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RGLASS

권현빈展 / KWONHYUNBHIN / 權玄嬪 / sculpture   2021_1209 ▶ 2022_0122 / 일,월요일 휴관

권현빈_HOURGLASS展_갤러리 기체_202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갤러리 기체 GALLERY KICHE 서울 종로구 북촌로5가길 20 Tel. +82.(0)2.533.3414 www.gallerykiche.com

그곳에 늘 있으나 있지 않은 ● 작가 권현빈이 작업하는 공간 안에서는 시간이 멈춰있다.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의 흐름 안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조각적 행위는 역설적으로 시간을 정주하게 만든다. 작가를 만나고 작업의 진행과정을 보면서 시간의 속도와 흐름에 대한 생각을 유독 많이 하게 되었다. 조각가인 부모님과 함께 쓰는 파주의 작업실에서는 빛과 계절의 흐름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공간 여기 저기에는 여러 종류 돌의 덩어리와 파편들이 산재해 있어 마치 익숙한 일상의 정물처럼 놓여 있다. 어쩌면 작가에게 돌은 통 창 밖으로 보이는 논과 산의 모습처럼 '그곳에 늘 있으나 있지 않은' 상태의 풍경으로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재료(여기서는 돌)와의 관계는 처음부터 그렇게 자연스럽게 형성 되었는지 모른다. 작가가 선택한 지나치게 가볍거나(스티로폼) 그 반대로 돌과 같이 무거운 재료들은 그가 관심을 두고 드러내고자 했던 물이나 얼음, 구름, 바람의 흔적이나 하늘의 분위기를 담는데 언듯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자연 현상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한편으로는 그 선택이 필연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흐르는 시간을 멈출 수 없듯이 하늘에 있는 구름의 모양과 움직임을 고정시키거나, 물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 중의 수분이 얼음이 되기도 하고, 얼음 결정의 덩어리로 구름이 만들어지듯이, 형태나 상태의 맺음의 순간이 만들어진다.

권현빈_HOURGLASS展_갤러리 기체_2021
권현빈_Humming facades_marble, ink_42×30.5×2cm_2021 권현빈_Humming facades_marble, ink_44.5×31.5×2cm_2021

'아워글래스(모래시계)' 안의 모래로 가시화된 시간처럼 땅에서부터 떨어져 나온 돌과 하늘에서 떨어져 나온 구름은 대리석 조각 「구름 Cumulus humilis-fractus」(2021)연작으로, 얼음이 든 물잔 밖으로 맺히는 물방울이 마치 안에서 표면으로 이동한 것처럼 보이는 현상은 대리석 돌판 위 「얼음-물-컵 그리고 공기」(2021) 와 「Humming Facades」(2021) 연작이 되었다. 전시 『아워글래스 HOURGLASS』(2021)에서 선보인 이번 연작들은 흰 대리석에 수성 안료를 사용해 마치 돌을 파고 쪼는 것처럼 푸른 안료가 돌 안에 스며들도록 만든 2019년작 「물부조 Water Relief」로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서는 구름의 모티프 보다는 흰 대리석이라는 재료에 대한 탐색과 그것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정으로 돌을 물리적으로 쪼개는 것이 아닌 안료가 스며들도록 만들어 부드럽게 액화된 쪼개짐을 상상하는 것에서 사실 물체의 성질을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으려는 작가의 태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또한 추측할 수 조차 없는 오랜 자연의 시간을 품고 있는 돌의 역사와 무게 앞에서 속절없을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무모하지만 용기 있는 자신만의 선언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쪼개짐의 결과를 예측할 없다는 것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작업의 최종 모습을 시작부터 어느정도 예측하고 들어갈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나 3D프린터와 같은 도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법도 한데, 작업의 시작부터 미지의 영역에 대한 불안을 향해 활짝 열어 두는 것이 지금 시대에서는 사뭇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권현빈_HOURGLASS展_갤러리 기체_2021
권현빈_Ice-water-cup and air(얼음-물-컵 그리고 공기)_ marble, ink_68×50×3cm_2021

