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나무-도깨비-분재 Chestnut tree-Dokkaebi-Bunjae

임다울展 / RHEEMDAUL / 林다울 / mixed media   2021_0929 ▶2021_1014 / 월요일 휴관

임다울_밤나무-도깨비-분재展_갤러리175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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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한국예술종합학교_갤러리175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175 Gallery175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53 2층 Tel. +82.(0)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기획자이자 미술가의 이름으로 동시대 예술을 면밀히 추적하고 있던 임다울의 첫 번째 개인전 《밤나무–도깨비–분재》는 디지털 매체 혹은 매체성의 디지털화가 대두되는 현장에서, 이러한 조류에 휩쓸려 소재주의나 표면적인 재현에 그치지 않고 매체적 전환이 태동되는 조건 그 자체를 탐구한 결과물이자 과정이다. 임다울은 분재가들의 조각 방법론을 재발굴하며, 이를 동시대 미술 현장의 문법으로 변환한다. 자연적 대상과 인공적 왜곡이라는 이분법이 작품–존재에 이르러 다시금 해체되고, 만듦에 참여하는 다양한 요인들이 뒤얽혀 자연과 인위의 재정립을 요구하는바, 이는 작금의 디지털 전환의 상황에서도 유지되거나 활용 가능한 도식이다. 임다울은 포장용 목재 구조물, 각목, 플라스틱 오브제, 시청각 자료가 끝없이 루프하는 스마트폰 등을 서로 기대고 얽고 배치하여 작품을 만든다. 이렇게 전시 기간 중 작품의 구성재료를 뒤섞어 다시 조립하는 행동은, 작품을 이루는 구성 요소들이 하나의 통합적 대상을 만들기 위해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의미값을 가진 채 때로는 불화 가능한 형태로 배치, 배열됨을 보여준다. ● 임다울은 존재가 단일한 정체성으로 환원되지 않고 복수의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언제든 해체되고 재조립될 수 있다는 상당히 추상적인 사고를 실제 작품과 전시의 방법론을 통해 구체화하며, 이는 밤나무가 암시하는 작가 본인의 문제의식인 퀴어 정체성과 윤리성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제목에서 언급한 도깨비처럼 어떤 것이 대상이면서 동시에 방법일 수 있다는 시선 아래에서 《밤나무–도깨비–분재》는 예술 창작의 자율적 정립을 잊지 않고 바로 그것을 통해 동시대적 문제의식들을 마주하고, 그럼으로써 하나의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임다울_Eros&Psyche_스마트 폰 단말기, 플라스틱 필름_가변설치_2021
임다울_Eros&Psyche_스마트 폰 단말기, 플라스틱 필름_가변설치_2021
임다울_목성 공포증(Muxiphobia)_잉크젯 프린트_37×42cm_2021
임다울_20180928, 22800842, 20201225_잉크젯 프린트_각 14×9cm_2021
임다울_10880473 -돌아다니는 중에 찍은 것- (10880473 -Taken during exploration)_단채널 영상_01:08:00_2021
임다울_비두만(飛頭蠻)_루비, 스피넬, 아벤츄린, 지르콘, 투어마린 등 석재, 캔버스에 유채_2×39cm_2021
임다울_비두만(飛頭蠻)_라피스 라줄리, 사파이어, 스피넬, 아이올라이트 등 석재, 캔버스에 유채_2×39cm_2021

동시대 예술에서 단어 세 개를 나열하는 방식의 제목 짓기가 언제부터 유행했는지 모르겠다. 사와라기 노이는 1998년에 『일본·현대·미술』의 머리말에서 일본현대미술을 아직껏 쓰이지 않은 지나간 과거의 집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잠시 유보하고, 이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 각각을 다루며 타당한 절차에 기초하여 재구성한다. 그는 이러한 재구성을 통해 애초에 그렇게 접붙인 영역이 성립할 수 있는지 묻고, 성립한다면 일본현대미술 이 어떠한 것이며 그것을 역사라고 할 수 있는지 다루기 위해 이러한 제목을 지었다고 설명한다. 임다울의 개인전 《밤나무–도깨비–분재》의 제목에 등장하는 세 낱말은 전시의 인상을 암시하거나 전시물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고 노이와 같이 전시를 구성하는 요소들도 아니다. 세 낱말은 하이픈으로 연결됨으로써 전시의 내적 운동과 상응한다.

임다울_뒷오른팔(Hind right arm), 물갈퀴(Webbed hand)_ 혼합재료_가변크기_2020~1
임다울_뒷오른팔(Hind right arm)_혼합재료_가변크기_2020~1
임다울_물갈퀴(Webbed hand)_혼합재료_가변크기_2020~1

목재를 다루는 조각가 임다울은 무언가를 다룬다는 다소 일상적인 언어 사용의 허용 가능성조차 거부하며 자신은 어떤 매체를, 어떤 재료를, 어떤 작업물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임다울의 이러한 태도는 작가의 것을 비롯해 어떤 관점이 존재의 의미를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없고 그럴 수 있을 만큼 작품과 존재는 단순화될 수도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한다. 소박하게 태도라고 부를 법한 이러한 입장은 임다울의 전시에서 미(美), 윤리, 정치 등 다양한 맥락으로 확장되고 개별 작품과 전시 일반의 내적 구조로 구현되고 증명된다. 분재를 포장하기 위한 목재 구조물의 안팎으로 또 다른 목재가 기대고 얽혀 만들어진 두 작품(〈뒷오른팔〉, 〈물갈퀴〉)은 작품이라는 하나의 전체에 부분들이 종속되지 않기에 전시 기간 중 작업물이 재배열되어 다른 형태로 전시된다. 이러한 집적의 형태는 하나의 이름에 연결되는 각각의 목재들의 감각이 어떻게 배치될지 강하게 특정하지 않고 일정한 자율성을 허용한다.

