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 Great Comfort

서정배_손윤원_황민규展   2021_1124 ▶ 2021_1226 / 월,공휴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5:00pm / 월,공휴일 휴관

아이비라운지 갤러리 Ivy Lounge Gallery 경기도 화성시 동탄광역환승로 73 반도유보라 아이비파크 8.0 207동 2층 E262호 Tel. +82.(0)31.377.9825 www.bandofoundation.org

그림자의 낭만 ●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냥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기적인 가치관에서 비롯된 반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이 기쁨을 '꿈은 호상(好喪)'이라는 나의 입버릇과 같은 맥락으로만 이해했으니 말이다. 이것은 환자 본인이 사전동의를 하지 않은 경우, 가족의 추정과 합의에 따라 존엄사를 결정할 수 있는 제도다. 그런데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그리고 결정의 순간에 의식이 있는 환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법의 틈 사이에 한 사람만 아는 '최후'의 슬픔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알았다. ● 청약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 혼인 관계증명서에 도장을 찍고, 노동시장과 가족정책에 따라 출산의 여부를 결정하는 염세 따위는 이제 특별한 것도 아니다. 웃으며 떠들 수 있는 세속적인 화제에 가깝다. 이 전시는 그보다 '말하지 않는 것'을 비추려 한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고립된 장애 가족이나 사지로 몰린 환자 가족의 일상 / 가족이 아플 때 보험 급여부터 떠올린 순간 / 요양병원 등의 시설에 부탁한 가족의 인권이 파괴되는 것이나 장례마저 자본에 의해 차별받는 것을 바라만 봐야 했던 날 / 고독사나 무연고 사망이라는 단어로 종결되는 삶. 이러한 이야기들을 밥을 먹으며 나누지는 않는다. 가족이라는 단어가 송곳처럼 다가올 때 대부분은 불편함을 마주하곤 한다. ● 비교적 유쾌한 순간의 기억으로부터도 저릿함을 느낄 때가 있다. 저릿한 것은 과거보다 지금이 뒤처진다는 것을 굳이 알아차리게 하는 감각이다. 아홉 살 때 부모와 함께 묵었던 숙소를 출장길에 우연히 혼자 다시 찾은 경험이 있다. 앨범에서 봤던 공원이 숙소 창밖으로 보이던 순간 마주한 것은 그때의 '우리'였다. 삽시간에 다가온 과거의 풍요로움에 찔려서 마음이 저렸고, 우리라는 단어에 연민을 느껴 당혹스러웠다. 그런데 키키는 과거 자신이 주기적으로 머물렀던 '오딧세이'호텔의 606호에 6년 만에 다시 머물며, 6년 전의 자신이 "힘든 시간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1)고 하니, 오히려 부러운 일이다. 지금이 조금 더 행복해야 과거의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키키 또한 그것이 철저히 고독했던 시간을 낯설게 볼 때에야 털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정배_멜랑콜리일기_캔버스에 유채_33.3×53cm_2020
서정배_자신만을 위한 진실_캔버스에 유채_25×25cm_2021
서정배_Truth_네온_20×30cm_2021

고독했던 과거를 직면하고 관계의 틈을 파고들 것인지, 외로운 자신을 비로소 끌어안아 품을 것인지는 그 자신밖에 모른다(「Truth」, 「자신만을 위한 진실」). 그렇지만 「멜랑콜리 일기」를 보여주는 서정배로부터 지닌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눈빛보다는 자신의 존재를 딛고, 새롭게 생산하는 관계에 자신을 맡겨보려는 용기의 눈빛을 읽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날, 최소단위의 사회에서도 혼자가 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는 작가의 용기를 엿봤다.

손윤원_신혼집 발코니_알루미늄, 경첩, 장판_400×300×0.5cm_2020~1

반짝이는 눈은 손윤원과의 만남에서도 이어졌다. 지난겨울, 동료들과의 기획전을 마지막으로 잠시 휴식기를 가졌던 그는 주저도 없이 새로운 생명체를 품고 돌아왔다. 사람의 귀로 들을 수 없는 음파를 통해 태아라는 존재와 교감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작가의 새 보금자리 바닥 장판을 재현한 「신혼집 발코니」 를 매질 삼아, 우리는 그가 난생처음 느낀 감각에 몰입해볼 수 있다. 작고 움찔거리는 존재의 파동이 작가의 일상을 흔들었고, 그 순간들의 에너지를 담은 사운드 「몸 속의 몸」이 전시 속 장판에 부딪혀 보는 이를 반응하게 한다. 학습되지 않은 사람의 말을 태아가 직감으로 느껴 아는 것처럼, 사람의 말로 번역을 하기도 전에 산모가 감각으로 먼저 느낀 태동을 전시장의 관객이 흡수한다.

