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blime

김동현_정재철 2인展   2021_0717 ▶ 2021_0820 / 일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박영 GALLERY PAKYOUNG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37-9(문발동 526-6번지) Tel. +82.(0)31.955.4071 www.gallerypakyoung.com

『ON SUBLIME』展은 서로 다른 특성의 페르시안 카펫과 각각 상응하는 작가 2인의 작업을 연장선상에 놓고 동시대 한국미술과의 교집합을 조명한다. 첫 번째 테마 '환영 hallucination'은 페르시안 실크 카펫과 김동현 작가가 강렬한 색채로써 표현한 정체성을 대비하여 보여준다. 카펫은 오랜 세월 이어져 온 메달리온, 아라베스크 문양 등의 계획적인 디자인을 통해 장인들의 형이상학적 신념을 담는다. 김동현의 '디지털 나르시시즘 narcissism'은 컴퓨터그래픽에서의 색채를 기반으로 자본주의 속 디지털 세대들의 자기애적인 잔영을 포착한다. 이들은 고대부터 축적된 전통과 동시대 디지털베이스라는 시대성을 달리하지만, 보이지 않으나 예술로써 보이게 된 정신의 집합체, 즉 '환영'을 선사한다는 점은 같다. ● 두 번째 테마 '추동력 impetus'은 노마딕 카펫과 정재철 작가의 추상화 속 즉흥성과 상상력을 소개한다. 장인의 실크 카펫과 달리 유목민들의 노마딕 카펫은 어떠한 도안 없이 오로지 상상력에 의존한다. 정재철의 작품 또한 원초적 충동에 의한 붓의 궤적 혹은 신체의 호흡으로 이루어져 있고, 화면 속 역동성과 생명력은 관자觀者의 감각을 자극한다. 카펫의 거친 소재, 비균질적이고 투박한 표현은 물성으로 가득한 캔버스와 궤를 같이한다. 궁극적으로 본 전시는 예술과 공예의 경계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공예품으로 간주되는 카펫과 회화작품의 대비를 통해 시각예술의 장을 확장시키고, 예술로서의 가치판단에 대해 재고할 기회가 되길 바란다. ■ 갤러리박영

Nain 9La_Gonbad_울, 실크/코튼_210×140cm_new
Nain 9La_Medalion_울, 실크/코튼_210×130cm_new
Qom/jamshidi_Diamond Medalion_실크/실크_200×130cm_new

On Sublime ● 위대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세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지식을 추구할수록 그것만으로는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눈앞에 펼쳐져왔다. 그리고 정작 세계에 대해서 알아가더라도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앞으로 어떤 숙명에 결박될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이 불안한 시간의 고리를, 그리고 숙명을, 외재에 존재하는 초월대상에 기탁할 수밖에 없었다. 절대자라는 말은 과학으로 풀 수 없는 신비의 영역에 대한 언어적 표현이다. 그러나 언어적 표현은 주어와 술부를 통한 정의에 국한되기 때문에 한계를 지닌다. 따라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했다." 그러나 고대 페르시아 사람들은 이 침묵에 존재하는 심연을 눈앞에 펼쳐 현현(顯現)해냈다. 그것이 페르시안 카펫이다. ● 페르시아 사람들은 절대자가 사람의 모습과 닮았다는 의인관(擬人觀, anthropomorphism)을 거부했다.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세계 운영의 제일가는 원인으로서의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처럼, 페르시아 사람들은 절대자를 모든 에너지인 동시에 모든 원리 그 자체라고 보았다. 때문에 절대자를 의인화해서 묘사하지 않았다. 단지 형상으로 표현할 뿐이었다. 페르시안 카펫은 따라서 절대자의 에너지와 원리에 대한 강렬한 확신이다. 페르시안 카펫은 크게 세 가지 형식으로 분류된다. 첫째, 메달리온 문양와 아라베스크 패턴으로 절대자의 에너지와 원리를 극히 정밀하게 현현시킨 실크 카펫이다. 이는 외재하는 절대자에 대한 표현이다. 둘째, 절대자에 대한 사람들의 신심을 표현한 곤바드 문양의 카펫이 있다. 절대자를 믿는 신심이 황홀경으로 승화되는 장소는 모스크이다. 모스크는 절대자로부터 선사 받는 황홀경을 수여 받는 장소이다. 모스크의 형상을 닮은 곤바드 문양은 절대자의 총체적 에너지와 하나가 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셋째, 유목민의 노마딕 카펫이 있다. 여인들이 주체가 되어 종교적 전범(典範)에 구애 받지 않고 개인적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이 카펫 형식 속에는 유목민의 강인한 삶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김동현_Forests of narcissists_캔버스에 유채_130×90cm_2020
김동현_Peacock&energy tree_캔버스에 유채_102×65cm_2021
김동현_Pink boys_캔버스에 유채_116×73cm_2021
김동현_Traces of Digital Memories_캔버스에 유채_91×73cm_2020

