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화(體化)된 풍경

하연수展 / HAYEONSOO / 河燕秀 / painting   2021_1030 ▶ 2021_1128 / 월요일 휴관

하연수_landscape_한지에 석채_81×135cm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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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보혜미안 갤러리 BOHYEMIAHN GALLERY 서울 용산구 소월로 314 Tel. +82.(0)2.790.1222 www.bohyemiahn.com

누적(累積) 된 예술적 시간 그리고 그림-하연수 작가의 그림 ● 지치고 찌든 일상의 피로감을 벗어던지기 위해 무작정 동해로 떠났던 추억이 있다. 유행가 가사를 흥얼거리며 자동차로 때로는 기차에 몸을 싣고 무작정 동해로 향했었던 과거의 시간은 어느새 나에게 아른한 추억이 되었다. 가족, 친구들과 함께했던 시간,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동해바다로 향했던 일탈, 친구들과 스케치 여행을 갔던 장소가 아련하게 떠오른다. 적어도 동해바다는 나에게 그런 의미와 추억을 간직한 곳이다. 하연수 작가의 작품에 대한 글을 써보기 위해 작가와의 대화를 핑계 삼아 강릉으로 향하고 싶었지만, 코로나 팬데믹 상황과 바쁜 일상은 추후에 강릉 앞바다를 바라보며 작품에 대한 이야기, 해묵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위한 여지로 남겨두기로 했다. ● 하연수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마주했던 내 첫인상은 어디서 본 듯한 풍경들이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필자가 수차례 동해 바다로 향하면서 바라보았던 기억 속 장면을 간직한 풍경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차장밖에 손을 내밀고 바람을 가로지르며 동해바다로 향했던 당시 눈앞에 펼쳐졌던 풍경의 단면들이었다. 짙푸른 동해 바다의 인상과 밤바다의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빛, 산 중턱에서 느꼈던 맑고 시원한 공기를 머금은 풍경의 모습들은 설렘과 환기를 안겨 주었다. 아마 작가가 그려낸 풍경 속 시간의 층과 단면은 예전에 필자가 여행을 하며 잠시 멈추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던 장면과 오버랩 되는 지점이 아니었을까?, ● 작품에 대한 비평은 동시대성에 대한 확고한 예술철학의 기조 아래 비평가의 비평적 안목이 더해지고 감해져 객관적 관점을 유지하며 글을 서술해야 한다, 하지만 하연수 작가와 함께 여행도 하며 동시대 미술계와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해 토론하고 공감하고 대화했던 그 시간들은 날카로운 이성보다는 따뜻한 위로와 응원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연수 작가 작품에 대한 조심스러운 이야기를 건네 보고자 한다.

하연수_landscape_한지에 석채_81×135cm_2021

예술적 시간의 누적 ● 하연수 작가의 작업 그리고 그림은 무엇을 지향하며 무엇을 담고 이야기하기 위함일까? 동시대 미술계에 속한 작가 그리고 미술인이라면 항상 머리맡에 맴도는 질문이며 문제의식이다. 동시대 미술의 규정을 시도한 많은 예술철학자들이 존재하지만 결국 규정할 수 없는 다양성과 현상에 대한 설파로 끝나는 모습을 목격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의식과 작품의 의미는 결국 지금의 우리 현실 속 작가의 작품과 작품이 생성되기까지 진행된 작가의 예술적 시간 속에서 그 해답을 엿볼 수밖에 없다. 동시대 한국 화단 그리고 미술계에서 자신의 작품처럼 조용하게, 색다른 빛을 발현하고 있는 하연수 작가의 작품과 예술적 행로와 배경, 삶의 시간은 동시대 한국미술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축으로서 바라보기에 손색이 없다. 하연수 작가의 작품을 이해한다는 것은 작가의 작품 속에 담긴 하연수 작가만의 독특하고 특별한 사유와 감성 더불어 동시대 사회 문화를 직시하는 작가의 인식과 태도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관계망의 얼개 속에서 그 해답을 유추해 볼 수 있다. ● 하연수 작가의 작품을 또 하나의 사건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사건은 단순하고 우발적 사건이 아닌 예술적 시간들의 사건이 누적된 집합체이다. 작가의 작품을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작가가 살아온 예술적 시간의 과정들과 함께 이해됨이 전제되어야만 하는데, 하연수 작가의 예술적 행로와 예술적 시간의 누적은 작가가 그려낸 자신의 작품 속 빛과 색을 품은 산의 형상과 닮아있다. 작가 본인의 어린 시절부터 마주한 미술, 그 환경과 배경 안에서 늘 존재해 온 작가는 오롯이 미술 자체가 전부일지도 모른다. 하연수 작가는 매일 일정한 시간을 두고 그림 그리기를 한다. 그림을 그리는 화판에 다양한 색을 가진 미세한 안료의 입자가 쌓이듯 하연수 작가의 작업은 예술적 시간들이 차곡차곡 누적된다. 그 예술적 시간, 때로는 시적이기도 하며 문학적이기도 한 시간의 누적은 작가에게는 내적 공명으로 자리 잡히게 되며 감상자에게는 다양한 울림으로 전달된다. 예술적 시간, 그 누적된 시간의 층은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산과 바다, 호수 등과 같이 스스로 그러한 자연 됨을 닮아 있으며 작품 속에 침잠 된다. 오랜 시간 동안 자연 풍파의 영향으로 생성된 퇴적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두터운 자연 퇴적층의 모습처럼 하연수 작가가 그려낸 작품 속에 침잠된 시간의 무게를 담은 작품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숭고함을 불러일으킨다.

