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허풍담

퀸지 D展 / Quinnji D / painting   2021_1019 ▶ 2021_1102 / 월요일 휴관

퀸지 D_Better than Yesterday_장지에 혼합재료_116.8×91cm_202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210420e | 퀸지 D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록갤러리 L.O.K GALLERY 서울 종로구 사간동 45번지 북수빌딩 1층 Tel. +82.(0)2.738.2398 blog.naver.com/lokgallery

퀸지의 북촌허풍담, 즉흥유머의 문학적 랩소디 ● 보고 있으면 아주 유쾌하다. 웃음이 절로 난다. 잇몸이 드러날 정도로 파안대소 하는 그림 속 주인공을 보면 해묵은 체증까지 가시는 것처럼 개운하다. 퀸지 디(QUINNJI D) 작품의 찐 매 력이다. 보통 인물이 등장하는 그림에선 되도록 감정을 절제하고, 화면의 조형적 리듬감으로 인물의 감정선을 대신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감흥은 솔직한 감 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만큼 더 큰 설득력이 없다는 걸 퀸지 작가의 그림이 증명한다. ● 퀸지 디의 두 번째 개인전 전시명은 이다. 이 독특하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제목 은 덴마크 소설 에서 착안한 것이다. 전시 공간인 록 갤러리가 사간동, 북촌에 위치하니 북촌에서 들려주는 허풍담이 되겠다. 덴마크의 '허풍담(skrøner)'이란 독특한 장르 를 탄생시킨 요른 릴(1931~, Jørn RIEL) 작가의 은 '문명을 등지고 북극 인근 그린란드 북동부에서 살아가는 괴짜 사냥꾼들의 비범한 일상을 그린 유머 넘치는 연작 콩트 집'이다. 다소 능청스러운 허풍을 풍자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 두 허풍담의 공통점이다.

퀸지 D_그때는 설레었지요_장지에 혼합재료_116.8×91cm_2021

"'너는 살아 있어. 그건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야!' 를 쓴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이 문장이 이번 전시의 주제를 관통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라는 전시 제목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너무도 짧으니, 유한한 생(生) 위에서 농담도 하고 허풍도 치면서 빡빡한 일상에 물꼬를 틔워 호탕하게 웃으며 운치 있게 살아보자는 제안이기도 합니다." 퀸지 작가는 그녀만의 허풍담으로 무엇을 전하고 싶을까? 치아가 보일 정도의 유쾌함이 돋보 이는 인물들에 그 답이 있다. 정말로 힘든 사람은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우 리는 그 감정을 인내하는 법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퀸지 작가는 "내면에 잠든 감정선을 되 살리고 싶었다."고 강조한다. 어쩌면 행복의 정의는 그리 웅장하거나 거대하지 않을 수도 있 다. 나부터 행복하면 우리와 주변까지 더불어 행복해지기 마련이다. 그것은 자신의 감정에 솔 직해지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래서일까 퀸지의 배우들은 삶의 희망과 의미를 노래하는 듯하 다. ● 명징한 웃음코드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요소는 '직관적인 화법(話法ㆍ畵法)'이다. 군더더기 없 는 직설적인 표현법은 퀸지 작품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 특히 작업방식에서 즉흥성과 과감한 터치가 큰 몫을 한다. 아마도 과거의 이력 때문일 것이다. 흔히 패션 일러스트에서나 봄직한 강렬한 필법의 단순미가 돋보인다. 실제로 패션 부티크(boutique)를 운영한 경험도 있다. 영 화 의 성당 신(scene)에서 주인공 전도연 배우의 원피스형 드레스가 퀸지의 작품이었 다. 물론 드레스의 일러스트와 디자인도 직접 한 것이다.

