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ow Truth

박영철展 / PARKYOUNGCHUL / 朴永哲 / sculpture   2021_1120 ▶ 2021_1210

박영철_Runner_PLA에 채색_170×47×38cm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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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 인스타그램_www.instagram.com/oo7272oo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Kb국민은행_광진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7:00pm

나루아트센터 NARU ART CENTER 서울 광진구 능동로 76(자양동 227-344번지) Tel. +82.(0)2.2049.4700 www.naruart.or.kr

온라인 전시 hartns.com/poster/nauart1112

자기 아닌 것들로 채워진 존재 ● 다비드상을 어떻게 만들었냐는 질문에 미켈란젤로는 '다비드가 아닌 부분을 깎아내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조각은 물질에서 형상에 '속하지 않는' 부분을 덜어냄으로써 형상을 만드는 것이다. 박영철의 작업은 이와 반대로 진행된다. 작가는 물질에서 형상에 '속하는' 부분을 덜어냄으로써 형상을 만든다. 창호지 문에 뚫린 손가락 구멍처럼, 덜어진 부분은 물질 뒤편으로 시선을 이끈다. 그의 작품에서 형상은 그것이 놓인 공간의 풍경으로 채워진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가 오로지 다비드 자신으로 채워진 존재라면, 박영철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자기 자신이 아닌 것들'로 채워진 존재인 셈이다. 그의 작품은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형상 내부에 다른 풍경을 담게 되므로, '공간' 혹은 '배경'은 형상의 의미를 규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박영철_Runner_반측면
박영철_코로나 시대의 노동자_PLA에 채색_173×63×52cm_2021
박영철_코로나 시대의 노동자_반측면

작가노트에서 박영철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 내면의 진실" 에 주목한다고 썼다. 내면을 보고 싶은 충동은 인물의 피부 표면을 뚫고 들어가는 '구멍'으로 구현된 듯하다. 그리고 그 '구멍'을 통해 우리가 결국 보게 되는 것은 그것이 놓인 '공간'과 '배경'이다. 말하자면, 피부 아래 들어 있는 것은 순수한 자기 자신이 아니라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형제, 어떤 학교의 선생님, 어떤 단체의 임원으로서, 즉 '자기 자신이 아닌 것들'로 규정되는 정체성인 것이다.

박영철_Rusty stone-end parts_PLA에 채색_40×37×20cm_2021
박영철_Rusty stone-middle parts_PLA에 채색_98×74×25cm_2021
박영철_Rusty stone-end, middle parts_설치
박영철_Flat orange_혼합재료_162×50×53cm_2021

외부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자기를 찾으려는 사람에게 이런 상황은 실망스러울 수 있다. 몇몇 작품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어떤 작품에서 묘사된 인물은 해체되는 듯 위태롭고, 어떤 인물은 무언가에 갉아 먹혀 인간성을 잃은 듯 보인다. 그러나 또 다른 작품들에서 '구멍'은 형상을 갉아먹는 부정적인 요소가 아니라 형상을 구성하는 뼈대로 기능한다. 크고 작은 구멍들의 다양한 형태와 질감은 외부의 형태와 어우러져 하나의 조형을 만든다. '형상에 뚫린 구멍'으로 보였던 둥근 공간들은 어느 순간 '형상 그 자체'가 된다.

박영철_Rusty stone(Comet)_PLA에 채색_86×85×92cm_2021
박영철_Rusty stone(comet)_부분
박영철_Rusty time_PLA에 채색_174×66×37cm_2021
박영철_Re-redrfine_강화석고, 녹화마대_65×75×65cm_2021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만드는 것이 '나 아닌 것들'이라면, 나는 허위적인 존재인가? '자기 자신이 아닌 것들'로 채워진 작품들은 이러한 질문을 사색하는 예술적 방식을 보여준다.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가는 모습"을 포착하고 싶다는 작가의 말처럼, 무엇으로 만들어졌든 거기서 우리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 송수영

Vol.20211121b | 박영철展 / PARKYOUNGCHUL / 朴永哲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