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공기와 모서리 잔상 Red air and afterimage of edge

김유정展 / KIMYUJUNG / 金維政 / mixed media   2021_1014 ▶ 2021_1024 / 월요일 휴관

김유정_붉은 공기와 모서리 잔상展_금호미술관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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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홈페이지_kimyujung.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금호미술관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삼청로 18(사간동 78번지) B1 Tel. +82.(0)2.720.5114 www.kumhomuseum.com

생명을 억압하는 문명에서 생명이 조율하는 문명으로 - 틸란드시아(Tillandsia): 생명과 문명의 새로운 관계 설정 ● 김유정은 2016년 이후 「틸란드시아」 관련 작업을 지속해 오고 있다. 이 작업은 작가가 틸란드시아(Tillandsia)를 손수 키우면서 갖게 된 생명의 인식과 그와 결부된 구체적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뿌리나 그것을 관리하는 기제인 화분이 없기에, 얼핏 인테리어 소품처럼 보이기 십상인 이 식물은 전시 중에도 뿌리 없는 자신의 고유한 생명활동을 지속한다. 뿌리가 부재하는 특성 상 틸란드시아는 생존에 필요한 수분 전체를 대기 중의 수분에서 공급받아야 한다. 그것의 전 신체가 단지 '전시물'로 취급되어서는 곤란한 필수적인 대사활동에 투입되는 것이다. 김유정이 틸란드시아에서 차갑게 대상화 되는 것에 대한 원천적인 저항의 서사를 읽어내었던 것은 이런 맥락에서 설득력이 있다. 위태롭게 늘어진 이 식물의 유전자는 미술관 안에서 저항의 유전자로 거듭나고, 예술과 생명의 혁명적인 관계설정이라는 새로운 서사성을 부여받는다.

김유정_붉은 공기와 모서리 잔상展_금호미술관_2021

이 새롭게 부여된 서사성으로 인해 그 뿌리 없는 식물은 그것이 놓이는 공간을 즉각 논쟁적인 공간으로 바꾸어놓는다. 전시실 안에서 살아있고 호흡한다는 것, 지적 자극이나 감각적 쾌를 유발하는 감상용으로 그치기를 거부하는 것, 그 자체로 그것은 소위 뮤지엄 아트(Museum Art)'에 대한 명시적인 위반의 성격을 띤다. 미술관의 전시공간이야말로 사물의 대상화를 위해 예약된 제도화, 특권화 된 장소, 정확히 하자면 장소의 부재이기 때문이다. 양자 간의 긴장은 틸란드시아가 회화를 정당화하기 위해 고안된 전통적인 의미기제인 '액자'를 뒤덮을 때, (상징적 의미에서) 생명이 문명을 습격했을 때 가장 고조된다.

김유정_붉은 공기와 모서리 잔상展_금호미술관_2021

이 긴장감은 특이할 것이라곤 없는 실내풍경을 소재로 삼은 듯해 보이는 -프레스코 회화에서도 크게 완화되지 않는다. 사실 이 평이해 보이는 실내풍경은 그 안에 등장하는, 화분에 담긴 관상용 식물의 운명에 관한 서사다. 그것들은 "힐링의 대상으로 쓰이다가 버려지는" 관상용으로서의 운명에 순응하도록 강요되고 길들여진 생명에 대한 것이다. 이 경우 식물의 생장을 관상용으로 전유하는 결정적인 기제가 화분으로, 그림의 액자와 동일한 맥락이다. 이 둘 모두는 살아있는 것들의 살아있음을 억압하는 시선의 파시스트적 권력을 수행함과 동시에 그것의 도덕적, 미학적 정당성을 동시에 담보한다.

김유정_사이 섬_프레스코, 회벽에 스크래치_90×140cm_2021_부분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은 그 살아있음의 존엄성에 걸맞은 방식을 요구할 권리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화분에 담긴 채 인테리어 소품으로 규정되는 억압의 서사를 다룬 김유정의 프레스코 회화는 인간의 약탈적 욕망에 대한 보고서의 성격도 아울러 지니게 된다. 이 '회화-보고서'의 요약은 생명이 소모품화 하는 현상은 그렇게 하는 존재의 소모품화 된 영혼의 상태를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다는 것 아닐까! 언젠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예술은 "거울이라기보다는 베일"이라고 말했지만, 베일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울이 먼저 필요하기에, 베일로서의 예술 만큼이나 거울로 기능하는 예술도 마땅히 필요하다.

