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인간-나를 찌른 칼 피노키오 코나투스 : 초월하지 않고 벗어나지 않고 변화하는 자들

케이엘 앤 줄리展 / KL & Julie / mixed media   2021_1217 ▶ 2022_0220

케이엘 앤 줄리_완전한 인간-지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수채색연필_60×53cm_2015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지미 스테이 & 카페 JIMI STAY & CAFE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하도15길 153-3(하도리 55번지) Tel. +82.(0)64.782.1533 www.jimistay.com

우리는 늘 완전한 인간을 상정합니다. 사회구조에 세뇌된 각각의 완전한 인간상에 욕망을 투사시킵니다. 완전한 인간에 대한 환상에 물들어 있습니다. 완전한 상태에서 타락하는 과정이란 망상에 빠져 헤어나올 줄을 모릅니다. 혹은 완전한 인간에 다다를 수 없는 비참한 현실에 비교당하며 나락에 빠져듭니다. 사회구조는 이를 가속화시키는 체계를 완성시키려 하기에 나약하기만 한 나-우리는 체제가 요구하는 늪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결과를 맞이하는 게 평범한 결말. 완전한 인간에서 결핍과 비정상의 존재로, 다시 완전한 인간으로의 망상에 결핍과 비정상을 제거하려 합니다.

케이엘 앤 줄리_섬-미노스_점토, 유약, 크롬 도장_30×14×19cm_2001(2021 리터치)
케이엘 앤 줄리_완전한 인간-파시파에Pasiphae_레진에 채색_30×27×23cm_2021

에덴에서부터 이데아, 완전한 곳에서의 완벽한 인간은 완전무결한 시뮬라크르입니다. 우리는 한없이 나약하기에 신이란-The one-이란 허물어뜨릴 수 없는 상상을 실체화 시켰습니다. 시뮬라시옹의 절대적 현상이며 환상의 실재. 복제되었지만 복제할 수 없게 하는 이기적이기만 한 원본의 탐욕. 모순되게도 주체를 억압하는 이런 체제의 요인 중 하나는 개별자들의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의 결합입니다. 세뇌되고 억압되고... 되풀이해... 욕망도 세뇌되는, 거세당하다 심지어 스스로를 거세시키는 현재의 사회체계 안에서... 자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집단과 개인의 욕망 사이 어딘가 있을 주체?의 자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우리의 다음세대에 올 완전한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요.

케이엘 앤 줄리_피에타-폭력의 역사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 오일스틱, 수채색연필_130×96.5cm_2020
케이엘 앤 줄리_에피스테메Episteme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 오일바_116×80cm_2020

이번 전시에서 태생적으로 비정상적이며 결핍의 궁극체인 표상으로 미노타우로스, 피노키오, 우라사와 나오키의 플루토를 설정하고 변용시킵니다. 부서지고 파괴된 토르소, 완전체이지만 예속되어진 상징으로 마징가와 태권브이를 등장시킵니다. 그리고 나약하며 세뇌되는 어리기만 한 존재들과 인간에 의해 본성을 잃은 동물들의 슬픈 모습을 우리에게 비추어 봅니다.

케이엘 앤 줄리_완벽한 무장-피노키오 코나투스_캔버스에 유채, 연필_41×32cm_2020
케이엘 앤 줄리_완전한 인간-관음觀音_소이왁스_29×17×17cm_2013

피노키오와 아톰은 인간을 욕망하는 자동인형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우리는 그럴만한 존재인가요. 이상향의 인간만을 동경하며 추종하는 우리는 스스로 피노키오의 결핍과 욕망에 갇혀 내 주변의 작은 행복을 모릅니다. 욕구에 휩쓸려 거짓되고 위법한 일들에 코가 길어지는 그리고 그 코가 칼날이 되어 우리를 찌르고 서로를 찌르고 나를 찌르고 있습니다. 나를 찌른 칼은 나의 칼이며 우리가 함께 만든 칼이며 나를 거세시키고 우리를 거세시킵니다. 나와 너, 우리는 깨지지 않는 스테인리스 스틸 제기祭器 위에 올려진 제물들일 수도 있습니다.

