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불

팀 불나방 기획展   2021_0809 ▶ 2021_08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륜희_박준희_신재준_이강희 이동용_이유진_진휘경_황혜림

전시총괄 / 이강희 기획자 / 김륜희_이강희 디자인 총괄 / 황혜림 디자인 어시스트 / 진휘경 주최 / 불나방

관람시간 / 10:00am~06:00pm 월~토 사전예약제 / 일요일 상시오픈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시간당 4명으로 제한)

부산 기장군 기장읍 청강리 278-12 (주)엔에프 4층 @team_bullnabang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응시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은 다음 색으로 변한다는 걸 알고 있다.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넘어가는 노란불은 사회가 원하는 나의 이미지와 스스로 원하는 욕구 사이의 혼란스러운 상태를 노란불로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며, 멈춰야 하는지 빠르게 지나가야 하는지 고민되는 구간은 졸업을 앞둔 우리의 시간이기도 하다. 전시 「노란불」은 시간이 지나 더 많은 책임을 지기 전에 자신의 욕구에 솔직하고 무책임한 작품을 전시한다. 분명 노란 불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구간이지만 한번 지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황금기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인간은 오랜 시간 동안 완전성을 이루려는 노력을 해왔다. 현재 인간은 스스로가 왜 불완전한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완전함을 이룰 수 없다. 당연한 문제이다. 인간은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답을 내릴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예술로써 고민하고 인간을 향한 모든 질문을 관통할만한 진리를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금방 부정당한다. 모든 질문을 관통하는 하나의 줄기보다 사소한 불순물들이 더 중요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인간은 완전무결한 완전성보다 다양성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모든 경계와 기둥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갔다. 불완전성을 완전성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명제를 여러 명제 중 하나로 인정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 이강희

노란불-팀 불나방 기획展_기장읍 청강리 278-12_2021
노란불-팀 불나방 기획展_기장읍 청강리 278-12_2021
김륜희_뱀-반복으로부터(Snake-from repetition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7.3×22cm×8, 22×22cm×8_2021

동양 설화에서부터 이어지고 있는 뱀의 불사의 상징. 불사란 결국 죽고 다시 살아나는 반복의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비늘이 반복되는 뱀의 모습 그 자체를 이야기하기도 하며, 뱀이 허물을 벗는 과정을 죽음과 부활에 덧대어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16개의 캔버스에 이어지는 듯 이어지지 않는 뱀의 비늘과 유연한 몸통을 그려 넣었다. 이미지가 유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배치되어있지만 결국 비어있는 공간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그 빈 공간은 오로지 관람자의 상상 속에서 완성된다. ● 뱀이란 모순적이면서도 많은 속성을 띄고 있고 그 점이 아름답다고 생각되었고 나는 그 모순을 빌리고자 하였다. 뱀이라는 '언어'를 통하여 관람자를 홀리고자 하였다. 홀린다는 것은 어찌 보면 유혹하여 그림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기에 그 속성에 적합한 것이 뱀이라는 존재이지만, 그 뒷면엔 그저 나의 감정을 담아낸 부분도 적지 않게 존재하여 결국 모순을 이루고 만다. 작품 속의 커다란 눈동자는 겉으로 봤을 땐 어둠과 그림자 속에서 섬뜩한 동공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 무척 단단한 인상을 띄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뱀은 시력이 좋지 못하기에 우리를 지켜보는 게 불가능하다. 그 모순되는 속성 속에서 혼란스러운 상태가 지속된다. ■ 김륜희

박준희_가죽옷(Kėtône)_천과 옷핀_90×100cm×3, 가변설치_2021

인간은 태어날 때 알몸으로 태어나서 평생을 옷을 입으며 생활하며 죽었을 때가 되어야 벗고 태어난 상태로 되돌아간다. 옷은 한 인간의 삶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다. 이는 성경에도 나타나있다. 창세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의 맹세를 깨고 선악과를 먹은 죄를 저질렀다. 벌거벗음에 부끄러워한 두 사람은 그들의 치부를 무화과나무 잎으로 가렸다. 인류 최초의 옷은 일어난 잘못을 숨기려는 죄악이자 치부를 가리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으며, 이는 자신의 잘못됨을 가려보려는 위선적인 행동은 결국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것임을 나타낸다. 현대의 우리도 잘못을 알면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옷을 벗기고 가죽옷이라는 죄인의 낙인이자 구원의 길로 인도한다. 우리는 참회의 길을 걷고 있다. ■ 박준희

