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진 자리 Sigmoid Curve

권인경展 / KWONINKYUNG / 權仁卿 / painting   2021_1111 ▶ 2021_1128 / 월,공휴일 휴관

권인경_넘어진 자리 3_한지에 수묵, 아크릴채색_61×83cm_202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51204b | 권인경展으로 갑니다.

권인경 홈페이지_www.inkyungkwon.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화,수요일_03:00pm~08:00pm(06:00pm~08:00pm는 예약) 목~토요일_01:00pm~06:00pm / 일요일_01:00pm~05:00pm / 월,공휴일 휴관

도로시살롱 圖路時 dorossy salon 서울 종로구 삼청로 75-1(팔판동 61-1번지) 3층 Tel. +82.(0)2.720.7230 blog.naver.com/dorossy_art @dorossysalon

권인경 KWON In Kyung은 꾸준히 도시를 그린다. 2005년 첫 개인전에서 작업을 선보인 후 2021년 오늘까지, 그의 작업에서 도시는 빠질 수 없는 화두이자 소재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고, 지금도 살고 있다. 현대도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고층빌딩과 고층아파트가 즐비한 도심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도시를 그리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그의 도시가 특별한 것은, 현대적이고 서구적인 이미지가 강한 고층건물로 가득한 도시 풍경을 전통적인 동양화 기법으로 동양화 재료(먹)와 서양화 재료(아크릴물감)를 혼합하여 그려내기 떄문이다. 동양화와 서양화를 구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지금이지만, 장지에 먹과 아크릴물감, 캔버스에 먹과 아크릴물감으로 동양화 붓을 사용해서 그려낸 도시 풍경을 보는 것은 여전히 조금은 낯설고도 매력적이다.

권인경_넘어진 자리 1_한지에 고서콜라주, 수묵, 아크릴채색_136×176cm_2021

여기에 한 가지 더, 권인경은 동양화 재료와 기법으로 한 작품에서 만나기 흔치 않은 콜라주(collage) 기법을 회화 작품에 사용한다. 콜라주는 20세기 초 피카소와 브라크 등의 입체파 화가들이 인쇄된 종이나 신문 등을 오리고 찢어 붙이는 파피에 콜레(papier collé) 기법을 사용하면서 시작된 현대미술 기법 중의 하나이다. 권인경은 자신의 도시에 고서를 찢어 붙여 콜라주하면서 그림에 시간과 이야기를 더해준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가 왜 작업에 콜라주 기법을 사용하냐는 질문에, 그는 단순히 도시의 외관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림에 누군가의 일상을, 누군가의 삶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보낸 시간을 더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아무 종이가 아닌 오래된 고서(古書)를, 고서 중에서도 잡설(雜說)을 주로 찾아 구매하여 이를 작품에 더한다고 했다.

권인경_넘어진 자리 2_한지에 고서 콜라주, 수묵, 아크릴채색_136×176cm_2021

그래서 그런 것일까. 그의 도시 풍경은 사람의 향기가 난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풍경에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굳이 그리지 않았을 뿐이지 도시 속 건물 안에는 당연히 사람들이 점유하고 있다. 권인경의 도시 풍경은 매우 도회적이고 세련되었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투박하고, 다정하다. 어쩌면 그것은 도시에서 나고 자란 그리고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작가의 도시에 대한 애정과 그가 그 안에서 경험한 것들에 대한 기억이, 그가 귀기울여 듣고 담아내려 하는 타인의 이야기와 함께 그의 도시 풍경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권인경_변곡점 1_한지에 고서콜라주, 수묵, 아크릴채색_142×72cm_2021