그동안 권현빈이 해온 몇 가지 돌에 대한 선택과 탁본 형식을 띤 드로잉들은 「구름 Cumulus humilis-fractus」, 「얼음-물-컵 그리고 공기」(2021), 「Humming Facades」(2021) 연작들로 오기까지 여정의 일부로 보인다. 작가는 2019년의 일정 시간을 흰 대리석이 아닌 검은 빛을 띈 오석이나 사암의 표면에 구멍이나 선과 같은 흔적을 파거나 쪼아 일련의 작업을 만들었다. 원석의 고유한 색과 성질, 그리고 형태는 공간의 모양에 따라 크게 드로잉 하듯 놓여졌고 그 자체로서 강렬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표면에 새겨진 작가의 궤적은 물성 자체를 관통하며 흔들어 놓으려 했던 「물부조 Water Relief」(2019)에서의 시도와는 달리 물과 기름과 같이 좀처럼 섞이지 않고 원석의 형태와 색에 더 많이 기대고 있었다. 오석이나 사암의 경우에는 돌 자체가 가진 성격과 색이 강해 비집고 들어갈 틈을 내어주지 않았을 것이고, 좀처럼 그들과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돌의 성격에 따라 그에 맞는 대화의 방식을 찾아나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반면 오석이나 사암과는 달리 흰 대리석은 중성적이고 외부의 이질적인 요소들도 상대적으로 잘 받아들여 작가의 개입이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고, 이는 이번 전시 『아워글래스 HOURGLASS』(2021)에서 「구름 Cumulus humilis-fractus」(2021), 「얼음-물-컵 그리고 공기」(2021), 그리고 「Humming Facades」(2021) 연작들로 드러난다. ● 「구름 Cumulus humilis-fractus」 연작의 대리석 조각들은 전시장 바닥에 흩어져 큰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조각 구름의 형태를 이룬다. 지면을 딛고 더 이상은 사라지지 않는 구름의 덩어리는 땅과 하늘을 함께 품는다. 바닥에 놓인 조각 구름들 외에 평평한 흰 대리석 판재를 이용한 「얼음-물-컵 그리고 공기」(2021)와 「Humming Facades」(2021) 연작은 평면의 형식을 띠는 것처럼 보이지만 돌 저편의 공간을 아우른다.

권현빈_HOURGLASS展_갤러리 기체_2021

작가는 컵 안에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과정에서 형태의 변화가 하늘에서 구름이 퍼져나가는 모양과 닮아 있다고 생각하며 대리석 돌판 위에 점을 파고 선을 긋고 색을 입히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얼음-물-컵 그리고 공기」(2021) 연작) 그렇게 새겨진 이미지는 특정 대상의 형태를 닮아 있는 것이 아닌 고정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사유의 흔적인 동시에 돌의 물성을 조금 더 자신에게 가깝게 끌어당기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편평한 대리석 판재이지만 분명 여섯 면이 있고 앞과 뒤, 좌우 그리고 위 아래의 구분이 있는 입체이다. 이 육면체의 옆면은 각은 사라졌고 위 아래는 살짝 패어 무언가 담길 수 있을 것 같은 최소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얇은 돌판은 입체이기 위한 최소한을 유지하며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오간다. 이는 「Humming Façade」(2021) 연작에서도 이어지는데, 여기서는 조금씩 구름, 물, 얼음과 같은 은유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돌의 표면은 점점 더 얇게 갈리고 점과 선, 그리고 색은 조각 행위 자체의 흔적으로 자국을 남기기 시작한다. 돌 안에서 작가의 영역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하고 작가는 자신의 흔적을 더 각인시키기 위해 모서리가 부스러지기 직전까지 부지런히 갈고 또 갈고, 푸른 잉크를 입히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권현빈_Ice-water-cup and air(얼음-물-컵 그리고 공기)_ marble, ink_170×70×3cm_2021
권현빈_Humming facades_marble, ink_29.5×20.5×2cm_2021

사유의 시간을 쪼개서 사용하는 나의 흐름과 작가의 돌을 쪼개는 행위는 중첩되어 끊어졌다 이어짐이 반복되었다. 글은 쓰는 대상에 담긴 만든 이의 태도를 의도치 않게 닮아가게 된다. 오랜 기다림의 시간 뒤에 섬광처럼 들어왔다 나가는 추상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알아차림의 순간들은 작가가 만들어 놓은 모호한 대기감에 손에 잡힐 듯 말듯 아른거렸다. 돌을 움직이고, 그라인더로 표면을 갈고, 두드리거나 쪼개어 표면에 흔적을 만드는 동안 외부의 시간은 흐르지만 작가의 시간은 머물러 있다. 그러다 몸을 잠시 멈추고 바라볼 때 비로소 시간의 흐름은 하나로 동기화 된다.

권현빈_HOURGLASS展_갤러리 기체_2021

자연을 품고 있는 작품은 작가의 손이 떠난 이후에도 계속 흐른다. 그 무한한 시간의 연속성에 속수무책으로 놓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물질로서 돌을 대면하는 행위는 새삼스럽지만 무모할 수 밖에 없다. 도달할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해 가면서 만들어지는 무수한 시도와 상상은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한다. ● 권현빈의 작품을 시간을 두고 바라볼수록 작가와 돌 사이에서 끊임없이 오가는 호흡과 시선의 주고 받음으로 이루어지는 미세한 밀고 당김의 순간을 되도록 천천히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만드는 혹은 바라보는 대상으로의 작품이 같이 나이를 먹으며 공명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결국 작가도 나도 그리고 작품도 생성과 소멸을 양 끝에 두고 그 사이 어디선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 맹지영

Vol.20211212f | 권현빈展 / KWONHYUNBHIN / 權玄嬪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