신재준_흐름 속에(In the flow)_켄트지에 연필과 목탄, 유채_31.8×46.8cm_2021

2021.07.15. 「흐름 속에」는 흐름 속에서 두렵고 잊고 있었던 기억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들은 희미해지고. 흐름 속에서 사람을 잃을 수도 있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 돌아보고 싶지 않은 나로부터의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흐름 속에서 모든 영향을 생겨난다고 생각했고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일들은 자신에게는 힘들게 다가온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희미해지는 나의 자아? 정서에 뚜렷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의 자아를 잃지 않고 희미한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나 자신이 보고 싶다. ■ 신재준

이강희_fuck u_갈륨, 온풍기, 냉풍기_50×50×130~140cm_2021

온/냉풍기 위에 금속조형물이 올라가 있다. 중지를 치켜든 손 모양 조형물은 갈륨으로 만들어졌다. 작품은 냉풍기가 틀어져있어 금속의 형체를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고 관객이 직접 온풍기를 틀어 금속을 녹일 수 있다. 덕분에 주변 온도가 조금만 올라도 손은 조금씩 녹아내려 결국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갈륨은 어떠한 제스처를 취한 모양이 아님에도 여전히 'fuck'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가? 녹아있는 갈륨의 형태는 더 이상 인간이 나누어버린 지식의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없다. 자 이제 다시 상상해보아라 녹아있는 이 갈륨은 무엇인가? ■ 이강희

이동용_반년(Half a year)_혼합매체_가변설치_2021

작가는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다. 그것은 바로 간질이다. 병원도 병의 원인은 밝혀내지 못했다. 작가는 작업으로 작가의 개인적인 아픔을 극복하고자 했다. 작가는 발작을 일으킨다는 병의 특징 때문에 전조증상을 기록했고, 매일 약을 먹고 남은 약봉지를 안 버리는 일이 많았다. 생각하니 이것들이 작가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작가는 이번 작업에 있어서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꽃병의 꽃은 본인이 약을 복용한 시간을 보여주며, 꽃을 만드는데 들어간 약봉지의 양은 약 6개월이 된다. 이번 작품에 있어 작가는 아픔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극복하기 위해서 작품을 제작하였다. 자신의 작은 극복의 이야기가 퍼져나가 모두의 극복이 되기를 바란다. ■ 이동용

이유진_연상효과(Mnemonic Effect)_캔버스에 유채_40.9×31.8cm_2021

향초는 불을 켜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녹아가면서 촛농이 다시 굳기도 하고, 향기가 나기도 한다. 이렇게 시간의 흐름에 의해 녹아버리는 향초는 가시적인 흔적과, 비가시적인 향기라는 것을 남긴다. 우리는 흔적에 의해 잊고 있던 기억을 현재 의식의 세계로 상기시킨다.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것처럼 현재가 아닌 시공간의 일들을 현재로 가져와 시공간의 혼선을 일으킨다. 흔적이 없다면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잃고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도, 행복했던 일들이 무엇이었는지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흔적을 통해 시공간의 균열을 일으켜 기억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이유진_의식(Consciousness)_혼합매체_60×80cm_2021

확실한 기억은 안 나지만 희미한 감정이 남아있는 추억들과 같은 것들은 마치 꿈속에서 겪었던 일들인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현실세계와 꿈의 경계에 존재하는 일들은 모두 환상일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그것을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결론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개인들은 시간과 기억을 가짐과 동시에 환상이 따라다닌다. 무의식과 의식 세계에서, 꿈속에서 깼을 때 남아있는 모호한 기분 같은 의식 세계 속 남아있는 무의식 세계의 여운과 감정들에 집중한다. 그러한 무의식의 환상은 현실에 놓인 나의 내면에 균열을 일으켰다. 균열은 무엇이 환상인지 실제인지 모호하게 만들며,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결국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기억을 모두 환상으로 만들어버린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 들을 현실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과 현재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주고 싶다.

