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A APERIO

충북대학교 70주년 기념展   2021_0924 ▶ 2021_1023 / 일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21_0924_금요일_02:00pm

참여작가 김수현_김정희_박기원_박계훈_박필현 손부남_이규식_이기수_임미나_임은수 임춘배_최익규_황학삼

후원 / 우민재단_충북대학교_청주 공예비엔날레 주최 / 우민아트센터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우민아트센터 WUMIN ART CENTER 충북 청주시 상당구 사북로 164 우민타워 B1 Tel. +82.(0)43.222.0357 www.wuminartcenter.org

충북대학교 휘장에 쓰여 있는 라틴어 NOVA APERIO를 직역하면 "나는 새로운 것들을 열어젖힌다" 정도가 될 것이다. 동사 aperiō는 열다, 개봉하다, 개척하다, 길을 뚫다, 비밀을 밝히다 등의 뜻 외에 '눈을 뜨다'라는 뜻도 갖고 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처음 이 세상과 마주할 때, 어두움 속 긴 잠에서 깨어날 때, 그동안 지각하지 못했던 무언가의 매력에 빠져 들어갈 때 우리는 '눈을 뜬다.' 이렇게 새로움으로 향하는 우리의 눈을 밝혀주는 것은 예술의 기능이기도 하다.

김수현_어느 두상_브론즈_45×20×20cm_2018
이규식_잔혹한 예지(叡智)_나무판자에 아크릴채색_220×22cm×25_2021
김정희_물(物)-매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6×367cm_2020
손부남_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있다_캔버스에 혼합재료_200×300cm_2020
박계훈_On the spiritual matter of art_한지에 오일바, 컷아웃_215×150cm_2019~21

눈을 감고 그리는 그림 ●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1991년 루브르 미술관에서 『눈먼 자의 기억』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기획하며 눈멂, 개안(開眼), 본다는 것, 눈물 등의 내용을 다루는 예술작품들을 모아 선보였다. 데리다에 따르면, 예술가가 어떤 대상을 화폭에 담는 그리기의 과정은 기억과 망각의 끊임없는 교차로 이루어져 있고, 눈멂은 그 과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선험적 사건이다. 화가는 대상이 발산하는 무수한 감각의 덩어리를 하나의 화폭에 다 담을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의 핵심을 기억하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감각의 현존이 주는 압박에 대해서 눈을 감아야, 즉 망각해야 대상을 그려낼 수 있다. ● 충북대학교 개교 70주년을 기념하여 우민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Nova Aperio』전의 제일 앞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김수현의 「어느 두상」(2018) 여인도 눈을 감고 있는 듯하다. 매끈한 두상에 표현되지 않은 눈은 우리에게 오히려 무한한 길을 열어준다. 박필현의 「인온(絪溫)」(2018)도 시야를 가리는 안개 속 풍경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자욱한 안개 사이를 소요(逍遙)하다 어느 길로 나서게 될지 어떤 생명체를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이 숲의 기운은 따스하여 이 숲 너머 세계에 대한 기대감을 안겨준다.

박기원_가든_스테인리스 스틸 와이어, 클로스볼_가변설치_2021
임은수_나는 지금 이곳에 있다3 속리산에서_퍼포먼스 영상_2020
박필현_인온(Life's Energy)_ Color Powder, Ink, Crystal Powder on Sliding-screen Paper_180×70cm×3_2018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 그러나 도시에서 우리의 일상은 녹록치 않다. 임춘배의 「고도를 기다리며」(2019)의 여인처럼 절대 오지 않을 그 누군가를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것이 도시인의 숙명일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돌멩이에 모든 염원을 담아 구원을 빌어보고,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태초의 장소로 돌아가기를 소망한다. 그러한 소망의 반대편에 펼쳐지는 대도시의 삶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흘러간다. 임미나의 「도시의 욕망」(2020)이 보여주듯, 도시의 대로에는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이 소비사회의 욕망과 분주한 일상을 대변한다. 그러나 이러한 포화 상태는 결국 우리 욕망의 헛됨과 피상적 관계들을 증언해줄 뿐이다. 이러한 존재와 무(無)의 관계를 깨달은 황학삼의 「서 있는 사람들」(2020)은 그렇기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 이 세상에 우리는 발가벗겨진 채 그냥 내던져졌고, 모든 자유로운 선택에 따르는 책임을 감내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다시 걸어갈 수 있다. 그래도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간다. 이 흘러가는 시간들을 붙들어 매듯 최익규는 광목천 위에 바느질로 선을 긋는다. 실이 다했을 무렵 매듭을 짓고 남은 여분의 실은 군데군데 늘어져 또 다른 리듬의 선을 만들어낸다. 우리의 인생도 순간순간 매듭을 지어야 할 때가 있고, 새 실을 꿰어 나아가야 할 때가 있다. 그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여질 때 우리의 윗세대가 살아온 궤적은 삶의 지침이 된다. 어쩌면 아버지가 사용하던 실과 바늘을 사용해, 아버지가 그려나간 선의 나머지 부분을 나름의 방식으로 이어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임무일지도 모른다. 데리다는 글쓰기와 그리기 모두가 선(trait: 프랑스어로 선, 줄, 선긋기, 윤곽)을 긋는 행위로, 흔적을 남기는 동일한 인간 활동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여기에 최익규의 실로 꿰매는 선긋기 행위뿐 아니라, 이기수의 알루미늄 판 위에 새기는 행위도 덧붙일 수 있다. 마치 만다라의 정사각형과 원의 상징처럼 모든 것의 근원이자 중심인 것처럼 보이는 판 위에 이기수는 새로운 생명의 잉태와 탄생을 표현하기도 하고, 사적인 삶의 기록을 빼꼭하게 채워나가기도 한다. 자연 속에 앉아 천을 풀어내는 임은수의 퍼포먼스도 우리 삶의 연속성을 기록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천을 천천히 푸는 임은수의 손짓은 멈춤 없이 지속되며, 어느덧 자연의 색과 소리와 하나가 된다. 발치에 쌓여가는 형형색색의 천들은 삶의 흔적이자 노고의 산물이다.