권인경의 도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그가 꾸준히 발표한 개인전의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도시_일상의 삶(2005)』, 『도시_변화 그리고 반영(2006)』, 『도시_시간의 공존(2007)』, 『도시_순간의 지속(2009)』, 『도시_조망과 은거의 풍경(2011)』. 그는 '도시'라는 큰 제목 아래 부제로 그가 도시를 대하는 태도와 바라보는 시선을 설명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도시를, 고층아파트와 고층빌딩으로 빽빽한 서울의 도심 풍경을 다양한 구도와 기법으로 그려내며 발전시켰다. 오로지 빌딩들로만 가득찼던 그의 도시는 어느덧 물이 흐르고, 간간이 나무와 숲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눈 앞에 서있는 건물들의 수직성이 강조되는 풍경들을 그리던 작가는 어느덧 건물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며 조망하며 보기도 하고 조금 비스듬히 누운 시선으로 보고 그려내기도 했다. 그리고 『Heart-Land (2013)』에 이르면 도시는 화면의 중앙에, 물과 산으로 둘러싸인, 마치 오래된 고지도 같은 모습으로 구현된다. 이제 그의 도시 풍경은 실재의 풍경이라기 보다는 상상 속의 '유토피아', 자신의 중심부, 안심할 수 있는 어떤 요새의 모습이 되었다. 전시의 주제도 더 이상 '도시'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관심은 이제 도시의 외관에서 도시 안에 있는 공간들, 도시의 내부, 사람이 점유하는 공간 – 집과 방 안으로 들어왔다. 심장부 – Heart-Land로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그 안에 쌓인 사람의 흔적, 우리가 그 안에서 경험한 것들의 기억으로 작가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옮겨간다. 여전히 그가 그리는 것은 도시와 도시를 구성하는 공간(집과 방)이지만, 그가 주목하는 것은 그 안에 쌓여 있는 우리의 기억들이다. 그렇게 『상상된 기억들(2015)』이 나오고, 『마침내 드러난 기억(2018)』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나와 타인의 공간이 모여 만들어진 도시, 우리는 그 안에 모여 혹은 떨어져 때로는 긴밀하게 유기적으로, 때로는 필사적으로 개인적으로 공간을 점유하고 살아간다. 같은 공간과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서로에게 그렇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또 영향을 받지 않으려 노력하며 공존하고 공생하고 있었고, 권인경은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도시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자신만의 태도로 보고 경험하고 기억하며 그려내고 있었다.

권인경_변곡점 2_한지에 수묵, 아크릴채색_141.1×73cm_2021

그리고 오늘, 그는 『넘어진 자리 Sigmoid Curve(2021)』라는 조금 뜻밖의 제목으로 새 작업을 선보인다. 참으로 무던하고 성실하게 차근차근 작가의 길을 가던 그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염두에 둔 것은 '변곡점'이었다고 했다. 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모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와 박사 과정까지 마친 후 작업과 강의를 병행하며 꾸준하게 각종 공모전과 지원사업에 도전하여 선정되고, 적어도 1~2년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개인전을 치러내며 동시에 수많은 기획전과 그룹전에도 훌륭히 참여해냈던 열정과 성실의 아이콘인 그가, 잘 가고 있는 줄 알았던 그가 갑자기 넘어진 자리라니. 쉼없이 잘 달려가고 있는 줄 알았던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권인경_새로운 계절 1_한지에 고서콜라주, 수묵, 아크릴채색_61×91cm_2021

숨이 찰만도 했다. 잘 해내고 있었지만, 조금씩 잘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그가 원하는 속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언제나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달려간 곳이 생각했던 곳이 아닐 때가 있었다. 최선을 다해 달려간 곳이 최선이 아니었음을 알았을 때, 우리는 넘어지고 만다. 혹은 생각지 못한, 예샹하지 못했던 타격을 입고 생각지 못한 곳에서 넘어지기도 한다. 예상을 했어도, 예상이 빗나가 타격을 입고 넘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 넘어진 자리에서 우리가 하는 그 다음의 행동이다. 넘어진 것이 대수인가. 툴툴 털고 일어나면 된다. 넘어진 자리에서 뒤도 한 번 돌아보고, 앞도 다시 한 번 쳐다보고 다시 나아가면 된다. 가려고 했던 곳이 아니었다고 속상해 할 것도 없다. 그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다시 힘차게 나아가면 된다. 뒤돌아 보는 시간이 길어도 되고, 또 돌아보지 않으면 어떠한가. 어쨌든 우리는 가야 할 것인데. 주어진 시간과 공간 안에서 취사선택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서, 한 번쯤, 두 번쯤, 혹은 여러번 넘어진들, 다시 일어나면 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하며, 작가는 S자로 그려지는 식물의 생장곡선 Sigmoid Curve를 예로 든다.

