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玄 Profundity

김현식展 / KIMHYUNSIK / 金玄植 / painting   2021_0908 ▶ 2021_1017 / 월요일 휴관

김현식_현玄 Profundity展_학고재 본관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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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학고재 본관 Hakgojae Gallery, Space 1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Tel. +82.(0)2.720.1524~6 www.hakgojae.com @hakgojaegallery www.facebook.com/hakgojaegallery

관람시간 / 12: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학고재 디자인 | 프로젝트 스페이스 Hakgojae Design | PROJECT SPACE 서울 종로구 팔판길 22-3 Tel. +82.(0)2.720.1524~6 www.hakgojae.com @hakgojaegallery www.facebook.com/hakgojae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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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玄1. 현(玄)의 세계 김현식(金玄植, 1965-) 작가는 그림에 현(玄)을 담는다. 모든 그림의 일관된 주제는 현(玄)이다. 김현식 작가의 추상적 작품은 대부분 수직적(vertical)이다. 그것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수직이다. 아래로부터 위로 상승하는 수직이기도 하다. 작품 속을 관통하고 있는 수많은 선(線, line)은 작가가 위아래로 그은 반복적 노동의 시간을 담고 있다. 레진(樹脂, resin)을 사각의 패널에 얹고 완전한 평면으로 편 후 말린다. 마른 후 칼을 그어 일정한 간격의 직선으로 이루어진 마루(crest)와 골(trough)을 그린다. 아크릴 물감을 바른 후 헝겊으로 닦아내면 마루에 묻었던 물감은 사라지고 물감은 골에만 남는다. 다시 레진을 붓고 일을 반복한다. 수없이 많은 위의 과정 속에서 신비한 색채의 선들은 관찰자의 시선 이동에 따라 숨었다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숨었다 나타남은 신비하다. 따라서 작가는 그 이름을 부를 수가 없어서 현묘하다는 뜻의 현(玄)이라고 부른다. 숨었다 나타남은 리드미컬하다. 따라서 작가는 그것을 소리와 같다 하여 현(絃)이라고 부른다. 마침 작가의 이름은 현묘함을 드러낸다[玄植]는 뜻을 지닌다. ● 작가와 나는 예술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작가와 나는 언젠가 만나서 짧은 시간 동안 서너 명의 작가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우선, 원말 명초에 활동했던 예찬(倪瓚, 1301-1374)의 『용슬재도(容膝齋圖)』에 관하여 말했다. 겨우 무릎을 굽힐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집을 뜻하는 용슬재를 바라보며 감탄한 적이 있다. 그것은 송대의 삼엄(森嚴)했던 대산수(大山水)의 필법을 간솔(簡率)한 선비의 일기(逸氣)를 표현해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질박하여 꾸밈없는 질실(質實)을 극도로까지 추진하여 허령(虛靈)함에 이른 경지에 놀란 것도 아니다. 물론 하나의 강을 두고 두 개의 언덕을 그린[一河兩岸]의 삼단식 구성을 칭찬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제발(題跋)에 나온 시도 읽어보았다.

용마루 끝에 봄바람 부니 살구꽃 떨어지고, 용슬이라 불리는 작은 집 세월을 짐작게 한다. 저기 금사(金梭)에 물고기 뛰어 놀고, 아름다운 봉황새는 수풀에 깃들어 대나무 기운다.1)

스산하고 쓸쓸한 풍경과 달리 시는 살구꽃 떨어지는 4월 봄날의 생명력을 묘사한다. 화가는 물고기가 뛰놀며 바람에 나부끼는 대숲을 보고 봉황새의 상서로움을 연상하고 있다. 작가가 쓴 시의 내용은 그림의 분위기와 너무도 달라서 우리는 당황했다. 그러나 이 그림의 위대함은 구성의 간결함으로 전대의 위대한 대가들, 가령 이성(李成, 919-967)이나 범관(范寬, 950-1032)의 패러다임을 바꾼 데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김현식 작가는 예찬의 그림들이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는 특징을 말했다. "예찬의 그림에는 절대 공간이 있다. 양안(兩岸) 사이를 흐르는 물가의 허공은 비어있는 허령함의 세계이다. 나는 그것이 불변의 상(常)의 세계라고 생각한다. 예찬은 현실 공간 속에 불변의 공간이 있었던 것을 알았을 것이다. 나도 그 절대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레진을 겹쳐서 시간을 포획하고 무한의 공간을 절대화시키는 것이다." ● 모든 경전은 첫 문장에 전체 사상이 함축되어 있다. 『성서(聖書)』의 첫 마디에 로고스(logos)가 나온다. 『논어(論語)』의 첫 마디는 학(學)으로 시작된다. 『노자(老子)』의 첫 마디는 도(道)로 시작된다. 로고스[말씀]는 계시의 시작이다. 배움[學]은 인생을 운영하는 시작이자 평생을 통해 관철되어야 하는 의무이다. 도리[道]는 보이는 이 세계의 작동원리이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동원리에 관여하는 궁극의 실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노자』 1장은 "도리가 설명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도리가 아니다. 이름이 이름 지어질 수 있다면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없음[無]은 천지의 시작을 이름 짓는 것이고 있음[有]은 만물의 어머니를 이름 짓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없음으로 그 미묘함을 보고자 하며 영원한 있음으로 그 귀결점을 보고자 한다. 이 둘은 같은 곳에서 나왔으나 이름을 달리하므로 그것을 현(玄)이라 일컫는다. 현묘하고 또 현묘하여 온갖 미묘한 것들이 드나드는 문이다."2) ● 영원한 없음[常無]과 영원한 있음[常有]은 같은 도리에서 나왔지만, 구별을 둔다. 그러나 이것을 구별하는 것은 인간의 인식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玄)이라 불렀다. 현은 우주 전체에 관여하는, 심원유오(深遠幽奧)한 실체를 형용한 말이다. 노자도 『주역(周易)』을 배웠다. 『주역』의 「문언전(文言傳)」에는 "대체로 보아서 현황(玄黃)이라는 것은 천지의 섞임을 말하는 것이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3)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땅은 모든 사물의 구체적 지반이다. 모든 것을 골고루 포용한다. 반면에 하늘은 자기의 속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현(玄)이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 서한 시대의 철학자 양웅(揚雄, 53B.C.-18A.D.) 역시 현(玄)에 대해 언급한다. 양웅은 현(玄)을 가리켜 우주 본체의 이름이라고 했다. 양웅은 말한다. "현(玄)이란 아득한 곳에서 온갖 사물로 퍼지지만 정작 자기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비어서 없는 것에 의뢰하여 규칙을 낳으니, 신명과 관계되며 본받음을 정한다. 그래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모든 사물을 개시하고 음양을 배치하여 기운을 발산하게 한다."4) 따라서 현은 일체의 상대적 사물을 초월하는 절대적 존재이다. 양웅이 말하는 현(玄)은 형체도 없고 형상도 없는 절대이자 만물의 최고 본원이다. ● 위진 시대에 살았던 도사(道士) 갈홍(葛洪, 284-343)은 그의 저서 『포박자(抱朴子)』에서 현(玄)을 언급한다. "현(玄)은 자연의 시조이다. 만 가지 다름의 위대한 종지이다. 그 깊이는 알 수가 없어서 정묘하다고 부를 수밖에 없다. 그 범위는 광원면막(廣元綿邈)하여서 미묘하다고 부를 수밖에 없다. 그 높이는 아홉 하늘을 덮고 그 광활함은 여덟 개 땅끝을 모두 감싼다."5) 갈홍 역시 현(玄)을 가리켜 모든 상대적 사물을 초월하는 유일한 절대자로 묘사한다. 동아시아 세계에서 절대자의 이름은 부를 수가 없었다. 단지 하늘을 표현하는 형용사로서의 현(玄)이라는 말을 빌려 올 수밖에 없었다. 현(玄)은 절대 공간이자 시간이 없는 곳이며 보이는 이 세계에 관여하는 보이지 않는 실체의 세계이다. 예찬이 그리고자 했던 것은 절대 공간으로서의 현(玄)의 세계이다. 김현식 작가 역시 예찬과 관점을 함께한다. 다만 매체가 바뀌었을 뿐이다.

