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ense of motion

양승원展 / YANGSEUNGWON / 梁升瑗 / painting   2021_1020 ▶ 2021_1102 / 일,공휴일 휴관

양승원_A motion based landscape no.1_캔버스에 혼합재료_112.1×145.5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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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원 홈페이지_www.yangseungwon.com 양승원 인스타그램_@seungwonyang_studio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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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아트 스페이스 W_우신보석감정·연구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토요일_11: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W ART SPACE W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32-1 우신빌딩 우신보석감정 ·연구원 종로점 B1 Tel. +82.(0)2.778.5944 www.wooshinlab.com @seungwonyang_studio blog.naver.com/wgk1979 www.facebook.com/wooshingemlab

본다는 감각을 통한 의미 ● 시지각, 즉 행위를 통하여 대상을 인지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잘 때까지 외부에서 얻게 되는 모든 정보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시지각으로 얻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시지각은 눈을 통한 빛의 정보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빛이 안구를 통해 시신경에 자극을 주면, 그 자극은 전자기 신호가 되어 뇌 뒤쪽, 시지각을 담당하는 곳에 닿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뇌는 인간이 이전에 경험했던 정보들과 결합하여 이를 인지하게 한다. 말로 설명하면 긴 과정이지만, 이 과정은 우리가 알기 힘들 정도로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보는 순간 알게 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시지각한 것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수많은 시지각 실험에서 밝혀졌듯이,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우리는 지각하지 않는다. 일부 뇌기능이 과하게 작용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우리가 이미 아는 것 혹은 경험한 것을 토대로 눈앞의 상황을 '보게 된다'. 우리는 그저 보는 것만이 아니라 보는 순간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따듯한 봄날 벚꽃 잎이 나부끼는 모습을 보면서 아름답고 행복한 감정을 느끼고, 세찬 빗줄기 사이에 번쩍이는 번개를 보면서 불안하며, 헤어진 사람의 사진을 보고 슬퍼진다. 그래서 보는 것은 그저 독립된 하나의 감각이 아니다. 우리 삶과 함께 하는 감각이며 많은 생각과 감정을 유발한다. 양승원의 회화 작업은 시각을 자극하는 추상적인 요소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또 다른 감각과 감정을 느끼게 한다. 특히 회화 표면의 공간을 부유하는 추상적 조형들을 통하여 보는 이들에게 부유하는 듯한 감각을 주고자 한다.

양승원_When I saw the yellow no.1_캔버스에 혼합재료_45.5×37.9cm_2019
양승원_A motion based landscape no.3_캔버스에 혼합재료_145.5×306.1cm_2021

부유하는 이미지들 ● 회화는 시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예술이다. 회화의 근본적 특성은 평면이기 때문에, 회화를 인식하면서 시지각이 전제가 된다. 일차적으로 시각으로 지각하고 그와 동시에, 혹은 그러면서 다른 감각들이 함께 하게 된다. 양승원은 추상적 형태로 가득한 회화 평면을 통해, 보는 이의 시지각이 자극되도록 한다. 그 추상적 형태들은 원과 삼각형, 곡선, 사선 등으로, 각 조형들은 분홍, 파랑, 녹색, 노랑 그리고 금속재질의 선과 선명한 형광색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조형들은 각기 다른 위치에서 서로 모이거나 흩어지고, 나란한 움직임이나 멀어지는 듯한 방향성을 가지면서 평면 위에서 부유하고 있다. 물이나 공기 중에 떠있듯이 회화 평면 위에 부유하는 이 조형들은 특정한 목적을 갖고 있지 않다. 작가는 이 조형들에 대해 오랫동안 경험하면서 "체득되고 감응된 것들에 대한 표현"이라면서, "존재하는 대상에 대한 구체적 모방과 재현이 아닌, 작가 본인의 '내적 필연성'에서 우러나오는 형태와 색채"라고 말한다. 특정한 감정 혹은 어떠한 이념이나 사상을 추상적 조형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지시체도 없이 작가의 내적 동기에 의한 표현이다. 그래서 일종의 회화적 드로잉과도 같다. 실제 작가는 회화적 붓자국이나 물감의 흔적을 그대로 드러내는데, 이렇게 화가가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은 색과 형이 있는 이미지들의 조합인 화면과 함께 이를 표현한 화가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회화 지지체가 바라보는 관객이 그림을 그린 작가와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연결인 채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회화 지지체를 화가의 존재가 드러나는 하나의 매체(Medium)으로 본 크라우스(R. Krauss)의 관점처럼, "일정한 질서에 따라 결합된 색채들" 즉, "어떠한 코드의 표현(the articulation of such a code)"로 이루어진 구조로 볼 수 있다. 그린버그식 모더니즘 관점에서처럼 회화 표면이 그저 고정불변한 평면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회화적 요소들이 시각장 내에서 의미를 형성하는 것이다.

