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런트 Undercurrent

이병수展 / LEEBYUNGSU / 李秉洙 / new media   2021_1015 ▶ 2021_1031

이병수_언더커런트 Undercurrent_3D 애니메이션_00:02:45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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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수 홈페이지_www.leebyungsu.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유원준 후원 / 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 협력 / 탈영역우정국

관람시간 / 01:00pm~07:00pm

탈영역우정국 POST TERRITORY UJEONGGUK 서울 마포구 독막로20길 42(구 창전동 우체국) Tel. +82.(0)2.336.8553 www.ujeongguk.com www.facebook.com/ujeongguk

역사의 흔적 아래 침잠된 알레고리들 - #0. 현재의 지면 아래로 ● 최근 '넷플릭스(Netflix)'를 통해 우연히 마주한 영화 『어둠 속으로 Into the Night』에서는 원인모를 자연 현상(태양이 인간을 소멸시켜 버리는)에 대항하여 안전지대로 대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삶의 아주 근본적인 전제 조건이었던 '빛(태양)'이 생명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재앙이 되어버린 역설적 상황에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당황하고 두려워하며 종국에는 서로를 의심하게 된다. 이러한 영화적 사건들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적 수사를 제거하고 다소의 과장을 섞어보자면, 2020년 아니 정확히는 2019년 12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이 발병한 이래 우리의 삶은 앞서 소개한 허구가 그려내는 현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선택한 안전지대는 태양이 닿지 않는 심지어 수면이 태양의 빛을 한차례 걸러주어 안전한 어두움이 보장되는 지하 벙커인데 이동이 제한되며 거리의 유지가 종용되는, 서로의 접촉이 허가되지 않은 채 과거의 현실과는 전혀 다른 장소성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영화 밖 현실과 공명한다.

이병수_하강의 소실점 The Vanishing Point to the Underground_ 단채널 영상_00:08:13_2021

'암류(暗流) 혹은 잠류(潛流)'의 의미로 번역되는 전시의 제목 'undercurrent'는 이러한 우리의 현재에 관한 수사이다. 우리를 둘러싼 무수히 많은 위협들은 비단 코로나와 같은 대규모 재난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사회적 갈등들에 기인하여 점점 더 확대되어 간다. 더구나 그러한 기류들은 우리의 의식을 잠식하고 자신의 실체를 현재의 수면 아래에 용해시킨다. 따라서 분명한 징후들이 존재하지만 그 누구도 사건을 예단할 수는 없다. 단지 그러한 위험을 예감하며 자신만의 안식처를 찾을 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왜 우리는 스스로의 안식을 태양빛이 드리워지지 않는 지하 세계에서 찾는가이다. 앞서 소개한 영화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과 현실의 조각들은 땅 아래 세계를 지상의 열세(劣勢)종으로 취급해 왔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하데스'의 세계가 그러했고 단테의 신곡은 지하-땅-하늘이라는 공간적 구분으로부터 지옥과 연옥, 천국을 묘사했다. 그 유명한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역시 이데아로 진입하지 못한 그림자의 장소로서 동굴을 지시한다. 우리가 '언더그라운드'라는 용어를 수면 아래에 놓여있는 그리하여 아직 올라오지 못한 '비합법적인 지하운동' 쯤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신화적-철학적 암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다만 인식의 최소한의 조건으로서의 빛에 관한 상징적 함의는 현대에 이르러 모든 것이 그리 명확할 수 없다는 불안감 어린 시선으로 치환된다. 과거 어둠은 무지의 기표였으나 작금의 시기는 그러한 어두움으로부터 현실의 도피처를 발견하고 있는 셈이다.

