계 중견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정리, 조명하고 앞으로의 활동에 전환점과 동력을 마련하려는 취지로 2016년부터 매년 「올해의 중견작가」전을 개최하고 있다. 올해 참여작가로 선정된 5명의 작가는 김건예, 손파, 신상욱, 이지영, 정태경으로, 이들은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여러 해에 걸쳐 공고히 구축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들은 그간의 작업을 정리하는 동시에 최근 제작한 신작을 위주로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다. ■ 대구문화예술회관

김건예_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93.9cm_2021
김건예_황금의 방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93.9cm_2021

김건예나비의 꿈 김건예의 그림은 알만한 형상에도 불구하고 모호하다. 봄의 축제 그러므로 봄의 여신 플로라를 맞이하는 의식을 그린 것이라 해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지금 왜 이런 그림을 그린 것일까. 코로나19로 상실한 계절을 되찾는 설레는 마음을 표현한 것일까. 그렇다고도 할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 단언하기에는 저어되는 부분이 있다. 한눈에도 의식적인 처녀들의 몸짓이며 짐짓 진지하고 굳은 표정이 봄을 맞이하는 설레는 마음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럼 뭔가. 알레고리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의미와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가 다른 그림이다. ● 그리고 여기에 그리드가 있다. 형상을 완전히 가리지는 않으면서, 형상이 비쳐 보이게 유지하면서 형상 위를 가로지르는, 그리고 때로 가로와 세로가 겹치면서 형상 위에 드리워진 촘촘한 망이고 희뿌연 막이다. 작가가 그린 거의 모든 그림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그러므로 어쩌면 작가의 그림에서 특징적인 요소랄 수 있는 이 그리드는 뭔가. ● 소통에는 언제나 이런 망이며 막이 매개되기 마련이고, 그러므로 완전한 소통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와 너 사이엔 언제나 심리적인 망이며 이해관계의 막이 가로막혀 있어서 나는 너에게 그리고 너는 나에게 완전히 건너갈 수도 건너올 수도 없다. 여기에 미적 거리두기를 통해 중의적인 의미를 위한 공간을 확보하려는 작가의 기획이나 성향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 속에서 그리드는 불완전한 소통을 증언한다. (고충환의 평론 「김건예의 회화_봄의 제전, 화사하고 순수한, 재생하고 순환하는」 중에서) ■ 고충환

손파_무제_한방침, 수지_162.2×130.3×11cm_2019
손파_무제_수지, 혼합재료_146×97cm_2020

손파무제 손파의 작업 과정을 보며 예술작품의 존재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을 다시 해 보게 된다. 시각예술에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요인은 결코 서사적인 내용이나 서술적인 방식이 아니라 직관적인 측면을 통한 감수성의 전율로 이해된다. 손파의 작업은 안이함과 타협하지 않고 불편한 현실에 맞서 문제 해결의 길을 찾아 도전하는 작가의 정신과 태도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업이다. ● 그가 이전에 취급한 모티프 중에는 '칼' 오브제의 작품들이 있다. 칼은 어디서나 베일 위험이 있는 도구다. 날카롭고 뾰족한 물건에 집착하게 된 계기는 아마도 마음 속 불안과 공포를 다루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실존적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위험한 것의 본질들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쇠뿔'의 채택 또한 그 연장선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끝을 뾰족하게 깎은 연필의 도입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동기를 느낀다. 날카롭게 벼린 것일수록 쓰임새가 클 뿐만 아니라 한편으론 다루기 위험해지기도 한다. 그는 이런 양면성을 가진 매체들의 성질에 대해 사유하면서 존재의 불안을 극복하고 미학적 차원으로 승화시켜 나갔다. ● 그의 예술적 사유를 매개하는 것은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 사물이지만 그 재료의 특징을 살펴보면 단순한 것일 경우가 많다. 화학적 결합의 산물이기보다 자연에서 출처를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형태 역시 단순함의 일관성이 있다. 사물의 기능과 본성을 놓고 상상하는 그의 작업 패턴은 우리를 폭넓은 미적 사유로 이끌어 새로운 미학적 경험을 안겨주리라 기대된다. (김영동의 평론 「사물(재료)의 상징성과 미학적 사색_손파의 예술세계」 중에서) ■ 김영동