하연수_landscape_한지에 석채_60×41cm_2021

하연수 작가의 그림(사건)은 누적된 예술적 시간의 전개 과정을 담고 있다. 작가가 그린 그림을 그림(사건)이 발생되기 전과 후로 구분 지을 수 있는데, 그림이라는 이 사건은 시간의 속성을 갖게 되며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 위한 구상에서부터 작업과정 그리고 완성되기까지 체계적이지만 다소 복잡하고 심오한 전개 과정을 띠게 된다. 먼저 우리가 감상하는 하연수 작가의 작품을 그리기 이전의 시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다시 말해 작가의 마음속이나 의식, 사유의 시간들을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물질로써 현상화된 그림 이전의 그림은 현상화된 그림의 원천으로 존재한다. '매일의 다른 눈으로 본다'라는 작가의 묵직한 한마디 말은 하연수 작가의 자연을 대하는 자연관과 그리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심미안을 의미한다. 하연수 작가가 미를 살피는 태도이며 동아시아 회화 미학의 중요한 개념인 '의'의 개념과 교류하며 작업을 하기 전 의식 속에 반영된다. 여기서 의란 '음'과 '마음'이 합쳐진 개념으로써 매일매일 변화하는 자연의 풍경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곧 하연수 작가의 '음'과 '마음'이 만나서 작가만의 소리와 풍경 그리고 다채로운 형상들이 어우러진 풍경화를 위한 전제가 된다. 그 소리는 다분히 시적인 측면을 띠게 되며 언어 밖의 또 다른 의미를 간직하게 되는 풍경화가 된다.

하연수_landscape_한지에 석채_90×140cm_2021

마음과 대상, 물성이 대화하는 순간들 ● 예술적 시간은 수평적 시간의 선분 위에 수직적 시간들이 개입된 시간의 층이다. 마치 잔잔한 바다에 갑자기 커다란 번개가 치고 폭풍우가 밀려오듯 예술가의 시간은 다분히 수직적이다. 하연수 작가가 그린 숲속, 나무들 위로 비치는 잎과 빛의 붓질과 흔적들은 오랜 시간의 누적으로 형성된 나무이며 빛의 숲이다. 반복된 붓질의 과정 중에 순간적으로 일어난 예술적 시간들이 모이고 쌓인 시간의 층들을 켜켜이 쌓아 올린 것이다. 하연수 작가의 산과 바다 그림은 고전적 아름다움의 장식적인 풍경화라기보다는 본질을 향한 여정과도 같다. 산과 바다의 형태와 형상 속에 내재된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끝없는 붓질의 여정이다. 작가가 표현한 그림은 재현의 세계라기보다는 대상과 형상을 작가의 몸과 마음에 내재화 시켜 동시에 서로를 구분 짓지 않으며 서로를 포용하는 빛과 색의 풍경 그림들이다. 이러한 풍경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명들이 내뿜는 빛과 색의 그리기는 '매일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라고 하는 작가의 시선과 체화된 물성과 대상들이 하연수 작가만의 회화로서 변주된다.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면 평안한 산의 모습을 그린 풍경화 같지만 그려진 그림의 산속 안에는 수많은 생명들의 소리와 그들이 내뿜는 빛과 색이 작품 속에 내재해 있다. ● 작가의 작품 속에 누적된 안료의 배합과 안료를 접착시키는 접착제, 붓의 사용법 등은 체계적인 동아시아 전통 채색화 기법의 토대 위에 있다. 오랜 시간 누적된 실험과 시행착오의 결과를 거치면서 채색의 사용방법에 대해서 몸으로 습득된 작품 제작 방식이다. 하연수 작가는 그림의 바탕이 되는 종이를 선택하고 그 바탕 위의 견고한 안료의 층을 만들기 위해 여러 차례 아교를 입힌다. 가루 입자의 안료와 돌가루 안료의 층을 만들어 내는 일은 오랜 시간 몸에 누적된 경험치의 산물이다. 다양하고 예민한 붓들로 색채를 혼합하며 안료의 물성이 가진 고유의 특성과 성격을 파악한다. 아주 작고 미세한 입자들을 붓에 묻혀 바르고 긋는다. 때로는 천천히 잔잔하게, 때로는 거칠고 속도 있게 누적된 층 위에 안료와 수분을 머금은 붓이 스치고 지나간다. 대상에 작가 자신을 투사시키기도 하며 자신이 풍경을 마주했던 기억 등이 온연히 마음에서 손을 타고 붓끝으로 전달된다. 그리고 안료 입자 간의 층돌로 파생되는 새로운 색과 빛을 머금은 대상과 안료의 작은 물성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예술적 시간이 누적된다. 그 대화는 자신과의 독백일 경우도 있고, 자신이 경험했던 쉼 없이 움직이는 구름과 바람, 물, 해와 달, 공기 내음, 풀잎, 꽃, 새와 나무들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연수_landscape_한지에 석채_40×120cm_2021