이병수_하강의 소실점 The Vanishing Point to the Underground_ 단채널 영상_00:08:13_2021

#1. 하강의 소실점Lasciate ogni speranza, voi ch'entrate 1) (모든 희망을 버려라, 들어오는 그대들이여) ● 전시장의 작품들을 오른편부터 관람하게 된다면 첫 번째로 『하강의 소실점 The Vanishing Point to the Underground』과 마주하게 된다. 말 그대로 어두운 지하 세계로의 하강을 꾀하는 이 작품은 관람객들에게 해당 시설이 냉전 시대 미사일 발사대로 지하에 축조되었으며 이제는 그 쓸모가 다해 버려진 역사적 잔해임을 짐작하게 만든다. 작품 속 카메라의 시선은 지하 세계로 연결되는 비상계단을 추적하는 듯 움직이며 마치 어두움을 추종하고 갈망하는 듯 하다. 작가는 냉전 시대의 산물인 '미사일 사일로(지하 발사대)'가 현재에 이르러 "Survival Condo"라는 이름의 지하 벙커 임대시설로 이용되고 있음을 흥미롭게 관찰하였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안전을 위협하는 장치가 오히려 그것을 담보하는 장소로 변환된 것이다. 실제로 어떤 지하 벙커는 15층의 아파트 높이만큼 지면 아래로 축조되어 최대 5년간의 자급자족이 가능한 생존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자의적 선택이라 할지라도 생존을 담보하는 지하 세계로의 이동은 왠지 불안한 기운을 내포할 수 밖에 없다. 대안적 공간으로의 지하 세계는 현실이라는 장소 밖에 위치한 장소이며 우리가 익히 학습해온 바대로 땅과 하늘의 대칭적 위치값을 지니기에 그것들이 상징하는 유토피아적 지향을 공유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 재난을 마주한 현실은 피난처(지하세계)로의 도피를 수긍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다만 그러한 전제를 걷어낸 채 관찰하게 되면 지하 세계는 본래 그것이 지닌 황폐한 장소성을 오롯이 드러낸다. 마치 단테의 작품에 등장하는 지옥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처럼 지하의 수직적 궤도들은 저마다의 수위와 층위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국내에는 『신곡(神曲)』으로 번역되어 잘 알려진 단테(Dante Alighieri)의 작품은 본래 『단테 알리기에리의 희극(LA COMMEDIA DI DANTE ALIGHIERI)』이라는 원제를 갖고 있는데, 2) 시인이자 정치인이기도 했던 단테는 인간사의 갖가지 단면들을 작품의 위계 구조를 통해 드러낸다. 앞서의 문구는 베르길리우스 3) 에 의해 인도된 단테가 지옥의 문을 마주하고 발견한 문구이다. 다시는 지상 세계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암시하는 이 무시무시한 단언은 '지옥'의 본질(희망 없는 장소)을 상기시키는데, 『하강의 소실점』 역시 이러한 지하 세계로의 하강이 매우 음울하고 불안하게 그려지고 있어 피난처라는 현대적 장소의 의미는 의도적으로 퇴색된다.

이병수_언더커런트 Undercurrent_3D 애니메이션_00:02:45_2021

#2. 폐허와 묘지의 알레고리들 ● 『하강의 소실점』에서 드러나듯 이병수 작가의 작품은 주로 공간의 이중성을 탐색해 왔다. 가상과 실재의 이중적 속박구조를 직접적으로 제시한 『Double Bind, 2019』라던지 이데올로기의 상징적 장소로 각인된 판문점을 일시적 연극 무대로 변환시킨 『임시극장, 2020』이 그러했다. 특히 2014년의 『Made in Antarctica』는 본격적으로 실재의 공간에 대한 인식의 간극을 실험한 작품이자 작가가 이러한 이중적(혹은 이분법적) 장소의 특성을 파훼하고자 시도한 작품으로 의미가 있다. 작가는 남극을 배경으로 준비한 노마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무산된 이후, 실제 남극을 방문하지 않은 상태에서 해당 장소를 시뮬레이션 하게 된다. 이러한 행위는 작가에게 특정 공간에 관한 근원적 경험을 회의적으로 사유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공간적 경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직접 방문하지 않고 미디어를 통해 경험한 공간들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비가시적 장소에 허구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예술로 인식될 수 있을까?' 등등. 이러한 사유의 파편들은 작가가 특정 공간이 주체에게 장소로서 의미 지워지는 과정 전반에 침투하게 만들었으며 더 나아가 의미가 중첩되어버린 상태로 박제되어버린 공간을 찾아나서게 만들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는 가장 근대적인 파리의 얼굴에서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를 떠올렸다. 4) 후대의 문화이론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이러한 그의 시상으로부터 '폐허'를 지난 세기의 소망 이미지가 현재 속에 파편처럼 나타난 상태라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보들레르에게 있어 파리의 변화하는 모습에서 마주친 다양한 사물은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채 알레고리적 기호로 변환되기 때문이다. 5) 전시의 타이틀 작품인 『언더커런트 Undercurrent』와 『불안의 작동법 How Anxiety Works』에서 작가는 앞서 『하강의 소실점』에서 간접적으로 암시한 벙커라는 장소를 상징적 알레고리들과 함께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아마도 과거의 예술 작품을 탐독해왔거나 기호학적 상징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아주 반가워할 소재들, 해골과 십자가, 폐허와 묘지가 등장한다.

