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날들 중에서

박시월展 / PARKSIWOL / 朴시월 / painting.drawing   2021_1025 ▶ 2021_1031

박시월_아무것도 아닌 날들 중에서展_소금나루 작은미술관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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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월 홈페이지_siwolpark.tumblr.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울산광역시북구 주최,주관 / 북구예술창작소 소금나루2014

관람시간 / 화~금_09:00am~06:00pm / 입장마감_05:30pm 토_09:00am~03:00pm / 일,월,공휴일 휴관

소금나루 작은미술관 울산 북구 중리11길 2 북구예술창작소 Tel. +82.(0)52.289.8169 cafe.naver.com/bukguart

같은 것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형태가 생겨난다 - 2021 북구예술창작소 평론매칭 워크숍: 박시월 ● 허공을 한참 바라보는 것처럼 같은 자리에 짧은 직선을 계속 그리는 무심한 행위는 손끝에서 어떤 형상을 떠올리게 한다. 큰 종이가 아니더라도, 손바닥만큼 종이 모서리에 빈 데가 있다면, 선을 긋기에는 충분하다. 연필을 손에 쥐고 무심코 긋기 시작한 세로선이 검은 몸집을 키워갈 때쯤, 불쑥 어떤 형상이 오래된 기억에서 나타나 손과 점점 가까워진다. 기억하는 것과 기억하지 못하는 것 사이에 흐릿하게 놓여 있던 형상이, 종이 한 쪽 모서리에 긋기 시작한 짧은 세로선으로 손 끝에 닿을 수 있는 이미지들의 현전이 되었다. 의도한 일은 아니었는데, 같은 자리에 같은 선을 반복해서 쌓다 보면 어떤 순간에 예기치 않던 형상이 불쑥 나타난다.

박시월_아무것도 아닌 날들 중에서展_소금나루 작은미술관_2021

박시월의 연필 드로잉 「마치 잠실 야구장이 떠 있는 것처럼」(2019)을 보면서, 의미 없는 연필선을 종이에 빈틈 없이 긋던 소소한 습관을 떠올렸다. 그 무료한 행위는 애초에 무엇을 하고자 했던 게 아니었음에도 손 끝에 강박적인 반복을 지어내곤 했다. 박시월의 「마치 잠실 야구장이 떠 있는 것처럼」은, 그가 밤바다에 떠 있는 수백 척의 오징어잡이 배에서 밝은 불빛이 쏟아져 나오던 광경을 본 후 그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기억에 관해 누군가가 글로 쓴 것을 읽고 종이에 연필로 그린 작은 드로잉이다. 이석원의 산문집 『보통의 존재』를 읽고 박시월은 몇 개의 문장을 기억하며 그 말 속에 담긴 타인의 경험을 떠올려 보려 했던 모양이다. "나는 내가 본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말 속에 담긴 형상들에 대해서 말이다. 요컨대, 그는 기억 속에 자리잡은 광경을 그림으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글과 말로 옮겨진 타인의 기억에서 그 장면들을 가져오겠다는 스스로의 절차들을 마련했다. 「마치 잠실 야구장이 떠 있는 것처럼」은 그 시작을 알린 그림이다. ● 박시월은 수필 속 "그때 칠흑같이 어두운 속초 앞 밤바다"를 찾아갔고, 거기서 "마치 물 위에 잠실야구장이 몇 개나 떠 있는 것 마냥, 무섭도록 환한 불빛들이 수백 척의 오징어잡이 배에서 쏟아져 나오던 광경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라고 말한 타인의 경험을 자신이 회상하며, 그가 본 "아름다운 것을" 그림에 가져다 놓을 방도를 살핀 듯 했다. 그래서 그는 '속초 밤바다-환한 불빛-수백 척의 오징어잡이 배-물 위의 잠실야구장'을 바삐 오가며 망각에서 벗어나 기억으로 남아 있을 법한 형상들을 길고 단호한 어떤 윤곽으로 선명하게 그리는 대신 짧은 세로선으로 허공을 감싸 안듯 희미하게 천천히 나타나도록 했을 테다. 이어서 "나는 내가 본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타인의 바람을 가져와, 박시월은 그에 응답하듯 「네가 본 아름다운 것을 훔치고 싶었다」(2019) 연작을 그렸으며, 그것은 똑같이 세로 21cm, 가로 29.7cm 종이 위에 짧은 세로선을 써서 누군가가 본 아름다운 것의 형상을 드러냈다.