김현식_Who likes Obang color?_에폭시 레진에 아크릴채색, 나무 프레임_54×54×7cm×5_2021
김현식_현玄을 보다_폭시 레진에 아크릴채색, 나무 프레임_54×135×7cm_2021
김현식_Beyound the Visible_에폭시 레진에 아크릴채색, 나무 프레임_100×100×7cm_2021

2. 모더니티라는 숙명 ● 김현식 작가는 모더니티(modernity)의 세례를 받고 화가가 되었다. 우리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언제나 따르는 숙명이 있다. 문화(文化, culture)와 모더니티(modernity)라는 용어의 불편함이다. 서구에서 말하는 문화는 문화인류학적으로 타자의 그것을 유럽 문화에 비교하기 위해서 만든 말이다. 비교우위에서 타자의 문화는 대상화된다. 상대방이 대상화될수록 자기 문화는 기준이 된다. 유럽에서 말하는 문화를 동아시아에서 찾는다면, 오히려 예악형정(禮樂刑政), 혹은 인의예악(仁義禮樂)이라는 말이 적합하다. 모더니티는 완전히 서구의 개념이어서 우리에게는 아직도 생소하기만 하다. 더구나 전통문화의 경우, 이미 발전이 끝났기 때문에 고정된 구조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그 기원에 대한 인식은 선사(先史)의 면막(綿邈)한 망각 속으로 흩어져 사라진다. 반면에 모더니티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서구 문명에 나타난 현상이다. 따라서 모더니티의 기원에 대하여 우리는 가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여전히 지속되는 진화의 연속된 과정임을 목도하고 있다. 모더니티의 본질은 종교, 즉 신적인 것의 세속화에 있다. 그것은 이질적인 것을 타자화시킨다. 유럽의 문화에서 동아시아의 문화는 타자화된다. 동시에 동류의 것일지라도 위계화시킨다. 그들이라도 저마다 계급의 분류화를 겪게 된다. 모더니티는 정확히 메사 플라토(mesa plateau)와 같다. 메사 플라토는 정상이 평원으로 이루어진 가파른 산이다. 그곳을 오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게 어렵다. 그러나 오른 사람에게는 시원하고 편안한 평지에서 가파른 아래를 관망할 수 있다. 그리고 나중에 오르는 후발 주자는 먼저 오른 소수 사람들의 감시, 통제, 평가에 의해 오르는 행로에서 부담을 받게 된다. 모더니티를 교육받고 그림을 그리는 우리는 메사 플라토에 당도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후발 주자이다. 동시에 그 오르기 어려운 메사 플라토는 그곳에 당도한 후발 주자들의 영향에 열려있는 평원의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모더니티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그 개념은 위태롭고 느슨하여 언제고 깨질 수 있다. ●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는 구조는 전체론(holistic) 적이라고 주장한다. 데리다는 문화든지, 사회든지, 모든 것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구조는 내밀한 일관성을 갖고 있으며 반드시 중심과 심층적 원리에 의해 지배된다고 말한다. 중심 원리들이 구조의 심층을 조직하며 구조, 혹은 시스템 내부의 모든 요소들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현대미술의 주류는 여전히 모더니티의 추동력으로 작동된다. (포스트모던, 에피메럴 아트, 인터랙티브 아트, 프로파간다 예술 등 모든 개념은 모더니티에 의해 포괄된다.) 모더니티는 이질적 요소를 단속한다. 제한된 범위에서 독창성(originality)과 진정성(authenticity)을 모두 구유해야 한다. 더군다나 미술의 모더니티는 내러티브, 즉 대서사의 내밀한 논리를 요구해왔다. 평면성(flatness)은 서구 회화의 주요 의제가 되어 미술사의 궤적을 형성했다. 이 궤적은, 마치 미국 대륙횡단열차가 각각의 역사(驛舍)를 지나듯이, 한 작가의 이름을 성좌(星座)처럼 기린다. 동아시아 작가의 이름은 그것이 아무리 북두칠성이라 할지라도 큰 곰자리(Ursa Major)에 할당되지 못한다. 이러한 숙명은 김현식 작가에게도 실존적 문제였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이 중심의 원리들은 영구히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느슨하게 풀려가다 종국에 해체된다. 모더니티의 중심 원리는 위계이며 계보를 통한 유산의 상속이다. 따라서 여타 다른 문화권에서 태어난 작가가 구미 중심주의의 세계에 진입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그 단단한 고정체는 언젠가 완화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모더니티의 외연은 확대되고 있다. ● 김현식 작가와 나는 모더니티에 대한 도전과 극복의 문제는 우리에게 실존적으로 직면한 상황이라는데 인식을 함께했다. 메사 플라토에 끝까지 오르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마른 바위를 밟고 아픈 선인장 가지를 움켜쥘 수 있는 의지만은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김현식 작가는 그것을 위해 오랫동안 연구했고 존경해 마지 않았던 또 다른 위대한 작가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였다. 마크 로스코가 일생 동안 염두에 둔 사상가는 니체였으며, 특히 니체의 『비극의 탄생(The Birth of Tragedy)』이 그의 사상의 중심으로 깃들게 된다. 『비극의 탄생』은 아폴론적 예술과 디오니소스적인 예술을 구분한다. 아폴론의 예술에는 균제의 아름다움이 서려 있고 질서정연하며 이성이 주도하는 예술이다. 이에 반해 디오니소스는 격정의 파토스를 포효하며 혼돈으로 질서를 압살시키는 예술이다. 니체는 자기 시대에 디오니소스적인 예술이 도래하여 신세기와 문화를 이끌 것이라고 보았다. 로스코는 이 둘이 절충되어 융섭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덜 표현된 것, 마치 아폴론의 정제된 질서가 화면을 지배하는 동시에 격정과 공포, 숭고를 모두 느끼게 해주는 미술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크 로스코는 그 유명한 테제를 타임지(誌)에 발표한 적이 있다.