최익규_아버지 전상서 Letters to parents_천에 바느질, 패널_210×140cm_2017~9
이기수_desire-201609_알루미늄_각 98×98×5cm_2016
임미나_Desire of the city 001_캔버스에 에나멜페인트_80×100cm_2020
황학삼_서있는 사람들_FRP_190×60×45cm_2020
임춘배_고도를 기다리며..._청동_103×32×30cm_2019

형형색색 ● 박기원의 「Garden」(2021)은 스테인리스 스틸 와이어로 구름 같은 뭉치를 만들고 그 위에 색색 볼을 떨어뜨려 우리의 마음을 몽실몽실 피어나게 한다. 이 작품은 완전히 새로운 형형색색의 풀과 꽃이 피어난 정원으로 우리를 데려갈 뿐만 아니라, 같은 공간에 있는 동료 작가들의 작품들과 어우러지는 재미있는 리듬감을 연주한다. 바닥에 펼쳐진 무정형의 형상은 같은 공간 벽과 천정에 매달린 가로 세로 직사각형 작품들과 대조를 이루며, 흩뿌려진 색색 볼들은 다른 작품들의 빛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계훈의 3개의 족자 형태의 「On the spiritual matter of art」(2019-2021)는 관객으로 하여금 멀리서 한 번 보고 또 가까이 다가와서 그 형상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도록 한다. 검은 그림자는 추락하는 새 형상을 하고 있으며 그 뒤로 하얀 말의 머리가 중첩되어 있다. 흑과 백, 추상과 구상, 비상과 추락 사이에서 새의 깃털이면서 말갈기가 되는 부분은 작가의 손으로 일일이 오려내는 방식으로 형상을 만들어냈다.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은 어쩌면 손의 노동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NOVA APERIO-충북대학교 70주년 기념展_우민아트센터_2021
NOVA APERIO-충북대학교 70주년 기념展_우민아트센터_2021
NOVA APERIO-충북대학교 70주년 기념展_우민아트센터_2021
NOVA APERIO-충북대학교 70주년 기념展_우민아트센터_2021

색 속의 색, 그림 속의 그림 ● 김정희의 그림도 멀리서 또 가까이에서 보아야 한다. 검푸른 빛 하나로 칠해진 거대한 캔버스 안에는 그릇이 있고, 그릇 안에는 매화나무가 자라난다. 나무 가지 곳곳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삼라만상이 표현되어 있다. 장인의 손이 빚은 사물, 대자연의 힘으로 자라나는 나무, 스스로의 능력으로 살아간다 자신하는 인간의 모습까지 모두 예술가는 하나의 화폭에 같은 결로 담아내려 노력한다. 반대로 이규식의 나무판 위에 그린 색은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아도 노란색뿐이다. 그러나 또한 이 노란색 판은 우리네 삶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교실 바닥을 이루고 있었던 나무판들을 모아 작가는 일렬로 세워 울타리를 만들었다. 높낮이가 다름을 놔두기보다 이음새의 단차가 생길 때마다 편평하게 만들어버리는 방식은 우리의 공동체가 지닌, 작가의 표현대로 '잔혹한 예지(叡智)'의 표현이다. 하지만 이 잔혹한 노란색이 희망의 노란색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은 바닥 부분에 주목했을 때이다. 우리 발에 묻은 흙 때문에 더러워졌을 바닥부분의 검은 색들은 점점 피어나는 새싹들을 우리 눈에 보이도록 해준다.

NOVA APERIO-충북대학교 70주년 기념展_우민아트센터_2021
NOVA APERIO-충북대학교 70주년 기념展_우민아트센터_2021
NOVA APERIO-충북대학교 70주년 기념展_우민아트센터_2021

눈물 어린 눈으로 보기 ● 데리다에 따르면 우리 눈의 가장 고귀한 능력은 '보는 것'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는' 능력이다. 눈물(tears)은 닫혀져 있는 수문(水門)을 열어젖힐(tear) 때 난다. 이 눈물은 '차이'가 선사하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다른 것을 하나의 동일자로 포섭하지 하지 않고, 각각 다른 것의 차이를 간직한 채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의 눈에는 눈물로 가득 찬다. 눈물로 인해 아른거리는 세상을 바라볼 때가 바로 '새롭게 눈을 뜨는' 순간이다. 손부남의 7폭의 캔버스가 서로 다른 색과 형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었지만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가 되는 순간은 나와 다른 것을 동일시하는 순간이 아니다. 이곳에 모인 13명의 작가들처럼 제각각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각기 다른 재료와 방식으로 다양한 형상을 만들어내는 예술가들의 작품은 각각의 차이를 간직한 채 서로가 서로를 완성해줄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나와 다른 타자를 향해, 새로운 것을 만나기 위해 눈을 뜰 때는 물기 어린 눈이 된다는 사실을 배워나간다. ■ 한의정

Vol.20210921b | NOVA APERIO-충북대학교 70주년 기념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