이유진_숨 막히는(Stuffy)_캔버스에 유채, 랩_27.3×22cm×4, 73×54cm_2021

현실과 무의식의 경계를 인식했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지는 감각은 무엇일까. 나는 꿈에서 깼을 때의 여운을 떠올렸다. 기억이 선명하게 나는 꿈과 희미한 꿈, 전부 잔상이 남는다. 사랑을 할 때, 대게 사람들은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그 감정들은 잔상처럼 오래 남아 습관이 되기도 하고,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그래서 사랑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나는 감정들을 간직하고 싶었다. 숨 막히게 느껴왔던 감정들은 좋던 나쁘던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 넣고 랩으로 감싸 보존했다. 잊히고 있는 것들을 간직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것이 어떤 여운과 감정을 남기든. ■ 이유진

진휘경_무제(Untitled)_천에 혼합매체_160×260cm_2021

이번 작품은 나의 부정적인 감정, 작업할 때 느낀 하나하나의 생각과 희로애락을 담았다. 희로애락이란?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곧 사람의 여러 가지 감정을 이르는 말이다. 현대인들은 보통 부정적인 감정, 예를 들어 분노와 우울, 슬픔 등 타인에게 보여주기를 꺼려한다. 부정적인 감정들도 행복과 기쁨처럼 감정의 일부분인데 도대체 왜 오픈하지 않는가. 조금 더 자신에게, 혹은 타인에게 솔직해지면 안 되는 것인가. 나 또한 현대인처럼 나의 감정을 숨기는 데에 급급하다. 슬플 때는 울 수도 있고, 화가 나면 화를 낼 수도 있는데 전혀 그러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작품을 통해서 나의 감정과 생각 등을 전달하고자 한다. 말로 전달할 수 없다면 그림을 그려서 전달하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 진휘경

황혜림_소우주(Mikrokosmos)_합판에 블렉젯소와 페인트마카, 캔버스에 마카_ 합판 1400×2500cm×3, 캔버스 13.3×13.3cm×23, 가변설치_2021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우주 전체를 놓고 볼 때, 우주를 '대우주'라 부르고 인간을 '소우주'라고 한다. 그렇다 제목인 '소우주'는 사실 인간인 나를 의미하는 것이다. 작품을 고민하는 것에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 그래서 많은 고민 필요하지 않은 그런 작품이 내게는 필요했다. 작품의 점들과 선들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굴곡의 선들은 작품을 만들 때에 완벽해야 한다는 나의 강박관념을 깨버리는 느낌이었고 수많은 점들은 나의 복잡한 머릿속을 비울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 작품에 오롯이 나를 담을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작지만 강렬하고 단단한 나의 세계를. ■ 황혜림

팀 불나방_1만 5천개의 숨(Fifteen thousand Breaths)_혼합매체_가변크기_2021

산소란, 공기의 주성분이면서 맛과 빛깔과 냄새가 없는 물질로 사람의 호흡과 동식물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기체이다. 고압이나 액체로 만들어 질식자의 치료, 산수소 불꽃, 산소아세틸렌 불꽃 따위에 쓰이는 것이다. 공기에는 20.91% 용량, 물에는 88.8% 중량, 또 인체에는 약 65% 정도 함유되어 있고, 공기 속의 산소는 연소나 동물의 호흡작용에 의해 이산화탄소가 분해되어 공급됨으로써 균형이 유지되고 있다. 평소에 우리는 산소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숨을 쉴 수 없는 경우나 익사하는 상황이 오면 산소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산소는 운명의 버튼인 것이다. 이러한 산소의 발견에는 또 다른 이면이 있었다. 산소가 지구에서 발생하게 되면서 산소를 이용하는 많은 생명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초기에는 지구 대부분의 생명들이 죽는 참사가 일어났었다. 그래서 산소는 그 양에 따라 지구 생물의 발생과 소멸을 결정한다. 지금 현시대 상황도 그렇다.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많은 나라 중 인도에서는 산소통이 부족해 약 4백만 명이 사망하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산소 난으로 인한 사망자를 화장하는데 그 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화장할 공간이 부족해졌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산소가 없으면 꺼져가는 불과 같다. 불은 산소가 없이 피워지지 못하고 끝내 꺼져버린다. 이러한 과정을 영상으로 표현하고, 죽어가는 사망자의 수를 초로 환산하여 약 15시간의 긴 영상을 찍어냈다. 그리고 끝내 꺼진 불은 재나 그을림을 남기게 된다. 그러한 흔적들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지만 뚜렷하게 분석하거나 대처할 수 없는 형상이며, 이러한 흔적들을 영상과 함께 설치함으로써 시각적으로 사망자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결국 우리는 불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강렬함과 그 흔적인 재나 그을림이 주는 차분함을 동시에 나타내어 산소라는 매개체로 인한 현시대의 모습을 나타내고자 한다. ■ 이유진

Vol.20210809f | 노란불-팀 불나방 기획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