우리는 복잡한 생각의 단순한 표현을 좋아한다. 우리는 광대한 형체를 좋아한다. 그것이야말로 명료한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림의 평면을 다시 확인하고 싶다. 우리는 평평한 형상을 좋아한다. 그것은 환영을 파괴하고 진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6)

가장 단순한 표현으로 가장 정서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로스코는 지난 세기 중반에 이미 제시했다. "대학에서 내세우는 전통적 수단은 그림을 드로잉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색으로 시작해야겠지요."7) 태초의 원시 그림은 드로잉이었다. 아이들도 드로잉으로 그림을 시작한다. 그러나 로스코는 색이야말로 본질적이며 복합적인 감정을 실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색으로 이루어진 그림은 단순한 외양을 갖는 만큼 무한한 감수성의 문을 열기 때문이다. ● 로스코는 자기 예술을 추진시키는 힘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로스코는 인간의 본질은 유한하다는 데 있다고 했다. 동시에 인간은 자기의 죽음을 이해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그림은 죽음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외로움, 격정, 분노, 두려움, 반란, 복종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나 숭고, 경외심, 존경, 해탈, 은거와 같은 종교적 심성도 죽음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죽지 않는 존재라면 두려울 것도 없고 절대자를 경외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둘째, 로스코는 관능성, 즉 에로스(eros)를 중시했다. 에로스는 인간이 살아가는(죽어가는) 동안 타자와 가질 수 있는 가장 깊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에로스는 나의 죽음을 외부로 보류해 준다. 셋째, 지금까지 살아왔던 나를 소멸시킬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나의 소멸에 의해서 나는 새로운 국면의 나로 다시 나아갈 수 있다. 이를 로스코는 아이러니(irony)라고 불렀다. 그밖에 그림 속에는 유희(play), 위트(wit), 우연(chance)과 같은 요소들이 착종(錯綜)된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들, 즉 비극, 황홀감, 파멸에 관련된 감정들을 표현한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감정들을 관통시키는 내 그림을 보면서 주체하지 못하고 허물어지고 또 울게 된다. 내 그림 앞에서 우는 사람들은 내가 그것을 그렸을 때 느꼈던 것과 똑같이 종교적 경험을 하게 된다. 만일 색채와 색채가 갖는 관계를 통해서만 감동 받았다면, 그는 핵심을 놓친 것이다.8)

그림은 불투명한 캔버스에 불투명한 물감을 붓으로 올리기 때문에 평면적일 수밖에 없다. 재현적 그림의 대서사는 19세기에 막을 내렸다. 모더니티 회화의 대서사는 그림이 본질적으로 평평하다는 인식을 더욱 잘 드러내는 그림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마크 로스코나 바넷 뉴먼(Barnett Newman, 1905-1970), 애드 라인하르트(Ad Reinhardt, 1913-1967)와 같은 숭고주의적 회화가 완성되는 시점에 모더니티 회화는 정점에 이른다. 이들이 죽음, 신, 경외, 영웅으로 대표되는 숭고의 서사를 회화의 본령으로 삼았다. 그 방법론은 두 가지이다. 거대한 캔버스의 사이즈다. 혹은 분할된 여러 개의 캔버스를 하나의 작품으로 묶는 방법이었다. 또 밝게 발산하거나 어둡게 침잠되는 극단적인 색채 조합으로 인간의 심성을 매료했다. 특히 마크 로스코는 1958년 무렵부터 붉은색, 갈색, 고동색, 검은색 등 어두운색을 선택하여 화면에 죽음의 적막함과 절대자의 에너지를 공존시켰다. ● 김현식은 현(玄)의 세계를 표상한다. 동아시아 문명에서 외재적 절대자는 신(神)이 아니라 우주를 운영하는 원리(principle)이다. 그 원리에 대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이름으로 불렀다. 그러나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어둡고 검은, 그래서 적막무짐(寂寞無朕)한 그 세계를 현묘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 세계는 현상에 관여하지만 자기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김현식의 작가는 무한의 심연으로 빠져드는 공간, 그리고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표상하기 위해서, 회화의 표면 아래로 표면이 무한히 거듭되며 수직선들이 무한하게 병립되는 방법을 채택했다. 이는 작가가 존경하는 마크 로스코에 대한 반응이자 헌사이다. 마크 로스코는 숭고의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캔버스의 사이즈로 압도했다. 반면에 김현식은 화면의 깊이로 무한을 현현(顯現)시켰다. 김현식은 외재적 신이나 죽음과 같은 한계 상황을 설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낳고 낳은 것을 역(易)이라 한다."9)라고 말했던 동아시아의 사유를 채택했다. 그것은 생명의 탄생을 상찬하는 말이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원리는 인(仁)에 있다. 끝없이 솟아나면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돕는 수직선은 기운(energy)의 간단(間斷) 없는 생성(becoming)과 모든 사물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 김현식 작가는 올해 「미러(Mirror)」 연작을 선보였다. 이 시리즈는 둥근 틀에 수지가 켜켜이 쌓여서 암흑의 중심 바깥으로 밝은 색채가 새어 나오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연작은 모더니티 역사에 대한 헌사의 의미가 있다.

