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뱀을 삼킨 코끼리 Un serpent boa qui digérait un éléphant

민展 / MIIN / painting   2021_1020 ▶ 2021_1103 / 월요일 휴관

민_보아뱀을 삼킨 코끼리 Un serpent boa qui digérait un éléphant展_ 갤러리 175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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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175 Gallery175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53 2층 Tel. +82.(0)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플랜씨 planC 전북 전주시 완산구 은행로 30 Tel. +82.(0)63.282.1923 www.facebook.com/planc1923

민(miin)은 40점의 그림을 그렸고, 2점의 판화를 만들었다. 이곳 갤러리175에는 2점의 그림과 1점의 판화만이 전시되어 있다. 나머지 그림 38점과 판화 1점은 전주의 플랜씨(PlanC)에 두었다. 이 전시를 모두 둘러본 뒤, 과연 보지 못한 작업을 감상하기 위해 전주로 가게 될까? 혹은 아쉬움을 느끼며 전주행을 유보하고 말까?

민_보아뱀을 삼킨 코끼리 Un serpent boa qui digérait un éléphant展_ 플랜씨_2021
민_보아뱀을 삼킨 코끼리 Un serpent boa qui digérait un éléphant展_ 플랜씨_2021
민_보아뱀을 삼킨 코끼리 Un serpent boa qui digérait un éléphant展_ 플랜씨_2021

갤러리175와 플랜씨는 2021년 10월 20일부터 11월 3일까지 민의 개인전 《보아뱀을 삼킨 코끼리 Un serpent boa qui digerait un elephant》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민이 네 가지 종류의 공간을 통해 탐구한 고향의 속성, 분열과 이어짐에 대한 고민을 펼쳐둔다. 이는 총 세 개의 묶음으로 제시되는데, '요지경 시리즈'로 제작한 캔버스 작업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로 192〉와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소문로26가길 32〉, 판화 작업 〈보아뱀을 삼킨 코끼리 Un serpent boa qui digerait un elephant〉이다. 이 묶음들은 하나의 전시 아래 동일한 제목과 기간으로 엮인 서울의 갤러리175와 전주의 플랜씨 두 장소에 나누어 설치된다. ● 고향은 어디이고, 무엇이 고향이 될 수 있으며, 어떠한 속성이 나의 고향을 정의할까? 고향이란 생물학적으로 자신이 태어난 실제 장소로, 한 개인의 그리움과 애착의 정서가 엮인 특별한 곳이다. 하지만 민은 태생과 연결되는 의미에서 벗어나 고향을 보다 넓은 개념으로 이해하며 그 범주를 확장한다. 민에게 고향이란 떨어져 있음에도 이어져 있음을, 이어져 있음에도 떨어져 있음을 감각하게 만드는 곳에 가깝다. 그렇기에 공간적, 시간적으로 떨어진 그 어떤 곳에서도 고향에서 느끼는 것과 같은 향수가 발현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해석 아래, 민은 캔버스에 그려진 공간과 캔버스라는 공간, 판화라는 공간, 실제 현실 공간 등 네 종류의 공간을 설정하고 그사이를 오가며 고향의 속성, 분열과 이어짐을 탐구한다. ● '요지경 시리즈'의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로 192〉와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소문로26가길 32〉는 민의 두 거주지 근처 정원수의 모습을 캔버스에 재현한다. 제목이 암시하듯 두 작업은 물리적 소재지로서 장소에 대한 고민을 함축한다. 민이 살았던, 살고 있는 두 장소 근처의 정원수는 거리가 가까워 언제든 볼 수 있던 대상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정원수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시간이라는 요소가 있어, 정원수를 하나의 정지된 이미지로 포착할 수 없다. 민은 이 움직이는 이미지를 애써 캔버스에 그려내는데, 이로써 붙잡히지 않는 것을 붙잡아두려는 역설을 실현한다. 이는 자신의 소재지가 바뀌는 일을 기점으로 작업을 구분하는 의도와도 맞닿아 있다. 즉, 변화하는 정원수의 모습은 곧 변화하는 자신의 거처를 표상하는 것이기도 하다.

민_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소문로26가길 32_캔버스에 유채_89.4×145.5×3cm_2021
민_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소문로26가길 32_캔버스에 유채_89.4×145.5×3cm_2021
민_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로 192_캔버스에 유채_21.2×40.9×2cm_2021
민_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로 192_캔버스에 유채_21.2×40.9×2cm_2021

캔버스라는 공간은 이렇게 시간적, 공간적으로 움직인 공간을 또 한 번 움직이게 만든다. 캔버스는 손쉽게 여러 장소로 옮겨질 수 있는 이동성을 갖춘 매체다. 민이 사용한 최대 세로 90, 가로 145, 높이 3센티미터(cm)의 사각형 캔버스들은 거대하고 복잡한 형태의 조형물이나 부수적인 장치가 필요한 여타의 매체와 달리, 가볍게 손에 들려 장소를 옮기며 설치되기에 수월하다. 민은 이러한 캔버스의 특징에 주목하여 개별 캔버스가 어렵지 않게 분리될 수 있음을 전제한 뒤, 여러 점으로 분할한 캔버스에 한 그루의 정원수를 담았다. 분명 모든 캔버스가 모였을 때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지만, 수십 점의 부분들이 민의 선택에 의해 다른 장소에 놓이게 되면서 온전한 나무의 모습은 보여질 수 없다.

