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제선-기산 空際線-器山

정승운展 / CHUNGSEUNGUN / 鄭勝云 / installation   2021_0910 ▶ 2021_1014 / 월요일 휴관

정승운_34°42'02.2"N 126°47'13.6"E_ 옹기, 스테인 스틸 와이어 로프_가변크기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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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몸미술관 SPACEMOM MUSEUM OF ART 충북 청주시 흥덕구 서부로1205번길 183 제2,3전시장 Tel. +82.(0)43.236.6622 www.spacemom.org

공제선 ● 정승운 작가와 '공제선'의 시작은 2009년 공간 화랑의 전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제선은 '능선처럼 하늘과 지형이 맞닿아 경계를 이루는 선'으로 정의되며, 이곳에 서 있는 인원이나 기타 장비 등은 육안으로 쉽게 발견되므로 군사적으로 중요시된다는 사족이 붙는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경계'라는 단어와 묘한 상응을 이루는 '군사적 요충지'라는 개념이다. 공제선을 영어로 번역하면 skyline인데, 적어도 정승운 작가의 공제선을 설명하는 번역으로 썩 적합하지는 않다. 그 이유를 곰곰이 고민해 보면, skyline이라는 단어는 내부자의 주체가 외부를 관찰하고 관조할 때 어울리는 단어이다. 다시 말하면 주어진 '풍경'을 그릴 때 어울리는 단어이다. 하지만 공제선을 풍경의 재해석이라고 비평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를 남긴다. 왜냐하면 정승운의 공제선은 풍경을 묘사하거나 알레고리로 사용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제선은 스스로 어떤 규칙(수열과 알고리듬)을 만들고 따르는 것에 관심을 두며, 내부/외부, 관찰자/환경의 다층적인 역학관계를 다각도로 바라보는 데 관심을 둔다. 따라서 공제선의 주체는 안쪽과 바깥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특징을 갖기도 하며, 이것은 정승운 작가의 매체 확장성과도 관련 있다. 앞서 언급한 '경계'라는 단어가 가져오는 군사적인 긴장감은 정승운 작가의 공제선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정서이다. 다만 공제선을 기준으로 경계 지어진 내부와 외부에 무엇이 위치해 있는지, 공제선을 따라 흐르는 긴장과 방어와 화합의 기류를 살펴야 한다.

정승운_무제_도기, 실_가변크기_2021

공제선은 산의 능선을 실로 표현한다. 실은 외부와 내부를 경계 짓는다. 공제선의 안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공제선의 내부에는 작가를 포함한 내부자, 작가의 고향, 기억, 회화, 독일 유학 시절, 작품의 촉감 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외부에는 내부를 제외한 나머지가 존재한다. 어린 시절의 시각 기억, 회화 매체에 대한 첫 번째 애정, 유학 시절 이방인으로서의 기억 등이 작가의 내밀하고 예술 사회적인 세계를 구성하고 있으며, 외부와 팽팽한 긴장을 이루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내부에 위치한 작품의 '촉감'인데, 작품을 만질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 것은 공제선 내부자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공제선은 유년 시절부터 구축되고 완성되어가는 작가의 세계관을 시각화하며, 개인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주변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을 드러내는 흥미로운 전략을 취한다.