신상욱_21Space 4_종이, 페인트_130×900×50cm_2021
신상욱_21Space 2_종이, 페인트_400×145×40cm_2021

신상욱공간표현 신상욱에게 '공간'은 작업의 재료이면서 동시에 결과이다. 공간에 대한 감각과 공간의 효력, '덩어리감', 공간의 기능과 더불어서 함께 숨쉬고 있는 미적인 숨구멍을 드러내고 만지게 하는 것이 '작품 공간'인 것이다. 초창기 고졸한 맛을 살리는 재현적인 방식의 돌조각과는 달리 「공간」 작품은 기하학적이면서도 유체(流體)와 같은 흐름을 담아 낸다. 덩어리로서 정지된 양감과 유체와 같은 흐름이 「공간」 작업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 작가의 말에 따르면, 「공간」은 '건축, 조형, 디자인 이 모든 것으로 보이고 만져지는 순수 공간'의 출현이자 공간 자체의 유희이다. 이것을 작가는 '아름다운 공간'이라고 부르고 있다. 건축의 공간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서의 틈을 만들어 미적인 공간을 제시하는 것인데, 미적인 공간이 새어 나오는 곳은 기능의 망(網)에서는 주목받지 못하는 장소, 모서리나 기둥, 벽면, 광장(건축의 바깥) 등이다. 「공간」은 안과 밖으로 나뉘면서도 하나가 되고, 그 하나는 건축의 공간으로 환원되지 않는 '새로운 공간'이다. 기능을 뒷받침하는 장소가 '아름다운 공간'으로 변용되는 이 작용이 바로 신상욱 작가가 추구하는 작업인 것이다. ● 신상욱은 기능과 함께 그리고 동시에 기능을 넘어서는 '공간'을 산출한다. 작가의 표현대로 '조각, 조형, 디자인'이 협력해서 건축 공간에 미적 공간의 판타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작가는 기존의 공간에 개입하는 자이고, 그의 「공간」 연작은 설치 방식으로 개입하여 기존 공간을 새롭게 배열해 낸다. (남인숙의 평론 「공간의 삶: 조각가 신상욱의 조형세계」 중에서) ■ 남인숙

이지영_Space_피그먼트 프린트_29×42cm_2021
이지영_Space_피그먼트프린트_29×42cm_2021

이지영발견된 작은 우주 이지영이 찍는 대상은 사진가들의 메인 리스트에 들지 못하는 주변부 풍경, 지나쳐 버리는 흔한 일상의 장면과 사물들이다. 이런 대상은 어디인지는 몰라도, 어디에나 있다. 거기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지만 사람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바로 그런 사건과 이야기의 공백 속으로 우리는 초대된다. 그 자리는 보는 자가 채워야 하는 미답의 공간이다. ●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말라가는 봄꽃, 파종 이후 경작을 기다리는 고랑만 보이는 빈 땅, 도로와 보도블록의 경계면에 자리한 형광 유도체, 페인트의 롤러 자국과 그것의 훼손이 공존하는 시멘트 벽, 방치된 경작지, 바닥에 놓인 부러진 나뭇가지, 덤불 속에 핀 튤립 같은 꽃, 사철나무 앞에 비스듬히 놓인 나무 막대기. ● 그런데 여기에 신선함과 화사함의 절정을 넘긴 나른한 봄꽃을 그대로 내리쬐는 낮볕의 당당한 자신감이 대비되지 않았다면, 세로로 쟁기질한 골 사이를 가로지르는 희고 붉은 끈들의 불규칙한 정렬이 없었다면, 화면에서 잘려 나간 도로 위의 표식과 바닥 유도 조명을 박차고 나온 형광 물질의 리드미컬한 파열이 아니었다면, 페인트의 자국은 지워지고 벽면은 패여 나간, 긴 시간의 흔적들이 현대 추상회화의 중층 구조를 연상시키지 않았다면, 수확 이후 다음 농사를 기다리는 땅인지, 경작의 실패로 방치된 황폐한 땅인지 판단할 수 없는 모호함이 없었다면, 덤불 사이 핀 꽃의 강인한 자태와 싱싱한 아름다움의 이중성이 없었더라면, 잘 가꾼 사철나무 뒤편,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나무를 그보다 더 빈약하고 왜소한 나무 막대가 받치는 기묘한 동거를 상상할 수 없었다면, 보는 이의 심부를 깊숙이 찌르는 나의 푼크툼(punctum)은 없었으리라. (김미형의 평론 「이름 없는 것들에게_사진으로부터」 중에서) ■ 김미형

정태경_내친구의 집은 어디인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93.cm_2021
정태경_내친구의 집은 어디인가_캔버스에 오일스틱, 아크릴채색_193.9×130.3cm_2021

정태경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정태경은 풍부한 삶의 경험에서 표출되는 독창적 표현 양식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자아와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오고 있다. 2009년 경북 성주에서 대구 대봉동 방천시장으로 작업실을 옮기며 시작된 '나의 집은 어디인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연작은 대구 화단에서의 그의 자존감, 그리고 작품 활동을 함께 펼치는 작가들과의 연대감을 확장하려는 의지의 발현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집'은 공간적 존재에서 자아정체성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그 의미가 확대되어 거주지 이상의 광의적 개념으로 차용되었다. ● 정태경의 작품 속에는 현대사회가 갖는 무미건조한 삶의 형태가 메타포적 요소로 담겨 있다. 사회의 최소 구성 요소인 '자신의 집'과 '친구의 집'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는가. 그가 간절히 찾고 있는 '집'은 결국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욕망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와의 관계성에서 벗어나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싶은 안식의 공간이다. ● 그는 주제와 표현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신의 회화를 찾기 위한 일관성에 몰입해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이는 작가 자신이 회화를 통해 구상성과 추상성 사이의 불확실하고 불특정한 '미완의 조형 의식'을 모색해 가는 긴 삶의 과정이기도 하다. 예술의 긴 여정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연들이 담겨진 그의 작품 속에는 삶의 고단함과 함께 치열한 생존의 흔적들이 담겨 있다. (김태곤의 평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예술 여정」 중에서) ■ 김태곤

Vol.20210708g | 2021 올해의 중견작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