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환:召還

최재혁展 / CHOIJAEHYUG / 崔在赫 / painting   2021_1102 ▶ 2021_1127 / 일,월,공휴일 휴관

최재혁_Still life#91(문,학,문)_캔버스에 유채_112.1×193.9cm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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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인스타그램_@choi_jaehyug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화,수,금,토_11:00am~05:00pm 목_11:00am~08:00pm / 일,월,공휴일 휴관

온유갤러리 GALLERY ONYOU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흥안대로 378 서울안과빌딩 B1 Tel. +82.(0)31.422.3309 onyougallery.co.kr

우주에 존재하지 않았던 익숙함 ● 우리는 지극히 익숙함에 익숙해져 있다. 이것은 인간의 안일함을 탓하는 문장이 아니며,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무한히 새로움을 찾아 떠나는 인류는 결국 스스로가 새롭다고 굳게 믿던 것에 어느새 익숙해져, 그것을 소비하고, 재생산하고, 가끔은 버리기도 한다. 세상에 없었던 존재를 찾아내고 기뻐하는 그 순간부터 익숙함은 시작된다. 마치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현재는 이제 더 이상 현재가 아닌 것과 비슷한 이야기이다. 아름다움을 쫓는 사람들도 그렇다. 익숙함을 벗어나 지구상에 겪어본 적 없는 감동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들은 그들만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수많은 예술가 만큼이나 많은 그 이야기들 속에서, 작가 최재혁이 택한 방식은 그 어떤 이보다 친절하다. 골동품이라는 단어로 작가가 정리하는 정물은 박물관에서, 이태원 거리에서, 혹은 할머니 집에서 봤거나 봤던 물건이거나, 혹은 실제로 당신이 지금도 쓰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이미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정물에 해석을 가미하거나 뒤틀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세밀하게 그려냈기에 그의 방식은 친절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그가 그리는 복숭아는 누가 봐도 복숭아처럼 생겼고, 도자기는 명백히 도자기의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렇게 온 우주에 흩어져 있던 정물을 모으는 소환사이다. 그리고 무한한 시공간을 넘어 그의 화폭에 모여든 정물에게 말한다. "네가 거슬러온 시간의 이야기를 들려줘"

최재혁_Still life#92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1
최재혁_Still life#89_캔버스에 유채_65.1×159cm_2021
최재혁_Still life#83_캔버스에 유채_80.3×116.8cm_2021

사실 우리는 '사물에는 일상이 담겨있다'라든지, '아무리 보잘것없는 물건에도 추억이 있다' 라든지 하는 말들을 지금까지 너무 많이 들어왔다. 그렇지만 그게 사실이기도 하다. 내가 지금 당장 필요에 의해 새로운 그릇 하나를 샀다고 해보자. 그 그릇이 아무리 값비싸고 예쁘게 생겼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골동품이 될 수 없다. 당연한 소리이다, 새것이기 때문에. 결국 골동품이 되기 위해서는, 그 물건이 이 세상에서 차지하고 있었던 시공간에 해당하는 값이 필요한 것이다. 작가가 그려내는 골동품은 그렇기에 수다스럽고 따듯하다. 작가가 요구한 시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것이 그가 골동품에 보내는 시선에서 느껴지는 애정의 이유일 것이다

최재혁_Still life#66(문화)_캔버스에 유채_50×72.7cm_2020
최재혁_Still life#70,71,72_캔버스에 유채_90.9×218.1cm_2020
최재혁_Still life#67(문화)_캔버스에 유채_50.0×72.7cm_2020

작가는 그렇게 익숙함으로 대변될 수 있는 골동품을 '재배치'한다. 각자 다른 시공간에서 소환된 골동품은 서로 초면이다. 처음 만난 사람과 당신 사이에 흐르게 될 어색한 기류처럼, 익숙한 물건과 물건 사이에는 분명히 낯선 관계성이 존재하게 된다. 작가는 그러한 기류를 포착하여, 여기서 소환한 사람만의 새로움을 끌어낸다. 투시가 사라진 정물의 기본형을 그의 화폭에 하나하나 다시금 배치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그러므로 작가는, 각자의 우주에 존재하던 골동품의 익숙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새로 엮어 나가는 소환사이다. ● 그러나 작가는 여기서 다시 한번 익숙함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새로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무대는 기명절지도와 책가도를 닮아 있다. 무대는 한 칸 한 칸 자리가 정해져 있는 수납장의 형태일 때도 있다. 그 형태가 어떠하든지, 우리는 작가가 소환해온 물건들이 모여 있는 화폭을 바라보며 이전의 형식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당신이 보게 될 작가의 작품은, 전혀 다른 우주를 여행해온 골동품들이 모여있는 전에 없던 소환의 결과물이다. 과거의 정물화를 닮았지만, 그 안에서 신라시대의 석굴암이나 문자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최재혁_Still life#85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21
최재혁_Still life#80_캔버스에 유채_60.6×90.9cm_2020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골동품은 익숙함으로 대변된다. 과일, 도자기, 자수정과 같은 정물은 이미 당신의 세계에 존재하고 있었다. 작가는 그렇게 서로 접점이 없던 물건들을 온 우주를 대상으로 불러들인다. 서로 간의 접점이 없었기에 다시금 화폭에 모여든 골동품의 관계는 새롭다. 그리고 이렇게 새롭게 모인 골동품은, 다시금 익숙한 형태의 무대 에서 활약하게 된다. 익숙함, 새로움, 그리고 다시 익숙함의 세 단계를 거치게 되면 우리는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오게 된다. 하루종일 360도를 회전해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는 시계바늘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제의 자정과 오늘의 자정이 다르듯, 작가의 정물도 같은 자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시초와 같은 상태는 아닐 터이다. 작가의 작품은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것은 소환사에 의해 새로운 공간으로 불려 나온, 이전과 같으면서도 다른 골동품의 무대이다. ● 지극히 익숙함에 익숙해진 이 세상에서, 최재혁의 작품은 익숙하기에 새롭다. '가장 평범 한 것이 특별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말했던 작가의 다짐은 어쩌면 이미 이루어졌을 수 도 있겠다. 누구보다 조용하고 또 친절하게, 왜곡하는 것들을 지워내고 그 자체로 정물을 모은 소환자의 마음이 전달되었기에, 이 익숙함은 익숙하지만, 지금까지 우주에 존재하지 않았던 익숙함이다. ■ 윤채원

Vol.20211104d | 최재혁展 / CHOIJAEHYUG / 崔在赫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