케이엘 앤 줄리_플루토-그레이트 미노타우로스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00×80cm_2020
케이엘 앤 줄리_완전한 인간-나의 주인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20

완전한 인간이 머무는 이데아의 환상에 우리는 서로에게 다음 세대에게 만점을 요구하며 비교합니다. 교육 또한 완전한 인간을 위한 것처럼 포장하지만 톱니바퀴 인간을 원합니다. 몰개성. 교육은 사회체제에 소속될 수 있는 최소한의 교양과 상식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비교되며 비교하며 세뇌되는 틀 안에 갇히게도 합니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교육의 장치들이 교묘하게 은폐되며, 의식하지 못하게 혼란스럽게 세밀화 되어 체계화 됩니다. 무작정 쫓아가고 헤매이고 있습니다. 좋은 어머니고 착한 아이만이 서 있습니다. ● 착한 늑대는 행복한 개인가요?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동물일수록, 식용이던 오락이던 반려이던 가축은 온갖 종개량 실험에 본연의 모습을 빼앗깁니다. 종개량 유전증으로 장애를 달고 삽니다. 본성을 유지하는 동물은 인간에게 반한다는 이유로 거세되고 수술되고 버려지고... 체제 안에서의 도량화 된 인간에 투영됩니다.

케이엘 앤 줄리_섬-완전한 교집합-나를 찌른 칼_테라코타, 파스텔_25×12×17cm_2012

마징가와 태권브이란 거대로봇은 완전체인 동시에 조종체입니다. 완벽한것처럼 보이지만 조종되어집니다. 그 시초가 마징가이며 아류가 태권브이 입니다. 원본과 복제된 표절. 우리의 로봇이란 거짓과 배신, 실망, 좌절. 하지만 그 시대에 끼쳤던 꿈의 영향력은 다르지 않습니다. 꿈은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완전한 인간이 되기 전 마지막 보통의 인간으로서의 비통한 장면인 피에타에 대입시켜 마징가와 태권브이의 역전된 모습으로 피에타를 구성합니다. 그 모든 걸 떠나 순수한 즐거움이 되살아나는 자유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의 아이들. 꿈. 내가 어릴 적 가졌던 거대로봇의 꿈. 아이들이 꾸는 꿈. 꿈을 훼손하고 망가뜨린 건 사회체제의 기만과 거짓, 조종과 세뇌. 우리가 버린 게 아닙니다. 꿈을 되찾기 위해선 사회구조에 다른 시선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다시 꿈을 꿀 수가 있습니다. 꿈은 훼손되는 게 아니라 꾸지 못하게 되는 것. 모순이 넘쳐나는 세상 안에서 나를 찾지 못하고 해메이는 어리기만 한 우리들. 실재와 이상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습니다. ● 그냥... 그저... 자동인형 그 자체로... 제 3의 존재로서 행복하면 안 되는 걸까요.

케이엘 앤 줄리_완전한 인간-민수_캔버스에 유채_56×44cm_2020
케이엘 앤 줄리_완전한 인간-지인_캔버스에 유채, 목탄, 파스텔_41×32cm_2015(2020 리터치)

토르소는 완전체에서 파괴된 불완전한 몸체이지만 이제는 부서지고 사라진 것에 대한 아름다움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발견했습니다. 결핍된 상태를 완전으로 볼 수 있는 새로운 인식이 채워졌습니다. 마징가가 진화한 형태인 그레이트 마징가에서, 저주받은 괴물에서 벗어나는 그레이트 미노타우로스를 보기도 인간의 고뇌를 응축한 플루토를 보기도 합니다. 라깡이 말한 근본적인 결핍자체를 공유하는 슬픈 존재인 인간을 미노와 피노키오의 태생적 결핍과 욕망에 투영시키지만 초월하는 존재로 그레이트 미노타우로스와 우라사와 나오키의 아톰과 플루토를 진화시킵니다. 미노타우로스는 괴물로만 인지되지만 인간과의 혼융체-어떻게 보면 진화된-이며 인간의 시선에서 괴물이지 그 자신은 인간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존재이며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관점과는 다른 세상에 존재하며 인간의 시선을, 사회체제를 환기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작가는 이 타자들을 슬픈 존재들로 보지 않고 깨쳐 행복한 주인공으로 인식하려 합니다.