「미러(Mirror)」 연작은 원형 그릇에 레진과 아크릴 물감이 서로 켜켜이 쌓아 원만구족(圓滿具足)한 세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거울이라는 뜻을 지닌 영어 'mirror'는 라틴어 'mirari'에서 나온 것이다. 'mirari'는 눈부시고(remarkable) 경탄스럽다는(astonishing) 뜻을 지닌 'mīrus'에서 나온 것이다. 이 'mīrus'에서 기적을 뜻하는 'miracle'과 경탄을 뜻하는 'marvel'이 나왔다. 따라서 'mirror'는 놀라움의 결과로 펼쳐지는 '존경(ad-mira-tion)'을 뜻한다. 김현식은 모더니즘의 역사를 살다간 대가들을 경탄과 존경심으로 대했다. 이번 작품 연작은 작가가 예술과 사회에 드러낸 자기 고백이다. 동시에 모더니티의 대가들을 넘어서겠다는 자기 의지이기도 하다.10)

김현식_현玄을 보다/B_에폭시 레진에 아크릴채색, 나무 프레임_90×90×7cm_2021

3. 프로메테우스 ● 모든 작가는 프로메테우스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아버지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쳤다. 프로메테우스는 아버지 제우스가 내렸던 금기의 선을 넘었다. 그 불을 인간에게 준 것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속임수를 써서 불을 훔친 일에 대하여 헤시오도스(Hesiodos)는 『일과 날(Erga kai Hemerai)』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나는 불의 비밀스러운 원천을 훔쳐냈다. 나는 그것을 회향 가지에 숨겨왔지.11)

우리도 모두 그러한 경험이 있다. 회향 가지에 숨겨오는 일은 속임수(trick)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모두 난롯불이나 촛불, 혹은 성냥불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 속으로 달려가서 손에 넣으려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우리의 뒷덜미를 잡거나 매로 손등을 내려쳤다.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최초의 좌절을 경험한다. 우리는 나중에 자라서 아버지의 불을 훔친다. 불을 훔쳐서 야외로 가져가 나무 열매와 곤충을 구워 먹으며 주린 배를 채운다. 나른해진 상태에서 생각해 본다. "나는 아버지보다 불을 더 잘 다루는 것일까?" 아버지의 권능과 비교한다.12) 예술 역시 불의 상속이다. 불은 상속을 원칙으로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일찍 속임수를 써서 불을 훔쳐낸다. 예술가는 누구나 프로메테우스이다. 제우스는 언젠가 불을 상속시켜주려 했지만, 프로메테우스는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없다. 예술가에게는 누구나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는 닮고자 하는 대상이며 그 대상의 능력(불)을 훔친다. 예술가에게 아버지는 여러 명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 명도 없을 수는 없다. ● 김현식 작가에게 제우스는 마크 로스코다. 그런데 또 한 명이 더 있다. 윤형근(尹亨根, 1928-2007) 작가이다. 윤형근 작가에게 제우스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이다. 김정희는 무조건적인 복고주의자가 아니었다. 옛 문물을 익혀 새로움을 창신(創新)해내는 경지를 지향했다. 예(隸)ㆍ전(篆)ㆍ해(楷)ㆍ행(行)의 역대 득실을 분석해서 정수를 한 곳에 담아냈다. 추사에 의하면, 예술은 독만권서(讀萬卷書)의 문기(文氣)와 행만리로(行萬里路)의 경험이 함께 축적될 때 비로소 빚어지는 고결한 문화 형식이다. 윤형근은 서로 만날 수 없는 서구 모더니티와 한국의 전통을 서로 잇고자 했다. 추사의 조형의식은 흡사 서구 모더니티와 닮은 곳이 있었다. 평평한 지면(캔버스)이라는 한계 속에 고도로 수련된 기예와 정신을 불어넣는 것이다. 윤형근은 가장 한국적인 모더니티를 성공적으로 구축해냈다. 모더니티는 모든 문화 형식을 불문하고 전통과의 단절을 요구한다. 모더니티를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 선인들과의 단절을 천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윤형근의 회화에서 모더니티와 전통은 서로 화해된다. 선비정신은 모더니티와 어우러진다. 예술 속에서 선비정신은 문이재도론(文以載道論)을 통해서 구체화된다. 문이재도론이란 문화는 반드시 도리를 실어야 한다는 우리의 전통적 문예 이론이다. 도본문말(道本文末)이라고 하여 도리가 원초적 뿌리이며 예술은 잎사귀와 꽃으로 보았다. 문이재도론에서 말하는 문(文)은 단순히 글짓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의예악(仁義禮樂)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문(文)은 반드시 도리를 실어야 한다. 도리는 모든 대상을 염려하는 우환의식(憂患意識)이자 존재하는 모든 대상을 존경으로 대하는 무불경(毋不敬)의 자세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수양으로 닦인 고매한 인품이 아니고서는 예술이라고 말할 수 없다. 추사도, 윤형근도 고매한 경지로부터 예술을 빚었다. 이처럼 선조의 뜻을 품은 채 모더니티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켰다. 따라서 엇비슷한 형식이라 할지라도(물론 아주 다른 형식이지만) 천양(天壤)의 차이가 드러난다. ● 김현식 작가 역시 무불경의 마음으로 도리를 시각화시킨다. 현(玄)이라는 절대 공간을 체현하는 동시에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을 겸허하게 수용한다. 앞서 말했듯이 김현식 작가는 작품 속에서 현(玄)의 세계를 천명한다. 그것은 작가가 생각하는 형이상학적 세계에 대한 예술적 반응이다. 그리고 그 형식의 근본은 마크 로스코와 같은 숭고주의적 회화의 연원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자기를 소멸시켜 새로운 국면으로 옮겨나가는 아이러니를 모더니티의 힘이라고 말했던 로스코의 뜻처럼, 김현식 작가는 로스코의 그것을 소멸시켜 다시 우리 토양에 새로운 자기 세계를 발아시켰다. 그것은 한국적 모더니티의 중심을 이동시키고자 하는 투지이며, 세계 모더니티의 외양을 확대하려는 작가의 기획이다.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1913-1974)에서 윤형근으로 이어지는 계보학은 누군가에게 이어지게 되어있다. 김현식 작가는 윤형근 작가가 그랬던 것만큼이나 동아시아의 사상과 미감을 모더니티에 불어넣어 새로운 활기의 추동력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나는 김현식 작가가 한국 대가들의 유산(불)을 상속받을 추정상속인(推定相續人)이라고 확신한다. ■ 이진명