이병수_언더커런트 Undercurrent_3D 애니메이션_00:02:45_2021

『언더커런트』는 2분 45초의 플레잉타임을 지닌 3D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푸르른 초원에 위치한 벙커의 모습과 벙커 내부 공간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는 예술 작품이 교차 편집되어 나타난다. 다만 벙커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의 시선이 사뭇 흥미롭다. 벙커들은 무덤들이 모여있는 묘지처럼 보이며 그러한 장면은 매우 평화롭게 연출되고 있다. 벙커 내부에 있는 예술 작품 또한 마찬가지이다. 영국 유명 아티스트인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 For the Love of God, 2007』의 모습으로 분한 예술 작품은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지만 결국 해골이라는 상징으로 그러나 보석으로 치장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각각의 요소는 상징적 기호로 읽히는 동시에 알레고리적 의미를 획득한다. ● 발터 벤야민은 『독일 비극의 기원 Ursprung des deutschen Trauerspiels』에서 상징과 알레고리를 구분한 바 있다. 기존의 정의에 따르면 상징과 알레고리의 차이는 이념과 개념이 특수를 보편에 관련짓는 방식에 달려 있다. 그러나 벤야민은 '시간의 범주'를 중요시하였다. 그에게 있어 알레고리는 역사를 썩어가는 자연이나 폐허가 된 자연으로 묘사하는 것이며 여기서 시간은 소급적 정관의 양태로 나타난다. 반면, 상징에서 시간은 즉각적 현재로 나타나며 경험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이 일순간 자연적 형태로 융합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6)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 보자면 '벙커'는 일반적으로 안전함을 상징하는 시설물이다. 그러나 군사적 목적으로 축조되어 현재에는 그 용도가 폐기되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과거의 역사를 보여주는 산물이다. 영상은 그러한 벙커가 석화(石化)되어버린 현재의 시점을 보여준다. 역사의 노선에서 탈구된 벙커는 다른 의미로 전환된다. 영상은 이러한 부분을 강조하고 있는데 마치 시간이 흘러 유적지가 된 왕들의 무덤처럼 평화로운 초원에 놓여있는 벙커는 묘지터와 같은 소멸된 역사가 묻혀있는 장소가 된다. 즉, 벙커는 안전함을 지시하는 상징적 기호이지만 시간의 경과에 의해 소멸된 역사의 산물이 되며 현재의 시점에서 평화로운 이상을 갈구하는 그러나 의미의 생산이 종료된 '묘지'와 같은 느낌의 장소가 된다. 벙커 내부의 '해골'은 묘지에 묻혀있다는 점에서 각 항목의 직접적 의미 지시어가 되지만 동시에 안전을 요구하는 보석과 같은 '예술품'이기도 한 탓에 이는 그 자체로 다른 의미를 소급하는 알레고리가 된다.

이병수_언더커런트 Undercurrent_3D 애니메이션_00:02:45_2021

이러한 상징과 알레고리의 교차는 『불안의 작동법』에서도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벙커 시설의 환기구를 보여주고 있는데 벙커가 외부의 위험을 차단하기 위한 시설로서 지상에 최소한의 노출로 설계된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러한 환기구의 존재는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숨구멍으로서 벙커가 작동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 요소인 동시에 외부에 지하 벙커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는 표식이 된다. 작품 영상은 이러한 환기구를 회전하며 관찰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벙커의 환기구가 십자가의 형태를 띄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작품에서 등장했던 해골이라는 상징/알레고리와 더불어 십자가는 역사적이며 신화적인 의미를 선취하고 있는 기표이다. 해골이 역사의 자연적 부패를 가장 잘 보여주는 비유 형상이라면, 7) 십자가는 종교적 의미를 지니는 도상 기호인 동시에 역사적으로는 희생과 소멸, 부활을 알리는 상징적 기호이며 무덤가를 지시하는 지표적 기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벙커를 일종의 무덤이라 상정한다면 이러한 십자가의 기호적 의미는 일차적으로 지시적 속성으로 이해될 수 있겠지만 작품 속 십자가 모형의 환기구는 그 자체로 벙커의 동력기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더구나 영상이 재생됨에 따라 환기구에서는 연기가 솟아난다) 벙커의 지표 기호로서 이중적 의미를 획득한다.