김유정_중간 서식지_프레스코, 회벽에 스크래치_120×120cm_2021

그렇더라도 이 세계에 관한 누락해선 안 될 중요한 진실이 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김유정의 태도에 관한 것으로,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가 지적한 바 있던 정복과 군림의 그것, 곧 근대주의적 시선, 제국의 눈빛과는 전혀 닮아있지 않다는 것이 그것이다. 김유정이 생명과 문명의 갈등을 다루는 방식은 조금도 거칠거나 폭력적이지 않다. 폭력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방식이 (많은 동시대 미술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폭력적일 필요는 없다. 미국의 철학자 넬슨 굿맨(Nelson Goodman)에 의하면, 예술은 '세계를 만드는 방식(maniere de faire le monde)'이다. 어떤 세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관한 지식인 동시에 의지적 수행인 것이다. 김유정이 원하는 세계는 문명이 생명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문명을 조율하는 세계고, 그렇게 하기 위한 방식은 적대적이지 않은 폭로와 포용적인 직시를 사용하는 것이다. 예민한 관찰과 통섭적 직관을 동반하되, 비난하거나 고발하는 대신 가까이 다가서고 포용하는 치유의 시선을 가다듬는 것이다. 김유정의 세계는 소외된 것에 먼저 할당되고, 부조리한 태생에 주의를 기울이는 따듯한 시선으로 감싸여져 있다. 그 덕에 관람자는 스스로 환자가 되지 않고서도, 자신의 호흡으로 이 문명의 병리학에 다가서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김유정_중간 서식지_프레스코, 회벽에 스크래치_90×140cm_2021

댑싸리: 매료시키는 힘과 성찰적 시선의 균형 ● 이 세계에 댑싸리가 새롭게 등장한다. 그것은 반드시, 핑크 뮬리(Pink Muhly Grass)가 아니라 댑싸리여야 한다. 시선을 사로잡는 매료시키는 색채에도 불구하고, 핑크 뮬리는 빠르게 종을 번식시키는 특성으로 인해 토종 식물계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생태계 교란종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매력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치명적인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시선이라는 욕망 메커니즘도 이와 유사하게 작동한다. 시선은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은폐된 진실, 종종 치명적이거나 위협적인 그것을 쉽게 지나치고 누락한다. 시선의 유미주의는 진실에 무감각하거나 적대적이기도 하다. 반면 댑싸리는 핑크 뮬리의 대체 종이다. 댑싸리도 들녘을 핑크 빛으로 물들이지만 치명적인 위협은 없다. 댑싸리의 매력은 단지 시선의 그것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김유정_중간 서식지_프레스코, 회벽에 스크래치_90×140cm_2021

김유정의 회화는 댑싸리의 동일하게 매료시키는 색과 미학적 성찰 사이에서 감각과 인식의 균형점을 짚어 나가는 새로운 실험에 나선다. 시각적 욕망과 인식적 분별 간의 균형을 회복하는 훈련이다. 깊이 음미하고 교감하되 덫에 걸리지는 않기! 이것이 이 세계의 미학적 지평이다. 이 지평 위에서 대상들은 김유정의 틸란드시아가 그랬던 것처럼 타자화를 모면한다. 욕망의 대용품으로 전락하고, 인테리어 소품으로 유기되지 않아도 된다.

김유정_중간 서식지_프레스코, 회벽에 스크래치_90×140cm_2021

김유정은 표현의 높낮이를 고르고 메시지의 강약을 조율한다. 화면을 감싸는 작가의 시선은 관용의 온기를 유지하면서, 과한 심미성과 덧없는 유미주의는 신중하게 걸러낸다. 감상의 가능성을 넓히는 조형적 조율인 셈이다. '인공화된 생명'과 '도시화된 자연'에 대한 성찰의 감도를 늦추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조율이다. 자극은 완화되고 메시지는 우회하지만, 그 안에 내재된 각성의 결은 일관되게 예민하다. 이 외유내강(外柔內剛)의 미학이 더 전개될수록, 우리는 우리의 잃어버린 것과 더 많이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 심상용

김유정_흐르는 탑_틸란드시아 식물 외 혼합재료_가변설치_2021
김유정_흐르는 탑_틸란드시아 식물 외 혼합재료_가변설치_2021

나는 프레스코화, 식물을 이용한 공간설치,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각적 촉각적 실험과 다채로운 공간 연출을 선보여왔다. 그렇게 함으로써 식물과 인간의 지배 관계, 사회화된 식물성을 작품 속 주제로 드러내며, 인간이 창조한 인공적인 자연에 투영된 사유와 그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사회 속 개인의 모습에 천착해 왔다. 그간 설치에서 보여준 틸란드시아(Tillandsia)에 덮인 장소성을 기반한 오브제들은 인간의 내밀한 영역에 침투한 식물의 폭력성과 잠식성을 표현하며 마치 원시로 돌아가 버린 문명의 종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관람객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동시대 식물의 존재론적 위치, 즉 인간에 의해 돌봄을 받아야 하는 기생 관계 형성의 아이러니에 주목한다.