정승운_38°05'27.8"N 126°34'23.7"E_종이컵, 먹물, 실_가변크기_2021
정승운_무제_도기, 실_가변크기_2021

기산 ● 기산(器山)이라 함은 '그릇에서 보이는 산'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시장을 가로지르는 팽팽한 세 가닥의 줄이 있다. 철조망 같기도 하고 악보 같기도 한 세 가닥의 줄 위에 깨진 도기가 앉아 있다. 깨진 도기는 수집된 그릇들인데 병과 종이컵도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다. 산이라는 대상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흔한 풍경이면서 소우주와 외부를 구분 짓는 경계선, 즉 공제선의 역할을 수행한다. 세 가닥의 줄 위에 놓인 깨진 그릇과 병, 종이컵의 외곽선은 그 자체로 산세의 모습을 닮았으면서 차례대로 근경-중경-원경의 궤도를 형성한다. 정승운 작가의 공제선이 작가의 작품 세계를 a부터 ∞까지, 확장해 나가는 x축 선상에 있다면, 이 공제선의 단면들을 구성하는 y축에 세 가닥의 줄이 놓여 있다. 그리고 이 단면은 태도, 바라봄, 구도, 위치, 기타 등등 부르기 나름에 따른 관점의 입체성을 부여한다. 이것은 세 가닥의 줄이 과시하는 수학적 긴장감과 문학적 모호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매력보다는 함의인데, 앞서 언급한 '주변을 통해 중심을 드러내는 전략'이 주체와 풍경의 '상대성'에서 기인하며, 이런 상대성은 또한 작가의 내적 공간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 공간과 관람자까지 포섭한다는 점에서 전시 자체가 관객과의 체스 게임처럼 느껴진다. ● 오렌지색으로 채색된 공제선 위에 공차 먹산이 있다. 순번 : 1-3 / 주문 : #0021 / 금액 : 4,000원의 공차 종이컵은 8월 15일 산세를 따라 오려지고 작가가 부은 먹으로 완성되었다. 참으로 삶과 가까운 산이다. 이렇게 작가의 삶과 작업실 공간의 일상적인 요소들에 유희를 가미한 공제선의 변형들은 보는 이를 매우 즐겁게 한다.

정승운_무제_도기, 실_2021_부분
정승운_무제_도기, 실_2021_부분

미니멀리즘 ● "운명의 무기인 '그런데'나 '그러므로'라는 말을 쓰지 않고, 추론에 기대지 않고, 결정의 가능성을 최소한으로 하고, 그 자신의 작품에 주석을 다는 사람들에게 종종 이야기했듯 "그 빌어먹을 놈의 논리"를 사용하지 않는 것. 대신 텅 빔과 충만이 교차하고 부분들이 이리저리 분산하는 몇 개의 시퀀스만을 남기는 것, 말하자면 달랑 가구 몇 점 딸린 방을 두서없이 방문하는 일을 떠올리자." (나탈리 레제, 『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 15쪽) 정승운 작가는 미니멀리즘 아티스트들이 작업을 대하는 태도에 많은 매력을 느낀다고 밝힌 바 있는데, 특히 사뮈엘 베케트의 언급이 흥미롭다. 베케트 희곡의 차별성 중 하나는 무대의 간결함으로 성취된다. 그리고 그 간결함을 실현하기 위해 무대, 조명, 시나리오 등 연출의 요소를 제한적으로 사용하며, 결과적으로 '부조리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게 된다. 나탈리 레제의 언급처럼 '텅 빔과 충만의 교차', '달랑 가구 몇 점 딸린 방' 등의 무대적 성취는 문학과 연극 그리고 영상까지 장르를 확장했던 베케트 미학의 특징이다. 정승운 작가는 도기 파편을 전시 공간에 들여오면서 '형상이 생성되는 사건에 대한 상상'을 시도한다. 깨진 도기는 어떤 사건과 사연을 품고 있을까? 팽팽한 실 위에 놓인 깨진 그릇은 긴장의 병치를 이룬다. 이렇듯 도기 파편이라는 파운드 오브제를 작업의 주요 매체로 사용한 것은 전시의 전반적인 기획과 구상, 전시장 연출과 미니멀리즘과의 관계 속에서 이야기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 파운드 오브제의 매체 속성에 대해서도 다시 이야기해볼 수 있다.

정승운_무제_유리병, 실_가변크기_2021
정승운_무제_플라스틱 컵, 린시드 오일, 실_가변크기_2021

회화, 설치, 퍼포먼스 ● 공제선과 도기 파편, 병, 컵 등의 일견 '조각적'이고 '설치적'인 요소들에 둘러싸인 전시장에서 회화 장르가 돋보이는 이유는 회화의 선(line) 요소가 조각의 덩어리(mass)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수집된 도기 파편을 사용하는 이유 역시 이와 무관치 않은데, 이런 매체 미니멀리즘의 실현이 외려 회화의 기본 요소(선)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포착되는 점은 공제선이 포용하는 외부 요소들인데, 관객을 공제선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전시장을 대범하게 가로지르는 공제선은 기존의 공제선이 치열하게 사수해온 알고리듬과 미니멀리즘을 넘어, 퍼포먼스적이고 관객 참여적인 틈을 보이기 시작한다. ■ 조숙현

Vol.20210911f | 정승운展 / CHUNGSEUNGUN / 鄭勝云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