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핀 꽃 FLOWERS on the BORDER

네오 라우흐_로사 로이 2인展   2021_1028 ▶ 2022_0126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21_1028_목요일_10:00am

주최 / (주)코오롱

관람료 / 성인 8,000원 / 학생(8~19세) 5,000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K_서울 SPACE K_Seoul 서울 강서구 마곡중앙8로 32 Tel. +82.(0)2.3665.8918 www.spacek.co.kr

경계에 핀 꽃-'로사 로이'와 '네오 라우흐' 2인전을 중심으로 ● 우리는 모두 죽는다. 죽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다는 보편성 때문에 우리에게 현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한편, 삶은 그 유한성 때문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을 안겨준다. 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종교가 탄생하고 예술이 꽃을 피웠다. 이처럼 생과 사, 이성과 비이성, 환영과 실재, 지상과 지하, 국경 혹은 이념의 경계에서 꽃은 핀다.

경계에 핀 꽃 FLOWERS on the BORDER展_스페이스K_서울_2021

이번 전시는 신라이프치히 화파의 두 거장 '네오 라우흐'와 '로사 로이'의 2인전이다. 이 둘은 35년을 함께 살아온 동반자이자 누구보다 서로의 작업을 깊이 이해하는 동료이다. '로사 로이'는 한국에서 개인전을 가진 바 있지만 '네오 라우흐'의 경우 한국에서 큰 규모의 전시를 연 적이 없다. 그는 많지 않은 나이에도 한국의 미술 애호가나 미술인들에게 꽤 오래전부터 인지도가 높고 팬층이 두껍다. 이 두 작가는 신화나 전설, 우화나 역사 등이 연상되는 이야기들을 캔버스에 펼쳐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네오 라우흐'의 작품을 '어두움, 엄숙함, 숭고함, 노동, 숙련됨' 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면 '로사 로이'의 작품은 '밝음, 즐거움, 자유로움, 보살핌, 사랑스러움' 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라이프치히에서 생산된 두 작가의 잘 익은 붓 터치를 통해 진정한 회화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네오 라우흐, 로사 로이_Am Saum_종이에 연필, 잉크, 아크릴채색, 과슈_39×53cm_2018

뜨개질하는 여자, 저글링하는 남자 ● 두 작가의 공동작업 「경계 Am Saum」에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나오는데 대표적으로 뜨개질하는 여자와 저글링하는 남자를 들 수 있다. 뜨개질하는 여자의 이미지는 '로사 로이'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녀는 의도한 주제를 향해 소재를 선택하고 구도와 색상을 촘촘하게 옷을 짜듯 그림을 완성해 간다. 그리고 저글링하는 남자 캐릭터는 '네오 라우흐'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인데, 이 역시 그의 그리기 방식과 닮아있다. 그의 그림 안에는 파편화된 의식과 무의식, 충돌하는 상징과 은유들이 뒤섞여 있지만, 작가는 저글링을 하듯 그 단편들을 긴장감 있게 화면 위에 배치하고 있다.