이 페르시안 카펫의 형식적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겨있는 철학은 동시대의 회화 예술가들과 배치되지 않고 잘 들어맞는다. 이번에 참여한 김동현과 정재철은 미술현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유망한 작가들이다. ● 모더니즘의 주요 가치는 독창성과 매체 내의 순수성이었다. 반면에 김동현 작가는 디지털 세계의 데이터베이스가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이자 동시대성을 표상해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자본주의의 속성은 속도를 동반한 이익의 확대이지만 이 경쟁적 속도에 의해 개인의 개성은 질식한다. 디지털 세계의 빛과 색채는 현실의 그것과 다르다. 디지털 세계의 그것을 매질로 삼는다. 그리고 초시간적 속성, 가령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분이 모호한 아우라를 회화에 이식한다. 또한 디지털 세계에서의 변화무상한(protean) 공간의 중첩과 이동을 회화에 재구성한다. 그동안 역사에서 부정적으로 쓰였던 나르시시즘(narcissism)은 김동현의 회화에서 디지털 나르시시즘(Digital Narcissism)으로 승격된다. 자기과시적인 그 용어는 디지털 세계에서 절대자의 에너지로 다시 태어나곤 했던 동시대 젊은 세대의 내밀한 경험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김동현 작가가 장인들이 만든 메달리온 문양의 실크 카펫과 자신의 「디지털 나르시시즘」 연작을 매칭시키면서 환영(hallucination)이라는 테마를 지시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환영은 약리학적 환각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hallucination'의 어원인 그리스어 'halōs'는 태양의 빛을 뜻한다. 고대인들의 빛은 절대자를 표상한다. 동시대 사람들에게 빛은 디지털 세계 속에서 발견된다. 김동현 작가의 처절한 심시(審時)에 대한 의지, 즉 시대성을 파악하려는 의지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정재철_Contradictory boundary_캔버스에 유채_162×112cm_2019
정재철_Contradictory boundary_캔버스에 유채_162×112cm_2019
정재철_Unfamiliar face_캔버스에 유채_80×60cm_2018
정재철_Unfamiliiar shape_캔버스에 유채_35×27cm_2021

정재철 작가는 추동력(impetus)이라는 테마로 페르시아 카펫과의 관계를 재구성한다. 정재철 작가는 회화의 본질이 즉흥적 추동력 속에 존재한다고 본다. 회화는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다. 회화의 임무는 대상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의취(意趣)를 얻는 것이다. 의취는 외재하는 대상[外物]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생명력의 확인이기에 언제나 직접적이며 구애 없는 것이다. 노마드의 강인한 생명력은 자기를 발견(dis-cover)하면서 발현된 추동력이다. ● '발견'은 이불(cover)을 들춰내는(dis-) 용기에서 비롯된다. 이불은 가장 편한 대상이다. 이불은 지식이자 맥락이며 내가 걸었던 이력이자 나를 둘러싸주는 환경이다. 이 모든 것을 들춰낼 때 진정한 자아가 드러난다. 처음에는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용기로 바뀌는 순간 날 것의 생생한 원초적 힘이 드러나게 된다. 노마드는 정착을 거부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속이나 지연, 그리고 뿌리에 얽매이지 않는다. 노마드의 본질은 사람에게 뿌리란 없다는(rootless)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는 여부에 있다. 정재철 작가는 회화의 본질이 친자관계(filiation)나 계보학(genealogy)을 부정할 때 드러나는 생명력에 있다고 본다. 작가의 세계는 단순히 힘을 보여주기 위한 제스처가 아니다. 우리의 인식에 뿌리내려있는 방파제를 깨부수려는 추동력이기에 그토록 강렬하며 아름다운 것이다. ● 페르시안 카펫의 정신은 절대자에 대한, 그리고 숙명의 고리에 대한 무한한 긍정인 동시에 내면에 숨어 잠자고 있는 참된 자아를 찾아나서는 영원한 여정이기도 하다. 현대예술은 이미지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 사실을 잊고 지내왔다. 김동현 작가와 정재철 작가는 동시대의 숨겨진 의미를 찾고자 하는 순례자이기에 이번 전시는 페르시아의 지혜와 힘을 배우는 시간인 동시에 우리 작가들의 열린 가능성과 만나는 창신(創新)의 시간이다. ■ 이진명

Vol.20210717b | On Sublime-김동현_정재철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