양승원_유연함 그리고 첨예함 no.2_캔버스에 혼합재료_50×40cm_2020

회화 공간에서 현실 공간으로 ● 양승원은 추상 조형 이미지들이 놓인 공간에 여러 층의 레이어를 쌓았다. 이미지들을 그리거나 붙인 후 반투명의 막을 입히고 그 위에 또 다른 조형을 넣는 방식을 통해, 분명 평면이지만 보는 반투명의 막을 통해 입체적인 깊이가 느껴지게 한다. 그래서 레이어에 담긴 이미지들은 각 층에서 물에 떠있는 듯 유동하는 듯하다. 이 움직임은 급격한 속도나 폭발하는 듯한 에너지라기보다는 유영하는 듯 느리게 움직이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각 조형들이 특정한 대상을 지시하지 않듯이, 이 공간 역시 "실재하지 않는 관념적인 공간"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관념적 회화 공간 속에서 조형 이미지들은 부유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그러면서 돌발적인 회화적 붓자국이나 거친 선의 얼룩이 남기도 한다. 마치 들뢰즈(Gilles Deleuze)가 말한 '돌발표시'의 전초와 같은 이 자국들은 보는 사람과 유리되어 있는 관념적 공간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감각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아직은 약한 단계이지만, 들뢰즈가 베이컨(Francis Bacon)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제시한 단어, '아플라(aplat)'를 만들어낼 수 있는 단초일 수도 있다. 이러한 단초를 바탕으로 양승원은 추상 이미지들을 관념적 평면에서 벗어나 현실 공간으로 꺼냈다. 삼각형, 원, 사각형 등의 조형 요소들을 캔버스 주위에 오브제로 놓는다. 각 요소들이 그저 각기 하나의 평면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하나의 사물 즉 '오브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관념적 조형은 현실적 사물이 된다. 그저 평면 속에서 유동하며 서로 관계를 갖던 조형 요소들은 화면 밖에서 관객과 보다 적극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이제 회화가 아닌 삼차원 공간 속 설치되는 것이다. 이러한 2차원에서 3차원으로의 이동은, 화면 속 조형 요소가 그저 회화의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것을 넘어 현실 세계 속 우리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하게 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관람자-회화-공간"이 각기 주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렇듯, 관람자인 주체가 바라보는 객체가 회화가 되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아니라, 각기 객체가 되어 서로 의미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조형 요소들이 부유하는 회화 평면, 거기에서 삼차원적 전시공간으로 나온 조형적 오브제들 그리고 이 사이를 오고 가는 관람자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각 시간마다 다른 의미를 형성할 수 있다.

양승원_Moving Space_확장 된 공간 no.1_캔버스에 혼합재료_89×120cm_2020

보는 행위를 통한 즐거운 체험 ● 양승원은 전시공간 속에서 수동적인 감상이 아닌 능동적인 체험이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그저 작가가 완성한 하나의 창을 관람객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고전적인 감상이 아닌, 모든 객체가 매 순간 다른 관계를 맺으며 의미를 만들어나가게 된다. 그 속에서 관객 역시 의미를 만드는 객체로써 함께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실제적인 움직임이나 결과물이 있는 체험은 아니다. 하지만 마치 명상과도 같이 양승원의 작품 속 이미지들과 이 이미지들이 공간 속에서 부유하듯이, 마음속으로나마 자신이 하나의 조형이 되어 함께 천천히 흔들리듯 움직여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사회를 살면서, 하루하루가 쉽고 즐겁게만 흘러가진 않는다. 매 순간 원하지 않는 자극을 받게 되고 그에 대해 반응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속에서 그저 하나의 객체로서 타인과 사회와 그리고 세상과 관계를 맺게 된다. 그러한 관계가 양승원의 조형 이미지와 부유하는 움직임을 통하여 드러난다. 추상적 조형은 구체적 현실의 메타적 정신의 반영이면서, 가장 핵심적 의미를 함축하여 담는 유용한 그릇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록 작가는 특정한 것을 지시하지 않지만, 보는 이는 이러한 그릇 속에 자신의 의미를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양승원이 그린 조형 이미지들이 이루는 시각장을 체험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허나영

