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EA OF BEAUTY

오정택展 / OHJUNGTAEK / 吳政澤 / painting   2021_0910 ▶ 2021_0928 / 일,월요일 휴관

오정택_situation1-endless loop one afternoon on august 6 1959_ 캔버스에 혼합기법_130.3×193.9cm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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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2:00p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아터테인 ARTERTAIN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63-4(연희동 717-14번지) Tel. +82.(0)2.6160.8445 www.artertain.com

결정하지 않은 순간의 풍경 ● '아름다움은 정의될 수 없다.' 여전히 우리가 예술을 접할 때 미학적, 그리고 철학적 사고를 해야만 하는 미해결의 과제면서 전제 조건이다. 정의되지 않을 그 아름다움에 대해 어떻게든 자신만의 의미를 두고자 하는 것. 또한 그러한 의미를 가지고 서로 소통하고자 하는 것. 어쩌면 예술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의 근거 혹은, 방식일 것 같다. 하지만 이 미해결의 과제는 모든 시대를 관통하면서 시대별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들을 바꾸는 결정적 단서가 되기도 했다. 오정택 작가의 판화기법의 회화에는, 아름다움의 대명사였던 비너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비너스는 어디에도 있었고, 어디에도 없을 법한 말 그대로 아름다움을 대표해 온 상징적인 대상이었다. 작가는 아름다움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필요했고, 그것을 비너스로 대체하면서 그녀를 우리의 가장 일상적인 순간의 미장센에 출연시켰다. 과연 우리는 어떤 일상의 순간에 아름다움에 대한 감정 혹은 감상이 비롯될 수 있는걸까.

오정택_somewhere between reality and illusion_종이에 혼합기법_91×65.1cm_2021
오정택_the first stage of deify_종이에 혼합기법_91×65cm_2021
오정택_relation and distance-chemical distance_캔버스에 혼합기법_112.1×162.2cm_2021
오정택_the stage before production-show business_캔버스에 혼합기법_91×116.8cm_2021

아름다움에 대한 감정이나 감상이 순간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오랜 인류의 기억의 이어짐으로부터 학습된 가장 이성적인 판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즉, 판단의 기준을 만드는 것은 감정보다는 주로 이성의 영역에 가깝기 때문이다. 때론, 아름다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사회를 구성하고 문화와 문명을 이루고자 할 때 중요한 가치 기준을 형성할 수 있었으니까. 아름다움, 즉 미는 단순하게, 보이는 사물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더더군다나 이성적인 영역에 있어서의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은 절실할 때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실크스크린 기법을 활용한 오정택 작가의 회화에서는 비너스를 주연으로 등장시켰으면서,그 어떤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성적이든 감정적이든, 그저 아름다움을 대표해 왔었던 상징적 매체를 가장 중요한 위치에 구성해 놓은 그의 화면에서는 그 어떤 결정과 판단을 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감각적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화면을 구성하는 요소들만이 그의 시나리오 대로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아름다움은 그저 당신의 기억의 한 부분이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오정택_same period collection_종이에 혼합기법_80×116cm_2021
오정택_someones taste_종이에 혼합기법_91×65cm_2021

무엇은 이렇고, A와 B는 이렇게 다르다라고 하는 결정과 판단은 가끔 폭력적으로 누군가의 사고를 지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늘, 이분법적인 사고가 깔려있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고… 해서, 전지구적 미개함을 계몽해야겠다는 이성적 판단으로 누군가를 헤쳤어야 했던 것이 이성적 판단과 결정이었다. 그리고 전 인류는 발전하기 보다는 반성을 했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그에 마땅한 스스로의 역사를 다시 따져봐야 했었다. 누가 잘 살아왔다는 것 보다, 어떻게 우리가 존재하고 살고 있는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우리가 왜 지금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이성적으로만 판단되었을 때, 오직 나의 이해만이 중요했을 때. 그때. 그리고 그것이 무너졌을 때. 오정택 작가의 아름다움 나아가 예술 자체에 대한 판단 유보는, 일종의 해체적 사고다. 그것이 정의 되는 순간 오히려 그 의미가 퇴색해 버릴지도 모를 그 막연한 순간을 경험하고 싶지 않은 작가적 의지이기도 하지만, 언제든지 다시 당신의 매력을 찾을 수 있을 수 있음에 대한 심적인 안정감으로서의 판단 유보일 수 도 있다.

오정택_sellers and shopper_종이에 혼합기법_80×53cm_2021
오정택_rearrangement_종이에 혼합기법_52×43.5cm×2_2021

과연, 우리가 아름다움을 판단하고 결정한다고 해서 이 시대의 아름다움이 다음 시대에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앞서 아름다움을 그려왔던 그들의 작품이 정말 지금 이 시대를 대변할 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한번은 고민해 봐야 할 듯 하다. 그렇다고, 답습하는 아름다움과 또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아름다움이 얼마나 차이가 날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어찌되었든, 오정택 작가의 비너스들은 그의 시나리오대로 본인들의 역할을 잘 해 주길 바란다. 물론, 실크기법을 바탕으로 그려진 그의 회화보다 더 회화 속 주인공으로서 비너스는, 충분히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아름다움을 정의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그녀의 의미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처럼. 뒤틀린 아름다움이 간혹 더 진지하게 우리를 자극할 수 있음을 단 한번이라도 느껴 봤다면, 그의 시나리오는, 지금 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회화를 그려낼 거라면, 매번 등장할 그의 캐스팅. 주인공이 궁금해 진다. ■ 임대식

Vol.20210911e | 오정택展 / OHJUNGTAEK / 吳政澤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