1. 倪瓚, 「容膝齋圖」의 題跋: "屋角春風多杏花, 小齋容膝度年華. 金梭躍水池魚戲, 彩鳳棲林澗竹斜." 2. 『老子』 1章: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故常無, 欲以觀其妙; 常有, 欲以觀其徼,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3. 『周易』 「文言傳」: "夫玄黃者, 天地之雜也. 天玄而地黃." 4. 揚雄, 『玄攡』: "玄者, 幽攡萬類而不見形者也. 資陶虛無而生乎規, 𢺄神明而定摹, 通同古今以開類, 攡措陰陽而發氣." 5. 葛洪, 『抱朴子』 「暢玄」: "玄者,自然之始祖,而萬殊之大宗也. 眇眛乎其深也, 故稱微焉. 綿邈乎其遠也,故稱妙焉. 其高則冠蓋乎九霄, 其曠則籠罩乎八隅." 6. Breslin, James. E. B., Mark Rothko: A Biography(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3): "We favor the simple expression of the complex thought. We are for the large shape because it has the impact of the unequivocal. We wish to reassert the picture plane. We are for flat forms because they destroy illusion and reveal truth.": 191쪽. 7. Rothko, Mark; López-Remiro, Miguel, Writings on art(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6): "Tradition of starting with drawing in academic notion. We may start with color.": 6쪽. 8. Baal-Teshuva, Jacob, Mark Rothko, 1903–1970: Pictures as Drama(New York: Taschen, 2003): "only in expressing basic human emotions-tragedy, ecstasy, doom, and so on. And the fact that a lot of people break down and cry when confronted with my pictures shows that I can communicate those basic human emotions.…The people who weep before my pictures are having the same religious experience I had when I painted them. And if you, as you say, are moved only by their color relationship, then you miss the point.": 50쪽. 9. 『周易』 「繫辭」: "生生之謂易." 10. 이진명, 『Pars Pro Toto』(영천: 시안미술관, 2021): 12쪽. 11. Carl Kerényi, Ralph Manheim(trans.), Prometheus: Archetypal Image of Human Existence(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3): "I hunted out the secret source of fire. I filled a fennel-stalk therewith.": 50쪽에서 재인용. 12. Bachelard, Gaston, Alan C. M. Ross(trans.), The Psychoanalysis of Fire(Boston: Beacon Press, 1964): 7-12쪽.

김현식_Who likes YJ color?_에폭시 레진에 아크릴채색, 나무 프레임_27×27×7cm×3_2021

Profundity1. Realm of the profound (玄) KIM Hyunsik (金玄植, 1965-) places brushes profound moments into his paintings. 玄 (dark; mysterious, profound, abstruse, arcane) is a consistent theme ofin all Kim's paintings; most of which are vertical, abstract works. The lines are vertical, whether they are top-down or bottom-up. The countlessly iterative all-over lines that populate the surface and beyond are from the hours of labor poured and brushed in by the artist. Resin (樹脂) is applied on a rectangular panel and spread evenly over the entire surface to dry. Once the surface is sufficiently dry, a blade is used to mark the dried resin with equally spaced, parallel lines. The process creates fine crests and troughs on the resinous surface. The artist then applies paint upon the surface so that the abraded, grooved surfaces fill with color. Once the grooves have been filled, the surface is wiped carefully with a cloth to remove any trace of paint on the crest. More resin is applied on the panel, and the process is repeated. In that passel of iterations, the orphic lines of colors are hidden and revealed, then hidden again. It is entirely mysterious how something can be hidden, then revealed. TheThis enigma could not be given a descriptive name, so the artist chose to call it 玄 (pronounced hyun), meaning mysterious, profound, abstruse. The rhythmic nature of obscurity and revelation inspired the artist to also call it 絃 (again,homophone pronounced hyun), meaning the strings of a string instrument. Is it a coincidence that the artist's name KIM Hyunsik in sino-Korean characters read 玄植, meaning "to make known the secret things?" ● Kim and I enjoy our conversations about art. SWome time ago, we met and talked about artists some time ago. The conversation was not long, but it carried the topic of three or four different masters. The first master we discussed was Ni Zan (倪瓚,1301-1374) from the late Yuan and early Ming era. We discussed his Ronxi Studio (容膝齋圖, 1372) which epitomizes his style. When used as a common noun, "ronxi studio" is a living-quarter with a space so small that its occupant can barely bend a knee., in typical sino-hyperbole. I remember looking gazing at Ni's painting in with great admiration. It was not because it embodied the exceptional talent of a seonbi (learned literati) who drew from the draconian rigidity (森嚴) of the Song Dynasty's great landscape paintings (大山水) and simplified (簡率) its essence. Ronxi Studio pursued substantial truth (質實) to the extreme, reaching the ethereal (虛靈) state, but. StillRegardless,, our conversation was headed elsewhere. that was not the gist of our conversation. Neither did we linger ponder upon the master's three-tier presentation of one river and two banks (一河兩岸). We also read the poem in the preface and postscript (題跋).

Apricot blossoms flutter down as the spring breeze curls over the crest of the tiled roof. The setting of the poem hints at the years weathered by the ronxi. The fish flit around the surface of the pond (金梭) and cheerfully splash about, the magnificent phoenix perches over the bamboo, leaning attentively over the lush undergrowth.1)

Ronxi Studio's landscape is bleak, but the fluttering petals of apricot blossoms evoke a lush spring atmosphere of April. Ni envisioned the auspicious phoenix when he saw the playful fish in the water and the rustling, tousled leaves of the bamboo forest. The verses were so infused with life and unlike the painting that we could not immediately compromise the two. However, we agreed that it was a masterpiece for reasons other than its simplicity of composition, breaking away from the paradigm established by preceding masters such as Li Cheng (李成, 919-967) and Fan Kuan (范寬, 950-1032). KIM Hyunsik pointed out a pervasive characteristic found in all of Ni Zan's works. "Ni Zan's paintings have a space characterized by thusness or suchness. The void space of flowing water between the two sloping banks (兩岸) is the realm of the ethereal. That, to me, is the realm of immutable imagery (常). Ni Zan would have understood that immutable spaces were layered with real spaces. I, too, seek to create such a space, and so I have captured time between the layers of resin and embalmed the space of thusnesss and suchness." ● The first sentence of any scriptural body of text contains the essence of its religious underpinning. Logos (λόγος - that which is thought or said) appears in the first lines of the Holy Bible. Learn (學 - learn and study) appears in the first lines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Dao (道 - the way of things) appears in the first lines of Lao Tzu. The Logos (the word) is how revelation begins. Learning (學) is the first step to learning how to live life and also an obligation to be practiced throughout life. The way of things (道) is the ultimate reality, encompassing both the tangible principles of this reality as well the less tangible dynamics beyond our understanding or perception. The first chapter of Lao Tzu's TaoTeChing reads as follows: The Tao that can be spoken is not the eternal Tao The name that can be named is not the eternal name The nameless [無] is the origin of Heaven and Earth The named [有] is the mother of myriad things Thus, constantly without desire, one observes its essence Constantly with desire, one observes its manifestations These two emerge together but differ in name The unity is said to be the mystery [玄] Mystery of mysteries, the door to all wonders2)