이병수_불안의 작동법 How Anxiety Works_3D 애니메이션_00:05:00_2021

#3. 장소 없는 장소, 부드럽거나 혹은 침잠하거나 ● 앞서 살펴보았듯 이병수의 작업은 실재하는 공간을 배경으로 삼는다. 여기서 그가 문제시하는 부분은 공간 그 자체가 아닌 '실재한다'라는 공간에 붙는 수식이다. 우리에게 인식되는 다양한 공간들은 그것이 지닌 공간적 분포와 분리되어 사유될 수 없다. 8) 따라서 특정 공간이 작품 속에 등장하게 되면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맥락들에 관한 선-이해가 요구된다. 이러한 경향은 신화적 과거를 소환하려는 위험한 경향으로 혹은 역사적 산물이 시간적 경과에 따라 그 의미가 변형되는 변곡의 지점들을 소급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다만 작가의 이러한 시도들이 전제하는 절대적 요소가 있다면 공간이 지닌 의미의 고정성을 초월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특히 특정 공간(대상)이 장소로 의미화되거나 혹은 그 의미가 해체되는 순간을 포착하고자 시도하는데, 이번 전시의 마지막 작품 『소프트 바디 Soft Body』는 작가의 이러한 경향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 전시에 출품된 다른 작품들이 벙커라는 본래의 목적에서 이탈된 시설물을 대상으로 한다면 『소프트 바디』는 하나의 기호로서 여전히 그 의미가 존속되고 있는 '대전차 방호벽' 및 그것이 위치한 공간을 관찰한다. 대전차 방호벽은 군사 요충지의 도로마다 설치된 전차의 침투를 방해하는 일종의 장애물인데, 국내의 경우 6.25 전쟁 이후 북침을 저지하기 위한 현실적 목적으로 축조되었다. 다만 현대의 전쟁이 국지전(局地戰)의 양상을 벗어나 점점 더 전자적으로 미사일과 같은 첨단 무기를 통해 발발한다는 점이라던지 전쟁 자체가 그것의 실행을 전제하지 않는 상태로 이데올로기적 협상 카드로 사용된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국내에 존재하는 대전차 방호벽은 휴전 중인 대한민국의 현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기호적 역할만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즉, 실효적 목적의 공간과 대상이 그것의 실질적 기능은 거세당한 채 상징적 기호로서 잔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병수_소프트바디 Soft Body_3D 애니메이션_00:02:10_2021

작품은 대전차 방호벽이 설치되어있는 특정 도로의 구간을 시뮬레이션한다. 도로의 양 옆 기둥에 설치되어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은 눈발이 흩날리는 풍경 속에서 우뚝 서 있어 그 위압감을 더하고 있는데, 어슴푸레한 날씨 속에 울려퍼지는『위풍당당 행진곡 Pomp and Circumstance Military Marches』 9) 은 작품의 전체 분위기를 압도하며 방호벽의 위용을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당시 영국의 국왕이었던 '에드워드 7세(Edward VII, 1841-1910)'의 대관식을 위해 작곡된 이 곡은 현재에도 전쟁(스포츠)의 승리나 국가의 기념일에 사용되고 있는데, 작품 속 종반부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해체되고 허물어지는 엔딩에 이르기까지 관객들에게 전쟁의 상흔을 영웅적 서사로 느끼게 만드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러한 엔딩은 적잖이 당황스럽다. 앞서 서술한 『언더커런트』에서의 마지막 장면에서 벙커에 폭격이 투하되듯, 『소프트 바디』는 흩날리는 눈발과 승전을 상징하는 음악적 요소를 통해 다시금 작품이 주목하는 대상을 (냉전 시대의) 역사적 산물로 되돌려놓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해체되어 부드러운 텍스쳐로 흘러내리는 촉각적 장면까지 묘사한다. 이러한 두 가지의 상반된 요소는 우리가 인식하는 장소와 대상의 이미지 및 기억을 뒤섞어 버린다. 작가는 이러한 장치를 통해 관객들에게 실재하는 장소로서의 도로 풍경이 결국 허상이거나 잠재된 무의식적 이미지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건다. 마침내 작품 속 부유하는 상징적 기호들은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과 괴리된 채 역사의 흔적 아래로 침잠하며 우리는 여전히 그 장소를 맴돌게 된다. ■ 유원준

* 각주 1)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인 제3곡 첫 번째 부분의 마지막 문구이다. 보통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로 번역된다. 2) Alighieri Dante, La comedia di Dante Alighieri, 1321 3) 베르길리우스(Vergilius Maro, Publius)는 실존 인물로서 고대 로마 최고의 시인이며 로마의 국가 서사시 『아이네이스』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역대 최고의 라틴어 문학가라고 불리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4) Charles Baudelaire, "Le Cygne", The Flowers of Evil(Les Fleures du mal), ed. Marthiel and Jackson Mathews, revised ed., 1962, pp.329-330. 5) Susan Buck-Morss, 김정아 역,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문학동네, 2004, p.233, 273. 6) Susan Buck-Morss, ibid, p.220. 7) Walter Benjamin, Ursprung des deutschen Trauerspiels, p.343 8) 여기서 언급한 '공간적 분포(spatial distributions)'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장-밥티스트 고댕(Jean-Baptiste Godin)에 의해 건설된 노동자들의 공동 주택단지인 '파릴리스테르(Familistere, 1859)'를 예시하며 언급한 개념인데, 하나의 공간적 구조물을 파악하기 위해 지역, 장소, 건축 등과 같은 요소들을 서로 떼어놓고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미셸 푸코, 이상길 역, 헤테로토피아, 문학과지성사, 2009, pp.75-76. 9) 에드워드 엘가(Edward Elgar)가 작곡한 관현악곡집이다. 총 5곡이 발표되었으며 제 1번에서 제 4번은 1901년에서 1907년에 걸쳐서 작곡되었고 제5번은 1930년에 작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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