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the 展開

2021_0915 ▶ 2021_1001

권영식_무제_202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정태_김영세_김영진_김진혁_권영식 노중기_도지호_백미혜_이교준_한용채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30pm

수성아트피아 SUSEONG ARTPIA 대구 수성구 무학로 180 Tel. +82.(0)53.668.1566 www.ssartpia.kr

Back to the 展開전을 기획하며 ● 미술사에서 현대미술(contemporary art)은 20세기 미술이라고 한다. 포괄적이긴 하지만 추상미술, 초현실주의, 바우하우스 등과 같이 20세기 전반의 전위적(前衛的)인 미술운동과 함께 싹이 텄다. 현대미술은 유럽 각지에서 일어났으며 야수주의, 입체주의, 독일표현주의, 신조형주의, 그리고 혁명 전후의 절대주의, 구성주의, 미래주의 등이 손꼽힌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스위스와 미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다다(Dada)'운동도 주목된다. 강도의 차이는 있으나 공통점은 혁신적이었으며 르네상스 이래 신봉해오던 미술의 전통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이후 미술의 탈 장르화를 경험하는 현대에는 total art(토탈 아트), cross of art(크로스오브 아트) 등의 용어처럼 범주의 폭과 범위가 확장된다. ● 시기적으로 유럽보다 후발이지만 한국에서도 현대미술운동이 일어났다. 한국의 1950년대는 그야말로 혼란과 격동의 시기였다. 당시 미술은 공백기를 맞는다. 한국전쟁이 생계까지 위협하며 예술 활동을 침체기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인해 멈추었던 예술 활동이 서서히 부활하여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다. 한국미술사에서 1970년대는 역사적 고난과 소용돌이를 체험한 미술가들이 현대미술이라는 새로운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시작한 때이다. 이때 대구의 작가들도 혁신적인 미술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김영세_무용지용無用之用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20
김영진_Symmetry_09003_사진_194×110cm_2009

1974년 대구에서는 전국에서 최초로 '현대미술제'가 열렸다. '대구현대미술제'는 현대미술제를 타 지역으로 확산시키는 촉매제였다. 이강소, 김기동 등,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한 청년작가들이 결성한 '대구현대미술제'는 1979년까지 지속되었고 그 맥은 현재(대구·강정현대미술제)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당시 '대구현대미술제'와 비슷한 시기에 결성된 미술단체 '전개(展開)그룹'이다. 1976년부터 1983년까지 6회의 전시를 개최한 '전개(展開)그룹전'은 45년이 지난 지금 그 궤적이 표면위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소수 미술인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전개(展開)'라는 명칭에는 "우리 한번 열어서 펼쳐보자"라는 의미가 담겼고 창립멤버였던 홍익대학교 복학생 김영세 작가(52년생)가 이름 지었다. ● '전개(展開)그룹전'은 1976년(2월 21일~26일, 대구시립도서관 화랑) 결성 당시 대구의 계명대학교, 효성여자대학교, 영남대학교 졸업생이 주축이었다. 20대에서 30대 초반의 구성멤버들은 김정태, 김영진, 김영세, 도지호, 백미혜, 윤범, 이교준, 이금숙, 이태, 이현재, 황병호 등 12명이었고 전시회가 거듭되는 동안 멤버교체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1983년 2월 4일(금) ~ 2월 9일(수), 삼보화랑(대구시 중구 삼덕동 1가 8-13)에서 개최된 '6회 展開 group展'에는 권영식, 박종경, 안성영, 이교준, 한용채 등 6명의 작가만 참여했다. 창립전에 비해 작가 수가 절반으로 줄었으며 6회전을 마지막으로 전개그룹전은 막을 내렸다. '대구현대미술제가' 청·장년들의 모임이었다면 '전개그룹'전은 20대 청년들만의 모임이라는 특징이 있다. 청년들의 혈기와 기개를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마음껏 펼쳐보자는 취지였다.