로사 로이_Kostüm_캔버스에 카세인_120×80cm_2018
로사 로이_Gravitation_캔버스에 카세인_210×120cm_2004

'로사 로이'의 작품에는 여성 캐릭터가 자주 등장한다. 간혹 중성적인 인물이나 그림 속 주인공인 여성의 보조적 역할로 남성이 등장하긴 하지만 대부분이 능동적인 주체로서의 여성을 다룬 작품이다. 그녀는 그림을 그릴 때 카제인을 사용한다. 카제인은 포유류의 젖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치즈의 재료로도 사용된다. 카제인으로 고착된 물감은 빨리 마르는 특성이 있는데 투명하게 수채화처럼 올린 색상은 그녀의 작품 곳곳에서 신비로운 효과를 보이며, 작품에 나타난 여성성과 신비로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교회의 프레스코화의 재료로 쓰였던 카제인은 빨리 마르는 장점이 있지만 부서지기 쉬운 단점이 있기에 캔버스화에는 잘 쓰지 않는 재료이다. 이는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 그림 「의상 Kostüm」에서는 여신으로 보이는 여성이 붉은 망토를 걸친 채 그윽한 시선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녀의 망토 아래로 세상은 푸른 빛으로 물들어 있고 그 아래에는 세 명의 여성들이 그녀의 옷을 짜고 있다. 그림 속 여신은 밤을 관장하는 달의 여신 '루나' 혹은 만물의 여신 '가이아'를 떠올리게 한다. 여성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역사를 짜왔다. 그들의 역사는 낮에 쓰인 남성들의 역사에 가려져 있었지만, 세상을 움직여온 또 하나의 거대한 축이다. 정치, 경제, 문화의 역사적 순간엔 항상 여자들이 있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세상을 바꿀 음악을 탄생시킬 때에도 그 옆에는 아내이자 뮤즈였던 '안나 막델리나'가 있었다. 그녀는 단순한 악보 필사가가 아닌 음악적 동지로서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 ● '로사 로이'의 작품에는 다양한 역할을 하는 여성의 캐릭터와 더불어 쌍둥이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작가는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츠비카우의 고향마을을 떠나 라이프치히로 이주하게 되면서 큰 외로움과 상실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만을 위한 상상 속의 친구를 만들게 되었고 이는 그녀의 그림에 쌍둥이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분열된 자아의 혹은 도플갱어가 연상되는 이들은 그림 속에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만유인력 Gravitation」에서는 같은 유니폼과 부츠를 착용한 두 명의 여성이 있다. 등을 보이며 서 있는 여성은 칠판에 그려진 '소용돌이 고리(와류 고리)'를 가리키며 상대의 몸에 자신을 밀착한다. '소용돌이 고리'는 총알의 빠른 운동이 주변 공기의 균형을 깨뜨리며 생기는 현상으로 자주 설명되는데, 가끔은 헬기가 스스로 만들어낸 '소용돌이 고리' 때문에 추락했다는 뉴스를 접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손 모양은 총을 떠올리게 하고 포즈 역시 총을 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맞은편에서 칠판을 든 여성 역시 그녀에 맞서기라도 하는 듯 오른손을 끌어 칠판을 잡아당기고 있다. 이렇게 쌍둥이를 통해 보이는 교환의 구조나 힘의 균형은 질서와 무질서, 안정과 불안정 사이에 존재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네오 라우흐_Der böse Kranke_캔버스에 유채_300×500cm_2012
네오 라우흐_Zustrom_캔버스에 유채_200×250cm_2016

'네오 라우흐'의 작품은 파편화된 의식과 무의식을 저글링을 하듯 화면 안에서 조합한다. 우리가 일기나 수필을 쓰면서 생각이 더욱 명료화되는 과정과 비슷하다. 역사화처럼 보이는 그의 작품은 관람자가 화면 속 사건들은 유추해 보고 싶게 자극하지만 명징한 해석을 하기에 모호한 부분이 많다. 여러 시대의 의상이 섞여 있거나 원근법이 무시되기도 하며 대립적 가치가 공존하기도 한다. 이런 혼돈 속에서 관람자는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어 자신만의 해석을 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오독의 즐거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 「악한 환자 Der bose kranke」는 평행우주처럼 어딘가 존재할지 모르는 또 다른 세계를 창 너머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거대한 캔버스는 반으로 나뉘어 있는데, 화면의 왼쪽에는 해 질 녘 개가 땅을 파고 있는 자연 풍경이 펼쳐져 있고, 오른쪽엔 환자가 누워있는 병상이 보이고 사람들이 모여있다. 그리고 몸집이 작은 환자 주위엔 구마의식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한 명은 맨드레이크로 환자를 치료하는 것처럼 보이고, 다른 사람들은 막대기를 들고 있는데 그 중의 둘은 막대기로 침상을 푹푹 찔러 대며 위협적인 행동을 한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여차하면 침상을 한 번에 태워버릴 불씨를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 이 일촉즉발의 순간에도 노을은 아름답게 구름을 감싼다. 인간의 형상을 닮은 맨드레이크는 몸을 보양하는 약재나 이교도의 주술에 쓰여왔다. 이는 형태나 효능 등에서 비슷한 원형을 가진 한국의 인삼을 떠올리게 한다. 왼쪽 화면에서 땅을 파고 있는 진회색 털을 가진 불길한 모습의 개는 '파우스트'에서 검은 개의 모습으로 변한 악마가 연상된다. ● 「밀어닥침 Zustrom」은 동화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아내 로사 로이와 함께 2018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Bayreuther Festspiele)에서 열린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Lohengrin)의 무대 세트와 의상 제작 등에 참여하면서 시작되었다. 오페라의 주요 소재인 백조를 비롯한 소품들은 그만의 스타일로 기억 되고 파편화되어 캔버스에 자신만의 회화적 내러티브를 완성한다. ● 거인으로 대변되는 외부세계는 철탑의 전선을 타고 내부인의 세계로 침투한다. 전선은 마을 내부의 X자 모양의 철제 구조물과 연결되어 있는데 그 아래에선 전선을 타고 온 듯한 형형색색의 물감들이 괴생물의 촉수처럼 빠져나오고 있다. 그 색들은 마을을 침범해 그림 중앙 하단에 있는 사람 형태의 추상 조각을 만들고 건물의 문을 색면추상화처럼 물들인다. 이때 한 사나이는 두 개의 기둥을 양팔에 낀 채 걷고 있다. 묘하게도 두 기둥은 교차하여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다. 기둥의 양 끝에서는 불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데 마치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는 무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화가의 붓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기둥을 든 사내는 17세기 집단초상화(Gruppenbild)에 나올 법한 사람의 안내를 받으며 철탑을 뒤로한 채 화면의 오른편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이 모습을 양동이를 양손에 든(십자가가 더 어울릴 듯한) 사내가 지켜보고 있다. 이 그림은 외부에서 밀려드는 자본과 유행하는 미술사조들을 뒤로하고 라이프치히에서 본인만의 싸움을 해온 '네오 라우흐' 자신과 신라이프치히 화파를 상징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재미난 상상 혹은 조심스러운 추측은 관람객의 눈을 그림에서 뗄 수 없게 만든다.