Constant nothingness (常無) and constant have-ness (常有) stem from the same way of things, but they are distinct. However, distinguishing between them is not possible for with human perception. That is why both are called maysteries.mysteries. Mystery[玄] in this context is a simplifcationsimplification of what is profound, excellent, and lasting (深遠幽奧) about the universe. Lao Tzu also learned from the commentary of the Book of Changes (周易 - I Ching). In the Wen Yan Kun (文言傳 - commentary) of the Book of Changes (周易), a passage that reads, "The mention of that as being (both) 'azure and yellow' indicates the mixture of heaven and earth. Heaven's (colourcolourr) is azure and earth's is yellow." The earth is the tangible foundation of all things. It embraces all things equally. In contrast, the heaven does not make known its attribute. There is no other way to describe it other than mysterious (玄). ● Yang Xiong (揚雄, 53B.C. - 18A.D.) also discusses hyun (玄), referring to it as the name of the omnitudo. He wrote: Xuan (玄 - Kr: hyun) is that which obscurely sets forth the myriad kinds without revealing its form. It fashions stuff from the void and emptiness, generated from the round; Supporting spiritual brilliance, it establishes the models. It penetrates unity from the past and present in order to differentiate categories. Upon the unfolding and circulation of yin and yang, qi is released4)

As such, hyun is in Absolute existence, transcending all things relative. Hyun (玄) in the way Yang Xion describes is the most primordial of all creation, devoid of form or representation. ● Ge Hong (葛洪, 284-343), a Daoist master and physician from the Eastern Jin period. Ge Hong (葛洪, 284-343), a Daoist master and physician from the Eastern Jin period. He, too, discusses hyun (玄) in his book Baopuzi (抱朴子 - Master embracing simplicity). "That which is Dark (玄) is the primordial ancestor of Nature and the Great Forebear of the myriad different [things]. Its impenetrable depth is called formless; its unbroken continuity is named as excellence. Its height caps the nine heavens [九霄]; its breadth covers eight directions [八隅]."5) Just as the other masters, Ge Hong refers to hyun (玄) as the Absolute that transcends all things relative. In the East Asian tradition, the name of the Absolute could not be spoken out loud. Hyun (玄) had to be an adjective placeholder for the heavens. Hyun (玄) is an Absolute space, devoid of time, a place of invisible realities that dictate our physical reality. Ni Zan was drawing that Absolute space, the realm of hyun (玄). KIM Hyunsik is an artist who has also been drawn into that place. Merely the medium has changed.

2. Fate called Modernity ● KIM Hyunsik became a painter when he was baptised by Modernity. For the past several decades, East Asians have been increasingly mired by a certain discomfort. It concerns the terms culture and modernity. Culture, as defined by the cultural anthropology of the West, serves to compare the "way things are and done in the East" to that of the West. The other's culture is objectified when comparing cultures. And against this objectification, one's own culture becomes ever more canonical. The East Asian analogue to the European definition of culture would be closer to the ye-ak-hyeong-jeong (禮樂刑政 - ceremonies and music, punishments and laws of conduct) or in-ui-ye-ak (仁義禮樂 - benevolence and righteousness, ritual and music). Modernity is entirely a Western concept that is yet abstruse to the East. The Western implication behind traditional culture is that at a certain point sufficiently removed from the present, culture has somehow ceased to change, and that in its preserved state it can be compartmentalized and dissociated in a static lattice. The initial awareness of the dynamic, breathing practices and ways of being becomes lost and abstracted in the distant sands of time. Modernity, on the other hand, is a phenomenon that appeared in the West relatively recently. As such, not only can we trace the origins of Modernity, but also observe it as an evolutionary processing ongoing today. The soul of Modernity resides in the secularization of religion, of the divine. It justifies the othering of what is different to from the self. In European culture, east Asian culture is othered. Even things of the same kind are perceived through the hierarchy. Even between themselves, they create hierarchies and stratified classes. Modernity may be likened to a mesa. A mesa is an isolated, flat-topped elevation bounded from all sides by steep escarpments, distinctly elevated from the surrounding plain. Their steep, vertical sides are nearly impossible to climb. However, once the climb is complete and both feet are planted on the flat-top, one can cast a leisurely glance down the steep slopes. Those who follow the climb later will have to endure the scrutiny, control, and judgement of the ones at the top, looking down. In that metaphor, where the East Asians learned of Modernity and the Western ways of drawing, after the West, we are the ones scaling the steep walls to the flat-top. At the same time, the flat top of the mesa gauntlet that is the difficult climb, is open to the influence of later arrivals. Even by that metaphor, Modernity is still ongoing, and its concept is hardly set in stone. It is constantly interacting with new actors and influences that can weaken and wear down the mesa. ● Jacques Derrida (1930-2004) argued that structures were holistic. He explained that everything - culture, society - has structure. Structures are deeply consistent and necessarily governed by the center. The center governs the deep structures and all elements within a structure or system. Mainstream contemporary art is still driven by the momentum of modernity. (All concepts such as postmodern, ephemeral, interactive, propaganda, etc. arts are all included in modernity.) Modernity polices heterogeneity. Within the limited scope, originality and authenticity must both be satisfied. Moreover, the modernity of art has demanded a solid and logical narrative of the epic. Flatness became a key agenda for Western painting, outlining the trajectory of art history. Like the American transcontinental railway connecting major cities and stations, this trajectory connects an artist's name like a constellation. The East Asian artist's name, even if it were the Big Dipper, will not be called Ursa Major. This was an existential problem for KIM Hyunsik. However, such central principles as mentioned above are not permanent or fixed. They gradually loosen and eventually become dismantled. Modernity's central dogma is hierarchy and inheritance through genealogy. Meaning, artists born outside of that hierarchy and genealogy face great challenges in entering centralized Euro-Americanism. However, that steep rigidity is bound to ease with time. Furthermore, the scope of modernity, its outer limits continue to expand. ● KIM Hyunsik and I agreed that the problem of challenging and overcoming modernity was in the existential situation that we faced. Even if we fail to reach the mesa's top ledge, we have to demonstrate the will to tread treacherous rocks and grasp at even the driest of cacti if need be. Kim talked about another master who he studied for years with great admiration. It was Mark Rothko (1903-1970). Throughout his life, Rothko constantly thought of Nietzsche, and Nietzsche's The Birth of Tragedy became central to Rothko's thoughts. Tragedy separates Apollonian art from Dionysian art. Apollonian art is characterized by aesthetics of uniformity, order, and reason. Dionysian art, on the other hand, roars with raging pathos and crushes order with chaos. Nietzsche believed in the arrival of Dionysian art in his time; an arrival that would carry forward a new century with new culture. Rothko believed that the two could compromise and conflate. He thought it was is necessary to create art of bare essentials of to domineering Apollonian order, while also evoking passion, horror, and transcendence. Mark Rothko's thesis on the matter was published and widely read via the New York Times.

