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순展 / KIMYEONGSOON / 金伶盾 / painting   2021_1020 ▶ 2021_1026

김영순_무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2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90621b | 김영순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맥화랑 GALLERY MAC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117번나길 162 2층 Tel. +82.(0)51.722.2201 www.gallerymac.kr

기억의 언저리 – 무의식적인 심상풍경(心象風景)의 여백과 상징김영순의 그림들 ● 김영순의 그림들은 미묘하다. 처음엔 프리미티브 아트를 표방하고 있는 건가 라고 생각했다. 공감을 일으키는 소박파의 그림들은 그 형태가 아무리 단순 소탈하게 생략되어 있더라도 당대적인 리얼리티(현실감)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법인데 그것이 보이지를 않아 당황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장욱진의 그림들은 근대의식이 그 리얼리티이다. 이 땅에서 근대를 살아왔던 경험이나 혹은 그 경험을 본능적으로 전수 받은 후대가 그 현실감을 수용해 생략된 소의 생김새나 까치, 초가 지붕에 날아드는 제비가 실제의 모습처럼 공감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게 없으면 단순한 문양이나 공상에 그친다. 건실하고 합리적인 밑그림(데생), 대상의 배치, 구성과 여백, 거듭 문댄 끝에 물감이 배어 도드라지는 직조된 캔버스의 씨줄 날줄이라는 마티엘이 그런 공감을 돕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앙리 루쏘의 경우는 집요한 상상과 공상이 그 리얼리티가 되었을 것이다. 현실로는 없는 리얼리티이다. 그의 그림들이 처음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이 된 것도 그 때문이었겠으나 하도 오랫동안 지속된 집착이 고착되면서 상상이 현실 자체가 되었다고 해야 옳다. ● 그런 논리로 보면 김영순의 그림들은 여러 가지로 기이하고 불합리 하다. 그려진 말(馬)은 몸을 지탱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리가 가늘고(이건 낯설게 하기의 효과인가) 인물들은 이목구비가 유형화 해 무중력 공간에 사는 우주인들 같다. 산과 강과 대지의 모습은 원경으로 물러나 주제가 되는 인물은 점처럼 찍힌다. 어린이의 그림을 동경하고 있는가 싶으면 외침 소리가 약하다. 아이들 그림이야말로 제 나름의 색채로 메시지를 고함치고 있는데 그녀 그림의 색채는 중간 톤이거나 보색으로 부드럽고 평화롭기만 하다.

김영순_무제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21
김영순_무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72.7cm_2021
김영순_무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5.1×45.5cm_2021
김영순_무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62.2cm_2021
김영순_무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62.2cm_2021
김영순_무제_캔버스에 유채_45.5×37.9cm_2020
김영순_무제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20
김영순_무제_캔버스에 유채_53×65.1cm_2018
김영순_무제_캔버스에 유채_53×65.1cm_2021
김영순_무제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20
김영순_무제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21
김영순_무제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21
김영순_무제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21
김영순_무제_캔버스에 유채_80.3×65.1cm_2019
김영순_무제_캔버스에 유채_37.9×37.9cm_2019

두 나뭇가지 사이에 걸린 커다란 초록색 물고기, 헤엄을 치는 것인지 물에 빠진 것인지 완전한 일자(一字)처럼 물속에 누운 인물과 희미하게 굽이치는 물 이랑의 흔적. 그 쯤에 이르러서야 이 작가가 머무르고 있는 공간이 현세가 아니라 일종 시(詩), 혹은 시인 차원의 공간임을 느끼게 된다. 구태여 따지자면 가수면 상태거나 무의식의 언저리라 할 수밖에 없는데 거기서 드러나는 여백이나 재현된 대상이 은유하는 상징이 미묘하게 아름답고 매혹적인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 이제하

Vol.20211020a | 김영순展 / KIMYEONGSOON / 金伶盾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