민_보아뱀을 삼킨 코끼리 Un serpent boa qui digérait un éléphant_ 동판화_15.9×19.5cm_2021
민_보아뱀을 삼킨 코끼리 Un serpent boa qui digérait un éléphant_ 동판화_15.9×19.5cm_2021

판화 작업 〈보아뱀을 삼킨 코끼리 Un serpent boa qui digerait un elephant〉는 보다 은유적으로 분열과 이어짐을 환기한다. 작은 종이 위에 보아뱀의 피부와 코끼리의 피부를 겹쳐 묘사한 판이 찍혀 있다. 복제를 거듭하며 각 장의 판화는 서로 분열하게 되지만, 동시에 동일한 근원(원판)을 가진다는 점에서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이어짐이라는 상황을 공유한다. 작업의 국문 제목은 동화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Un serpent boa qui digerait un elephant)'을 반대로 뒤집은 것인데, 이 원제는 제목에 병기한 프랑스어와도 상응한다. 한글로 적힌 '보아뱀'과 '코끼리'라는 두 단어, 두 단어가 놓인 위치, 종이 위에 겹쳐진 두 피부의 이미지로부터 우리는 분명 익히 알고 있던 원문의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는 기시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바로 이 기시감의 순간을 통해 보편적인 인식의 관성은 멈춰버리고 무엇이 우선하는지 혼동하게 되며, 단순히 분열과 이어짐의 선후 관계를 구분하고 구별 짓는 일이 불용해진다. ● 한편, 캔버스와 판화 작업의 개별 조각들(pieces)은 갤러리175와 플랜씨라는 실제 공간에 분리되어 놓였다. 이 조각들은 일견 묶음에서 분열되어 스스로 어딘가로부터 남겨졌거나 떨어져 있음을 지시하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를 통해 이어짐이라는 상황이 파생되며, 나아가 분열과 이어짐의 순환하는 관계가 드러나게 된다. 조각이 남겨졌거나 떨어졌다는 것은 그것이 놓인 상태(condition)일 뿐이다. 이 상태는 지금은 실현될 수 없으나 처음에는 전제되어 있었으며, 언젠가 가능할지도 모르는 이어짐이라는 상황(situation)을 연출한다. 눈앞에 놓인 나무의 부분과 한 장의 판화를 통해 다른 장소에 놓여 있을 또 다른 나무의 부분과 판화를 떠올리게 되고, 과거 혹은 미래 그 어느 시점에서라도 존재할 이들 사이의 연결 지점이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서 파생한 이어짐은 또한, 떨어짐을 전제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기에 다시 떨어짐이라는 상태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둘의 관계는 갤러리175와 플랜씨 두 장소 위를 떠다니면서 구분되지 않고 순환되는 고리 속에 놓인다. 그리고 이 순환의 관계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선행하고 뒤따르는지 판단하는 일을 유보하게 만든다. 다만 무언가를 직접 본다는 사실 그사이에 존재하는 무엇을 보고, 보지 않을지를 고민하는 일, 분열되고 이어진 무언가를 상상하는 일만을 남겨둔다. ●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 관객이 나머지 작업을 보기 위해 전주로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이 전시는 그곳에 가기를 선택하거나 유보하는 행위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분열과 이어짐을 감각하고 경험하게 만든다. 마치 민이 어떤 곳을 고향이라고 정의할지, 어떤 곳에서 고향의 속성을 발견해낼지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다. 전시장 한편에 자리한 캔버스 배경에 두껍게 얹어진 마띠에르(Matière)가 보인다. 이는 민이 즐겨 하는 게임에서 본 풍경을 따라 그린 것이다. 민은 고향의 범위를 더욱 넓혀 게임 속 장소 또한 고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민에게는 게임에 접속해 화면을 옮기며 그 속의 배경을 조망하는 일이 창문을 열어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일과 다르지 않다. 생물학적인 관련이 없으며 실제 현실 속에 있는 장소가 아닐지라도, 그곳에서 향수가 발현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무엇을 보고, 잇고, 분리하고, 어디를 고향으로 명명할지 선택하는 일. 민이 말하는 고향, 그리고 분열과 이어짐이란 어쩌면 그 물음들 사이에서 정의될지도 모른다. ■ 김진주

Vol.20211023c | 민展 / MIIN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