하연수 작가의 작품을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면 작가가 그린 풍경의 하늘이나 물결 빛의 윤슬과 같은 모습들은 상당히 두텁게 중첩된 붓질의 연속으로 나타낸 자연의 빛과 색의 흔적들이다. 잔잔하게 보이는 숲의 색 층은 셀 수 없는 붓질과 기다림 속 시간의 연속이 베여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하는 장식적 아름다움의 속성이 아닌 본질을 향한 어떠함과 대상과의 교감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그림 되기 이전의 투영됨이 그림을 그려가는 과정 속에 침잠되어 있으며, 상투적인 풍경화와는 다른 지향점을 갖는 독특한 하연수 작가만의 개성과 매력을 담게 된다. ● 미적 감각의 입장에서 이러한 행위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작업 진행 과정은 완연한 예술적 시간의 층들이다. 진실한 생활 속에서 직감하고 교감했던 대상들은 이러한 시간의 층 속에 차곡히 쌓이게 된다. 일상에서 마주했던 자연의 대상과 형상들은 하연수 작가의 작업에 막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그려진 풍경 그림 속에는 모든 일상의 진실한 생활 속에서 마주한 진정성과 생동성을 간직하고 있다.

하연수_landscape_한지에 석채_90×140cm_2021

색채의 근원적 탐색과 회화적 모색 ● 색채의 본질적인 문제는 예술, 특히 회화의 문제이다. 산과 바다 그리고 하늘의 색을 우리는 규정할 수 있을까? 또한 달빛에 반사된 나무와 물결의 색이 어떤 색 그리고 무슨 색이라고 규정짓기에는 색채와 빛이 가진 신비스러움에 우리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 고대 문인들이 먹의 색을 우주에 비유하거나 서양의 인상파 화가들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색과 빛을 찾아 화폭에 구현하기 위한 방식을 살펴보더라도 색과 빛 사물이 내포한 빛과 색의 문제는 광학이나 물리학의 요소로 밝히고 설명하기엔 그 한계점이 있다. ● 하연수 작가의 작품 속에 누적된 색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지하는 색의 인식과는 사뭇 다른 성격을 갖는다. '하늘은 파랗다', '나무는 갈색이다'라는 일반론적 색채 인식과는 다른 차원을 내포한다. 매일 변화하는 산의 모습, 물빛의 모습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일반론적 색의 규정이 얼마나 모순되는가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분홍빛 하늘 위에 동그랗게 떠있는 달이 그려진 작품을 과학과 광학의 힘을 빌려 규명하기엔 그 한계점이 있다. 작가가 그려낸 풍경 속 산속에는 수많은 종류의 나무와 생명들이 각각의 색과 빛을 내뿜고 있다. 우리가 조금 떨어져 보면 하나의 커다란 산은 이러한 색과 빛, 그리고 공기의 층과 어우러져 만들어낸 색이며 빛과 어우러진 기운이다. 더불어 하연수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풍경, 그리고 색과 빛은 작가의 기억과 추억을 함께 저장하여 발현되고 있다. 그리고 때로는 매일 대하는 같은 산과 바다의 모습이 전혀 다른 색 빛으로 낯설게 다가오는 심리적 상황까지 어우러진 누적된 색의 층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는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실천되고 사용된다. 작가가 바라보는 풍경 속 공간은 다양한 색채들과 공기의 입자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작가의 내면과 함께 융합된 교향곡이 된다. 최근 작가의 새로운 그림들은 예전 작품들에 비해서 다소 많은 것을 덜어내는 듯 한 인상을 준다. 어쩌면 하연수 작가는 색채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관계망을 하나씩 정리하며 대상에게는 깊이감, 자신에게는 충실함을 주기 위함이다. 보이는 대상의 색채를 표현하는 것이 아닌 본질과 본성에 더욱 가깝게 다가서기 위함 일지도 모른다. 뿌리가 깊고 오래된 시간이 누적된 나무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하연수 작가의 그림 그리기는 누적된 예술적 시간의 층을 가진 뿌리 깊은 나무에 비유할 수 있다. ● 코로나 팬데믹 상황은 우리의 현실과 삶에 대해 많은 혼란을 야기했다.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한 현실과 미래는 우리에게 정서적인 불안한 삶의 단면들을 안겨주었다, 시간이 지나고 먼 미래에 다시 한 번 되돌아봤을 때 지금의 비극적 시간과 현실이 희극으로 여겨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연 그리고 환경은 단순히 우리가 소비하고 감상하기에는 그 힘과 위력에 우리는 한없이 나약한 작은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무너짐을 경험했다. 어쩌면 현재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하연수 작가의 작품처럼 조금은 멀리 떨어져서 우리 삶을 돌아보고 자연이 주는 교훈에 대해 다시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 장진

Vol.20211030c | 하연수展 / HAYEONSOO / 河燕秀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