권인경_변화의 순간들 1_한지에 수묵, 아크릴채색_35×58cm_2021

권인경에게 2020년은 새로운 출발점이 된 해였다. 학교를 졸업한 후 처음으로 소속기관이 생겼다. 그 곳에서 작업도 하고, 학생들도 가르치며 이제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안정적인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었지만, 전에는 없었던 의무와 책임도 따라왔다. 새로운 일과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흥미로우면서 동시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당연히, 매우 자연스럽게 작가의 작업에 영향을 미친다. 권인경의 작업에 새로운 내용과 형식이 나타났다. 사실, 그가 새로운 형식을 찾아 다양한 실험을 한 것은 이미 여러 해 전부터이기는 했다. 없는 시간을 쪼개 컴퓨터그래픽을 배워 서툴지만 영상작업도 선보이고, 설치작업에도 도전했다(2018). 도시의 외관을 그리다 조금씩 도시 안의 집과 방으로 들어가 실내도 함께 그리기 시작했던 작가는 이제 고개를 돌려 도시를 둘러 싸고 있는 산과 숲도 그리고, 도심의 가로수와 집 안의 화초에도 눈길을 주었다. 집과 건물만 그리던 그가, 이제 나무와 풀, 강과 호수만 있는 산수를 그리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도시가 그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은 아니다. 앞만 보고 묵묵히 나아가던 그는 이제 넘어진 자리에서 한 숨 돌리고, 뒤도 돌아보고 또 앞도 한 번 더 쳐다볼 줄 알게 되었다. 다른 이들의 시간을 자신의 그림에 더하여 담고 싶다는 생각을 붙들고 있지도 않는다. 어떤 작업에는 고서 콜라주가 있고, 또 어떤 작업에는 그냥 그림만 그렸다. 그렇게 그는 신나게,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고 실험한다. 무엇보다도 작가는 그 어느때 보다도 그리는 즐거움에 푹 빠져있다고 했다. 자신이 선택했지만 새롭게 주어진 위치가, 그림이 아닌 것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그에게 그림에 대한 새로운 자극과 애정을 북돋아 주는 계기가 되었다. 변화를 주어도 될까, 다른 길로 가보아도 될까, 그러다 넘어져도 괜찮을까 조심스러웠던 그에게, 이 새로운 자리는 괜찮다, 넘어져도 된다, 넘어진 자리에서 잠시 숨 돌리고 툴툴 털고 일어나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그가 아주 잘 넘어졌다가 힘차게 일어서고 있다고,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잘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의 『넘어진 자리 Sigmoid Curve』를 통해 확인하고, 확신하게 된다.

권인경_피어난 틈 1,2,3,5_종이에 수묵_24×15.5cm×4_2021

얼핏 보면 많이 변한 것 같지만 여전히 그의 작업만이 가지고 있는 기운과 결이 살아 있는 넘어진 자리 Practicing Patience와 변곡점 Sigmoid Curve, 의도치 않은 Unintentional, 피어난 틈 Blooming Gab, 새로운 계절 New Season, 찬란한 낙하 Splendid Fall가 우리의 눈과 마음을 풍요롭게하고 안정되게 해준다. 권인경의 『넘어진 자리 Sigmoid Curve』는 그렇게 단단하고 힘차게 작가의 새로운 찬란한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 임은신

Vol.20211112j | 권인경展 / KWONINKYUNG / 權仁卿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