김정태_time_2021
김진혁_무제_아사천에 먹_35×6.5cm_1978
노중기_무제_혼합재료_191×270cm

당시만 해도 매우 혁신적인 미술이었다는 것은 언론보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1980년 10월 20일(월요일) 전개그룹전을 소개한 영남일보 문화면 기사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전개그룹 네 번째 전시회의 개막일인 17일 오후 6시 30분 전시장인 대구 삼보화랑에서는 이벤트가 베풀어졌다. 젊은 실험화가 이교준, 안승영씨가 벌인 이날의 이벤트는 1백명 가까운 관중 안에서 진지하게 이루어졌다. 이교준씨는 한 풍경을 담은 슬라이드와 글자를 담은 슬라이드 및 녹음기 등을 동원하여 풍경 [강], [나무], 등과 글자 [강], [나무] 등의 글자 및 소리 (녹음) 그리고 사람의 몸짓 등으로 동일한 이미지를 표출했으며 동시에 그 재재들이 갖는 관계성을 보여주었다."(1980년 영남일보) ● "안승영씨는 2개의 이벤트를 보여주었는데 하나는 하나의 광원(전등)을 배경으로 자기 앞에 드리워진 자신의 그림자 길이를 분필로 표시하고 지우면서 자기 키와 자기 자신을 확인하는 작업이었고 다른 하나는 관중과 악수를 나누면서 그 속에서 자기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이 자리에서는 이 밖에 이현재씨의 출품작 [파도와 컵]의 비디오 작품이 상영되었으며 최근 제 11회 파리비엔날레에 참가하고 돌아온 박현기씨가 비엔날레 풍경을 슬라이드를 통해 선보이면서 설명했다."(1980년 영남일보)

도지호_시무외인施無畏印_1
백미혜_grid poetic - 4

당시 전개그룹 멤버들은 '대구현대미술제'에도 직·간접적으로 참여했고 선배작가인 이강소, 박현기, 최병소 등과 소통하며 미술의 혁신을 꿈꾸었다. 이들 멤버들은 서울과 마산 등 타 도시의 젊은 작가들과도 교류하며 외연을 넓혀나갔으나 6회 전시 이후 유학과 거주지 이동 등의 이유로 전시회를 유지·지속하지 못하였다. 현재는 활발하게 그 맥을 이어가는 '대구현대미술제(현재-대구·강정현대미술제)'에 가려서 존재에 대한 이해가 미약한 실정이다. ● 수성아트피아 전시기획팀은 1970년대의 기억을 소환해 『back to the 展開』전을 개최한다. 증언과 당시의 흔적들을 토대로 대구 미술의 역사를 점검하고 참여 작가들의 꾸준한 예술창작활동을 재조명하기 위해서다. 대구현대미술 1.5 ~ 2세대들이 야심차게 결성한 단체 '전개(展開)그룹'과 참여 작가들의 꾸준한 창작활동을 전시를 통해 재조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번 전시에 불참한 작가들도 있지만 1974년 한국에서 최초로 현대미술제를 개최한 도시가 '대구'였다는 점을 상기할 때, 『back to the 展開』전에 대한 흔적 돌아보기는 대구미술사에서 간과하거나 미루어둘 수 없는 단추 하나를 단단히 채우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교준_untitled 21-3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한용채_무제1_가변크기

45년 전만 해도 대구에서는 구상미술이 지배적이었다. 시류에 편승하기보다 독자적인 행보로 차별화된 예술언어를 찾아 나선 젊은 미술가들의 용기 있는 실천은 물론, 반세기 동안 꾸준한 예술적 행보가 후진들에게 호기심이 아닌 귀감이 되었으면 한다. 당시 20 ~ 30대였던 작가들은 어느새 60대 ~ 70대의 중진· 원로로 자리 잡았다. 개인전 경력이 30여회 이상인 이교준 작가는 현재 대구미술관 초대전을 앞두고 분주하다,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후진을 양성한 백미혜작가도 개인전 경력이 30여 회에 이를 뿐 만 아니라 이번 기획전 참여 작가 대부분이 예술로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전 멤버가 예술 활동을 지속하지는 못했지만 대부분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 마음만은 여전히 청춘인 60~70대 전개그룹 멤버들은 '예술이야말로 사람의 이야기'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람의 이야기는 곧 삶 그 자체이다. 삶의 프로세스에는 철학과 종교, 인문학적 소양 외에도 복잡 미묘한 삶의 스토리가 녹아든다. 설렘과 기대 그리고 긴장하며 준비한 back to the 展開전이 대구미술계의 신(新)·구(舊)세대가 진지하게 교류하는 소통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 40여 년 전 갈급했던 청년들의 미술혁신운동 展開전이 대구미술사에 끼친 영향에 대한 연구는 조심스럽지만 미술사연구자들에게 숙제로 남기고 싶다. ■ 수성아트피아

Vol.20210915c | Back to the 展開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