케이엘 앤 줄리_모(矛)와 순(盾) 이야기_점토, 테라시질라타, 유약, 산화안료_127×97×60cm_2007

섬이라는 주제에서는 각 입체가 주체를 교란하는 난삽한 우상들입니다. 우상들은 고립된 섬이지만 징검다리의 일부분으로 전환됩니다. 난잡함과 배타적인, 사이비를 해체하고 홀로지만 올곧은, 뭍을 꿈꾸지만 나를 지키는 섬적 존재인 '우리'를 징검다리로 구성합니다. 그 누구 하나도 없어서는 존재할 수 없는 '징검다리 섬'으로서 서로가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되는 완전한 교집합을 상상합니다. ● 이번 전시에서 표현한-사회구조에서 버려진- 타자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주체가 됩니다. 인간이 되기를 거부하고 아버지 인간을 죽임으로써 자유로워지며 사회구조의 영웅을 제거하며 기존 서사에서 벗어납니다. 융합하며 변용하며 진화해 기존의 시뮬라크르 허구의 서사를, 역사를 전복하려 합니다.

케이엘 앤 줄리_화창한 겨울-에포케epoche_단채널 영상_00:10:53_2010

영상 '화창한 겨울'에서 갖가지 죽음을 편집해 직관시키며 사랑의 끝인 허와 무를 보여주고 '한동'에서는 조우遭遇한 자유를 바라봅니다. 우연히 마주친 버스킹을 원테이크로 편집하지 않고 보여줍니다. 슬프고 아프고 머리 아픈 얘기는 뒤로 하고 지금을 노래하는 그들에게서 행복을 느낍니다. 죽음의 끝에서 조우한 한동의 너무나 작은 해변에서... 노래를 한껏 외치고 바다에 뛰어드는 락커들을 보며... 오늘을 즐기며 사는, 사회구조의 틀에서 벗어나는 순간을 만끽합니다. 지금 한동, 여기서 이 순간의 자유와 일탈, 행복. 한동撼动, 요동하며, 한동寒冬, 추운 겨울 마음에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순간...!

케이엘 앤 줄리_한동撼动_단채널 영상_00:07:49_2021

이번 전시에서 완전한 인간은 사회구조가 요구하는 완전한 인간에 역설적 의미로 사용하며 또한 미래의 완전한 인간을 희망하는 이중구조로 얘기합니다. 거창하고 무겁게, 어둡게 보일 수 있지만 그저 온갖 결핍 덩어리인 나를 못나게 바라보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너와 나, 나약한 타자들을 아래로만 바라보고 있는 무시와 배타, 편견과 질투와 시기에서 벗어나 사랑할 수 있는 따뜻함을 품게 되기를 원합니다. 나에게 멈춰진 시간이 다시 흐르게 하려면 또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요. 두렵기만 하고 무서웁기만 한 시간. 결핍이 꼭 불완전한 것이 아니며 부족한 것이 반드시 불행이 아니기에... 결핍과 비정상, 그 자체가 원래의 나, 우리이며 나의 세계에서는 완벽한 인간이란 걸 알았으면 합니다. 완전한 인간은 완전무결한 인간이 아니라 움푹 패이고 너무 거칠어도, 아주 모가 나 있어도 나로서 존재하는 자유를 얻는 사람. 결핍과 비정상인 것처럼 보이는, 완전하지 않아 너무 부족해 보이는 내가...우리가... 그리고 지금 현실이 정상이며 원래인 것임을 따뜻하게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순간! 이 자리에서!... 나의 조그마한 자유를 꿈꿉니다. ■ 케이엘 앤 줄리

Vol.20211217e | 케이엘 앤 줄리展 / KL & Julie / mixed media