양승원_첨예한 공간_캔버스에 혼합재료_35×35cm_2019

'Moving Space, 평평한 공간과 부유하는 파편 사이 ' ● 우리는 '시각'과 '지각'이라는 단어를 구분해서 사용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 '시지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만큼 시각과 지각은 떼어 낼 수 없을 정도로 서로 긴밀히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일 것이다. 시각 즉 '본다'는 것은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우며 생리적인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본다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과 기억을 동원하여 이미지를 보는 것이다. 보는 방식은 우리가 경험한 지식과 믿음에 의한 것으로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며,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학습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는 것은 특정한 관념이나 선입견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굉장히 주관적인 행위이다. ● 자의에 의해 혹은 타의에 의해서 우리는 일상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게 되며 그것들은 나에게 단순화된 하나의 파편, 단편적인 이미지로 저장된다. 이런 내밀하고 개인적인 행위에 대한 결과물로 사진을 남긴다. 내가 포착하는 장면들은 보통 특정 공간의 내부/외부 혹은 인공적/자연적 이미지들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수집과 탐색을 통해 규칙을 찾는다. 실제 이미지들은 디지털기기(포토샵, 아이패드 드로잉 등)를 통해 단순화, 변형, 왜곡, 편집 등의 과정을 거쳐 직선이나 곡선, 점 따위의 요소를 통해 기하학적 패턴을 만들어낸다. 이미지들은 복잡다양하며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만 기하학적 요소로 단순화되어 캔버스에 표현된다. 이 패턴은 기하학적이고 건축학적이며 때론 장식적이고 계산에 기반을 둔 것처럼 보여 진다. 또한 내가 주로 사용하는 색은 기억과 경험에 의해 오랜 시간 동안 나의 신체에 체득되고 감응된 것들에 대한 표현이다. 칸딘스키의 회화가 그랬듯 존재하는 대상에 대한 구체적 모방과 재현이 아닌, 작가 본인의 '내적 필연성'에서 우러나오는 형태와 색채로 화면을 채우고 있다. 최초의 이미지들이 변형되고 편집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실제 존재하지 않는 관념적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것이 'Moving Space(유동적 공간)', 나의 회화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 특정 공간에 대한 소유와 정착보다는 이동과 유목의 의미로 공간에 대해 사유한다. 하나의 공간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 지속되고 그 곳을 지키고 있는듯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형되고 결국엔 소멸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에게 공간은 물리적인 개념보다 심리적인 개념, 정착보다는 이동과 변화의 의미가 더 크다. ● 평평한 공간에서 부유하는 파편들, 리드미컬한 선들과 첨예하고 날카로운 조각들은 새로운 공간에 대한 확장을 위해 계속해서 움직이고 이동하며 서로 충돌한다. 이 조각들은 그동안 네모진 캔버스 안에서 비좁게 이동 운동을 해왔다. 최근 작업에서는 움직임과 이동하는 공간에 대한 확장된 표현을 위해 캔버스 안에서 등장하던 기하학적 도형들이 캔버스 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것들은 변형된 조각 캔버스로 또는 일상 속 오브제들의 변형을 통해 전시장 벽과 바닥에 놓여진다. ● 그동안 작업에 있어 주체는 회화, 오롯이 나의 작품이었다. 벽면에 걸린 캔버스 주변으로 오브제들이 함께 놓이게 되면서 전시의 3요소인 관람자-회화-공간이 모두 작품의 주체가 되도록 전시 공간을 활용하게 됐다. 나의 전시에서는 캔버스들이 더 이상 일렬로 반듯하게 화이트 큐브를 메우지 않는다. 이 그림 다음 저 그림을 봐야 한다는 일련의 정해진 순서도 없다. 각자의 시지각에 의한 선택과 판단, 그리고 탐색으로 다음 그림 혹은 다음 오브제를 선택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래서 전시장에서 관람자들의 이동 경로는 저마다 모두 다를 것이다. 메인 캔버스를 바탕으로 조각 캔버스들이 여기저기 부유하고 움직이거나 또는 오브제가 함께 놓이면서 작품과 작품 사이, 공간과 공간 사이의 간극이 생기게 된다. 이것은 관람자들의 이동과 동선을 통해 작품 사이의 빈 공간들이 채워지며 연결되게 된다. ● 이렇듯 'Moving Space'는 잘 완성된 회화 한 점이 아니라, 전시의 3요소인 관람자-회화-공간이 모두 작품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또한 나의 전시는 더 이상 수동적 감상의 공간이 아닌 능동적 체험의 현장이 된다. ■ 양승원

양승원_운동하는 감각 no.4_캔버스에 혼합재료_145.5×112.1cm_2021

아름다운 가을 날의 위로를 담아 코로나 시대에 안녕을 고하며 아트 스페이스 W에서 양승원 작가의 전시 소식을 전한다. 양승원 작가는 오롯이 작가 본인의 체득과 감응에 의해 결정된 고유의 색과 형태로 캔버스 화면을 가득 채운다. '본다'는 행위를 통해 수집된 많은 정보를 가진 다양한 이미지들은 양승원 작가에 의해 여과되어 단순한 점, 선, 면의 형태로 패턴을 이루며, 실제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공간 'Moving Space'가 창조 된다. 창조된 공간은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며, 직관적으로 인지되지 않지만 고정되지 않은 유동적인 속성을 가지는 공간이다. 작가는 창조된 공간 'Moving Space'의 패턴들은 하나의 유기체와 동일시하여 평면적인 캔버스를 벗어나기도 하는데 이러한 가변적 설치 작품들은 관람자, 작품, 공간이 함께 소통하고 어우러지는 과정 속에서 최종적으로 완성됨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사각의 캔버스라는 한계라는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색과 형태로 어우러진 작품들 사이를 자유롭게 누비는 즐거움을 경험하길 바란다. ■ 아트스페이스 W

Vol.20211020h | 양승원展 / YANGSEUNGWON / 梁升瑗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