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검화 Blindness

한기호展 / HANKIHO / 韓起鎬 / painting   2021_0720 ▶ 2021_0725 / 월요일 휴관

한기호_니켈에이조옐로우(점자)-니켈에이조옐로우로그린노란색_ 캔버스에 혼합재료_72.7×60.6cm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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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인스타그램_@kevinkem1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달빛재단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사이아트 스페이스 CYART SPACE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28(안국동 63-1번지) B1,1~2층 Tel. +82.(0)2.3141.8842 www.cyartspace.org www.42art.com

인간의 감각과 인식의 한계지점과 그곳으로부터의 '보기'에 대하여 ● 한기호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인간의 감각과 인지 방식에 대해 통찰할 수 있는 인상적인 작업들을 선보인다. 작가는 점자를 소재로 하여 색에 대하여, 특별히 노란색에 대하여 이야기를 풀어가게 되는데, 작품 제목들을 보면 물감 색으로 자주 사용하고 있는 노란색을 지칭하는 다양한 방식을 그대로 제목에 사용함으로써 작품 제목과 작품 내용이 바로 연결되는 작품명을 선택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작가가 사용한 점자라는 문자 체계는 시각 장애가 있을 경우 필요한 언어 방식이지만 작가는 아이러니하게도 회화라는 시각예술 범주 안에서 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작가는 작업에서 '노란색'이라는 말을 점자 방식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동시에 점자가 지시하는 노란색이 뒤덮인 캔버스를 작업으로 제시하기도 하지만 그가 그려낸 작업 중에는 작품 제목이 노란색과 관련되어 있거나 이를 지칭하고 있다고 해서 화면에서 보이는 점자들과 그려진 색채가 노란색만을 표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흰 캔버스에 노란색이라는 한글 표시만을 써 놓기도 하고 점자의 크기나 형식을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점자와 달리 변형시키기도 한다. 노란색이라는 이름 아래 모여있는 것 같은 이 모든 작업들은 노란색의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그 어느 하나 노란색이라는 정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며, 단지 작가가 표현해낸 작업들은 노란색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지점의 주변만을 맴도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기호_Primary yellow(점자)-primary yellow로그린 노란색_캔버스에 혼합재료_72.7×60.6cm_2021
한기호_한사옐로우라이트 Hansayellowlight(한글.영어점자) 색없이 그린 노란색_ 캔버스에 혼합재료_72.7×60.6cm_2021
한기호_카드늄옐로우(점자)- Diarylide yellow로 그린 노란색_캔버스에 혼합재료_72.7×60.6cm_2021
한기호_PY73(점자)- PY73으로 그린노란색_캔버스에 혼합재료_72.7×60.6cm_2021
한기호_PY40(점자)-PY95로 그린 노란색_캔버스에 혼합재료_72.7×60.6cm_2021
한기호_노란색 yellow(점자)으로 그린 노란색_캔버스에 혼합재료_72.7×60.6cm_2021

작가는 그의 작업노트에서 "우리가 아는 노란색이란 여기엔 있고 저기엔 없다. 진실로 고유한 노란색은 어디에 있을까?"라는 질문을 한다. 작가가 말하는 '우리가 아는 노란색'이라는 것은 언어로 학습되고 경험으로 알게 된 노란색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가는 그러한 학습과 경험을 초월한 노란색, 즉 '고유한 노란색'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 물으면서 작업을 통해 현전하는 세계를 언어적 기표체계에 의존하여 감각하고 인지하게 되는 인간의 인식 프로세스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시도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작가가 전시 주제로 제시하고 있는 'Blindness'라는 것은 인간의 인식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작가 자신의 견해가 무엇인지를 잘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시각적으로 보는 능력이 결여되었거나 상실되었음을 의미하는 이 단어를 작가가 특별히 선택하게 된 것은 인간이 감각하며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언어와 어떠한 상관 관계가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자 한 작가의 의도와 상징성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언어가 없으면 감각하고 인식한 것을 기억의 영역으로 넘기거나 명료화하여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언어적 문화권의 차이에 따라 색채를 인식하거나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다. 언어적 기반 위에서 감각하게 되는 정보 중 그 다양한 차이를 구별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하며, 심지어 보지 못했거나 들리지 않았다고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본래 문자를 비롯하여 인간이 사용하는 기표체계라는 것 역시 역사적 문화적으로 형성된 것일 뿐 본질적으로 텅 빈 기표들일 뿐이다. 작가는 이러한 상황에서 기표와 기의 사이의 의미체계에 대해, 그리고 감각정보와 그에 대한 인식과정에서의 정보의 손실 혹은 오독 가능성에 대해 문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기호_한글로 그린 노란색_캔버스에 오일펜_72.7×60.6cm_2021
한기호_Hansayellowlight Hansayellowmedium gambogeyellowextra cadmium yellow light cadmium yellow medium cadmium yellow dark Diarylide yellow Primary yellow Nickel azo yellow Aureolin yellow hue로 그린노란색_캔버스에 혼합재료_2021

그러나 작가의 시각은 단지 인간의 감각과 인식 상에서의 오류 자체에 머무르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색으로 인식되는 것이 광원으로부터 시작된 광자가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 내의 전자와의 상호작용에 의해 나타난 현상에 불과하고 특히 양자물리학이 말하듯 미시 세계의 경우 보이는 것들이란 관찰자 효과에 의한 것임을 전제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 즉 미시 세계를 토대로 하여 그것과 연결되어 있는 거시 세계에서 보고 감각하며 그것을 인식한다는 것은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수 밖에 없다. 작가는 그래서 시각적 불능을 의미하는 'Blindness'라는 말로부터 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시각 주체와 대상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우리가 감각하게 되는 것이고 언어적 체계 내에 인식소가 있어야 감각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라면, 이는 다시 말해 감각능력이 없음과 다름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상태를 아마도 정보가 없는 상태, 즉 아무것도 인지되지 않아서 출력 공백상태를 의미하는 'blank' 상태와 유사한 것이라고 보았던 것 같다. 이러한 태도에서 작가는 이 감각할 수 없고 비워진 영역을 인간적 차원의 다른 표현에 의해 제시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는 어떤 면에서 '색즉시공(色卽是空)이고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는 반야심경의 문구를 연상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즉 보이는 것들은 현상일 뿐 그 배후는 비워져 있는 그 자체이거나 지시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는 것을 작가 역시 작업을 통해 드러내 보이고자 하였던 것 같다는 의미이다. 감각하고 인지하는 것은 물론 현상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작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의 한계지점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현상에 종속되어 있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이자 존재론적 한계에 대해서 말이다. ■ 이승훈

한기호_노검화를 위한 동화의 한부분(점자)을 그린 노란색 PART1_캔버스에 혼합재료_130×89cm_2021
한기호_노검화를 위한 동화의 한부분(점자)을 그린 노란색_PART2_캔버스에 혼합재료_130×89cm_2021

전맹의 경우 ● 색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노란색이란 여기엔 있고 저기엔 없다 진실로 고유한 노란색은 어디에 있을까? 구조적으로 둘러싸인 막들을 나열해보거나 분리해본다 색을 보는 9개의 시선 가운데 본질로써 드러나는 공이 있다. ■ 한기호

Vol.20210720c | 한기호展 / HANKIHO / 韓起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