김유정_높은 의자_피그먼트 프린트_162×130cm_2021

이번 전시에서는 오랫동안 물성과 기법의 연구로 천착해 온 프레스코 회화만 한정 짓지 않고 새롭게 시도한 아크릴화, 사진 작업, 자개장 서랍 라이트박스를 오브제로 가져온 입체 설치물, 틸란드시아 식물설치 등으로 확장하면서 다양한 매체를 시도하였다. 그간에는 회화를 통해 은유적으로 작가의 사유와 단상을 표현했다면, 현재는 살아가면서 문제를 인식하고 드러내며 작가의 내적 언어를 표출하는 데 집중하게 되고, 표현에 적합한 도구로서 매체를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유정_정글의 가장자리_피그먼트 프린트_40×30cm_2021

『붉은 공기와 모서리 잔상 Red air and afterimage of edge』는 신작「숨어든 무리」(2021)에서 작업의 소재가 된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위해식물인 핑크 뮬리(Pink Muhly Grass)의 대체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댑싸리(Kochia scoparia)는 그 낯설고 오묘한 분위기의 붉은 기운을 자아내며 매료시키는 어떤 힘을 지닌 동시에 그 생경함으로 인해 관광지에서 사람들을 모으고 시선을 잡아끈다. 나는 붉은 갈대의 강렬함에 이끌려 그곳의 기운을 체감하며 정주하기보다는 흩어지거나 마치 기체처럼 부유하고 유동하는 모습을 화면에 담고자 하였다. 이 존재는 시선을 끄는 장치이자 도구로서의 자연으로 지금의 환경과 생태계가 만들어낸 바이러스를 상기시킨다.

김유정_숨어든 무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3×194cm_2021

회벽에 각인한 독특한 표면의 선각적 텍스쳐로 드러나는 프레스코화는 지난한 노동과 사유의 과정을 통한 행위로서의 회화이다. 작품 프레임 안에 재단된 '인공화된 자연' 혹은 '도시화 된 자연'의 풍경은 인간의 욕망, 문명의 이기심, 도시주의에 갇혀버린 자연관, 화분과 같이 소모품이 되어버린 생명 등을 상징한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뜻밖의 장소에서 살아가는 주목 받지 못하는 식물들 「정글의 가장자리」(2021)에 눈길이 가면서 그 모습을 지속적으로 관찰하였으며 「높은 의자」(2021)은 순간적으로 포착한 사진기록이다.

김유정_숨어든 무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3×194cm_2021_부분

리싸이클 작업으로 존재의 수명을 다해 버려진 자개장 안의 서랍은 「재생_숨」(2021)으로 재순환 과정을 통해 새롭게 탈바꿈된다. 인공적으로 재현된 자연은 음영과 농담의 깊이를 더해 만들어진 공간으로 각자가 기억하는 심리적 풍경이기도 하다. 또한 바닥과 천장이 맞닿는 공간에 이어지면서 위태롭게 늘어진 공기 중 수분을 먹고 자라는 뿌리 없는 틸란드시아는 식물 조형 「흐르는 탑」(2021)에서 보호와 장식을 위해 시공간을 기억하는 존재이자 매개체가 된다. 그 사이로 살아있는 식물로 위장한 인조 화분이 다층적 레이어를 이루며 프레임 안에 회화처럼 보인다. 이번 전시는 인간을 유인하고 모이게 하는 도구이자 인테리어로 전락한 특정한 장소와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의 식물의 모습을 통해 인간과 식물의 관계를 다시금 상기시키면서 공간의 반경이나 서식지의 조건에 맞게 살아내는 식물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한다. 이는 「사이 섬」 (2021)에서 도시적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보호와 힐링의 대상으로 쓰이다가 때로는 버려지는 장치이며 끊임없이 생존에 필요한 요소들을 유지하려는 인위적인 조건들이다.

환유적 자연과 생명은 소모품이자 연구의 대상이고 전시 가치로 채워진 소비사회의 또 다른 단면이다. 이렇듯 인간 세상에 맞도록 그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면서 만들어진 전이된 식물은 인간 중심의 관점으로 생성된 도시 안에서 인간의 욕망을 채우거나 위안을 주는 존재이자 환경을 변화시키는 존재로서 위태롭거나 모호하고도 규정할 수 없는 잔상을 남기며 어떤 힘 있는 중간자로서 그 숨은 세력을 뻗어 나간다. ■ 김유정

Vol.20211014h | 김유정展 / KIMYUJUNG / 金維政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