후안나리(손윤원×Andrés G. Vidal)_몸 밖의 몸_ 헤드폰, 미디어 플레이어, 반복재생_가변크기_2021

태아에서 사람이 된 신생아를 돌보는 작가의 현재 일상은 약속과 규칙을 초월한 음성으로 한 번 더 공유된다. 손윤원이 최근에 출생으로 맺은 인연을 말하는 동안 그녀의 친구 안디(Andrés G. Vidal)는 실연의 경험을 소리로 전했다. 두 사람이 온라인을 통해 각자의 소리 언어를 주고받으며 업데이트한 서로의 소식은 또 다른 사운드 작업 「몸 밖의 몸」으로 출력되어 공개된다. 인연의 맺고 끊음이 오간 소리를 이제 또다시 관객이 몸으로 받아들일 차례다. ● 단어의 의미를 녹여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전복(entropy)시키는 현상은 황민규의 작업에서도 순환한다. 두 영상에서는 맥락 없는 명령어가 스크립트의 형태로 이리저리 뒤섞여 현실과 꿈, 고난과 기적, 의지와 망상의 모호한 경계를 정처 없이 떠돈다. 두 작업 안의 이러한 이분적 서사가 평행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고리(loop) 형태를 취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면 메시지들의 화자가 제거되고, 텍스트의 사이에는 오늘날 저마다의 터전에 발 딛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

황민규_blue shed_디지털 프린트_90×60cm_2021
황민규_brighter day_디지털 프린트_50×39cm_2021
황민규_터전의끝_단채널 영상_00:35:00_2020

가장 기본적인 것이 극단적으로 무너지고 난 이후를 말하는 황민규의 영상에서는 허무의 언어들이 무한히 팽창하며 '전멸'을 말하는가 싶다가도, "허구 속으로 도망가(「전언」)"거나 "현실을 피해 오랜 시간을 도망친(「터전의끝」)" 등의 언어에서는 환상에 기대려는 극복 의지가 보인다. 재건축 아파트의 잔재(「blue shed」)가 새로운 가족의 목덜미에 머물다 간 반딧불이 형태의 무지개 빛(「brighter day」)과 대면하도록 둔 것은 '끝'에 내몰린 존재에게 새로운 의지를 비추려는 열망을 밝히려는 것이다. ● 안전기지(secure base)가 충분히 형성된 아이가 망망대해 속 군함에 있다면, 안전기지가 없는 아이는 조그만 돛단배를 타고 있는 격이다.2) 불안정한 기지에서 형성한 애착관계는 성인이 되어 갖가지 심리적, 행동적 이상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그 조그만 돛마저 역풍에서 저항을 가중하는 무거운 존재로 작용한다. 이 이야기는 주어진 돛을 슬기롭게 접었다 펴며 바람 따라 순항할 것인지, 역풍과 태풍에 대항하지 못하고 돛과 함께 난파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지닌 이들에게 닿길 바라는 것일지 모른다. 죽음의 이야기로 열었지만 살아가는 것에 대한 말로 맺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사그라지는 것에 생성의 서사를 부여하는 세 작가의 이야기를 빌어 대신 전한다. 돛을 족쇄로, 또 날개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겠지만, 그러한 의지(To be) 또한 용기3)라는 목소리에 힘을 보태고 싶다. ■ 김유빈

* 각주 1) '키키(Kiki)'는 서정배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상인물이다. 서정배는 키키라는 제 3의 인물이 쓰는 일기와 키키가 등장하는 회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마주하려 한다. 서정배, 『검은담즙』, 2018~2021 참고. 2) '안전기지'란 애착 이론에 쓰이는 개념으로 생애 초기 아기가 애착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이용하는 대상이다. Bretherton. (1992). The Origins of Attachment Theory: John Bowlby and Mary Ainsworth. Developmental Psychology 28(5), p.759., 은유적 표현은 다음 문헌을 참고했다. 조현. (2018).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휴. 3) 에리히 프롬. (2018). 자기를 위한 인간. 강주헌 옮김. 나무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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