박시월_흐릿해지는 310호_아크릴, 유리에 색연필, 연필_ Part1,2: 50×40cm, Part3,4: 25×40cm_2021

그는 이 일을 위해 익명의 타인들에게 대화를 요청했고, "당신이 본 아름다운 것을 훔치겠습니다. 무척 소중하기에 당신의 '너'에게만 보여주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던 순간에 대해 말해주세요. 현재로부터 먼 기억일수록 좋습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타인들의 경험과 그것에 대한 기억과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이 엮인 하나의 장면을 추적하면서, 박시월은 이미 지나간 시간 혹은 이미 종료된 사건 혹은 이미 망각한 기억이 마치 오래 전에 잃어버린 물건처럼 예기치 않게 다시 기억으로부터 되살아났을 때 그것이 비로소 상실된 것임을 자각하게 되는 (시각적) 부재-볼 수 없음-를 경험했을 것이다. 본다는 것[응시]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불확실하여 결핍을 동반하고 있으므로. 그의 강박적인 반복 행동으로서의 선긋기와 형상을 단일한 윤곽선 없이 되레 그것의 바깥에 쌓인 검은 연필선-어둠으로 존재하는 배경-에 의해 텅 빈 실체로 드러나게 하는 표현 방법은, 기억에 대한 강박적 회귀와 그것의 궁극적인 실패를 동시에 보여준다.

박시월_돌의 시간_유리에 연필_33×15cm_2021

박시월은 「내가 본 아름다운 것을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2019)의 또 다른 버전 연작에서는 각각 8.7cm, 14cm의 길이를 가진 작은 종이에 연필과 수채화 물감을 써서 전반적으로 조금 더 익숙해 보이는 광경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물론 낯설고 비현실적인 형상들이 간혹 등장하기도 했으나, 앞의 작업들에 비해서는 묘사가 훨씬 더 사실적이거나 선명해졌다. 하지만 이때도 어떤 부재의 흔적들처럼 짧은 세로선의 강박적인 등장은, 그림에서 불가피해 보였다. 담벼락 아래 얕은 공간에서, 검은 길고양이의 털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의 그림자에서, 강박적인 세로선의 반복 행위는 선명하고 익숙한 형태들 곁에 희미하게 굴절된 채 공존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현실의 모든 사건들 밑에 시간도 알 수 없고 장소도 알 수 없는 원초적인 불안이 봉인되어 있는 것처럼, "기억"과 "아름다움"에 관한 현실의 진부한 서사를 전복시키고 그것에 대한 강박적인 회귀가 보다 근원적인 것임을 환기시킨다.

박시월_이 좁고 어두운 땅 위에_유리에 색연필, 연팔_각 30×30cm_2021

종이 대신 유리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그는 「내가 본 아름다운 것을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연작을 계속 진행하면서 대략 2020년부터는 종이나 캔버스 대신 유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보다 앞서 「긁적긁적」(2019)의 경우,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그림을 라이트 박스와 결합하여 빛에 의한 투명도를 모색했다. 「긁적긁적」은 제목 그대로 등, 다리, 머리, 배 등을 손으로 긁는 강박적인 행동을 그려 7점의 회화 연작으로 완성했다. 박시월은 이러한 심리적인 강박을 직간접적인 회화의 소재로 다루면서, 매체적 관습에 따른 회화적 접근과 함께 회화가 아닌 다른 화면과의 참조적인 중첩을 시도해 왔다. 말하자면, "그리기"라는 회화적 시도와 라이트 박스를 활용한 "스크린화"의 전략이 그러하며, 캔버스 대신 유리와 수틀 및 입체적인 구조물을 이용한 「너에게」(2020) 연작도 회화의 물리적 지지체를 변형한다는 맥락에서 같이 살필 수 있다.

박시월_어디가세요_아크릴, 유리에 유채, 연필_각 50×40cm_2021

최근 박시월은 유리에 흑연을 써서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드로잉으로 전환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데, 사실상 타인의 경험과 기억을 종이에 연필로 옮겨 그리던 초기 작업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캔버스 대신 유리를 사포로 갈아 질감을 만들어낸 후 그것을 회화의 지지체 삼아 드로잉 도구로 이미지를 쌓아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형태는 더 사실적인 묘사로 나아가고 있고, 따라서 화면의 밀도도 훨씬 높아졌다. 잘 마름질 된 사각의 유리판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파손된 자투리 유리 조각에 그림을 그려 입체적인 설치를 시도하기도 한다. 어떤 이유에서 유리판을 사용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물음에, 그는 타인의 기억처럼 불확실한 것을 섬세하게 그리다 보니 그 형상을 아우르는 회화의 공간이 좀 더 흐릿하고 불투명한 경계를 만들어주었으면 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현실에 대한 일련의 기억과 경험을 그리는데 있어서, 종이나 캔버스 보다 다루기 어려운 유리를 가져와 손질한 후에 짧은 선들로 형태를 구축해 가는 그의 행위가 근본적으로는 회화의 결핍 및 부재를 끝없이 대체해 보려는 강박적인 시도처럼 보였다. 그것은 (정신분석학적 서사를 참조해 본다면) "평면"을 매개로 "나"와 "타인"의 분리 불가능한 시지각적 투사를 잠재적으로 함의하고 있다. ■ 안소연

Vol.20211025e | 박시월展 / PARKSIWOL / 朴시월 / painting.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