퀸지 D_구애 2_캔버스에 혼합재료_90.9×70.2cm_2021

또한 화면 밑에 가라앉았던 주인공들을 새롭게 되살리는 마법은 퀸지 특유의 문학적 코드에서 나온다.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내면의 힘듦을 보듬어 주고, 동시에 그 과정을 목격하는 우리에게도 남다른 희열과 카다르시스로 동화시켜 주는 것은 작가의 문학적 감성 선물이다. 실제로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소설을 몇 편 쓰기도 했다. 소설을 쓴다는 건 제각각의 인 물에 적합한 성격을 발견하고, 세세한 감정을 부여하며, 그 안에 어떠한 내용을 담아내든 자 신과의 혹독한 한판승부를 치르는 과정이나 마찬가지이다. ● 대개의 예술가들은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경험의 흔적들을 작품에 투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호소력 있는 작품은 그 작가의 자전적 소설처럼, 작가적 체취가 온전하게 남아 있을 때 태어 난다. 퀸지 작가는 이를 '육화된 세계관을 가졌다'고 표현한다. 아주 솔직한 비유라 생각된다. 죽는 날까지 '자신'을 화두로 삼아 살아가는 작가라는 숙명의 또 다른 정의이기도 하기 때문 이다. 퀸지는 '가장 나다움의 표현법'을 구현하기 위해 매우 다양한 조형어법을 사용한다. 동 서양의 표현기법을 넘나드는가 하면, 주변의 일상에서 손쉽게 표현의 재료와 소재, 기법 등을 차용한다.

퀸지 D_매혹1_캔버스에 혼합재료_53×41cm_2021

작품의 제작과정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탕 재료는 주로 캔버스나 장지(壯紙)를 활용한다. 화면 을 한동안 노려보다 어느 순간 촉(觸)이 오면 그대로 돌진하는 형이다. 한 번 꽂히면 푹 빠져 서, 몸이 파김치가 될 때까지 끝장을 본다. 감(感)이 잡히면 손과 몸은 도구가 되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발상에서 완성단계에 이르기까지 내면의 열기가 식지 않고, 즉흥적으로 순간의 본능과 직관에 의지해 작업하기에 처음의 온기가 고스란히 남게 된다. 이는 첫 문장 한 줄에 의 지해 자신만의 내면 이야기를 풀어내던 글쓰기 방식이 그대로 전이된 케이스이다. ● "작품 속 인물들은 이를 활짝 드러낸 채 웃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와 고통이 남겨져 있을 겁니다. 이런 그들의 속내(삶의 궤적)를 최대한 근접하게 표현하는데 집중 하고 있어요. 그래서 멀쩡한 상태의 캔버스나 장지를 사용하지 않고, 온갖 재료로 표면의 결 이 일어나게 한 후 픽사티브로 딱딱하게 굳히거나 서너 번의 아교 반수로 고정시킵니다. 이렇 게 바짝 성이 난 종이의 표면은 선 하나를 긋는 것도 거부하지요. 종이를 달래가며 색을 올리 고, 거칠고 푸석푸석한 질감을 거쳐 주인공만의 삶의 결도 쌓이게 됩니다."

퀸지 D_매혹2_장지에 혼합재료_53×41cm_2021

퀸지의 작품엔 유독 콜라주 기법이 많이 보인다. 주로 영자신문지를 찢어 붙이거나 잡지의 불 특정 텍스트와 장면들이다. 물론 무작위로 붙인 것 같지만, 등장하는 인물의 내밀한 성격을 염두에 둔 작가 특유의 연출기법이다. 장지, 켄트지, 캔버스, 목탄, 과슈, 먹물, 파스텔, 잡지 콜라주 등 매우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활용했음에도 화면이 답답하지 않다. 대부분 서양의 재 료를 사용하면서도 화면구성은 동양의 여백미를 적절하게 적용했기 때문이다. ● 특정한 화법이나 기법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이야말로 퀸지 작가가 지닌 장점이다. 예술 가는 쉼 없이 정해진 관습에서 스스로 벗어나려 노력하고, 그로 인한 온갖 불안감들과 과감하 게 맞서야 하는 숙명을 지고 태어난다. 그런 과정 이후에 비로소 진정한 자유로움을 갖게 되 는 것이다. 퀸지의 작품은 한국화 혹은 일본화의 채색기법, 서양화의 다양한 조형어법이 한데 어우러져 제2, 제3의 현대적 창의성을 찾아 나선 여정의 결과물이다. 작가 특유의 스토리텔링 과 문학적 감수성이 자아내는 화면 위의 율동감에서 새로운 생명력과 에너지를 만나는 것은 작품 감상자의 큰 행운이다. ■ 김윤섭

Vol.20211019a | 퀸지 D展 / Quinnji D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