We favor the simple expression of the complex thought. We are for the large shape because it has the impact of the unequivocal. We wish to reassert the picture plane. We are for flat forms because they destroy illusion and reveal truth.6)

Rothko had already suggested in the mid-20th century that the simplest expressions were capable of conveying the most emotional experiences. "Tradition of starting with drawing in academic notion. We may start with color."7) The earliest primitive paintings were drawings. Children first learn to draw before painting. However, Rothko believed that color was more fundamental than form, believed it capable of expressing complex emotions. The sheer simplicity of a color-only painting could open a door to infinite affective possibilities. ● Rothko once explained the compelling force behind his art. The essence of humanity was in its own finiteness. At the same time, understanding one's own death is what separates humanity from the rest of creation. Paintings start from the knowledge of death, of non-being. Negative emotions such as loneliness, fury, rage, fear, rebellion, and submission, as well as religious concepts such as sublime, awe, reverence, Nirvana, and heritage also stem from the awareness of death. Had we not been mortal, what would we be afraid of? What transcendent being would we worship and revere, if at all? Second, Rothko emphasized sensuality. Eros is the deepest connection a human being can have with another human in life (while dying). Eros pauses this decadence in an externalized manner. Third, art must have the power to completely annihilate who the self has been. Only through this death can the self enter a new phase of self. Rothko called this irony. Other elements also become entangled in paintings, such as play, wit, and chance.

My work expresses the most primordial human emotions. They are emotions related to tragedy, ecstasy, and devastation. Many who gaze upon my paintings are pierced by those emotions and break down. Some even cry. Those who cry before my paintings are undergoing a religious experience as I have when I created them. If the experience is only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colors, then it has missed the point.8)

Paintings are drawn on the opaque canvas with an opaque substrate of paint, making it inevitably flat. Painting as representation passed a watershed with the passing of the 19th century. The grand narrative of painting in modernity is a process headed toward images that further reveal the inherent flatness of paintings. Modernist paintings reached a peak around the time subliminal artists like Mark Rothko, Barnett Newman (1905-1970), and Ad Reinhardt (1913-1967) came into their own. Their They designated native element the narrative of the sublime -, rendered in death, god, reverence, and heroism – as their native element. There were two primary mechanisms. The First first was either to present art on an extraordinarily large canvas, or to bring together lesser canvases together as a large, singular work. The Secondsecond mechanism was to combine extreme colors, to present both radiant colors and deep-sinking tones. Rothko's works circa 1958 began featuring darker tones of dark red, auburn, brown, and black to conjure up the aura of forlorn morbidity and the Absolute. ● KIM Hyunsik represents a world of mystery (玄 - hyun). In the East Asian tradition, the external Absolute is not a personified god-figure, but an overarching principle of the Universe. This principle has been called many different things by many different people. Despite what they were named, none could capture the essence of the (寂寞無朕 - a zero point of living emptiness) beyond synonyms of darkness, mystery, and somberness. A world driven by such a principle is involved in phenomena but never reveals itself. It is not subject to the boundaries of time and space. In order to represent a space of eternal unbound depth where space and time do not exist, KIM Hyunsik adapted a method in which the surface is infinitely repeated laminated below the surface with infinitely juxtaposed lines. The method is a reaction and tribute from Kim to Mark Rothko; a master who the artist greatly admires. Where Rothko overwhelms with canvas size to evoke and elevate the affect of the sublime, Kim submerged the infinite below the surface of the screen. KIM Hyunsik does not plot extremes such as an external god or death. Instead, he states, "change (易) is what we beget and what is begotten," in the East Asian tradition of thought. Such statements celebrate the begotten life. The principle that begets is found in humanity (仁). The boundless vertical lines are a testimony to the mutual connection of the rising lines, to the disconnected begetting, becoming and relating of all objects.9)

KIM Hyunsik presented the 「Mirror」 series this year. In the series, resin is laminated over a round frame, the colors seeping, springing, or even radiating out of the dark center. The series is the artist's tribute to modernist history. ● The Mirror series of works laminate layer over layer of acrylic paints and resin, revealing a world of ample harmony (圓滿具足) in the round bowl. The root of the English word mirror is in the Latin word mirari. Mirari in turn comes from mīrus, meaning remarkable and astonishing. This mīrus is the latin root for miracle and marvel. Therefore, mirror in its root has the meaning of ad-mira-tion, a result of wonder and astonishment. KIM Hyunsik approaches with great admiration and awe, the masters who lived through the era of modernism. His latest series of works is a confession of the artist's self, given to art and society. That confession is, at the same time, an affirmation of his will to build upon and surpass the great masters of modernity.10)

3. Prometheus ● Every artist wrestles with Prometheus Complex. Prometheus stole fire from Zeus, his father. By stealing fire and giving it to humanity as civilization, Prometheus crossed a line drawn in the sand by his father. Greek poet Hesiodos (c. 700 BCE) sings the following line in The Works and Days (Ἔργα καὶ Ἡμέραι - Érga kaì Hēmérai) about Prometheus, the titan who stole fire and gave it to humanity.