따로 또 같이 ● 라이프치히는 독일의 대표적인 문화 도시이다. 바그너로 대표되는 음악의 성지인 동시에 라이프치히 화파와 신라이프치히 화파로 이어지는 회화의 중심지이다. 그리고 루터의 종교개혁과 독일 통일의 시발점이 되는 혁명의 도시이다. 네오 라우흐는 태어난 지 5주 만에 기차 사고로 부모를 잃었고, 일 년 뒤 베를린에는 장벽이 세워졌다. 사진으로만 기억되는 부모의 부재는 어린 소년에게 일찍부터 죽음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조부모의 손에서 자라난 소년은 부모님이 걸어왔던 길을 따라 라이프치히 미술학교에 들어갔으며, 그곳에서 아내 로사 로이를 만났다. 로사 로이는 대학에선 원예와 책디자인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그리고 장벽이 무너지고 그들의 아이가 태어났다. ● 2차세계대전 이후 예술의 도시 라이프치히는 이념이라는 틀 안에 갇혔다. 라이프치히 미술대학은 '네오 라우흐'에게 있어 다소 암울했던 현실의 도피처인 동시에 창작에 대한 열정을 독려한 곳이었다. 이 통제된 장소와 시간은 '네오 라우흐'의 회화를 가장 독일적인 회화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토대가 되었다. 사회-정치적으로는 체제에 봉사하는 프로파간다를 화가들에게 요구하던 시기였고, 학교에서는 전통적인 구상회화를 강조했던 기간이었다. 예술가에게 치명적으로 보이는 이 억압은 한편으로 세계적 추세였던 추상회화나 뉴미디어의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내는 기회가 되었다.

네오 라우흐_Orter_캔버스에 유채_50×40cm_2001
로사 로이_Mutmaßung_캔버스에 카세인_130×170cm_2013

동독과 서독이 통일된 지 30년이 지났다. 통일 독일은 오늘날 유럽의 리더 국가로 자리매김했고 라이프치히를 비롯한 동독지역 역시 경제적으로 큰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동독인으로서 느끼는 소외감과 우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통일 31주년 기념식에서 이루어진 메르켈 총리의 연설을 들으며, 동독 출신이면서 여자인, 주변인으로서의 태생적인 무게를 견뎌온 그녀의 눈물과 용기에 많은 세계인이 감동했을 것이다. 전시 제목 '경계에 핀 꽃'을 접하는 한국 사람 중에는 한반도의 분단을 상징하는 'DMZ'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통일 독일의 오늘은 한국의 미래를 가늠해 볼 좋은 지표인 동시에 넘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 두 작가는 독일 작센주에서 나고 자랐으며 지금도 라이프치히에 살고 있다. 이미 여러 의미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그들이지만 뉴욕을 비롯한 세계 주요 도시로 이주하거나 해외 스튜디오를 운영하지 않는다. 그들은 '직업인으로서의 화가' 라는 소명을 묵묵히 실천하며 오늘도 작업실로 향한다. 베를린에서 장벽이 무너지던 그 날에도 그림을 그렸던 것처럼. ■ 이장욱

Vol.20211130e | 경계에 핀 꽃 FLOWERS on the BORDER-네오 라우흐_로사 로이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