임다울_장작(faggot)_제본_15×21×1cm_2021

이 자율성에 기반할 때 작업물이 스스로 살아간다거나 말한다는 말은 보거나 만드는 이의 희망적인 투사가 아니라 정당한 관찰이 된다. 하나의 작품을 하나의 존재라고 할 때에, 이렇듯 배치와 배열을 우위에 둔 접근법은 또 다른 존재들을 이해하는 원칙이 된다. 가령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그것을 수단으로 볼 것인지 목적으로 볼 것인지 등등은 당대에 주어진 사회정치적 문제이면서 각자에게는 윤리적 문제이다. 제목에 포함된 밤나무는 꽃의 냄새가 남성의 정액 냄새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성적인 분위기를 연상시키는데, 책자 형태로 제작된 〈장작faggot〉이나 우연한 사건으로 이번 전시에서 누락된 작품 〈밤과 아침의 노래(Song of 夜 and 朝)〉1)을 통해 이 전시가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음을 또한 알 수 있다. 전시는 그것을 노골적으로 지시하거나 재현하며 예술 창작을 수단화하지는 않는다. 밤나무와 분재에 나무라는 질료가 공통되지만, 그렇게 만들어지기 전까지 나무 자체가 독자적으로 밤나무나 분재의 성격을 갖지는 않는 것처럼, 임다울은 만들어 낸 작품들과 그것을 만든 방법에 의해, 구체적으로는 분재 제작에 관한 분석을 거쳐 나무에서 밤나무를 만나게 되고 반대로 밤나무에서 나무를 사유하는 방법을 얻는다. 예술 창작에서의 정치성이 특정한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 재현하거나 그러한 주제를 문자 그대로 다루는 것으로 간단히 이해되는 것과 달리, 작품의 독립성이 성취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접근은 윤리적이기도 하며, 이 독립성의 방법이 곧 정치적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전시 자체가 이를 사고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임다울_KF94_혼합재료_가변크기_2021
임다울_”모든 것들에 대한 모든 정의에 대한 모든 의미에 대한 모든 설명(Every... What?)_하드커버 제본_26×37×2cm_2017

도깨비는 특정한 물리적 실체에 고정된 것인지 영적인 것인지, 물질적 현상인지 마음의 투사인지 등이 모호한 문화적 존재였다. 위와 같은 언어적 해설이 밤나무와 분재의 이면에서, 혹은 그 여백에서 발생하는 운동을 가정하고 설명한다면, 제목 중간에 들어선 도깨비라는 존재처럼 전시는 평면에서 하이픈(–)이 그어지듯 더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방식의 접근법을 여러 파장으로 제공한다.

임다울_밤나무-도깨비-분재展_갤러리175_2021

머리와 몸이 떨어져 움직이는 옛 설화 속 요괴의 이름을 빌린 〈비두만飛頭蛮〉은 전시 기간 내내 여기저기 장소를 바꿔 놓이면서, 작품에 박힌 원석들의 직설적인 예쁨을 과시하며 분재에 잇따르는 질문만큼이나 그것의 생김새를 좋아하듯 논리나 형식 구조로 환원되지 않는 미적 경험의 문제를 제시한다. 이는 스마트폰의 AR 필터를 통해 다른 작품들에 디지털 시각 요소를 덧붙이는 번외 격인 작업물에서 더 노골적으로 재현되기도 한다. 또한, 골프장 기념사진 속 얼굴 없는 인물들이 목재 구조물에 의해 새로운 얼굴을 얻는 〈KF94〉에서처럼 어떤 존재를 바로 그 존재로 이해하게 해주는 한 요소의 비논리적 과잉이 작품 자체의 문법으로 섬으로써 정당화되는 복합적인 방식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외에도 시각 이미지와 문자 사이의 끝없는 의미 교환으로 진행되는 아티스트북 〈모든 것들에 대한 모든 정의에 대한 모든 의미에 대한 모든 설명(Every… What?)〉 등의 작업물들이 하나의 완결성이나 유기성이라는 이론적 환상에 기여하지 않으면서도 전시 전반에 걸친 공통의 파고를 만들어낸다. 오늘날 정체성과 존재의 문제가 스스로 유폐되는 감옥이거나 주장이 난무하는 전쟁터와 같다면, 《밤나무–도깨비–분재》는 본질에서 튕겨져 나오는 사유들을 옹호하고 또 다른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는 한 가지 방식을 제시한다. ■ 이여로

* 각주 1) 〈밤과 아침의 노래(Song of 夜and 朝)〉는 성인용 BL 만화책 『요루와 아사의 노래』위에 유화로 채색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제작 중 사고로 인하여 파손되었고, 이번 전시 《밤나무-도깨비-분재》에서 선보이지 못했다.

Vol.20210928f | 임다울展 / RHEEMDAUL / 林다울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