I hunted out the secret source of fire. I filled a fennel-stalk therewith.11)

We all have such experiences. Hiding something in fennel-stalk is a trick. We have all been fascinated by the flickering flames of the fireplace, candle or even just a matchstick or lighter. It is one of the most beautiful things in the world to behold. I tried to grasp it with my bare hands once. My father caught me in time, grabbed me by my nape and struck me on the back of my palms with a rod. This obstruction, deprivation, and frustration in relation to beauty was only the first of many more to come. With the blessing of age, we steal our father's flame to take it outdoors, to kindle a campfire to cook fruits and insects, filling our hungry stomach. And in that fressed and drowsy state of mind we think: "How does my command of fire command to my father's?" We compare it to the father's authority over fire.12) ● For Kim, Zeus, or the paternal figure is Mark Rothko, and one more. The master is Yoon Hyong-keun (1928-2007), who was a leading figure of the Korean Dansaekhwa art movement. For Yoon Hyong-keun, Zeus was "Chusa" Kim Jeong-Hui (秋史 金正喜, 1786-1856). Kim was not an indiscriminate revivalist. Rather, his interests were in learning and drawing from the old civilization to innovate and invent. He analyzed the benefits and detriments identified through literature and examples (隸篆) as well as case studies and actions (楷行) to identify the best practices and to collect it in one place. According to Chusa, art is a noble cultural form that is possible only when academic prowess (文氣) from reading tens of thousands of books (讀萬卷書) is accumulated alongside the practical understanding from traveling ten thousand miles (行萬里路). As for Yoon Hyong-keun, he wanted to connect the asymptotic trajectories of Western modernity with Korean tradition. Chusa's formative style has a passing resemblance to Western modernity. It is his infusing of highly cultivated artistic skill and spirit into the limitations of the canvas' flat surface. Yoon is credited for a natively modernizing and developing Korean art. Modernity requires a shearing away of all tradition, cultural forms, in all their form. So to pursue modernity means to disavow it in no uncertain terms, the connection with forebearers. Yet in Yoon's paintings, we see a reconciliation of tradition with modernity. The righteous principles of the Joseon literati harmonize with modernity. In art, the spirit of such principles is manifested in the ideology that writings are for conveying truth (文以載道論). This theory that culture must walk the path of Tao is a traditional literary theory native to Korea. The key idea of the theory is that Tao is the foundation and root while literature is only the end (道本文末). Here, the metaphor is that art was the blossom and budding leaf. In the ideology that writings are for conveying truth (文以載道論), writings are not only poetry and prose, but the benevolence and righteousness, ritual and music between people (仁義禮樂). As such, writing in its broadest sense, must embody Tao. This Tao begins with a sympathetic consciousness for the other's burdens of life (憂患意識) and always and in everything behave with reverence (毋不敬). Therefore, art demands individuals of noble character, chiseled and polished by discipline. "Chusa" Kim Jeong-Hui and Yoon Hyong-keun both practiced art in an elevated state of noble-mindedness. They embraced the will of the ancestors and fulfilled all the conditions of modernity. Therefore, even with similar forms (although this is hardly the case), the difference is as vast as between heaven and earth (天壤). ● KIM Hyunsik visualizes this Tao and practices to behave with reverence always and in everything. He recreates the Absolute space of the profound and abstruse (玄) while humbly accepting the unfathomableness of the human condition. As previously stated, KIM Hyunsik intimates a universe of the profound and mysterious (玄 - hyun) in his works. The intimation is the reaction to the metaphysical world as the artist perceives. And the foundations of his artistic style are traced back to the subliminal paintings such as Mark Rothko. However, just like Rothko who pointed to the irony of self-destruction as what pushes modernity into a new phase, KIM Hyunsik destroys and sows upon Rothko's idea of paintings. It is the artist's determination which tills this soil, to shift the center mass of Korean modernity, and to expand the outer limits of modernity in the broader, global sense. The lineage connects Kim Whanki (金煥基, pen name Suhwa 樹話, 1913–1974) and Yoon Hyong-keun; it is certainly looking for a successor. Much in the way that Yoon did, KIM Hyunsik brings East Asian ways of thought and aesthetics to modernity, generating new energy and dynamics. As such, I have no doubt that in the legacy of Korean masters, KIM Hyunsik is the heir apparent. ■ Jinmyung Lee

1. 倪瓚, 「容膝齋圖」의 題跋: "屋角春風多杏花, 小齋容膝度年華. 金梭躍水池魚戲, 彩鳳棲林澗竹斜." 2. translation by Derek Lin, 2006 3. 『周易』 「文言傳」: "夫玄黃者, 天地之雜也. 天玄而地黃." 4. 揚雄, 『玄攡』: "玄者, 幽攡萬類而不見形者也. 資陶虛無而生乎規, 𢺄神明而定摹, 通同古今以開類, 攡措陰陽而發氣." 5. 葛洪, 『抱朴子』 「暢玄」: "玄者,自然之始祖,而萬殊之大宗也. 眇眛乎其深也, 故稱微焉. 綿邈乎其遠也,故稱妙焉. 其高則冠蓋乎九霄, 其曠則籠罩乎八隅." 6. Breslin, James. E. B., Mark Rothko: A Biography(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3): "We favor the simple expression of the complex thought. We are for the large shape because it has the impact of the unequivocal. We wish to reassert the picture plane. We are for flat forms because they destroy illusion and reveal truth.": 191. 7. Rothko, Mark; López-Remiro, Miguel, Writings on art(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6): "Tradition of starting with drawing in academic notion. We may start with color.": page 6. 8. Baal-Teshuva, Jacob, Mark Rothko, 1903–1970: Pictures as Drama(New York: Taschen, 2003): "only in expressing basic human emotions-tragedy, ecstasy, doom, and so on. And the fact that a lot of people break down and cry when confronted with my pictures shows that I can communicate those basic human emotions.…The people who weep before my pictures are having the same religious experience I had when I painted them. And if you, as you say, are moved only by their color relationship, then you miss the point.": page 50. 9. 『周易』 「繫辭」: "生生之謂易." 10. Lee Jin-myung, Pars Pro Toto (Yeongcheon: Xi'an Museum of Art, 2021): page 12. 11. Carl Kerényi, Ralph Manheim(trans.), Prometheus: Archetypal Image of Human Existence(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3): "I hunted out the secret source of fire. I filled a fennel-stalk therewith.": Requoted from page 50. 12. Bachelard, Gaston, Alan C. M. Ross(trans.), The Psychoanalysis of Fire(Boston: Beacon Press, 1964): page 7-12.

Vol.20210908f | 김현식展 / KIMHYUNSIK / 金玄植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